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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57화 (57/201)

57화

“크크크. 만난 적이 있냐고? 물론.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냐? 모든 귀족의 말살이 내 목표다!”

“…….”

블렌하임이 호기롭게 대답하자 아이젠은 순간 생각했다.

이 정도의 강자라면, 직계 형제 중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을까. 게오르크라면 블렌하임을 가볍게 베어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네사 누님이라면?

“그러고 보니 네놈 같은 검은 머리의 여자도 만났지.”

“…어떻게 했지?”

“애석하게도.”

블렌하임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열쇠고리를 꺼내 가리켰다. 그것은 어금니로 만들어진 열쇠고리. 그곳에 있는 어금니 중 하나를 가리킨 것이었다. 아이젠은 그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

“…그래.”

바네사와 약 한 달을 함께 지내며, 아이젠은 느낀 바가 있었다. 그것은 바네사가 생각보다, 아니, 자신만큼 외곬으로 수련을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젠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참 이상하지.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가, 겨우 그딴 약물에 뒤처지다니.”

“후후. 왜, 아모스를 통해 얻은 힘은 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디 한번 날 이겨 보지 그래!”

“그럴 생각이다.”

아이젠은 스승 이화도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스승님, 당신은 대체 무엇에 희생당하신 겁니까? 그것은 희생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냥 개죽음이었습니까.’

뿌득!

아이젠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젠의 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아이젠의 주먹에는 기공이 흘러들었다.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분홍빛 오러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그릇에 다 담을 수 없는 물이 밖으로 흘러내리듯.

“무혈신공, 사신강림.”

이미 사신강림을 사용한 상태에서, 또다시 사신강림을 사용한다.

콰아아아아!!

아이젠의 몸에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블렌하임조차 침을 꿀꺽 삼킬 정도로.

블렌하임은 조금 전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으면 큰코다친다는 걸 알려 줬을 텐데!”

팟!

블렌하임이 무거운 발을 디뎠다. 그리고 아이젠을 향해 오른손에 파괴권의 진수를 담아 달려들었다.

“파괴……?!”

턱―

블렌하임의 주먹이 날아들기를 멈추고 막혔다. 무엇에? 다름 아닌 아이젠의 손에.

아이젠은 그저 자신의 손을 블렌하임의 주먹 위에 살포시 올려놨을 뿐이었다. 그런데 블렌하임의 파괴권은 어째선지 발동하지 않았다. 음속을 돌파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젠이 튕겨 나가야 정상인데, 어째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 움직일 수가……!’

블렌하임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부들거리면서도 한 발자국, 쌀알 한 톨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유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젠의 손이 블렌하임의 주먹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걸 ‘붙잡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그냥 살짝 얹고 있을 뿐인데… 이 내가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니?!’

아이젠은 피스풀 지하 감옥에서 싸웠던 그렉을 떠올렸다. 당시 아이젠은 결사신권은 무슨, 무혈신공조차 제대로 연마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이젠이 자신보다 몇 배는 덩치가 더 큰 그렉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힘의 분배가 엉망이네, 블렌하임.”

힘의 분배가 엉망이었기에.

당시 그렉은 100의 힘 중 90을 그냥 흘려보내는, 터무니없는 힘의 분배를 담은 주먹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블렌하임은 뭐가 좀 다른가? 아니, 아이젠에게는 블렌하임도 마찬가지였다. 그 비율이 좀 다를 뿐, 블렌하임의 주먹 역시 100의 힘 중 50을 그냥 흘려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주먹이었다.

“내 힘이… 분배가 엉망이라고……?!”

“그래.”

블렌하임은 반박하고 싶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젠의 손이 살짝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 제가 주먹을 움직일 수조차 없다는 부동의 사실이, 아이젠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 블렌하임은 아이젠의 등 뒤에 서 있는 사신의 형상을 보았다. 스퀴드가 말했던, 바로 그 사신을.

인정할 수 없다!

“크윽……!! 이, 꼬마 새끼가……!”

“넌 아까부터 네 아류를 무시하던데.”

아이젠은 아모스 약병이 있을 블렌하임의 품으로 시선을 툭 던졌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류 무시할 거 없어. 너도 똑같은 놈이니까.”

어차피 남의 힘을 빌려다 쓰는 놈들일 뿐이니, 아이젠의 입장에선 둘 다 도긴개긴이었다.

“결사신권―”

아이젠이 반대쪽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블렌하임이 당황해 소리쳤다.

“기, 기다려!”

“―박살!”

아이젠의 주먹이 폭발했다.

콰아앙!!

으직! 으지직!

아이젠의 주먹이 블렌하임의 얼굴을 강타했다. 작은 주먹이 마치 온 얼굴을 감싸는 것처럼 블렌하임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그 오른손에는 무혈신공의 정수와 결사신권의 진기가 담겨 있었고.

“크…으으어악!!”

투왁!

블렌하임은 주먹에 맞은 충격으로 멀리 날아가 눈나무에 부딪쳤다.

쩌적! 쩌적! 쩌저적!

눈나무 한 개, 두 개, 세 개를 부수고 나서야 블렌하임의 몸이 멈췄다.

스르르― 그의 몸이 멈추고, 블렌하임은 하늘을 보고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후우.”

아이젠은 주먹에서 사신강림의 내공을 지웠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블렌하임의 앞까지 가 섰다. 블렌하임은 초점 잃은 눈으로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젠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일어나. 아직 살아 있는 거 다 알아.”

그 말과 동시에.

번뜩!

블렌하임이 눈을 번쩍 떴다.

“커헉! 커헙, 커흑……!”

“천천히 호흡해. 코뼈가 부러져서 숨을 쉬기 힘들 거다.”

