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통발 】
“도련님, 저 너무 떨려요.”
한편 모니카는 옆에서 바들바들 손을 떨고 있었다. 아이젠은 어이가 없었다. 네가 뭔데 떨어?
“소가주전 네가 하냐?”
“그,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위험하잖아요.”
“뭐가 위험한데.”
“아시잖아요! 소가주전 1차 본선은 던전에서 열린다는 거.”
그렇다. 소가주전 본선은 1차와 2차로 나뉜다. 그중 1차 본선은 던전 안에서 열리는데, 아이젠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는 몰랐다.
뚜벅.
때마침 누군가가 광장 앞 단상 위로 걸어 올라왔다. 느릿느릿한 걸음의 주인을, 아이젠은 처음 보았으나 대충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테오 디 잔니니 백작.’
그린우드와 마찬가지로 전쟁 영웅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잔니니 백작 가문. 그곳의 현 가주인 마테오 디 잔니니였다.
그는 벌써 여든이 넘고 구순을 코앞에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허리는 잔뜩 굽고 보폭은 달팽이만큼이나 짧았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린우드 여러분……. 이렇게 또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테오 디 잔니니 백작의 다 죽어 가는 듯한 목소리가 단상 아래로 울려 퍼졌다. 희한하게도, 얇고 힘없는 음성인데도 귀에 꽂힐 듯이 소리가 쏙쏙 박혀 왔다.
“마테오 백작님이시네요! 저도 처음 봐요.”
‘그렇겠지.’
모니카가 흥분했다. 제국 내에서 마테오 디 잔니니의 위상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잔니니 가문은 이 그노시스 마을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그린우드를 모셔 왔는데, 그노시스가 소가주전 본선의 장이 된다면 잔니니 백작가는 그 소가주전의 본선을 관장하고 있었다.
“전원― 예를 표하라!!”
사울 장로의 호기로운 외침에 광장에 모여 있던 모두가 마테오 백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테오 백작은 그린우드를 모시는 사람이기 이전에 제국의 전쟁 영웅이었다. 황제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은 사람. 그렇기에 모두 떨리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도 마찬가지로 마테오 백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우는 여인.’
아이젠이 검은 뿔 기사 학교에서 상대했던 그 우는 여인. 우는 여인은 전쟁 영웅 5인의 기술들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그중 번개의 능력이 바로 잔니니 가문의 것이었다. 벽력 마법을 쓰는 ‘천둥의 잔니니 가문’. 그것이 바로 잔니니 백작가의 이명이었다.
‘응?’
아이젠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그는 어째선지 마테오 백작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저 그가 있는 방향을 멀거니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테오 백작은 정확히 아이젠을 식별해 바라보는 것이었다.
‘왜 날 보지?’
저릿저릿―
아이젠은 그저 마테오 백작과 눈을 마주한 것뿐임에도 피부가 떨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러고도 한참 동안 마테오 백작이 말이 없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아이젠과 마테오 백작이 시선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지?”
“마테오 백작님께서…….”
“왜 저 아이를…….”
“아이젠 폰 그린우드인가? 직계의?”
“그 망나니?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저런 놈이 영설산의 시련은 대체 어떻게 통과한 거야?”
“뻔하지. 대충 어디 숨어 있다가 만년한철만 캐서 돌아온 거 아니겠어? 얍삽하게.”
“하하. 하긴 그렇겠네.”
그사이 아이젠을 비웃는 조롱 투의 말소리들이 아이젠의 귓가를 때렸다. 그러나 아이젠은 그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었다. 마테오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홍화의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었으니까.
스멀스멀―
아이젠이 무의식적으로 홍화를 몸 밖으로 흘려 낼 뻔한 그 순간.
“…그럼,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노쇠한 몸이기에 설명이 느릴 수 있으니 부디 양해를…….”
마테오가 눈을 돌렸다. 모니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후아. 저 방금 되게 긴장했어요. 절 바라보고 계시더라구요.”
“너 아니고 나야, 모니카.”
“아, 그, 그런가요? 마테오 백작님께서 왜 도련님을…….”
“나야 모르지.”
어찌 됐든 마테오의 소가주전 본선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아시다시피 소가주전 1차 본선은 피시 트랩 던전에서 이루어집니다…….”
