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76화 (76/201)

76화

남자의 망치는 대가리 부분이 크고 듬직했다. 대충 아이젠의 머리보다도 대여섯 배는 큰 사이즈. 저런 거에 정통으로 맞았다간.

‘무탈하진 못하겠어.’

아이젠의 몸은 지난 수개월간 단련을 통해 끊임없이 강해져 왔다. 하지만 그게 저런 걸 맞아도 끄떡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픈 건 아픈 거지.

물론 직접 맞아 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겠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까진 못 느꼈던 아이젠이기에, 그는 맞수를 두기로 했다.

꽈악!

‘결사신권―’

아이젠은 무혈신공의 힘을 주먹에 담은 후 손바닥을 펼쳐 크게 휘둘렀다.

‘박살편(撲殺鞭)!’

일전에 해럴드의 목검을 싹둑 잘라 내기도 했던 기술, 박살편(撲殺鞭)이었다.

아이젠의 손날 치기는 남자가 들고 있는 망치, 그 대가리를 짊어진 대봉(大棒)을 향해 덤벼들었다.

대가리에 비해 대봉은 상대적으로 얇고 취약해 보였다. 칼날이 비집고 들어간다면 충분히 잘라 낼 수 있을 터. 그래서 아이젠은 박살편을 쓴 것이었다. 아이젠의 손날은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우므로. 그러나.

떠엉!

“……!”

아이젠의 손날이 멈췄다. 대봉에 맞고. 남자가 훗 하고 웃었다.

“겨우 손가락으로 내 ‘레테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자신의 대망치 레테논을 멈추지 않고 휘둘렀다. 아이젠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레테논의 대가리에.

퍼억!

정통으로 맞아 날아갔다.

“큭!”

뒤뚱― 아이젠은 간신히 바닥을 딛고 섰다. 입술이 터졌다. 무혈신공으로 몸을 감쌌는데도 위력이 상당한 망치였다.

“저 자식이.”

적당히 하려 했는데, 그렇게 놔두질 않는군.

아이젠은 바닥을 단단히 딛고 무혈신공을 운용했다. 힘을 모아 2성, 3성, 4성의 경지까지 순식간에 다다른 아이젠이 다시 오른쪽 주먹을 몸 뒤로 당기는 그 순간.

“문라이트! 물어!”

컹컹!

남자가 자신의 로트바일러 문라이트에게 지시하자 문라이트는 마치 먹이를 추적하는 사냥견처럼 아이젠에게 달려들었다.

“도련님, 위험해요!”

“알거든!”

아이젠은 모니카의 경고를 제쳐 놓고 반대쪽 주먹에도 힘을 주어 뒤로 당겼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어 문라이트에게 권격을 먹였다.

‘환교신권(患矯神拳)!’

퍼벅!

잡아챈 먹이는 반드시 씹어 삼켜 흉터를 남길 것만 같던 로트바일러가.

깨갱!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치이이익.

문라이트는 다시 네발로 땅을 딛고 남자의 옆에 섰다. 아이젠의 내공에 맞은 턱과 가슴 부근에 움푹 팬 상처가 남아 있었으나 개의치 않는 듯했다.

“터프한데.”

“감히 문라이트한테 주먹을 날려?”

“먼저 공격했잖아. 정당방위야.”

부웅!

남자가 다시 디딤 발을 축 삼아 레테논을 휘둘렀다.

아이젠은 이번엔 당하지 않기로 했다. 저 레테논이라는 이름의 대망치는 단단하고 무거우며, 자신에게까지 상처를 남길 만큼 대단하다. 하지만 무기만 그럴 뿐.

‘저 녀석은 별거 아냐.’

무기를 든 남자 본체는 별것 없었다. 그래서 아이젠은, 주먹을 다시 쥐어.

‘목롱보(目弄步).’

목롱보를 통해 남자의 턱 밑을 추격한 다음.

“아닛!”

‘결사신권, 박살, 악지섬(顎之殲)!’

퍼억!

단단한 손바닥 하단으로 그의 턱을 쳐올렸다.

우두두둑!

남자의 턱이 아이젠의 손바닥과 조립되듯 맞물렸고.

파앙!

마침내 남자가 약간 떠올랐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하늘을 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후.”

아이젠은 한 방 때렸다고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가 태연하게 몸을 튕겨 다시 일어났을 땐, 조금 놀랐다.

