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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00화 (100/201)

100화

【 숨 돌리기 】

“그럼, 가방을 주시겠습니까?”

“여기.”

흑기사의 권유에 아이젠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데, 마침 헝겊이 수명을 다했는지 우지직하고 찢어졌다.

덕분에 안에 있던 레드스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고.

흑기사들은 화들짝 놀랐다.

“헉!”

“이, 이게 다 몇 개야?”

“이럴 수가.”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아이젠은 생각했다.

‘이 정도를 보고 놀라는 걸 보면, 다른 합격자들은 생각보다 개수가 적은 모양인가?’

레드스톤을 모아온 개수가 많다고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이젠은 어차피 자신이 합격선이라면, 그럴 시간에 실전 수련치나 더 쌓을걸, 하고 생각했다.

흑기사가 말했다.

“큼, 커흠. 이,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이젠 도련님.”

“오냐.”

아이젠은 흑기사들을 지나쳐 걸었다. 던전 밖으로 나가는 흙길이 나 있었다.

아이젠은 본선 1차전이 끝나고도 아직 5성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경지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쯧. 2차전에서는…….”

“도련님!”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반가운 얼굴, 모니카였다.

그녀는 헐레벌떡 넘어질 듯한 발걸음으로 아이젠에게 달려왔다.

“야, 야. 조심 좀 해라.”

“괜찮으세요? 다친 데는요? 헉, 여기 팔이 베였잖아요! 여기도! 여기도!”

“아, 조용히 좀. 귀도 베이는 것 같아.”

사실 아이젠이 열혈 체질이기에 망정이지,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다른 그린우드들과 맞서 싸우며, 또 프렘린들과도 맞서 싸우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던가.

아이젠은 던전을 통과했다고 하자 그제야 피로감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씻고 좀 자야겠다.”

“물 받아놨어요, 도련님. 어서 가요!”

“오냐.”

아이젠은 모니카의 부축 아닌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누가 합격했을까.’

2차전에 진출하는 것은 8명. 과연 합격자는 누가 될지.

아이젠은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아직 상위 8명이 정해진 것이 아님에도, 그의 생각에 자신의 합격은 기정사실이었다.

* * *

피쉬트랩 던전 바깥.

중앙에서는 마테오 백작이 흑기사들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는 흑기사들에게 지시했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그러자 흑기사들은, 각 그린우드 소가주전 참전자들이 가져온 레드스톤을 책상 위에 풀어헤쳐 놓기 시작했다.

와르르르―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둔탁한 소리로 레드스톤들은 책상을 데구루루 굴렀다.

흑기사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레드스톤의 숫자를 세는 것.

상위 8명만이 본선 2차전에 진출할 수 있다.

“하나, 둘…….”

여기저기서 숫자 헤아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 흑기사 한 명은 옆에 서 있던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포터 흑기사님이랑 잭스, 제럴드, 번치까지. 총 네 명이나 실종됐대.”

“아, 들었지. 말도 마. 숲속에서 프렘린들한테 당해 죽은 흑기사도 한둘이 아니라던데.”

“헹,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해서 그런 거지. 겨우 마물 따위한테 당해 죽다니.”

“맞는 말이야. 포터 흑기사님이 실종되신 건 좀 의외지만.”

흑기사라고 다들 냉혈한에 사이코패스 같은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박하고 말이 쉽게 나가는 가벼운 사람도 있었는데 이 둘도 그런 유형.

마테오 백작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하자 두 흑기사는 잠깐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마테오 백작의 고개가 돌아가자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누가 최고 기록일까?”

“내기할래?”

“내기는 무슨 내기. 무슨 의미가 있겠어? 어차피 직계의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이 우승하실 텐데.”

“하긴…….”

그때, 우연인지 두 흑기사가 헤아려야 하는 것은 게오르크와 아이젠의 가방이었다.

흑기사 한 명이 먼저 게오르크의 가방을 열었다.