그 말대로였다. 블렌하임은 입으로는 피를 토하고 코에서는 코피가 흘러 전체적으로 숨이 가빴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내쉴 때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크윽……. 이 귀족 놈 따위가!”

“그놈의 귀족, 귀족. 신분 때문에 피해 본 건 알겠는데 자격지심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네깟 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내 왼쪽 얼굴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아나?!”

“나야 모르지.”

아이젠은 다시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퍽!

아이젠은 집게손가락 하나만 뻗어 블렌하임의 머리를 타격했다. 블렌하임의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간 아이젠의 검지는 정확히 한 마디만큼만 그의 머리를 헤집었다.

‘결사신권, 뇌살!’

제이슨의 정신을 현혹할 때 썼던 기술, 뇌살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제이슨 때처럼 완전한 정신 지배를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커…억, 무슨 짓을……!”

“괜히 말 빙빙 돌리기 싫어서 기술을 좀 썼다. 질문할 테니 대답해라.”

아이젠은 무릎을 굽혀 블렌하임을 내려다보았다.

“너한테 아모스를 판매한 자가 누구지? 긴 머리에 빼빼 마른 남자냐?”

“그, 그렇다……. 큭!”

블렌하임은 대답을 거부하고자 했으나 어째선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대답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블렌하임은 애써 입술을 깨물며 말소리를 막고자 했다.

아이젠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자의 이름은?”

“이름은 모른다……. 나도 중간 관리자를 통해서 얻어 내는 거니까.”

“중간 관리자? 관계도가 또 복잡해지네. 나 기억력 별로 안 좋은데.”

머리가 길고 빼빼 마른 남자가 있다. 이 남자가 아모스의 실질적인 판매책이다. 중간 관리자가 그 아모스를 사람들에게 판매한다. 이때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

블렌하임 역시 그 수없이 많은 불특정 다수 중 하나일 뿐. 말하자면 이놈은 끄나풀도 못 되는 녀석이었다.

‘즉 [도축업자-상인-소비자] 정도의 관계인 건가.’

일개 소비자에 불과한 블렌하임은 아모스의 힘으로 파괴권이라는 기막힌 권법을 만들었다. 비록 결사신권에는 훨씬 못 미치는, 권법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초식 없는 무도이지만.

어쨌든 일반인이 단지 알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건지도 몰랐다.

‘단순히 강해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아모스는 반드시 복용자의 몸을 망친다.’

실제로 블렌하임의 신발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의 발끝은 보랏빛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오러의 형태를 기감으로 감지해 보건대 아모스의 부작용임에 틀림없었다.

뿌득―

아이젠은 이를 갈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 드는 것투성이로군.

“중간 관리자의 이름은?”

“요아힘…….”

“요아힘이라.”

아이젠이 블렌하임의 입을 통해서 나온 요아힘이라는 이름을 되뇌고 있는 그 순간이었다.

“어둠의 사슬!”

“……!”

먼 쪽에서 아이젠을 향해 사슬이 날아들어 왔다. 그러나 아이젠은 아직 사신강림의 운공을 지속 중인 상태였기에 그 사슬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고.

탁!

허공에서 그것을 낚아챘다.

“히, 히익!”

사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제리. 그는 어느새부턴가 블렌하임과 아이젠의 싸움에서 벗어나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블렌하임의 패색이 짙어지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브, 블렌하임 대장! 도, 도, 도망치세요! 여긴 제가 막을게요!”

“제리……!”

아이젠은 순간 얼탱이가 없었다.

“아니, 이 새끼들 보게?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인 줄 알겠네. 애먼 사람 잡아 죽이려던 건 너희잖아, 이 새끼들아.”

그러나 스스로 정의라는 미명하에 움직인다고 믿고 있는 블렌하임과 제리에게 아이젠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

블렌하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품에서 아모스의 약병을 찾았다. 그런데 어디 갔는지 약병이 만져지지 않았다.

“윽, 어디……!”

“이거 찾아?”

아이젠이 손에 들어 보인 것은 바로 아모스의 약병. 블렌하임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것이었다.

블렌하임은 뿌득 이를 갈았다. 아모스를 약병째로 빼앗기다니!

“이런 거에나 의지하니까 너희가 역으로 당하는 거다.”

“큭!”

“질문 아직 더 남았어. 바네사 누님은 어떻게 했지? 죽였나?”

“…크으으!!”

블렌하임은 대답하다 말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제 입 안에 손을 넣었다.

“끄, 끄으으!!”

“……!”

아이젠은 뭔가를 눈치채고 뒤로 물러섰다.

뿌득!!

블렌하임이 입 안에서 손을 빼냈다. 그의 손에 딸려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어금니. 그가 별안간 자신의 어금니를 뽑은 것이었다.

후드득!

그 탓에 바닥에 피가 수놓아졌다.

“뭐야. 미친 건가, 드디어?”

“끄흡, 끄으윽!!”

그러나 블렌하임은 미친 게 아니었다. 그는 핏물에 적셔진 어금니를 손에 들었다. 그 어금니 끝은, 아모스의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잠깐, 설마.”

꿀꺽!

아이젠이 뭐라 말릴 틈도 없이.

“크, 오오오오오오오!!”

블렌하임은 자신의 어금니를 꿀떡 삼켰다. 그리고 온몸에서 아모스의 오러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팟!

아이젠은 좀 전보다 뒤로 더 물러섰다.

‘방금 놈이 삼킨 건 소량이 아니었어.’

그건 아마도 아모스를 응축시켜 놓은 것일 터였다. 그걸 제 어금니에 숨겨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삼킨 것이었다. 즉 최후의 때가 오면 그때 힘을 사용하기 위해 감춰 뒀던 보루. 이제 블렌하임은 죽음도 불사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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