피시 트랩(통발) 던전.
그노시스의 외곽에는 던전이 있다. 천 년 전 그린우드가 그노시스 마을을 샀을 때 던전도 함께 만들어 둔 것이었다.
공작이라곤 해도 어쨌든 사람에 불과한 지안니가 어떻게 던전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원래 그노시스는 ‘프렘린’이라는 마물에 의해 간헐적으로 습격을 당했었는데, 지안니 초대 가주가 그 프렘린을 숲에 가두고 양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것이 피시 트랩 던전. 던전 외곽에는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철책이 쳐져 있어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고, 프렘린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곳 피시 트랩 던전에서, 프렘린들을 사냥해 부산물인 레드 스톤을 다른 후보보다 더 많이 모아 오는 상위 여덟 명이 2차 본선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일부 방계의 자제들과 하수인들이 사색이 되었다.
“프, 프렘린?”
“프렘린이라고 하셨어, 방금?”
“서, 설마… 프렘린이라면 바로 그?”
“말도 안 돼.”
그들이 아연실색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약 5년 전 탄탈리스 수도의 경제가 크게 흔들렸던 적이 있는데, 바로 야생 프렘린이 수도를 점거했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기사 한둘이서는 프렘린 한 마리를 사냥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프렘린은 상급 마물이기 때문. 그렇기에, 아무리 참철검가 그린우드의 자제들이라고 해도 프렘린을 사냥하는 것은 매우 곤란했다. 쫓겨 다니지만 않으면 다행일 터.
“…….”
다시금 사위가 조용해졌다. 대부분 프렘린이라는 이름을 듣고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 가운데 마테오 백작이 입을 열었다.
“예. 다들 익히 아시듯 프렘린은 상급 마물입니다……. 두려우신 분은 지금 이곳 그노시스를 떠나셔도 좋습니다.”
그의 힘이 없으면서도 강직한 말투에 안 그래도 조용했던 주변이 더 고요해졌다.
‘프렘린이라면…….’
아이젠의 기억에도 있었다. 물론 어릴 때 책에서 본 게 전부지만.
아이젠의 기억 속 기록에 의하면, 프렘린은 단 두 마리만 있어도 야생에서 무서운 속도로 번식해 그 일대를 초토화시켜 버리는 마물이라고 했다. 사람이 사는 대도시에 들이닥칠 경우 단 일주일 밤 만에 인간의 씨를 말려 버릴 수 있는 상급 마물.
그래서 두려운가? 아니.
‘기대되는데.’
아이젠은 자신의 4성 무혈신공이 과연 그 프렘린이라는 마물들에게도 먹혀들까 호승심이 들었다.
한편, 아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여기까지 힘겹게 왔는데 싸워 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으리라.
마테오 백작이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도록 하지요. 철책 안에는 흑기사들이 상주하고 있으니 기권하고 싶으시거든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촤락!
마테오 백작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직후 그의 손에서 피어나는 번개의 불꽃.
파직! 파지지직!
번개는 마치 공간을 집어삼킬 듯 푸른빛으로 활활 타올랐다. 저 번개에 조금이라도 닿는 순간 바싹 구워져 버리고 말리라. 그 모습을 본 일부 어린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고 칼을 뽑아 들었다.
“마, 마테오 백작님이 마법을 쓰신다!”
“다들 검을 뽑아 대비해!”
스릉― 스릉―!
여기저기서 소름 돋는 칼 뽑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누가 검을 뽑으라 했나! 다들 도로 집어넣지 못할까!!”
사울 장로가 일갈하자 그들은 주춤거리다 다시 검을 검집으로 되돌렸다.
사울 장로는 알고 있었다. 마테오 디 잔니니 백작이 하려는 일의 정체를.
‘다들 지켜보아라. 이것이 바로 잔니니 백작가의 벽력 마법의 진수!’
이윽고 마테오 백작이 손에 있던 번개를 흩뿌렸다.
“시작합니다.”
파직!
잠깐 세상이 정전된 듯했다. 그러나 곧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
‘여긴?’
아이젠은 숲속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모니카도 어느새 사라진 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다 같이 있던 주변의 모든 그린우드, 그리고 하인들이.
