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우애 나쁜 친척들 】
“내가 딱히 불살 주의인 건 아니지만… 좀 심했어. 친척끼리.”
아이젠의 말에.
“친척? 푸하하하!”
프란츠는 재미있다는 듯 허리까지 꺾어 가며 웃었다. 그는 곡도를 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 몸에 있는 흉터들이 보이지 않나?! 전부 이번 소가주전 경합에서 우승하기 위해 얻은 영광의 상처야! 그린우드에는 친척도, 형제도 없다. 전부 서로를 적대시하면 그것으로 족해!”
팟!
프란츠가 재빠른 몸놀림으로 아이젠에게 덤벼들었다.
‘친척도, 형제도 없다라.’
아이젠은 전생에 가족이 없었다. 유일하게 있는 가족이라면 그의 스승, 이화도뿐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친우 한 명 한 명이 귀하고 소중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도유진을, 그는 그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맘에 안 든다, 너.”
아이젠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결사신권의 묘리를 듬뿍 끌어올려, 단숨에 4성까지 도달한 아이젠. 그는 가벼운 흥분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미지의 적을 향해 멍청하게 달려들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저 곡도.’
휘어진 각도가 교묘하고 칼날은 위협적이다. 자칫 베이면 아이젠의 팔 따위 흔적도 없이 날아갈 터. 일단 한 번이라도 칼날에 닿으면, 저 곡도는 어느 각도에서든 상대의 신체를 가르고 들어가 잘라 낼 것이었다.
‘어설프게 당해 줄 생각은 없어.’
아이젠은 짧게 호흡했다. 그리고 숨을 참았다. 그사이 프란츠의 곡도가 아이젠의 머리 근처까지 다가왔다.
“우리 집안의 비기, 참철곡도검술을 맛봐라!”
프란츠의 곡도가 다가올 때, 아이젠은 곡도에 넓은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결사신권, 교아(鮫牙).’
그의 손에 교아의 힘이 실리고, 그의 손등이 프란츠가 쥔 곡도의 넓은 면에 가 닿았다.
착!
“……?!”
분명 곡도에 아이젠의 손이 맞닿았는데 베는 느낌이 없자 프란츠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젠은 그가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튕겨 낸다.’
아이젠의 손등과 프란츠의 곡도는 완벽하게 밀착되어 있는 상태. 이 상황에서는, 아이젠이 손등에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티잉!
곡도가 튕겨 나간다.
땡그랑!
프란츠는 분명 힘을 꽉 주고 있었지만, 곡도는 터무니없이 허망한 모습으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졌다.
“무슨?!”
“무슨은.”
아이젠의 주먹이 프란츠의 머리칼을 스쳤다.
“꺼져.”
아이젠의 어조는 싸늘했다.
‘결사신권, 박살(撲殺)!’
떠엉!!
아이젠의 주먹이 프란츠의 얼굴을 노렸다. 잘난 코를 뭉개 버리고자 팔을 뻗은 것인데.
“윽……!”
프란츠는 얼굴을 맞지 않았다. 그새 주운 곡도를 눈앞까지 끌어당겨 주먹을 막았을 뿐. 하지만.
끼기긱!
충격은 상당한지, 아이젠의 주먹을 받은 프란츠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프란츠는 간신히 힘을 비틀어 아이젠의 주먹을 튕겨 냈고.
팅!
아이젠이 다음 공격을 기다릴 때, 곡도를 휘둘렀다.
“검도 못 다루는 주제에!”
곡도가 아이젠의 눈동자를 향해 날아왔다.
“못 다루는 게 아니라 안 다루는 거야.”
아이젠은 칼날을 붙잡았다.
콱!
피하기 어렵다면 피하지 않으면 된다. 아이젠은 다가오는 칼날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세웠다.
부들!
프란츠가 힘을 줘 밀어 보려 했지만.
치이익.
아이젠의 발만이 조금 뒤로 밀릴 뿐, 그의 중심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안 다루는 거라고? 웃기는 소리! 그렇다기엔 참철검을 가지고 있지도 않잖아, 넌!”
항의하듯 말하며 프란츠가 검을 당기자 아이젠이 가볍게 검을 놓았다. 그 반동 때문에 프란츠는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래, 난 검이 없지.”
