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투다다다다다다다!!
“으왓!”
그야말로 설탄(雪彈). 아이젠은 설탄을 피해 몸을 숨겼다. 다행히 동굴 안에는 돌무더기가 많아 그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콰과과과곽!
설탄이 아이젠이 몸을 감춘 바위를 때렸다. 분명 눈과 바위인데도, 설탄이 닿을 때마다 바위에 흠집이 남았다.
‘미친. 이게 눈이 맞아?’
우박이라고 해도 믿겠다.
설탄이 쏟아지는 마경 속에서, 아이젠은 차분히 상황을 분석했다.
‘이 정도면 목롱보로도 피할 수 없겠어.’
설탄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비가 내리듯 촘촘한 설탄 속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 그렇다면.
쉬이이이…….
아이젠이 생각하는데, 마침내 설탄이 멎었다.
아이젠은 몸을 일으켜 세워 눈 골렘을 바라보았다. 눈 골렘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너 그런 것도 할 수 있냐?”
- 그오오오―
“누군진 몰라도 잘 만들었네, 이거.”
그만한 양의 설탄을 쏟아부었으니 휴식기가 좀 필요할 터였다. 아이젠은 그 틈을 노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목롱보!’
그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눈 골렘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가 뒤에서 나타나리라 짐작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 그오?!
그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굴의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을 뿐.
“어디 보냐, 인마.”
목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렸다. 눈 골렘은 그제야 자신의 밑에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아이젠을 발견했다.
무릎을 굽힌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 아이젠은 오른손을 쭉 뻗어 눈 골렘의 턱을 쳐올렸다.
‘박살, 악지섬(顎之殲)!’
퍽!
우두둑! 우두두둑!
뼈마디가 끊어지는 듯한 불쾌한 소리와 함께.
투웅!
눈 골렘의 머리통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아이젠은 그 틈을 타 눈 골렘의 가슴팍에 왼손을 뻗었다.
“결사신권, 박살(撲殺)!”
그러나.
텁!
눈 골렘의 왼팔이 아이젠의 주먹을 잡아 막았다. 아이젠의 박살은 결사신권의 내공이 실려 있는 만큼 잡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눈 골렘은 가볍게 잡은 것이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편(鞭)!”
아이젠은 박살의 묘리를 곧바로 박살편으로 바꾸어 제 손을 잡고 있는 눈 골렘의 왼팔을 잘라 냈다.
싹둑!
- 그오오!
눈 골렘이 소리를 질렀지만 고통에 겨워하는 음성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마치 ‘소용없는 짓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
“그럼 이것도 받아 보든가!”
경쟁심이 불붙은 아이젠은 다시 오른손에 내공을 실었다.
휘오오오―
휘감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젠이 잠깐의 대기 상태를 마치고 주먹을 질렀다.
‘결사신권, 권왕백무(拳王百舞)!’
슈팟!
눈 골렘의 가슴 핵을 향해 아이젠의 권왕백무가 쏟아졌다. 오십 쌍의 내공이 정확히 핵의 일 점을 향해 떨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시퍼런 빛을 발산하는 표면에 맞닿으려는 순간.
철컥!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
다시 눈 골렘의 온몸에서 설탄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젠은 뒤로 재주넘기를 하며 설탄을 피했다. 그러나 전 탄을 피할 수는 없어 한두 발을 배 쪽 외복사근에 허용하고 말았다.
투둑!
“윽!”
마치 창에라도 찔린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아이젠은 상처 부위를 움켜잡았다. 고통이 상당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서 있다간 설탄을 더 맞게 될지도 모르기에 그는 다시 바위가 있는 곳까지 달아났다.
콰과과과곽!
설탄이 다시 바위를 때릴 때, 아이젠은 왠지 모를 굴욕을 느꼈다.
“이런, 씨. 소환물 따위가 나를 이겨 먹으려고 들어?”
