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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01화 (101/201)

101화

“빨리 와. 금창약은?”

아이젠이 말했다.

모니카는 손에 든 금창약을 들어 보이며 대꾸했다.

“가, 가져왔습니다.”

“아으, 따가워.”

아이젠이 침대 위에 다리를 걸치고 앉자.

모니카는 그의 등 뒤로 이동해, 푹신한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한 상자를 챙겨온 금창약을 꺼내 아이젠의 몸에 발랐다.

그의 몸은 현재 까지고, 베이고, 멍든 상처로 가득했다.

아우구스트의 칼날은 날카로웠고.

프렘린들의 손톱은 매서웠으며.

버디의 주먹은 쓴맛이었다.

“아, 야! 살살 발라라.”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모니카는 문득 옛 생각이 나는 것도 같았다.

아이젠은 몇 달 전과 비교하면 몸집이 거의 서너 배 이상 커져 있었다.

단단하고 꿈틀거리는 근육이, 모니카를 새삼 기쁘게 했다.

‘도련님, 강해지고 계시는군요.’

모니카는 영설산에서 아이젠과 헤어질 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강해지겠다고, 그때 그녀는 결심했었다.

‘강해져야 해. 도련님을 지키기 위해선.’

물론 호위 따윈 필요 없어 보이는 아이젠의 몸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건 모니카의 마음가짐 문제였다.

“모니카.”

“네?”

그때 아이젠이 말을 걸었다.

그는 스윽 하고 모니카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결혼 상대는?”

“네? 결혼 상대요?”

“그 왜 있잖아. 뭐랬더라…… 체호프 가문과 결혼한다며.”

“아. 네.”

애써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모니카는 소가주전 본선이 끝나면 체호프 후작 가문의 둘째에게 시집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강해지겠다고 결심해 봐야,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닌가. 본선 2차전이 끝나면 소가주전도 끝나는 것인데.

“그랬……죠.”

“슬슬 본선 끝나가는데, 그분은 어떻게 하시는 거지? 네가 가는 거야, 그분이 오는 거야?”

“아마 이리로 직접 오신다고 들었어요.”

“아. 그럼 걱정할 필요 없겠네.”

“네?”

“아니, 난 너 먼저 그린우드 부지로 보내려고 그랬지. 결혼 준비도 해야 될 거 아냐.”

“아…… 괘, 괜찮아요, 도련님.”

“어, 그래. 그럼 2차전 끝날 때까지 잘 부탁한다.”

“마치 벌써 진출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진출할 거야, 난.”

아이젠은 현재 본선 2차전의 합격 여부를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합격자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였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막사 밖에서 마테오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은 모니카에게서 겉옷을 받아 대충 걸치며 말했다.

“예, 들어오세요.”

―활짝.

마테오 백작이 막사 커튼을 열며 들어왔다.

그는 손에 커다란 종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다치셨군요.”

“조금요. 뭔가요, 그건?”

“축하드립니다. 아이젠 공자님께서는 본선 2차전에 합격하셨습니다.”

“와. 기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아이젠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뒤쪽에 서 있던 모니카가 감격한 얼굴이었다.

“하지 마.”

“네?”

“울면서 ‘도련님 정말 대단해요’, ‘저는 합격하실 줄 알고 있었어요’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어, 어떻게 아셨지?”

“조용.”

아이젠은 다시 마테오 백작을 돌아보았다.

마테오 백작이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이미 일곱 개의 붉은색 손바닥 자국이 원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아이젠의 손바닥이 들어갈 자리만 딱 비워져, 반만 완성된 원이었지만.

“이곳에 인주와 함께 손도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본선 2차전에 진출하시는 것이 확정됩니다. 반대로 찍지 않으시겠다면 2차전에는 기권하시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찍으시겠습니까?”

“아유, 그럼요.”

그러려고 나온 소가주전인데, 설마 안 찍겠어?

아이젠은 인주를 손바닥에 듬뿍 바른 뒤 종이 위에 손도장을 찍었다.

그러자 마테오 백작은 종이를 둘둘 말아 두루마리처럼 겨드랑이에 끼웠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본선 2차전의 시작까지는 일주일이 걸리니 그때까지 좀 쉬고 계십시오.”

“일주일이나요? 좀 기네…….”

“그럼 이만…… 아, 중요한 질문을 깜빡했군요.”

마테오 백작이 떠나가려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자.

아이젠은 또 아이기스에 대해 물으려는 것인가 내심 경계했다.

그러나 마테오 백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소가주전 본선 2차전은 ‘창시합(토너먼트)’입니다. 혹시 원하시는 상대가 있습니까?”

아이젠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있다고 하면요? 짝지어주시나?”

“그럴 수도 있겠지요.”

“흐음.”

아이젠이 턱을 괴고 고민했다.

모니카는 그의 입에서 누구의 이름이 나올지, 왠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윽고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저는―”

* * *

마테오 백작이 돌아간 후.

아이젠도 막사를 나왔다.

“엇차.”

찌뿌드드한 몸에 기지개를 켜면서.

멀리 살펴보는데 짐을 싸고 있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아마도 소가주전 본선 2차전 진출에 탈락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자들일 테다.

‘흠. 쓸쓸하겠어.’

돌아가는 길은 사막마을이라 덥지만 마음 한편만은 쓸쓸하리라.

아이젠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허공에 대고 주먹을 뻗어보았다.