프란츠가 다시 자세를 잡고 비로소 바로 설 때, 아이젠은 뻐근했던 목을 풀었다.
“네 검은 얼마나 대단한 검인지 한번 볼까, 그럼?”
“……!”
프란츠의 눈동자가 커졌다. 핏발이 선 얼굴 탓인지 온몸에 난 흉터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프란츠는 자신의 흉터를 누가 새겼는지 되새김질했다.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3 방주인 페르디난트 반 그린우드였다. 그의 아버지 페르디난트는 언제나 같은 말을 했다.
‘겨우 내 검조차 견디지 못하겠다면! 소가주전의 우승은 꿈도 꾸지 마라!’
‘프란츠, 너와 네 동생 아우구스트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소가주전에서 우승해야 해! 그것도 압도적으로!’
‘우승하지 못하는 아이는 우리 가문에 필요 없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막 형성되던 시절부터 프란츠는 그런 말들을 듣고 살아왔다. 어느 날부터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기억에 각인된 고통이란 참기 어렵다. 페르디난트가 남긴 자상을 보며 프란츠는 언제나 생각했다.
‘나는 소가주전에서 우승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런데, 이놈은 대체 뭐야? 검도 안 쓰는 주제에 그린우드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건 인정할 수 없다. 직계가 검을 쓰지도 않고 소가주전에 나오다니, 그런 건 인정할 수 없어.
프란츠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주제에! 야생 잡초의 심정을 네가 알 턱이 없지!”
“몰라.”
아이젠의 대답은 초연했다.
“내가 알면 또 어쩔 건데? 잡초가 잡초가 아니게 되나?”
후욱!
한순간 프란츠는 자신의 시야가 희뿌예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아이젠의 주먹이 제 코앞까지 다가와 있기에 그런 것임을 프란츠는 뒤늦게 깨달았다.
‘피해야―!’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너무 늦었다.
콰앙!!
‘결사신권, 박살(撲殺)!’
아이젠의 박살이 작렬하고.
“크아아악!!”
땡그랑!
프란츠는 곡도를 놓치더니 제 얼굴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흙바닥인지라 그의 옷이 진흙으로 더러워졌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크윽!”
잠시 후 프란츠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곡도를 손에 쥐고 일어났다.
그는 알았다. 그가 아파하고 있는 동안 아이젠에게 충분히 공격할 기회가 있었음을. 하지만 아이젠은 그러지 않았다.
“날 봐주는 거냐?!”
건방진!
프란츠는 자존심이 상했다. 직계 중에 자신의 상대는 게오르크 정도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봐준다기보단,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는 취미는 없어서.”
“가만두지 않겠다. 감히 내게 동정을 베풀다니.”
프란츠로서는 심산이 뒤틀릴 수밖에.
아이젠은 프란츠보다 무려 열 살이나 연하였다. 게다가 그는 검을 쓰지 않고 주먹을 쓰며, 프란츠처럼 험난한 세월을 거쳐 산 방계가 아닌, 평생 얌전한 삶만을 살아온 직계였다.
그런데 자신보다 강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남보다 몇 배 이상 배배 꼬인 성격의 프란츠로서는 아이젠의 승리를 결단코 인정할 수 없었다.
프란츠는 곡도를 비틀어 쥐었다.
“오늘 여기서 네 목을 잘라 가겠다. 직계의 피가 하나 줄어들겠군! 하!”
“그래, 뭐. 할 수 있다면.”
아이젠은 겁나지 않았다. 프란츠가 전력을 다해서 덤비는 것. 그것이 아이젠이 바라는 것이었으므로.
“훕.”
프란츠가 짧은 숨을 들이켜고, 잠시 후 그의 몸에서 그린 오러가 피어올랐다.
“나는 참철검술 4성의 검사, 프란츠 반 그린우드! 3 방계의 비기인 참철곡도검술을―”
프란츠의 목소리가 일순 지워졌다. 아이젠은 등 뒤에서 그의 말을 마저 들었다.
“맛보여 주마!”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아이젠의 고막을 때렸다. 소름이 돋을 법한 초고음이었다. 아이젠은 허벅지에 힘을 줘 다리를 굽혔다.
샤악!