“크으, 아파라. 이 새끼, 주먹이 맵잖아.”

남자의 평가는 그 정도가 다였다. 그는 아직 손에서 레테논을 놓치지도 않은 상태였다. 남자를 바라보던 아이젠의 눈썹이 올라갔다.

‘뚝심 있는데? 맷집도 좋고.’

악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저기 뒤에 서 있는 카론 영감님도, 자신의 손자라고만 소개했을 뿐이니까.

‘근데 왜 안 말려?’

자기 손자가 처음 만난 손님한테 망치나 휘둘러 대고 있는데 카론은 말릴 기색도 없어 보였다. 아니, 저건 기색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초연해 보이는 느낌? 이미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경험해 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아이젠은 카론의 표정에서 메시지를 읽었다. 손자를 두들겨 패도 괜찮다는 메시지. 물론 아이젠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안 말린 사람 책임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젠은 홍화의 기운을 주먹에 담았다.

화아아악!

아이젠의 몸에서 연분홍빛 오러가 솟구치자 남자가 놀라 주춤 뒤로 물러섰다.

“뭐야.”

“별거 아냐.”

“별거 같은데.”

“쫄?”

“이 새끼가 쫄긴 누가 쫄았다고!”

부웅!

남자가 발끈해 다시 레테논을 휘둘렀다.

‘쉽게 흥분하는 타입이구만.’

나이는 아이젠보다 연상인 듯 보이지만 속이 활화산처럼 들끓는 유형의 남자였다. 다혈질은 다루기 쉬운 법. 아이젠은 남자가 휘두르는 레테논의 밑으로 파고들어, 다시 남자의 밑을 잡았다.

‘권왕백무(拳王百舞).’

퍼버버버버버벅!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남자의 몸이 대각선으로 잠시 허공에 떴다.

“크흑!”

남자가 입에서 피를 몇 방울 흘리고.

“소용없어!!”

소리치며 레테논을 휘두르자.

“어라.”

빠악!

아이젠도 미처 막아 내지 못하고 레테논에 몸을 부닥쳤다. 관성에 의해 아이젠은 레테논에 바짝 붙었다가.

“꺼져!!”

부웅― 남자가 레테논을 방망이처럼 휘두르자 멀리 나가떨어졌다.

쿠당탕!

아이젠의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도, 도련님! 괜찮으세요?”

“괜찮으니까 그만 물어봐. 자꾸 끼어들지 말고 빠져 있어, 모니카.”

“너, 너무하세요.”

“맞아, 나 너무해.”

아이젠은 터진 입술을 매만졌다. 아까 터진 부위 옆에 또 상처가 나 있었다.

남자도 몸이 성치는 않은 듯했다. 아이젠의 주먹을 정통으로 몇 대나 맞았으니, 제아무리 맷집이 뛰어나다 해도 갈빗대 정도는 금이 갔을 것이었다.

“큭. 씨, 아파라.”

남자가 몸통을 움켜쥐며, 반대쪽 손으로는 레테논을 쥔 채 아이젠에게 걸어왔다. 계속할 의향이 있어 보였다.

아이젠은 회유책을 한번 썼다.

“그만하지? 난 그냥 영감님한테 뭐 좀 여쭤보려고 왔을 뿐이야.”

“너야말로 꺼지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여긴 이제 대장간이 아니야. 우린 땜질 안 해.”

“왜 안 하는데?”

“뭐라고?”

“스미스쏜즈는 대장장이 밀집 거주 지역. 대장장이가 아니면 이 지역을 떠나 살든가 했어야지. 스미스쏜즈에 있으면서 대장간은 안 한다고?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이사가 어디 쉬운 줄 알어, 인마!”

아, 그게 이유야?

아이젠은 바닥을 딛고 일어났다. 계속하면 아이젠이야 수련치도 쌓고 좋지만, 별로 의미 없는 싸움인지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끝내려면 끝낼 수 있어. 나쁜 놈도 아닌 듯한데 널 여기서 박살 내고 싶진 않다. 그만하지?”

“헹, 허세 부리고 있네.”

“경고하는 거다.”

“경고는 지랄.”

그 순간이었다. 남자가 힘을 잃고 쓰러진 것은.

풀썩!

남자의 뒤에는 아이젠이 서 있었다. 남자가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이젠의 잔상.

