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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68화 (68/201)

68화

작은 바람이 공동에 찾아들고, 아이젠이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더 이상 남은 눈 골렘이 없었다. 오직 허공에 떠 있던 지안니만이, 아이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안니는 아이젠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자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지안니라고 하더라도, 아이젠의 뛰어난 무공에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 …훌륭해!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이젠은 뿌듯함을 느끼기보단 홍화의 기운을 거둬들였다. 사신강림이 아니다 뿐이지 홍화의 기운을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후우.”

- 멋지다. 역시 내 100대손!

“끝났습니까?”

- 뭐?

“상을 받을 자격을 갖췄는지 시험해 본다면서요.”

- 아.

내가 그런 말을 했지?

지안니는 그제야 기억이 돌아온 듯 헛숨을 삼켰다.

물론 자격을 시험해 보기 위해 눈 골렘 무리로 하여금 아이젠에게 덤벼들게 한 것은 맞는다. 그런데, 설마 아이젠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시험을 잘 치를 줄은 몰랐다. 지안니로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후손들은 전부 이렇게 강한 걸까?

- 그린우드 공작가의 아들이 무공의 천재라니.

이거, 현재 가주도 알고 있는 사실인가? 안다면 놀라 뒤집히겠어.

지안니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 시험은 통과다. 대단했어. 물론 같은 나이 때의 내가 더 강했지만.

“갑자기 자랑을?”

- 천 년 만의 자랑이잖아. 이해 좀 해 줘.

초대 가주로서의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안니에게, 아이젠은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뭐… 그러세요.”

- 아무튼, 주기로 한 게 있으니 줘야겠지?

지안니는 허공에 뜬 채로 정좌를 취하곤 오른손을 펼쳐 들었다. 그러자 오른손 위에서 서리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무언가가 나타났다.

휘오오오…….

아이젠은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건 설마……?”

- 그래.

사락!

마침내 나타난 그것이 완전한 형체를 갖추었다. 그것은 검이었다. 지안니의 신체와 꼭 길이가 알맞추 맞을 듯한 장검.

- 나의 참철검, 아이기스라고 한다.

전설 속에나 나오는 무기였다. 필시 현 그린우드의 가주 테오발트의 ‘태양의 검 에레디아’조차 상대가 안 되는 비보. 아이기스는 분명 실전(失傳)되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천 년 동안 가지고 계셨을 줄은 몰랐네요.”

설마 아직도 그 주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 줄이야. 그러면 당연히 못 찾지.

- 어떻게 보일진 몰라도 내 애검이라서. 후손들한테 물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 녀석이 워낙 주인을 가려서 말이지.

지안니가 조심스레 손바닥을 움직이자.

스스스…….

아이기스가 아이젠 쪽으로 조금 밀려 나왔다. 아이젠이 눈썹을 치키고 이어질 말을 기다리자 지안니가 말했다.

- 가져. 네게 주마.

“…….”

아이젠은, 눈앞의 아이기스가 확실히 대단한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어쨌든 최상급 붓으로 일필휘지를 하는 게 길바닥 싸구려 붓으로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문제가 있다면, 아이젠은 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비보 아이기스를 받아도 지금의 아이젠에겐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그, 감사하긴 한데요. 죄송하지만 이건 다음에 다른 그린우드한테 주시는 게…….”

- 다음 언제? 또 천 년 뒤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검을 안 써서. 저한텐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인데요.”

- 아, 그렇댔지.

지안니는 별 고민 아니라는 듯 아이기스의 손잡이를 붙들었다. 그러고는.

- 어디…….

자신의 오러를 아이기스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사아아아아아…….

아이기스가 끝에서부터 먼지처럼 사라졌다. 아이젠은 조금 놀랐지만, 지안니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가만히 그 과정을 지켜봤다. 이윽고,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사아아아아…….

철컹!

아이기스의 모습이 팔찌의 형태로 변했다. 팔찌? 아니, 팔찌라기보다는 팔뚝 보호대, 암가드(arm-guard)에 가까웠다. 손목부터 팔꿈치 뼈 직전까지를 감싸는 형태의 한 쌍의 팔뚝 보호대가 아이기스가 있던 곳에 자리해 있었다. 새파란 한기를 내뿜으며. 형태가 변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아이기스였다.

- 가져가. 네 것이다. 이름을 하사하지. 음……. 팔찌가 되었으니 ‘아이기스 브레이슬릿’ 정도로 할까?

“…….”

지안니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좀 전까진 없었던 위엄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건방 떠는 아이젠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초대 가주의 위명(威命)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젠은 예를 갖춰 한쪽 무릎을 꿇고 아티팩트,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을 받아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팔찌, 그러니까 브레이슬릿은 아니고 팔뚝 보호대였지만. 아이젠은 구태여 딴지를 걸지는 않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 못 써.

“…네?”

- 못 쓴다고. 아직.

팟!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이 내뿜고 있던 한기가, 아이젠의 손에 닿는 순간 사라졌다. 아이젠은 알 수 있었다.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은 이 순간 그저 하늘색 팔찌에 불과했다. 아티팩트가 아니라.

지안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 아까 말했잖아. 주인을 가린다고.

“아니, 시험에 통과한 보답으로 주신다는 거 아니었어요?”

- 그건 내 생각이고. 아이기스의 생각은 다르겠지.

물론 아이젠은 자신의 두 주먹 말고 다른 힘에 의지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줬다 뺏는 건 좀 기분이 나빴다.

지안니가 씨익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 걱정하지 마. 그노시스에 가면 사용법을 알게 될 거야.

“…어차피 가는 길이네요.”

- 그래. 조심히 가라고. 나는 이제 천 년의 숙원을 풀고 사라져 줄 테니까. 너무 오래 있었어.

