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스미스쏜즈의 그레이번스 가문 】
샛길을 지나쳐 길목 끝에 있는 낡은 대장간. 그곳에 아이젠과 모니카가 다다랐다. 아이젠은 태연한 기색으로 집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을 찾았다.
“계십니까?”
반면 모니카는 불안한지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도련님, 그만 가요.”
“왜 자꾸 가재. 다리 아파? 혼자 가든가.”
“여기 좀 보세요! 암만 봐도 뭔가 수상하잖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 집은 마치 사람 발길이 닿은 지 몇 년은 된 듯 낡아 빠져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사람이 일을 한다면 무너진 지붕과 입구 정도는 수리 보수를 해야 했을 텐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장간 정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칼갈이에도 손길이 몇 해는 안 닿은 듯했다. 녹이 슬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흐음. 아무도 없나?”
아이젠이 그 의문을 표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기감에 걸려드는 무언가를 포착해 낼 수 있었다.
착!
아이젠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젖히고 왼쪽 관자놀이에 날아드는 무언가를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꺄악! 도, 도련님!”
“흥분하지 마, 모니카.”
아이젠은 자신의 손에 잡힌 그것을 바라보았다. 조각칼.
‘실력자다.’
누군가가 아이젠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정확히 조각칼을 던져 왔다. 곧이어, 아이젠은 자신의 등 뒤에 누군가가 몸을 밀착하고 서 있음을 알아챘다.
키가 작고 기운이 뜨겁다. 마물인가? 아니, 사람이다. 아이젠은 그렇게 짐작하고 자신의 등 뒤에 선 그에게 말했다.
“주인장 되십니까?”
“…….”
뒤쪽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마치 폐병을 앓는 환자처럼.
아이젠이 등 뒤로 주먹을 뻗었다. 상대방은 쏜살같이 피해 냈고, 아이젠이 등을 돌렸을 때.
“……!”
상대방은 뒤편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아이젠과 등을 붙이고 서 있었으므로.
“도, 도련님, 뒤에!”
모니카가 외치자 아이젠은 다시 한번 등 뒤의 상대방에게 주먹을 뻗었다.
‘박살(撲殺)!’
무혈신공 결사신권의 힘을 담아서. 그러나.
휘익!
이번에도 주먹은 맥없이 빗나갔다. 등 뒤로 주먹을 휘둘러 보는 것은 생소한 경험이라 아이젠으로서도 생경했다.
치익. 끼익. 촤악.
아이젠이 여러 차례 발을 굴렀지만 그때마다 등 뒤의 상대방은 아이젠과 완벽하게 밀착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야. 제법 실력자잖아?’
등 뒤의 적은 아이젠에게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이젠은 발을 크게 굴렀다.
‘유랑보(流浪步)!’
그리고 뒤쪽에 서 있는 적을 향해 주먹을 크게 일자로 휘둘렀으나.
부웅!
이번에도 주먹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뒤이어.
빠악!
“아야.”
상대방이 아이젠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아이젠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마치 스승님에게 머리를 맞았을 때의 기분 같달까.
“이게.”
부웅! 다시 한번 아이젠의 주먹이 휘둘렸으나 여전히 빗나갔다. 아이젠의 주먹은 계속 허공만을 갈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귀찮은데.’
아이젠은 눈을 흘겼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혈류를 팔꿈치 쪽으로 몰아 관절에 힘을 집중시켰다.
‘결사신권, 박살!’
뻐억!
“어이쿠!”
우당탕탕!
아이젠의 팔꿈치에 얻어맞은 적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아이젠은 권법의 달인이지만, 무혈신공은 꼭 주먹에만 내공을 담을 수 있는 운공법은 아니었다. 이처럼 팔꿈치에 힘을 담아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거든.”
아이젠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고, 마침내 자신의 등을 잡고 있던 상대방을 내려다보았다.
“크으. 이놈, 노인 공경할 줄 모르는구먼.”