단순 소환물이라고 취급하긴 했지만, 눈 골렘의 위세는 무혈신공의 무리로 따지면 아마 4성 상위 정도는 될 것이었다. 3성 최상위인 아이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
하지만 물론 아이젠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한순간에 몸의 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혈신공―’
설마하니 하루에 네 번씩이나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아이젠은 다른 방법을 찾지 않기로 했다. 가장 간단한 길을 두고 돌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으니까.
‘사신강림(死神降臨)!’
푸화아아악!
꽈드드득!
아이젠의 몸에서 연분홍빛 오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의 온몸 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근섬유 한 줄 한 줄에 분홍빛 오러가 흘러들 때의 고통은, 비교하자면 마치 쥐가 난 것과 비슷했다. 즉 어마어마한 통증이 찾아는 오는데 그것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으윽!”
아이젠은 통증을 견디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아무리 반동이 끝나고 다시 사신강림을 사용한 거라지만, 근력 운동도 하루에 세 번 네 번씩 하면 몸이 상하는 법. 아이젠은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피부로 진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사신강림의 시전이 끝나자.
쉬이이이…….
눈 골렘의 설탄도 작동을 멈추었다.
눈 골렘의 머리는 어느새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핵을 부수는 게 아니면 파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눈 골렘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몸에서 하얀색 연기를 내고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양의 연기였다. 아이젠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너도, 아무런 리스크도 없이 그 기술을 쓰는 건 아니군.”
- 그오오.
설탄을 사용할 때마다 눈 골렘의 몸에도 부담이 갈 것이었다. 마치 아이젠이 사신강림을 사용할 때처럼.
아이젠은 생각했다. 여기서 사신강림을 3분 이상 가동하면 정말로 몸이 망가질지도 몰랐다. 생사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이젠이기에, 불필요하게 몸이 상하는 일은 삼가고자 하는 아이젠이었다.
“3분. 이 3분 동안 내 전력을 다하마.”
- 그오?
“그러니까 너도 전력을 다하라고, 돌덩어리야.”
콰아아아아!
아이젠은 사신강림의 내공을 폭발시켰다. 연분홍빛 오러가 더욱 짙은 색을 내며 강렬하게 자신을 과시했다.
팟!
아이젠은 지체 없이 눈 골렘의 머리 근처로 떨어졌다. 그리고 눈 골렘의 왼쪽 어깻죽지를 향해.
‘결사신권, 박살지(撲殺指)!’
박살지를 먹였다.
투둑!
눈 골렘의 왼쪽 어깨 관절이 끊어짐과 동시에 골렘의 왼팔이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 그오오!
박살지는 박살의 힘을 한 점으로 응축해 공격하는 것. 아이젠은 방금 눈 골렘의 어깨와 팔을 연결하던 조직을 파괴했다. 다시 말해 눈 골렘은 이제 아까처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장난감 흉내는 낼 수 없었다.
‘저 왼팔은 이제 붙지 않아.’
눈 골렘도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오른팔만은 사수하려는 듯 주먹을 내리뻗었다. 어느새 지면을 밟은 아이젠은 그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았고.
턱!
눈 골렘의 회심의 일격은 허무하게 막혔다.
“그게 다냐?”
- 그오오오!
“몸에서 눈송이 튀어나오는 거 말고 뭐 다른 기술은 없어?”
- 그오오오……!
“없으면 부서져!”
쾅!
아이젠의 주먹이 작렬했다. 골렘의 가슴에 있는 핵을 향해. 그러나 핵도 여간 단단한 게 아닌지,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쩌적.
갈라진 것은 오히려 아이젠의 오른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단하잖아?’
이 정도면 만년한철보다 단단한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공격에 실패한 아이젠은 주저하지 않고 다시 오른손을 당겼다가.
‘권왕백무(拳王百舞): 관(貫)!’
관(貫)의 힘으로 핵을 공격했다. 주먹 뼈가 으스러진 것 따위는 아이젠에게 방해 요소가 되지 않았다. 방해 요소가 있다면.
