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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88화 (88/201)

88화

한스의 생각에 직계 안에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것은 게오르크 첫째 공자뿐이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밀리다니!

‘그래 봤자 같은 3성 상위다. 연풍양단이라면 나도 쓸 수 있어!’

한스는 그간의 노력의 성과를 내보이고 싶었다. 하여 자신도 양손으로 참철검을 꽉 쥐고 연풍양단의 시전 자세를 취했다.

‘누님은 한쪽 팔만으로도 이런 위력이다. 나라면 더 강할 수 있어!’

한스가 한쪽 발을 축으로 삼아 허리를 비틀었다.

‘참철검술 3성, 연풍양단!’

파앗!

연풍의 오러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 바네사는.

척.

참철검을 돌려 잡았다. 그러니까, 칼날이 아니라 검 면이 앞쪽으로 오도록. 그리고 참철검을 물구나무 세워 한스의 연풍양단을 막아 냈다.

티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둘린 검격이 우로 빠져 튕겨 나가고.

태앵!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둘린 검격은 좌로 빠져 튕겨 나갔다.

스팟!

공격이 비는 짧은 사이, 바네사는 한스의 몸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검을 다시 바른 위치로 고쳐 잡았다.

‘연풍참!’

촤악!

한스의 몸이 왼쪽 허리부터 오른쪽 어깨선까지 사선으로 크게 베였다.

“크아악!!”

후드득!

바닥에 피를 흩뿌린 한스는 뒤로 주춤 물러나는가 싶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쿵!

“크흑!!”

“아프니? 살짝 벤 건데.”

바네사는 이런 곳에서 동생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건방지긴 해도 귀여운 동생,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장 이곳에서는 회생이 불가능할 만큼의 큰 상처를 입혀 놓았다. 한스는 더는 일어나 싸우지 못할 것이었다.

“돌아가렴, 한스. 넌 소가주전 본선을 통과하기엔 일러.”

“어떻게! 으윽, 어떻게! 같은 3성 상위일 텐데! 팔도 하나 없는 장애인한테 내가 져?! 어떻게 누님이 나를 이기는 겁니까!”

한스는 괴성을 지르다가, 마침내 해선 안 될 말까지 해 버렸다.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도 바네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자존감이 차올라 있었으므로.

“경험치의 차이랄까?”

바네사는 문득 지난날을 회상했다. 아이젠, 그리고 사울 장로와 검은 뿔 기사 학교에서 수련했던 지난날을 말이다.

그때 아이젠이 해 줬던 말이 있었다.

‘누님.’

‘왜?’

‘누님은 강해지고 싶은 게 맞아요?’

‘그게 무슨 질문이니? 당연하지.’

‘그렇게 안 느껴지는데.’

바네사가 궁금해하자 아이젠은 말을 이었다.

‘정말 강해지고 싶으신 거라면, 검사를 상대하는 버릇은 고치셔야겠어요.’

‘검사를 상대하는 버릇?’

‘네. 저는 무투가인데, 누님은 모든 상대가 검을 쥐고 있다고 전제하고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사실이 그랬다. 참철검가 그린우드. 단지 주먹을 쓰기만 해도 투옥되는 집안에서 바네사는 검을 쓰는 것이 버릇 들어 있었고 검사와 싸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검사가 아닌 자와 싸우는 경우를 아예 상정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었다.

바네사는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아이젠과 무수히 많은 대련을 해 오면서 무투가를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바네사에게 경험치가 되었다.

“경험치?”

“그래, 경험치. 궁금하면 너도 검은 뿔 기사 학교에 들어올래? 사울 장로님이 좋아하실 거야.”

“……! 그딴 기사 양성 학교 따위에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난 그린우드 공작가의 적자니까!”

비틀!

한스가 다리를 부들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기개에는 바네사도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처가 얕았나?’

