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69화 (69/201)

69화

【 사막의 땅 그노시스 】

‘동굴에서 나온 파편인가.’

아이젠은 손에 들린 만년한철을 몇 번 가볍게 던지며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마침 잘됐다. 이로써 그노시스에 가기만 하면 소가주전 예선 통과인 셈이니.

즉 그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

“자, 이제 어떻게 내려간담?”

이 영설산에서 어떻게 내려가느냐였다.

그노시스에 가면 모든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노시스에 가는 방법부터 찾는 게 우선인데…….

아이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사태는 그친 듯했지만 사위가 온통 엉망이었다. 길은 사라져 있었고, 사방이 발 한번 잘못 헛디디면 그대로 산 끝자락까지 추락할 법한 험지가 되어 있었다.

“이걸 어째.”

자못 허탈한 어조로 아이젠은 혼잣말했다.

그러나 무혈신공 홍화의 기운을 다루는 그로서는, 사실 하산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하며 호흡을 다잡았다. 그러나.

“…큭!”

털썩!

아이젠은 바닥에 거꾸로 엎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밀기라도 한 양.

아이젠은 넘어진 자세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부들거리는 아이젠의 몸이, 그가 지금 얼마나 망가진 상태인지를 방증하고 있었다.

“아아. 이제 진짜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다. 젠장.”

아이젠이 영설산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영설산을 등반하며, 아이젠은 어느덧 4성에까지 오를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이루었다.

성장에는 고통도 동반되었다. 그는 일일이 다 세려면 시간이 좀 걸릴 정도로 많은 적을 영설산에서 마주했고, 또 싸웠다.

블렌하임과의 대전에서 이미 그는 자신의 한계를 보았다. 그런데 지안니의 눈 골렘 무리를 상대하면서 마침내 가진 힘을 전부 소진하고 말았다.

“큭큭. 이대로 죽으면 곤란한데.”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왔다.

그러나 이젠 정말 후일을 걱정할 시간이었다.

“내려가야 하는데…….”

풀썩. 아이젠은 마침내 기절했다.

그가 의식을 못 차리고 졸음과 싸우고 있을 때.

쿠구구구…….

눈사태의 여파가 찾아들었다. 영설산의 눈사태는 아이젠을 집어삼킬 것처럼 그를 특정해 달려들었고.

콰과과과과!

아이젠은 마침내 눈사태에 휩쓸렸다.

* * *

영설산 산 밑. 그곳에는 그린우드 가문에서 나온 조사대가 꾸려져 있었다. 그들은 영설산 인근의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법한 길은 모두 찾아 수색 중이었다. 수색 대상은 다름 아닌 아이젠 폰 그린우드.

“찾아! 아이젠 도련님께서 하산 중에 지쳐 쓰러지셨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 아이젠을 찾는 중이었다. 소가주전의 예선인 영설산조차 돌파하지 못한, 망나니 공자 아이젠을.

방계조차 일부 사망한 인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영설산의 예선을 통과했다. 다시 말해 그들 모두 화이트 오크의 시련을 통과했다는 것이고, 또 한 명도 빠짐없이 영설산의 만년한철을 캐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젠과는 다른 루트에 있는 만년한철이었겠지만 말이다.

“젠장.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되냐고.”

기사 몇몇이 불평불만을 쏟아 냈다. 그들로서는 영예로운 기사의 신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동네 방범대에서나 할 법한 수사를 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런 망나니 집쥐 공자를 이렇게까지 수색해야 하는 건데?”

“야, 야. 쉿. 들을라.”

긴 머리의 기사가 말하자 다른 기사가 입단속을 했다. 그러나 긴 머리의 기사는 멈추는 일 없이 계속 입을 놀렸다.

“아니, 톡 까놓고 말해서, 그 망나니 도련님은 영설산에서 죽었어도 할 말 없는 거 아냐? 애초에 소가주전이 뭔데. 다들 목숨 걸고 참가하는 거잖아. 그런데 직계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이렇게 도련님 뒤치다꺼리에 동원돼야 해?”