그것은 노인이었다. 키가 작고, 머리는 백발에, 괴상한 안경을 쓴. 그는 왜소한 몸집에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젠의 팔꿈치에 맞은 코는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는데, 다행히 아이젠이 팔꿈치에 무혈신공을 많이 담지는 않아 코가 부러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노인네 장난 좀 쳐 본 건뎀. 감히 어른을 패?”
“안녕하세요. 여기 주인장 되십니까?”
“끄응.”
노인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일어선 그의 키는 아이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작았다. 150cm는 될까?
“그래. 내가 주인장이짐.”
‘짐?’
아이젠은 노인의 말투가 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굳이 지적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럼 대장장이시겠네요.”
“그야 물론. 카론 그레이번스라고 하넴.”
“카론?”
아이젠이 잠깐 그 이름을 되짚는데 노인 카론이 손을 내밀었다. 인사의 의미로. 아이젠이 맞잡아 악수를 하려는 그 순간.
“걸려들었다, 이놈!”
카론이 아이젠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구치나, 잠깐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젠은 이미 하늘 높이 떠오른 자신의 몸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유랑보.’
사뿐.
카론이 아이젠을 내동댕이치려 했으나 아이젠은 당하지 않고 그저 사뿐히 땅바닥에 내려섰다.
“어험.”
“장난 그만 치시죠?”
“그, 그럴깜? 크흠흠. 그래, 여기까진 무슨 볼일이신감?”
“대장장이이신 것치곤 대장간이 많이 허름한데요.”
아이젠이 낡아 빠진 건물을 가리키며 말하자 카론은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그야 당연하지. 폐업한 지 좀 됐거든.”
“폐업?”
“내 나이가 올해 일흔일곱이야. 그럴 나이도 되지 않았남?”
영감님 오래도 사셨네.
아이젠은 곧바로 자신의 양팔을 내밀었다.
“그래도 물건 볼 줄은 아시겠죠. 좀 봐 주시겠어요?”
“보라니. 무엇을…….”
카론은 안경을 고쳐 쓰며 아이젠의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양팔에 매여 있는 것은 시퍼런 팔뚝 보호대,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이었다. 카론은 그 팔찌의 이름도 모르고 유래도 알지 못했지만.
“……!”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
‘알아보는 건가?’
아이젠은 그저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의 사용법을 묻고자 이곳에 왔을 뿐이었다. 구태여 팔찌의 이름이 아이기스라는 사실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이게 어디서 났지?”
카론의 물음에 아이젠은 어깨를 으쓱하고 답했다.
“오다 주웠습니다.”
“주웠다고? 이걸?”
“어디서 잘 구했다고 치죠. 아티팩트입니다. 아직 능력을 개화하지 못했어요. 사용법을 알 수 있을까요?”
아이젠이 담백하게 물어보자 카론은 아이젠과 팔찌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팔찌 쪽을 내려다보며 안경을 이마 위로 올려 걸쳤다. 그의 눈은 신비한 보석이라도 본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글쎄……. 그 전에, 불편하겠군. 이음새가 없는 아티팩트라니. 벗기가 곤란하겠어.”
“그렇긴 하죠.”
“가만있자. 그것 좀 줘 보게.”
카론이 양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을 내밀자 아이젠은 그에게 손에 들고 있던 조각칼을 내밀었다. 좀 전에 카론이 던진 것이었다. 카론은 조각칼을 받아 들고 아이기스를 세밀하게 살펴보는가 싶더니.
딸칵.
“어라.”
아이기스의 안쪽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던 꺾쇠를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이 찰캉― 하는 소릴 내며 풀렸다.
“이게 숨어 있었구먼. 물론 가능하면 벗고 다니지 말겜. 어디서 난 건진 몰라도 아주 훌륭한 물건이야.”
“그래서, 사용법은요?”
아이젠의 말에 대답하기 전, 카론은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그가 대장장이로 일한 기간은 못해도 50년은 훌쩍 넘을 것이었다. 대충 10대 중반부터 대장간 일을 해 왔으니 말이다.