물론 힘을 아주 실어 공격한 게 아니기에 실제로 상처가 얕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손 속에 자비를 두어 벤 것도 아니었다. 한스가 지금 일어난 것은 오로지 그의 정신력 덕분. 바네사도 한스를 깔보던 태도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패배자한테 훈계하듯 말씀하지 마시죠!”

“…그래. 내가 실수했어.”

척!

한스가 손을 모아 검을 쥐고.

꽈악.

바네사도 오른팔에 힘을 불어넣었다. 두 사람의 참철검에 다시 그린 오러가 둘렸다.

“덤비렴, 한스. 예절 교육을 다시 시켜 줄 테니까.”

* * *

퍽!

“캬아앗…….”

마지막 남은 프렘린을 쓰러뜨리고, 아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몸이 좀 달궈졌네.”

그의 몸도 성치만은 않았다. 한 번에 네 마리의 프렘린을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젠은 어느덧 사신강림까지 사용한 상태였고, 덕분에 지금 그 반동으로 온몸 근육이 저릿저릿했다.

“앗, 따가.”

그리고 양 팔뚝은 프렘린들의 손톱에 베여 군데군데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이젠은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정돈 돼야 상급 마물이지.’

만약 또 프렘린들이 무리 지어 나타난다면, 지금 몸 상태로는 아이젠도 감당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사신강림의 반동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체력 안배를 좀 해야 했다. 말하자면 아이젠의 열혈도 조금은 지쳤달까. 아주 조금이지만.

“좀 쉬면서 갈까.”

아이젠이 그렇게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사아아아…….

순간 아이젠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싸늘한 느낌. 단순히 추워서, 추운 바람 때문에 느껴지는 싸늘함이 아니었다. 그의 온몸이 지금 외치고 있었다. 주변에 거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고.

‘이건.’

아이젠은 이런 느낌을 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중원 무림, 천마 도강문과의 싸움에서 말이다.

아이젠이 아직 이강철일 때, 결국 그가 도강문을 이기긴 했지만 도강문도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절대 예사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도강문과 맞닥뜨렸을 때만큼의 떨림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두려움에서 나오는 떨림이 아니라.

‘대체 어떤 강자가 이 앞에 있는 거지?’

설렘에서 오는 떨림이었지만.

아이젠이 미소를 짓자 수풀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쁜가?”

아이젠도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기억을 떠올리는 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두 아들을 죽여 놓고 그런 웃음을 짓다니.”

사박. 사박.

발소리는 분명 작았다. 하지만 반대편의 상대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아이젠은 자신을 향해 커다란 벽이 다가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부하, 함정의 명수 룬잭도 네가 죽였지.”

“…….”

아이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알브레히트 반 그린우드, 5 방계의 방주. 그의 표정은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내 가족을 죽여 놓고 어떻게 그런 웃음을 지을 수가 있느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아이젠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이것이었다.

‘뜨겁다!’

추웠던 주변이 삽시간에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우습게도 아이젠은 자못 훈훈한 기운마저 느끼고 있었다.

알브레히트는 오러를 내뿜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기합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제 더 이상 주변이 춥지 않게 됐다.

아이젠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 아들과 룬잭을 죽였다고?

‘역시 오해를 깊게 하고 계시는군.’

아무래도 그의 두 아들, 플로리안과 틸만을 아이젠이 죽였다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조금 전 함정을 파서 아이젠을 죽이려 했던 남자까지. 알브레히트 5 방주의 터무니없이 일그러진 표정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편 아이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알브레히트 5 방주가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피시 트랩 던전은 그린우드 소가주전의 참가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 누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룬잭에 이어서 알브레히트 5 방주까지,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걸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제가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이젠은 강함 추구라는 제1 원칙으로만 살아온 남자였으니까.

“한판 하시겠다면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알브레히트는 왜 여기 있는가. 아이젠은 알브레히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여기 온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만한 투기를 낼 리 없지.’