쉭― 쉭―

주먹이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니, 이제 뻐근한 느낌도 없고, 칼에 베인 상처도 어느 정도 다 나았다.

역시 금창약. 효과가 좋다.

‘일주일이라고 했나.’

마테오 백작은 본선 2차전 전까지 일주일간의 준비 기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아이젠은 요 일주일간 이번에도 적도심경(敵道審憬)으로 수련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수련을 하기 위해선 그것밖에 없으니.

“실전 상대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2차전을 앞두고 아이젠과 수련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젠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정작 금창약을 줬던 모니카는 그사이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간 거야, 이거?

아이젠은 잠깐 신경 썼지만, 어디 잘 쏘다니고 있겠지 싶어 내버려 두기로 했다.

뒷짐 지고 그노시스를 걷던 아이젠은, 문득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엇.”

두 사람 중 한쪽은 아이젠도 아는 얼굴이었다.

* * *

모니카는 어느 막사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상의 안주머니에는 꾸깃꾸깃한 편지 같은 것이 들어 있었는데, 조금 전 막 쓴 것으로 보였다.

“들어와.”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모니카는 한층 더 긴장한 얼굴로 막사 커튼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침대 앞 거울에서 나신인 채로 붕대로 왼팔을 감싸고 있는 바네사가 보였다.

정확히는 왼팔이 떨어져 나가고 없는, 왼쪽 어깨였지만.

모니카가 그 모습을 보고 바짝 얼어붙자.

바네사가 그녀에게 흘깃 눈짓했다.

“좀 도와주겠니?”

“네? 아, 네!”

모니카는 바네사가 미처 잡지 못하고 있는 붕대 반대쪽 끝을 잡아, 그녀의 어깨에 감아주었다.

꽈악―

“됐어. 이제 놔.”

“옙……!”

어깨가 붕대로 단단히 고정되었음을 확인한 바네사는 그제야 몸 위에 옷을 걸쳐 입었다.

그녀는 막사 중앙에 있는 간이 탁자 쪽으로 이동했다. 탁자 위에는 찻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차 마실래?”

“아, 괘, 괜찮습니다.”

“마시렴. 이런 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걸.”

“네!”

쪼르륵―

바네사가 두 개의 찻잔에 차를 따르는 동안.

모니카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바네사가 앉자, 모니카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바네사가 모니카를 향해 찻잔을 슥 밀었다.

“날 보고 싶다고 했다고?”

“……네!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무례는 무슨.”

모니카는 가문의 노예, 바네사는 그녀의 주인.

사실 엄밀히 따지면 무례라고 볼 법도 했으나, 바네사는 그런 것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네사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는데?”

“저, 그게…….”

“말하렴. 괜찮으니까.”

모니카는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강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뭐?”

바네사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지금 농담을 하는 건가? 묻는 얼굴로.

그러나 모니카의 표정은 진지했다. 다소 긴장한 얼굴이긴 했지만서도.

바네사가 사이를 두고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검은뿔 기사학교나, 아니면 다른 기사들을 찾아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왜 나를 찾아온 거니?”

“바네사 공자님은…… 여인이니까요.”

앞으로의 말이 더욱더 강한 불손이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고 해도.

모니카는 목소리를 꿋꿋이 이어나갔다.

“바네사 공자님은 여인의 몸으로도 소가주전 본선 2차전에 진출할 정도로 강해지셨으니까요. 저도, 저도요. 저도 바네사 공자님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

잠깐 적막이 흘렀다.

바네사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만이 허무하게 울려 퍼졌다.

모니카는 바네사를 동경하고 있었다. 단순히 강한 여인이라서 동경하는 것이 아니다.

여인의 몸으로 가주 자리에 서는 데 동의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현 소가주전에 출전한 그린우드 핏줄 중 여자는 바네사밖에 없다는 사실이 방증이었다.

하여 다른 방계 등에서 바네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비단 젠트리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하수인이나 기사들, 심지어 흑기사들마저도.

모두가 바네사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모니카는 어느 날 장로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바네사 폰 그린우드, 그 아이가 소가주전에 출전한다고?

―에이. 직계라곤 해도 그 아이가 어떻게 가주가 됩니까?

―대를 잇는 것은 남자여야 합니다. 그린우드뿐만이 아니라 모든 귀족들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어요.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것입니다.

―제국의 엄중한 규율을 깨뜨리는 것은 아닌지…… 허험.

그 대화에서 조용히 있던 것은 사울 장로뿐.

나머지는 모두 바네사를 고깝다는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네사는 그들의 시선을 모두 무시하고, 제쳐 두고, 무위로 돌리고, 소가주전 본선 2차전까지 진출했다.

그녀가 소가주전의 우승자가 되리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모니카는 바네사의 그 기개가 좋았다.

그래서 오늘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

바네사는 찻잔 끝을 만지며 돌렸다. 할 말이 많지만 말을 고르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모니카,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내게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처벌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흐음…….”

바네사는 다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뜻은 알겠어. 하지만, 내가 알기로 모니카 넌 조만간 결혼한다고 들었는데?”

그랬다.

체호프 후작가의 둘째가 모니카의 미모에 반해 청혼을 해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가문 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

바네사 역시 그 소문을 들었고, 바네사가 들었을 정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였다.

모니카는 벌벌 떨다가, 품 안에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탁자 위에 단호하게 올려놓았다.

“청혼 거절에 대해 쓴 편지예요. 집사장님과 사울 장로님께도 이미 말씀드려 놓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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