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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60화 (60/201)

60화

【 영설산의 마물들 】

블렌하임이 영설산에 배치해 둔 궁수의 숫자는 총 스물네 명. 그중 스물세 명은 조금 전 아이젠의 환교신권에 맞아 즉사했거나, 기절했다.

그러나 말단 궁수 모지그는 아니었다. 모지그는 아이젠을 향해 활을 겨누다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엎드렸기에 관자놀이를 비교적 약하게 맞은 탓이었다. 물론 그 탓에 모지그 역시 조금 전까지 기절해 있었으나 다른 궁수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빨리 정신을 차렸다.

‘끄응. 젠장, 못 움직이겠어!’

환교신권을 관자놀이 어디에 잘못 맞았는지, 모지그는 일시적으로 전신 마비가 와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겨우 한 대 맞았을 뿐인데.’

위력에 그다지 힘을 쏟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젠이라는 자는 온 힘을 다해 기력을 방출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지그는 지금 이 꼴이었다.

모지그는 누운 채로 시선만은 아이젠이 있는 쪽을 내려다보며, 그에게 일종의 경외심을 품었다.

‘블렌하임 대장보다 강한 사람이 있었다니.’

문득 몇 년 전 일이 떠오르는 모지그였다.

모지그는 원래 귀족의 밑에 있던 노예 병사였다. 당시 귀족에게 학대를 워낙 심하게 당해 아직도 왼쪽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구해 준 게 블렌하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해 준’ 것은 아니고, 블렌하임은 그저 귀족 사냥을 했을 뿐이지만. 그때 블렌하임의 강함을 목격하고 모지그가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블렌하임 대장보다 더 강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겨우 나이 열여섯, 열일곱 정도에 불과한 꼬마 아이가.

‘말도 안 돼. 하지만.’

정말 대단하다!

저 강직한 몸을 봐라. 아무리 맨손 권법에 치중한 자라 한들 어린 나이에 저 정도의 몸을 만들기가 어디 쉬울까? 필시 어마어마한 단련의 기간이 있었을 것이었다. 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을 터.

모지그 자신은 열여섯 살 때 무얼 하고 있었지? 노예로 살며 마구간에서 명마들의 똥이나 치우고 있지 않았던가?

‘귀족과 노예라는 신분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엄청나.’

자신이 귀족이었다면 과연 아이젠처럼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어 단련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랬을 리 없었다. 모지그는 제 성격을 잘 알았다. 그는 톡 까놓고 말해 성실한 편은 아니었다.

모지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로서는 블렌하임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후, 처음으로 일생일대의 선택을 할 순간이 왔다.

‘몰래 도망치자. 아니면 부하로 맞아 달라고 하자.’

그건 바로 아이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누군가는 마음이 속속 쉽게 바뀌는 박쥐 같은 놈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모지그는 확신이 들었다. 저 소년, 저 아이젠이라는 소년이라면 분명 충성을 다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리라고.

마침내 모지그는 결심했다. 그에게 부하로 맞아 달라고 하자. 이 마비가 풀리는 대로 바로 다가가서 말이다. 그러나.

“크르르…….”

모지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

갑자기 들리는 짐승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모지그는 고개를 돌렸다. 머리만은 마비 상태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내.

“어어?”

모지그는 사색이 되었다. 그의 이마와 옆머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말려 있는 꼬리와 위를 향해 솟구쳐 있는 두 개의 엄니. 그와는 비견되는 부드러운 눈매와 툭 튀어나온 가슴팍. 마마 그런트였다.

“크르르르르르르!!”

“잠까―!”

푸각!

마마 그런트가 모지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모지그는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마비가 덜 풀려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꺼어어, 하, 하지 마!! 하지 마아아!!”

마마 그런트는 모지그를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제 입에 넣어.

콰직!

씹어 물었다.

모지그를 먹어 치우고 되새김질까지 마친 마마 그런트가 몇 발자국을 걸었다. 그곳에선 아이젠과 파파 그런트가 대치하고 서 있었다.

“한 놈이 아니었네.”

아이젠이 중얼거렸다. 하긴, 아빠가 있으면 엄마도 있게 마련이겠지.

마마 그런트는 파파 그런트보다는 키가 약간 더 작았으나 차이는 크지 않았다. 파파 그런트의 눈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올라 있다는 점만이 두 개체를 분별하게 해 주는 요소였다.

아이젠은 자세를 잡았다.

“날 죽이고 싶겠지?”

“그르릉.”

“그럼 덤벼, 두 놈 다.”

아이젠은 모니카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렸다가 뒤로 휙 넘겨 던졌다. 모니카는 눈이 쌓여 있는 곳에 안전하게 안착했다.

“후우.”

“그르르르릉!!”

“크르르르르!!”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가 서로를 보며 울부짖었다. 그사이, 아이젠은 또다시 찾아온 싸움에 기쁨에 겨워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윽?!”

그는 갑자기 요통을 호소하며 허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지끈지끈!

허리가 마치 칼로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 아이젠의 얼굴은 삽시간에 땀범벅이 되어 버렸다. 사신강림의 반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젠장.”

짧다. 너무 짧아. 전생의 이강철이었다면 사신강림을 두 시진은 운용하고도 거뜬했을 텐데. 블렌하임을 상대로 고작 몇 분 운용하고 이 모양이었다.

사신강림의 리바운드로 찾아오는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은 요통이지만 앞으로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사용한 시간의 열 배만큼 통증이 지속된다.

‘내가 블렌하임을 상대로 대충 7~8분 정도 사용했으니까.’