그렇게 말하는 지안니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아이젠을 보내고자 대충 휘적거리는 손짓이 성의 없게까지 보였다.

“…….”

아이젠은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을 양팔에 장착해 보았다. 아이젠의 사이즈와 꼭 맞았다. 움직이는 데 불편함도 없고,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벼웠다.

‘좋네.’

마다할 이유가 없는 물건이었다.

아이젠은 슬슬 사라질 준비를 하는 지안니의 사념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초대 가주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봅시다.”

- 뭔지 알 것 같은데. 들어나 볼까?

아이젠은 슬쩍 팔을 펼쳐 보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자웅을 한번 겨뤄 볼 생각은 없으신지?”

- 큭큭. 그 질문일 줄 알았어. 넌 나랑 똑같구나.

지안니는 몸을 일으켜 아이젠에게 다가섰다. 허공에 뜨지 않고 공동의 바닥에 내려서니 지안니와 아이젠의 키는 엇비슷해졌다. 지안니 쪽이 조금 컸다.

지안니는 코앞에서 아이젠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 아이젠 폰 그린우드. 너의 아득한 선조로서 조언 하나만 하겠다. 강함만 추구하느라 주변 보살피기를 게을리하지 마. 앞만 보고 달리는 마차는 반드시 사고가 난다.

“마차를 끄는 말이 뛰어나면, 사고가 날 일도 없을 텐데요.”

- 자만하지도 말고. 내 생각에 넌 너무 완고해.

물론 그렇게 말하는 지안니의 표정은 대견한 후손을 바라보는 그것이었다.

지안니가 손을 들었다.

- 만나서 즐거웠다.

“저도.”

- 그래. 이만 가 봐.

짝!

지안니가 박수를 치자.

파앙!

아이젠의 세상이 깨졌다.

* * *

“헉!”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소리에, 아이젠은 번쩍 눈을 떴다.

깨어나자마자 사방이 어두웠다. 아이젠은 당황하지 않고 상황 파악부터 했다.

‘어디지, 여긴?’

조금 때를 기다리니 시야가 돌아왔다. 눈동자가 어둠에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이미 다 부서져 흔적도 찾을 수 없었지만, 아이젠이 있는 곳은 동굴 속이었다. 그는 지금 동굴 잔해에 깔린 채 누워 있었다. 하늘을 보고. 물론 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끙.’

아이젠은 자신을 샌드위치처럼 덮고 있는 바위 잔해들을 밀어 올려 보았다. 힘차게 밀었으나 그 양이 상당한지 미동도 없었다.

‘할 수 없군.’

아이젠은 결국 무혈신공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정좌가 아닌 상태에서는 무혈신공을 운용해 봤자였다.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무혈신공.’

아이젠이 크게 호흡하자 바깥에서 불던 바람이 아이젠의 숨결을 통해 모여들었다.

후우. 후우. 후우. 아이젠은 거칠지만 침착한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러자 바위 틈새로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먹을 뻗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아이젠은 고민 없이 속으로 결사신권의 주문을 외웠다.

‘결사신권, 환교신권: 외공!’

파아악!!

아이젠이 몸 밖으로 내공을 내뿜자 아이젠의 몸을 덮고 있던 바윗덩어리들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 자세 그대로 누워 있다간 저 바위들이 아이젠의 몸 위에 그대로 떨어져 내릴 것이었다. 아이젠은 유랑보를 이용해 재빨리 몸을 움직여.

쿠과광! 쿠광!

떨어지는 바위들을 피했다. 그의 움직임은 기민하기 짝이 없었다.

“후우.”

아이젠은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불과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새김질해 보았다.

초대 가주 지안니의 눈 골렘들과 혈투를 벌였는데, 갑자기 동굴로 돌아왔다라?

그러나, 아이젠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꿈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증거가 두 개였다. 하나는 아이젠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홍화의 기운.

‘4성에 올랐어. 이제 2성만 더 오르게 되면…….’

아이젠은 6성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잠시 상상했다. 무혈신공 6성이면 화경 상위의 경지였다. 전생에 현경이었던 아이젠이기에 화경이어도 아직 갈 길은 멀지만, 6성에 오르게 되면 아이젠으로서는 분기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나 나중 일이었다. 아이젠은 우선 눈앞의 목표를 먼저 달성하기로 했다. 소가주전에서 5성에 오르기로 했던 목표를 잊지 않은 그였다.

증거는 두 개라고 했다. 첫 번째는 홍화의 기운, 그리고 두 번째는.

“흠집도 안 났네.”

아이젠의 양 팔뚝에 장착돼 있는 팔찌,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이었다.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은 새파란 색을 띤 채 그곳에 있었다. 바위 잔해에 긁히고 부딪혀 상처가 났을 법도 한데 작은 흠집조차 없었다. 그리고, 조금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 역시 그대로였다.

“그노시스에 가게 되면 사용법을 알 수 있댔지.”

아이젠은 조금 전 들은 지안니의 말을 되새겼다.

그노시스, 소가주전이 열리는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블렌하임의 말에 의하면 요아힘도 그곳에 있을 것이라 했고, 아이기스의 사용법도 그곳에서 알 수 있었다.

“역시 꿈이 아니었나.”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은 지안니의 비보. 그렇다면 그가 지안니와 만나 겪은 일은 당연히 꿈이었을 리 없었다. 어떻게 자신이 공동을 벗어나 다시 영설산 꼭대기에 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젠은 그런 건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응?”

그때 손안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에 아이젠은 문득 쥐고 있던 주먹을 펴 보았다. 그곳에는 만년한철 한 덩이가 쥐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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