‘없다.’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수풀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만이 아이젠의 귀를 통해 전해 들어왔다.
주룩― 아이젠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이거 재밌는데.”
마테오 디 잔니니가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것도 대규모 텔레포트를! 한두 명이 아니라 모든 그린우드들을 각자 다른 위치에 배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곳은 단순한 숲이 아니었다. 피시 트랩 던전 안이었다. 어떻게 이런 대형 마법을 별다른 준비도 없이 사용할 수 있지?
아이젠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으나, 그러고 있을 시간은 없는 듯했다.
으아아악!!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으므로. 벌써, 첫 번째 탈락자가 발생한 것이었다.
* * *
“도, 도련님! 도련님!!”
모니카가 외쳤다. 별안간 눈앞에서 아이젠이 사라졌기 때문.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모니카는 아이젠이 던전에 들어갈 것을 대비해 이것저것 짐을 싸 둔 상태였다. 가령 피시 트랩 던전 안에서 배가 고플 수도 있으니까, 간식거리 같은 것들을. 그런데 그것들을 전해 주지도 못하고 아이젠 도련님이 사라지다니?
아이젠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그린우드의 직·방계 자손들까지 모두 사라진 뒤.
“프, 프란츠 도련님이 사라지셨어!”
“우리 하디 도련님도!”
“타케오 도련님! 어디 계세요!”
자신의 주인을 찾는 각 하수인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모니카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숲과 선을 긋고, 철책이 쳐져 있었던 것.
‘설마…….’
모니카의 짐작대로, 저 안쪽이 피시 트랩 던전임이 틀림없는 듯했다.
모니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째서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전부 이곳에 있는 것일까.
살펴보니 방주들과 사울 장로, 그리고 마테오 디 잔니니 백작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사울 장로가 앞장서 나왔다.
“다들 조용―!”
그가 소리치자 떠들던 하수인들의 음성이 잠잠해졌다. 사울 장로가 말을 이었다.
“몇몇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현재 피시 트랩 던전 안에서는 이미 경합이 시작되었다.”
“네?!”
“그게 무슨……!”
“어떻게 벌써!”
하수인 몇몇이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떠들었지만 사울 장로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모두 각자의 주인이 돌아오기를 얌전히 기다리도록. 이상.”
사울 장로는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피시 트랩 던전 앞에 막사가 몇 개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이 사태가 벌어지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가문의 기사들을 시켜 미리 설치해 둔 막사였다.
모니카의 시선이 철책으로 향했다. 그 너머에 있는 숲은 수풀이 너무 무성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철책에 몸을 기대었다.
“도련님, 그 안에 계신 거예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될 줄이야.
꿀꺽―
모니카는 침을 삼켰다. 도련님이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걱정되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모니카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흑기사 제이슨이 그곳에 서 있었다. 제이슨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 있었다.
“제, 제이슨 기사님?”
“조용히. 난 지금 너에게만 보이니까.”
그 말대로라는 듯 주변인들은 모니카와 제이슨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제이슨이 암흑 마법으로 본인의 신형을 모니카의 그림자 속에 숨기고 있기 때문.
모니카는 놀라긴 했지만 돌아온 안색으로 대꾸했다.
“걱정되지 않아요.”
“그래?”
“네. 도련님은 잘하실 테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주인, 아이젠을 믿는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힘.
제이슨은 훗 하고 웃어 보였다.
“같은 생각이야.”
물론 프렘린은 위험하다. 하지만 아이젠 도련님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모니카와 제이슨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히 철책 너머를 향하게 되었다.
“믿자. 우리의 주인을.”
이곳에 오기 전, 제이슨은 아이젠으로부터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독살 시도의 배후에 관한 질문이었다.
‘물어보지 못했던 게 있어. 3개월 전에 날 독살하려 했던 것도 게오르크냐?’
그때 제이슨은 대답하지 못했다. 제이슨에게는 주박(呪縛)이 걸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 즉, 제이슨이 대답하지 못함으로써 아이젠의 질문은 답이 완성됐다.
‘알았다.’
아이젠은 그렇게 떠나갔었다.
제이슨은 상기했다. 그때 아이젠에게서 느꼈던 공포를.
‘그분이 모든 걸 끝내실 거야.’
이 소가주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