‘결사신권, 적도심경(敵道審憬: 적의 길을 살펴 깨우치다).’

아이젠이 4성에 오름으로써 발현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기술, 적도심경(敵道審憬)이었다.

아이젠은 남자의 목덜미를 손가락을 찔러 넣어 남자를 기절시켰다. 아니, 기절시키려 했다.

“크윽, 이 새끼……!”

“뭐야. 아직도 멀쩡해? 독하다, 독해.”

그러나 남자는 더 이상 일어나기 힘든 듯 보였다. 아이젠이 남자의 기혈을 타격했기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가 계속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니 카론이 소리쳤다.

“그만해라, 유진! 우리가 모시는 가문이다. 부끄럽지도 않은감!”

“유진?”

아이젠이 카론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카론은 아이젠의 물음을 못 들었는지 성큼성큼 걸어와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그린우드에게는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고. 내가 이래서 널 여기서 내보내려 했던 거야.”

“큭. 영감! 지금 저 녀석 편드는 거야?!”

“유진 그레이번스. 너도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담. 언제까지 그 망나니 기질을 못 버리고 살 거냐, 응?”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 듣고 있던 아이젠은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유진? 이름이 유진이라고?’

그는 문득 기억 속 자리해 있는 또 다른 유진을 떠올렸다. 도유진, 전생에서 그의 유일한 친우였던 자. 그리고 그의 손으로 생의 막을 내렸던 자.

“…젠장할.”

그때의 도유진과 이곳의 유진 그레이번스는 다른 철자를 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소리를 쓰는 이름이었다. 그 탓에 아이젠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여자애 이름 같잖아.”

“뭐야?”

유진 그레이번스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아이젠을 노려보았다. 아이젠이 맞받아쳤다.

“뭘 봐, 인마. 한 방 더 먹여 줘?”

“여자애 이름 같다고 했냐? 그 말 한 번만 더 하면 죽는다, 너.”

“죽여 봐. 일어나지도 못하는 놈이 무슨.”

카론이 아이젠에게 걸어왔다. 카론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넴. 내 손주가 실례를 했구만.”

“한창 싸울 땐 말릴 생각도 없어 보이시더니 이제 와서요?”

“허허허. 늘상 있는 일인지라. 저 아이가 워낙에 싸움꾼이라서 말이지.”

도유진도 그랬지.

아이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팔에 매여 있던 아이기스의 꺾쇠를 풀어 다시 카론에게 내밀었다.

“아무튼 저 녀석 저렇게 만든 건 제 책임 아닙니다? 정당방위예요. 그러니까 이거 사용법이나 다시 말씀해 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츠팟!

갑자기 아이젠의 양손에서 아이기스가 사라졌다.

“이건 전리품으로 받아 가마!”

아이젠, 모니카, 카론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유진이 자신의 사냥개 문라이트와 함께 숲속으로 쏜살같이 달아나고 있었다.

“…….”

“…….”

“…….”

덩그러니 남은 세 사람 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이젠도 예상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 풀렸네. 정신력이 좋네요, 저 녀석.”

“자,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감? 귀한 물건이잖나.”

“잡아야죠.”

“나, 나도 돕겠네.”

“저도요, 도련님!”

“둘 다 그냥 계세요.”

아이젠은 두 사람을 돌아보고 초연히 말했다.

“내가 가면 되니까.”

아이젠은 어쩐지 천하태평해 보였다.

* * *

아이젠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유진을 쫓는 것이었다. 모니카도 떼어 놓은 채 걷는 아이젠의 발걸음은, 그의 불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한없이 거북이 같은 속도에 불과했다.

“어디 보자.”

아이젠이 태평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산속에는 수풀이 무성해졌다.

“나와라, 유진. 근처에 있는 거 다 봤어.”

아이젠이 태연한 목소리로 울림통을 울렸다. 그러자 잠시 후 숲속에서 메아리가 돌아왔다.

“우리 영감한텐 무슨 볼일이지?”

“말했잖아. 여쭤볼 게 있다고.”

“영감님은 10년 전에 대장장이 일에서 손 뗐어. 물어봐도 대답해 줄 말 없으니까 돌아가.”

“그럼 너라도 봐 줄래? 네가 보기엔 그 물건 어떤데.”

“…….”

“네가 가져갔잖아, 내 팔찌. 별 볼 일 없는 물건 같으면 도로 내놓든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