알브레히트에게서 느껴지는 투기는 일전에 아이젠이 한스를 폭행한 죄로 가주실에 끌려가 추궁당할 때 테오발트 가주에게서 느꼈던 그것과 거의 흡사했다.

방계라 해도 직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로 보건대 알브레히트는 아마 지난번 대의 소가주전에도 참가했을 것이었다.

‘내 기억에 알브레히트 5 방주님의 나이는 현재 쉰셋. 지난 소가주전이 37년 전이었으니 그땐 열여섯 살. 나와 같은 나이였어.’

비록 우승자는 테오발트 현 가주였지만, 알브레히트에게서도 매서운 열기가 느껴졌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군.”

“네. 알브레히트 5 방주님이시죠.”

“플로리안과 틸만도 알고 있겠지.”

“모른다고 백번을 말해도… 어차피 안 들으시겠죠.”

“닥쳐라. 룬잭을 죽인 것도 네놈이잖아.”

“그것도 제가 한 건 아닌데.”

아이젠은 그저 룬잭을 무력화시켰을 뿐, 실제로 죽인 건 프렘린이었다. 그보다 애초에 먼저 죽이려 했던 건 그쪽이잖아? 룬잭의 함정에 아이젠이 발을 걸치기라도 했다면 그는 지금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끝도 없이 해명할 거리들만 떠올라, 아이젠은 반대로 그냥 변명을 포기하기로 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들키면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걱정 마라, 들키지 않으니. 오러를 쓰지 않으면 마테오 백작에게 들킬 일도 없다.”

스르릉―

알브레히트가 참철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참철검은 특이하게도 도신이 암적색인 흉흉한 빛깔의 검이었는데, 검도 주인을 따르는 건지 칼날에서 온통 흉악한 투기를 내뿜고 있었다.

‘저게 오러를 쓰지 않은 검이라고?’

말도 안 돼. 그럼 저 검에서 느껴지는 미친 기운은 대체 뭐란 말이야?

아이젠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아이젠의 입가는 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알브레히트의 눈썹이 V 자 모양으로 휘며.

“내 아들들을 죽여 놓고 비웃음이 나오느냐!!”

그가 열기를 띤 노성을 내질렀다.

아까와 같은 훈훈한 열기가 아이젠의 몸을 휘돌아 감쌀 때.

파앙!

알브레히트가 발을 디뎌 아이젠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안 죽였다니까요.”

아이젠이 가볍게 말을 받고.

‘결사신권, 박살!’

주먹에 홍화의 기운을 담아 내지르려는 그 순간이었다.

오싹!

아이젠의 주먹이 멈칫했다. 아이젠이 스스로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팔에서 힘이 빠진 것일 뿐.

‘잘린다!’

이대로 주먹을 찌르면, 아이젠의 팔은 오징어포처럼 좌우로 쭉 찢어져 잘릴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젠은 뻗은 주먹을 쫙 펴 손날을 펼쳐 들었다.

‘결사신권, 교아!’

교아를 실은 아이젠의 손날이 알브레히트의 참철검 옆면을 스치고.

팅!

아이젠은 간신히 검을 튕겨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 차례 튕겨 냈을 뿐이었다. 알브레히트의 참철검은 어느새 하늘 높이 올라가 아이젠을 향해 떨어져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빈틈투성이.’

아이젠이 지금 보기에, 알브레히트는 빈틈투성이였다. 양팔은 들어 올렸고, 참철검은 너무 높이 들려 있으며, 커다란 몸을 지지할 발목은 위태위태했다. 명치, 갈빗대, 심장, 낭심 등 대부분의 급소를 완벽하게 노출하고 있는 자세.

그런데 아이젠은 어디 하나 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안 먹혀.’

현 상태에선 아이젠이 아무리 강한 힘을 실어 타격한다고 해도 알브레히트의 몸에 작은 흉 하나 남지 않을 테니까.

“저승에 있는 내 아들들에게 사과라도 전해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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