“하나, 둘, 셋, 넷…… 총 열다섯 개.”

“와하.”

다른 흑기사가 감탄했다.

열다섯 개라니.

조금 전에는 마물이니 뭐니 했어도, 프렘린은 상급 마물이다. 흑기사인 그들도 제법 긴장을 갖추고 상대해야 하는 적.

그런데 게오르크 직계 공자는 열다섯 개나 모아왔다.

“역시, 다음 대 가주는 게오르크 공자님인가.”

“대단하시다…….”

“뭐 해. 얼른 그것도 세어봐.”

“엉? 어어.”

감탄하던 흑기사는 아이젠의 가방을 만졌다. 마지막에 찢어졌기에 새로 옮겨 담느라 그의 가방만 새것이었다.

흑기사는 별 감흥 없이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피쉬트랩 던전 밖에서 아이젠 공자를 만났던 녀석이 가방을 보고 놀랐단 얘기는 들었는데.

“응?”

그리고 가방을 열자, 조금 놀랐다.

안에는 상당한 양의 레드스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다 몇 개야.”

“얼른 세봐!”

옆에 있던 동료가 흥분해서 소리치자.

흑기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 열다섯 개?”

“뭐라고? 잘못 센 거 아냐?”

“네가 직접 봐. 열다섯 개 맞잖아.”

“하나, 둘, 셋…… 그, 그러네. 말도 안 돼.”

레드스톤을 열다섯 개나 모아온 사람이, 게오르크 공자 말고 또 있다고?

알고 보니 열다섯 개면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닌 걸까?

두 흑기사는 잠시 그리 생각했으나.

“바네사 폰 그린우드! 총 네 개입니다!”

“한스 폰 그린우드! 총 세 개입니다!”

“아우구스트 반 그린우드! 총 여섯 개입니다!”

다른 흑기사들이 결산을 마치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면.

보통 너댓 개 정도가 평균치인 듯싶었다.

그런데 열다섯 개라니?

때맞춰 저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타케오 반 그린우드! 열 개입니다!”

- 오오.

- 열 개? 대단한 숫잔데!

타케오 반 그린우드. 1방계의 장자인 그가 열 개를 모아왔다고 선언하자, 다른 흑기사들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때문에 두 흑기사는 더욱 당황스러워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몇 개의 목소리가 더 들리고.

이제 두 흑기사만이 숫자를 외칠 때가 되자.

마테오 백작의 시선이 다시 두 흑기사에게로 향했다.

“그쪽은 몇 개입니까?”

“아, 저기, 그게…….”

“편히 말씀하십시오…….”

“으. 으음.”

게오르크의 가방 담당이었던 흑기사가 먼저 말했다.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열다섯 개입니다!”

- 뭐? 열다섯 개?

- 잘못 센 거 아냐? 말도 안 돼!

- 다시 세봐!

“확실합니다! 열다섯 개, 맞습니다.”

수군수군―

흑기사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죽이고 대화를 나눴다.

당연할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숫자가 나왔으니.

마테오 백작은 편승하지 않고 아이젠 담당의 흑기사에게 시선을 줬다.

“거기는?”

“아이젠 폰 그린우드…… 열다섯 개입니다!”

그러자 모두의 목소리가 잠시 멎었다.

다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것은 5초 정도 뒤였다.

- 말도 안 돼! 열다섯 개?

- 그 집쥐공자가 게오르크 공자님과 동률이라고?

- 웃기지 마!

- 사기 친 거 아냐?

- 그 집쥐공자는 검도 안 쓴다며! 검도 안 쓰면서 어떻게 열다섯 개나 모을 수가 있지?

- 분명 본선 전에 미리 모아놓고 사기를 치는 거야.

흑기사들이 저항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그들은 아이젠에 대해 불만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입 밖으로 내지만 않았을 뿐, 아이젠이 참철검가에서 검도 아닌 주먹을 쓰는 데에 할 말이 많았던 것.