“그럼 어쩌겠어. 게오르크 공자님의 지시인데.”

두 기사는 자연스레 멀리 서 있는 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그린우드 직계의 장남. 그가 바로 아이젠의 수색 수사를 주도하는 장본인이었다.

“아직 소식은 없나?”

“예, 공자님!”

“가용 가능한 모든 인원을 동원해서라도 아이젠을 찾아야 한다. 동생을 이런 곳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게오르크가 직속 기사에게 지시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막연히 영설산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 다가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스였다. 한스는 자신의 말에 타고 있었다. 그가 넌지시 말했다.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시죠.”

“그게 무슨 말이냐, 한스. 아이젠은 네 동생이기도 한데.”

“누가 그런 서자 놈을 동생으로……! 크, 크흠. 물론 아이젠은 제 이복동생이 맞긴 하지만, 소가주전은 명예로운 대전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영설산에서 죽었다면 아이젠도 영광스레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한스는 불온한 말을 잘도 했다.

그는 지금 여기 와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노시스에서 발 뻗고 편히 쉬어도 되었다. 하지만 게오르크가 나서서 영설산으로 간다고 하니 그로서도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스는 게오르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한스가 입을 열수록 게오르크는 오히려 한스에 대한 평가를 더욱 낮추게 될 뿐이었다.

“한스. 가문의 영광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는 형제지간의 우애도 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이젠을 미워하는 것은 알겠지만 적당히 해라.”

“그, 그런 말이 아니옵고…….”

“넌 이만 가거라, 한스. 방해만 되는 듯해.”

게오르크의 날 선 말투에, 한스는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헐레벌떡 말에서 내려 보란 듯이 외쳤다.

“뭣들 하는 거야, 이 자식들아! 사람이 몇인데 고작 열여섯 살짜리 꼬맹이 하나 찾는 게 어려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해!”

“예, 한스 공자님!”

기사들과 하수인들이 한스의 말에 호응하자 게오르크도 그런 한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한편, 그들 사이에서 가장 열심히 아이젠을 수색하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모니카였다.

“도련님, 도련님…….”

그녀는 맨손과 맨다리로 산의 수풀을 잘도 헤치고 다녔다. 서리가 얼어붙은 나뭇가지나 초목에 살갗이 베여 나갔지만, 모니카는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 자국이 짙게 묻어 있었다.

“어떡해……. 그때 도련님 곁을 떠나면 안 됐었는데.”

아이젠이 자신더러 방해가 된다고 내려가라 했을 때 내려와선 안 되었던 걸까? 하고 모니카는 후회하고 있었다.

낮부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수색을 하고 있음에도 아이젠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젠 도련님이 지하 감옥에 들어간다고 하셨을 때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때도 모니카는 걱정은 했지만 크게 유념하진 않았었다.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할 뿐 지하 감옥은 그다지 위험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 영설산은 달랐다. 이곳은 사시사철 뼈를 시리게 하는 찬 바람이 부는 곳 아닌가. 게다가 심지어 조금 전에는 눈사태가 또 한 번 일어났고, 그 눈사태에 휘말려 조사대 일부가 화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조난이라도 당하셨다면…….’

아이젠이 아무리 강골이라고 해도 하루도 못 버티고 동사할 것이었다.

“흑. 흐윽.”

모니카는 또 울었다. 눈물샘이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올 눈물이 있었다.

그에 반응하듯, 게오르크가 별안간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그는 장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되겠군. 영설산을 다시 올라야겠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자님!”

직속 기사들과 하수인들이 달려들어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완강했다.

“아이젠은 아마 산등성이에 있을 거다. 이렇게 산 밑에서 수색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직접 다시 등반하겠다.”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공자님! 이 강추위에 불도 없는 어두운 밤이면 아무리 게오르크 공자님이라 해도 위험합니다.”

“비켜라.”

“안 됩니다!”

기사들과 하수인들이 벽을 이뤄 게오르크를 막아섰다. 게오르크는 짐짓 화난 얼굴로 외쳤다.