그는 그린우드의 가주를 세 대나 모실 만큼 오랜 세월 스미스쏜즈의 대장장이로 살아왔는데, 기나긴 세월 동안, 자신이 만든 일생의 역작을 ‘태양의 검 에레디아’로 손꼽았다.
‘옛날 생각 나는구먼.’
전대 소가주전 당시, 테오발트 폰 그린우드는 카론을 찾아왔다. 카론은 그가 가져온 만년한철로 희대의 대작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태양의 검 에레디아.
에레디아를 제작해 냈을 때, 카론은 울었다. 감격해서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그 눈물에는 앞으로는 이 이상의 검을 만들어 낼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품은 슬픔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 작은 소년이 제 양팔에 차고 온 이 물건은 대체 뭔가.
‘내가 만든 에레디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물건이잖아?’
겨우 겉모습을 살펴만 봤을 뿐이지만, 이 팔찌의 위용을 카론은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은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 냈다고 보기도 힘든 물건이었다. 아마도 최소 백 년, 아니, 몇백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물건일 터…….
‘가만, 그렇다면 설마?’
카론은 아이젠을 올려다봤다. 그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아이젠에게 아이기스를 내밀며 더듬더듬 물어보았다.
“이, 이, 이 팔찌 말인뎀. 혹시, 설마 이름이 아이기…….”
아이젠이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을 다시 팔에 끼우는 그 순간이었다.
“꺄악!”
모니카의 비명이 들린 것은. 아이젠이 옆쪽을 바라보자, 또 초면인 남자가 서 있었다.
“어이. 너희 뭐야.”
경계심을 듬뿍 담은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다. 그는 모니카를 뒤쪽에서 끌어안아 목을 조를 듯 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185cm는 넘을 듯한 장신에, 왼쪽 이마에는 상처, 카론 노인처럼 새하얀 머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른팔에 들고 있는 거대한 망치. 남자의 왼편에는 덩치 큰 맹견 로트바일러가 우뚝 서 있었다.
“도, 도련님…….”
모니카는 남자보다는 그 로트바일러에게 겁먹은 듯 개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어이. 그 손 놓지?”
아이젠이 말을 받아치자 남자가 망치를 왼손으로 바꿔 잡아 아이젠을 겨눴다. 무게가 상당할 텐데 한 손으로 드는 걸 보면 힘이 꽤 센 듯 보였다.
“너부터 영감한테서 떨어져.”
크르렁! 컹! 컹!
남자의 말이 신호인 것처럼 로트바일러가 거세게 짖어 대기 시작했다. 아이젠은 개를 일별하고는 카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는 사람입니까?”
“그럼. 내 손자인데.”
“왜 이렇게 태연하세요. 제 하수인이 인질로 잡혀 있는데.”
“어차피 자네가 알아서 할 거 아닌감?”
이 영감님이. 할 말 없게 만드네.
틀린 말도 아니라서 아이젠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젠은 남자에게 한 발 다가섰다.
“그 손 놔. 지금 놓으면 때리진 않을게.”
“여긴 무슨 볼일이냐? 이 가게는 이제 땜질 안 해. 폐업했어.”
“어, 들었어. 카론 영감님한테서.”
아이젠은 카론을 힐끔 보았다가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근데 난 영감님한테 여쭤볼 게 많은데?”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 타입인 듯했다. 그래, 마치 아이젠처럼.
“네가 뭘 하고 싶은지는 안 물어봤어. 꺼져.”
“싫다면?”
“어떡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젠은 남자의 말투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그에게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한판 겨뤄 보고 싶었다.
“먼저 올래, 내가 갈까?”
“다진 고기로 만들어 주마, 이 자식아!”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팟.
남자가 모니카를 한쪽으로 집어 던졌다. 모니카가 안전하게 바닥을 딛고 선 것을 확인한 뒤, 아이젠은 주먹에 힘을 담았다.
‘결사신권―’
거의 동시에 남자의 대망치가 아이젠을 향해 크게 휘둘렸다. 아이젠이 보기에는 빈틈투성이인 일격이었으나.
‘박살!’
봐줄 생각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