앞으로 최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아이젠은 고통에 허덕일 터였다.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가 그런 아이젠을 내려다보았다. 둘이 보기에 지금 아이젠은 마치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는 약자처럼 보였다.

“그릉?”

“크르르르.”

“그르릉!”

두 그런트가 모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젠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대략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한 거 맞아, 너희 그런트들 묵사발 낸 거. 지금은 좀 아파서 그래.”

“그르릉!”

“괜찮아.”

아이젠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희 같은 허접한 마물들 상대하기에는 문제없어.”

“크르르르!!”

“그르르릉!!”

그 말이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를 자극한 듯했다. 두 그런트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더니.

펄쩍!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결사신권―’

아이젠도 자세를 잡고 고관절을 굽혔다. 그리고 오른손에 결사신권의 정수를 담아 주먹을 내지르려는데.

‘박살― 윽?!’

욱신욱신!

아이젠의 팔뚝이 갑자기 칼에 잘렸다. 물론 실제로 잘린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뿐. 덕분에 아이젠의 자세가 잠시 흐트러졌고.

“크르르르!!”

“그르르릉!!”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는 서로의 주먹을 교차해 아이젠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아이젠은 그 와중에도 손을 뻗어 막으려 했으나.

“큭!”

또다시 느껴지는 통증에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퍼억!!

아이젠은 두 그런트의 주먹을 정통으로 허용하고 말았다. 무혈신공도 운공하지 않은 터라 주먹에 담긴 위력은 아이젠의 맨몸에 백 퍼센트 먹혀들었다.

투웅! 투웅!

아이젠이 눈 바닥에서 물수제비뜨듯 튕겨 나갔다. 본래라면 이 자세로도 손으로 바닥을 짚어 움직임을 멈췄겠지만.

‘젠장!’

지금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간 그 고통이 더 클 것 같았다. 마치 온몸이 칼날 수영장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아이젠은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퉁퉁퉁퉁…….

마침내 아이젠이 튕겨 나가기를 멈췄다.

그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도 격통이 느껴졌다.

“…큭! 후우. 아야야야, 아파라.”

“크르르르.”

“어, 재미없지?”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로서는 영 김이 식었을 것이었다. 동료들을 잔혹하게 망가뜨린 적을 찾아냈는데, 그 적이 겨우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였으니까.

아이젠은 그들이 느끼고 있을 실망감을 알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로서도 최선을 다해 주기로 했다.

“차라리 잘됐어.”

아이젠은 조금 전 블렌하임과의 싸움을 떠올렸다.

블렌하임은 분명 강자였다. 아이젠에 비하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이젠이 블렌하임에게 몇 차례 공격을 허용했던 이유는, 아이젠이 아직 보법의 무리(武理)를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아이젠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보법을 단련한다.”

보법을 단련하기로 마음먹었다.

길버트 등에게 사용했던 ‘목롱보’라는 보법이 이미 있긴 하지만, 목롱보는 공격을 한결 수월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법일 뿐이었다.

목롱보의 정체는 상대의 신형 근처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 하지만 그 이동 방식은 직선 운동이다. 최대한 빠르게 적에게 접근하는 것을 정론으로 하고 있기에 곡선 운동은 제한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전투를 보다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는 보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단련해야 할 보법은…….’

목롱보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결사신권의 또 다른 보법. 바로 유랑보(流浪步). 글자 그대로 마치 유랑하듯 지상을 헤엄치는 보법이었다. 적의 공격을 피할 때, 아니면 이미 접근한 적에게 좀 더 범용적인 공격을 가할 때 사용한다.

아이젠은 현재 유랑보를 단련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그것을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무혈신공도 운공하기 버거운 현재의 몸으로!

“다시 와라. 이번엔 아까처럼 쉽게는 안 당해 줄 테니까.”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저 작고 아담한 생명체가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두 돼지 마물이 엄니를 세웠다. 그리고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크르르르!!”

“그르르릉!!”

아이젠은 가볍게 말로 받아쳐 줄 뿐이었다.

“꿀꿀 잘도 우는구나, 돼지 새끼들.”

펄쩍!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가 다시 아이젠을 향해 뛰어올랐다. 이번엔 두 마물 모두 주먹이 아니라 각자의 엄니를 앞세워 아이젠을 향해 고개를 뻗었다.

“크르르르!”

“그르르릉!”

그리고 그대로 직선으로 쏘아져.

퍼엉!

마치 대포알처럼 아이젠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아이젠은 양손을 교차했다. 그리고 발을 쭉 뻗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온몸이 칼날에 베이는 느낌이었다.

‘크윽, 더럽게 아프네!’

아이젠은 고통을 무시하기로 했다.

‘유랑보!’

아이젠의 양발이 유려하게 교차했다. 혼자만 프레임 숫자가 달라진 것처럼 부드럽게 발을 뻗은 아이젠은,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의 엄니를 기묘한 움직임으로 통과했다.

쉬익.

두 엄니가 허무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그릉?”

“윽!”

아이젠은 다시 바닥을 짚고 쓰러졌다. 유랑보는 빠르게 발을 움직여 종이 한 장 차이로 적의 공격을 ‘관통’하는 것이 핵심.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발을 고속으로 운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 아이젠은 발을 움직일 때마다 도끼로 발을 찍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큭!”

아이젠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그 짧은 틈을, 두 그런트는 놓치지 않았다.

“그르르릉!”

“크르르르!”

파파 그런트와 마마 그런트는 다시 엄니를 앞세워 아이젠을 향해 달려들었고, 아이젠은 미처 그 둘의 일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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