참철검가라는 이름에 반해 그린우드를 모시는 흑기사도 적지 않다.

그런데 검을 쓰지 않는 아이젠이 본선 2차까지 진출한다고?

그 말은 곧 소가주 자리를 노려봄 직도 하다는 얘기 아닌가.

그건 말도 안 된다.

- 재조사를 해야 돼!

- 심문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 내 친구는 몇 년 전에 그 집쥐공자한테 맞아서 아직도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본선 2차까지 나가!

- 어불성설이다!

아이젠은 분명 가문의 직계 공자임에도.

흑기사들은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원래 뒷담화란 전염되게 마련.

모든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테오 백작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다들 조용히.”

―파지직!

벼락이 잠시 공간을 훑고 지나가자 흑기사들 모두가 깜짝 놀라 입을 멈췄다.

그들은 일제히 마테오 백작의 왼손에 집중했다.

“검사 결과에 이의란 없습니다. 제가 던전을 계속 관장하고 있었는데, 설마 제 눈을 피해 무슨 문제라도 있었단 말입니까?”

- 아, 아니.

- 그게…….

- 백작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다들 조용히 하십시오…….”

마테오 백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는 알브레히트 5방주의 던전 출현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오러를 쓰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그가 버디라는 마혼을 상대로 역속검격을 사용했을 땐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냥 넘어간 이유는, 버디를 일찌감치 색출해 내지 못한 데엔 마테오 백작의 책임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오러를 쓴다면, 내 오러에도 반드시 걸린다.’

버디는 오러를 쓰지 않고 숨어 살아왔기에 마테오 백작이 그간 그를 검수해 낼 수는 없었다. 그린우드 측에서도 이 사실을 잔니니 가문에 문제 삼지 않으리라.

어찌 됐건, 버디를 대신 처리해 준 알브레히트 5방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는 묵인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마테오 백작은 오러를 쓰는 상대는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이 말은 달리하면 아이젠 공자가 타인의 도움을 받아 본선 2차전에 진출할 수는 없다는 뜻이 된다.

대타를 쓰려거든 프렘린을 오러도 쓰지 않고 사냥하는 수준의 상당한 실력자여야 하는데.

아이젠이 그런 인재를 윗사람으로서 부릴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나는 보았지.’

마테오 백작은 직접 보았다.

자신을 습격하던 흑기사들을 손쉽게 무력화시킨 아이젠의 실력을.

그는 비록 참철검가에서 주먹다짐이나 하는 망나니였으나.

그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마테오 백작은 그리 생각했다.

“상위 8명이 정해졌으니 검수를 종료하겠습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 아니, 하지만…….

- 그래도.

- 이거는 좀.

“아직 더 할 말이 남았습니까?”

마테오 백작의 눈이 전에 없이 매섭게 빛나자.

흑기사들은 절로 제식을 맞추게 되었다.

- 아닙니다!!

이로써, 본선 2차전 진출자들이 결정됐다.

* * *

아이젠은 뜨거운 물로 목욕한 후 자신의 막사에 와 있었다.

그는 허리에 대충 수건만 두르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았다.

아이기스가 양 팔뚝에 걸려 있는 것 빼면, 그의 상반신은 완전한 나체 상태였다.

“음.”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복근.

바람 빠진 구석 없이 둥그렇게 말려 있는 어깨 삼각근.

섬세하게 갈라지고 틈 하나 없이 근육이 들어찬 가슴 대흉근.

그리고 태산처럼 넓게 펼쳐진 등의 광배근까지.

“완벽해, 완벽해.”

아이젠은 새삼스럽게 자신의 몸에 감탄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아이젠은 적어도 신체적으로는 완벽한 피지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련―님.”

그때 막사 커튼을 열어젖히고 모니카가 들어왔다.

그녀는 상반신을 까고 있는 아이젠의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아이젠은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빨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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