“이놈들이. 비키란 말 못 들었나! 동생을 구하려는 형의 마음을 어찌 다들 모르는 거야!”

그의 음성이 영설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다들 게오르크의 말에 탄복하며 멍하니 서 있을 때.

불쑥.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우,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크세요, 게오르크 공자님.”

“조용히 해라, 아이젠!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닌……?!”

게오르크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눈사태에 휘말려 뿌리까지 잃고 넘어진 나무들. 그 나무들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아이젠 폰 그린우드였다.

“여기서 다들 뭐 하는 거지?”

아이젠이 멍청한 어조로 말했다.

그곳에 서 있던 조사대원 모두가, 말없이 아이젠을 바라봤다. 자신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자 아이젠은 부담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뭐야. 왜 그렇게 봐, 다들.”

긴가민가하는 눈초리도 있었다. 이곳에 있는 조사대원 모두가 아이젠의 폐관 이후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기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던 것이다.

“저게… 아이젠 도련님?”

“뭐, 뭐야. 나보다 근육이 두 배는 크잖아.”

“언제 저렇게……. 분명 말라깽이 아니었어?”

“가문 회의 때보다 몸이 더 커지신 것 같은데?”

“그뿐만 아니야. 풍기는 기운이 달라.”

아이젠은 지금 홍화의 기운을 운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조사대원 모두, 아이젠에게서 어렴풋이 표현 못 할 남다른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를 간 것은 당연히 한스였다.

‘아이젠, 저 자식!’

언제 또 저렇게 강한 투기를 낼 수 있게 된 거지?!

한스도 영설산에 오르며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그는 현재 참철검술 3성 상위의 경지에까지 올라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으윽.’

그의 발전이 무색하게 보일 정도로, 아이젠은 어딘가 차원이 달랐다. 흔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한스는 열심히 뛰어서 달리기를 완주했다. 그런데 아이젠은 그 위에서 태평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인정 못 해! 인정 못 해, 아이젠 이 자식!’

한스는 속으로 분을 삭였다. 그는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지금은 자신이 아이젠보다 밀릴 게 분명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한스가 내심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도련님!!”

모니카가 아이젠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가 얼음처럼 굳어 있는 가운데 모니카만 움직여 아이젠에게 몸을 던졌다.

퍽.

모니카는 마치 몸통 박치기 하듯 아이젠에게 안겼다.

“어우, 깜짝이야.”

“도련님……. 흑.”

“뭐야, 모니카. 울어?”

아이젠은 모니카를 몸에서 떼어 냈다. 그녀의 양어깨를 부여잡고 바라보니 모니카는 울고 있었다.

“야, 우냐?”

“그럼 안 울어요?!”

퍽!

모니카가 아이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커헉.”

“도대체 이 시간까지 어디서 뭘 하신 거예요! 어떻게 하산하신 거예요? 돌아가신 줄 알았잖아요!”

흥분한 나머지 불경한 소리를 잘도 내뱉는 모니카. 아이젠은 그녀에게 해명하듯 말했다.

“아니, 배가 고파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체력 보충 좀 하고 왔는데.”

“체력 보충? 서, 설마, 그런트라도 잡아드신 건 아니겠죠?”

“야이. 날 뭘로 보고. 모니카가 챙겨 둔 비상식량 먹은 거거든?”

“다, 다행이다. 도련님이라면 돼지고기라면서 그런트도 드실 줄 알았어요…….”

모니카가 어벙하게 대답했다. 아이젠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리는 것도 같았다. 그녀가 바닥에 풀썩 쓰러지자 아이젠이 그녀를 부축했다.

“야, 무거워. 일어나.”

“몰라요. 다 도련님 때문이에요.”

“그러냐? 미안하게 됐다.”

아이젠과 모니카는 서로 시선을 맞추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마주 웃었다.

곧 아이젠은 그노시스에 입성했고, 그로써 그 역시 소가주전의 예선전을 통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