머리카락 몇 가닥이 베였나. 허공에 나풀거리는 머리카락들을 바라보며, 아이젠은 주먹에 힘을 불어넣었다.
‘결사신권―’
그리고 홍화의 기운을 담는다. 연분홍빛 오러가 아이젠의 손에서 기기묘묘하게 피었다.
‘권왕백무(拳王百舞)!’
아이젠은 주먹에 담겨 있던 모든 기운을 팔꿈치로 몰았다. 그리고, 등 뒤를 향해 팔꿈치를 쭉 뻗었다. 일전에 카론 영감과의 대전에서 사용한 결사신권의 응용이었다.
“헛?!”
갑자기 팔꿈치가 날아들자 프란츠는 헛숨을 들이켰고.
뻐억!
다급히 곡도를 들어 막았지만, 아이젠의 팔꿈치에 담긴 강기는 검 면을 통과해 프란츠의 명치를 타격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힘이 상쇄됐기에 프란츠에게 가해진 충격도 마냥 크지는 않았으나.
“으큭……!”
그래도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는 됐다.
프란츠는 여기서 넘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바닥을 딛고 우뚝 서 곡도에 힘을 담았다.
‘참철곡도검술, 연공난무!’
프란츠의 연공난무는 기존 참철검술 연공난무의 그것과 뼈대가 같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는데.
쉬쉬쉬쉬쉭!!
참철검술의 연공난무 참격이 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든다면 참철곡도검술의 연공난무는 참격이 일정치 못하게 난반사됐다. 즉 적은 공격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고.
“엇차.”
그건 아이젠 역시 마찬가지였다.
쉬쉬쉭!
날아들던 검기가 아이젠의 발치를 싹둑 베었다. 그 탓에 신발과 바지 밑단이 일부 잘려 나갔다. 다행히 아이젠의 신체는 멀쩡했다.
까득.
프란츠는 아쉬운 마음에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여기서 공격을 그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다.
‘참철곡도검술 연계, 오러 검기-속동검격!’
프란츠는 곡도의 검 면 전체에 그린 오러를 두른 후 속동검격을 사용해 재빠르게 아이젠에게 달려들었다.
아이젠은 일전에 이 기술을 본 적이 있었다. 사울 장로에게서, 또 바네사 누님에게서.
‘두 분 다 빠른 공격이 일품이었지.’
속동검격은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어 적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에 베어 버리는 기술. 아이젠은 그 파훼법을 알았다.
‘박살, 악지섬(顎之殲)!’
아이젠은 자신의 밑을 노리고 파고드는 프란츠를 향해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려 내려쳤다.
콰앙!!
“커헉?!”
아이젠의 주먹이 정확히 프란츠의 등 정중앙을 강타했다. 프란츠는 아이젠에게 파고들어 오기는커녕 바닥과 몸을 부딪쳐야 했다.
“……!!”
프란츠는 신음도 못 냈다. 그저 엄청난 고통 탓에 입을 벌리고 부들거릴 뿐. 맞은 부위가 등인지라 상처를 어루만져 통증을 경감시킬 수도 없었다.
‘그래도 제법인데.’
아이젠은 조금 감탄을 해 주기로 했다. 아이젠의 주먹이 조금만 늦었다면 프란츠의 곡도가 그의 머리를 날려 버렸을 테니까. 온몸에 흉터까지 새겨 가며 배웠다는 검술이 허튼짓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목을 자르겠다며? 좀 무리 아니야?”
아이젠이 도발하자 프란츠는 고개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 많이 아픈지 고통을 참는 얼굴이었다.
“후우……. 좋아, 제법인데. 하지만 직계 따위한테 당하려고 내가 오늘의 소가주전을 준비한 게 아니거든?!”
프란츠가 다시 곡도에 그린 오러를 불어넣자 아이젠은 그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고 섰다. 너무 붙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프란츠의 곡도는 빠르고 매서웠으며, 검 면이 넓어 피하기에도 용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 거리를 두고 환교신권으로 상대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내가 주먹만 쓰니까 사람들이 다 무식한 줄 아는데.’
아이젠은 권법의 달인이지만, 그렇다고 전투 중에 무지성으로 싸우는 미치광이 광전사인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나름 계산이라는 걸 했다.
‘물론 ‘나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