텁!
그것은 눈 골렘의 오른팔일 뿐.
눈 골렘의 오른팔이 다시 아이젠의 오른손을 붙들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이 자식, 힘이 장사네?”
- 그오오오!
아이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눈 골렘의 힘은 어쨌든 대단했다. 관(貫)의 힘을 맨손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대체 누가 만들었길래.’
대체 누가 만들었기에 겨우 골렘 따위가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걸까?
아이젠은 사신강림을 사용하고도 자신이 눈 골렘에게 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헛소리.’
금세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선다. 겨우 이런 소환물 자식한테 당할 수야 없지!’
마음을 불태운 아이젠은 오른손에 힘을 꽉 흘려 넣었다. 눈 골렘 역시 오른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두 존재의 팔은 부들거리며 허공에서 공방을 나누다가.
- 그오오!
쿵!
눈 골렘이 기지를 발휘해 발로 동굴 바닥을 디딤으로써 힘을 상쇄했다. 중심이 흐트러진 아이젠은 일보 후퇴하여 멀리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은 오른손을 매만졌다.
우두둑! 우둑!
왼손으로 오른손을 움켜쥐어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추려 했지만, 제대로 작살난 건지 오른손의 뼈는 원래대로 돌아올 기색이 없었다.
아이젠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벌써 사신강림을 운용한 지 1분이 지났다. 당황할 법도 했지만.
‘급할수록 침착해라.’
스승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아이젠은 심신을 안정시켰다.
눈 골렘은 떨어진 팔을 들어 올려서 자신의 왼쪽 어깨에 맞대 보았다. 그러나 마디가 이어지지 않자 화가 났는지 팔을 내버렸다.
- 그오오오오!
“야, 야. 동굴 울린다.”
눈 골렘의 괴성이 쩌렁쩌렁 동굴을 진동시켰다.
아이젠은 눈 골렘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매만지는 한편 생각했다.
최초에 그가 판단한 것처럼 골렘은 누군가가 만드는 것.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누구이길래 그린우드 가문의 소유지인 영설산에 이런 강력한 골렘을 놔둔 것이지? 그것도 만년한철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누구냐, 네 주인은?”
- 그오오오.
“네가 지키는 건 만년한철이지? 누가 시킨 건데?”
- 그오오.
사실 만년한철을 지키라고 누가 시켰는지가 그렇게까지 궁금할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아이젠이 궁금한 것은, 무혈신공 4성 상위 정도의 이 대단한 골렘을 ‘만든’ 존재가 대체 누구냐는 것.
소환물이 이 정도라면 본체는 훨씬 더 대단한 경지에 올라 있을 터. 아이젠은 눈 골렘의 배후에 있는 이가 궁금한 것이었다. 그것이 궁금한 이유는 단 하나.
‘날 더 강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어.’
결사신권은 싸울수록 강해진다. 만약 눈 골렘의 제작자와도 한판 겨뤄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이젠은 더욱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것이고, 더욱더 빠른 속도로 생사경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었다.
피식―
이 와중에도 싸울 생각만 하는 자신이 참 변태 같다고 생각하는 아이젠이었다.
“호전광도 이런 호전광이 없어. 이러니까 여인들이 날 피하지.”
이강철이던 시절에도 아이젠을 흠모하던 여인들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아이젠은 수련에만 매진할 뿐, 곁에 여인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중원에서 그가 남색을 밝힌다는 소문까지 돌았지.
아이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사심을 털었다.
- 그오오.
그래, 골렘 따위에게 물어 뭐 하나. 물어 봤자 그오오 말고는 할 줄 아는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아이젠은 생각을 그만두고 마저 눈 골렘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시간은 1분 반.’
사신강림의 유지 시간 3분 중 절반 정도가 지났다. 아이젠은 다시 온몸 근육에 진기를 흘려 넣었다.
“간다.”
- 그오오오!
두 존재의 신형이 다시 한번 맞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