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54화 (54/201)

54화

프란츠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툭― 잘린 칼날은 사막의 땅 위에 허망하게 떨어져 내렸다.

“차, 참철검을 베었어? 대체 어느 틈에……?”

칼을 뽑는 기색조차 없었다. 실제로 게오르크의 검은 지금도 저기 저 허리춤에 오도카니 있지 않은가? 그런데 대체 어느 틈에 검을 뽑아 자신의 참철검을 베고, 또 어느 틈에 다시 거둬들였단 말인가.

“검부터 다시 맞추는 게 좋겠구나, 방계.”

고민에 빠진 프란츠를 향해, 게오르크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소가주 자리를 논할 게 아니라.”

프란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오르크의 카리스마가 그를 압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광경을 지켜보던 한스도, 속으로 결심했던 생각을 거두기로 했다.

‘내, 내 주제에 우승은 무슨.’

또한 자신에게 건방지게 굴었던 아이젠 역시 게오르크 형님에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오르크 형님이야말로 소가주전의 우승자가 되어야 한다! 한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게오르크를 모셔 가문의 2인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또 다른 이가 있었으니.

‘…역시 주인님이야말로 우승자가 되기에 적합하시다.’

바로 제이슨이었다.

제이슨이 보기에도 게오르크의 검술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 수준을 논하자면 아이젠의 권법도 게오르크의 검술에 모자라지 않았다.

어느덧 아이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된 제이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젠 도련님, 어서 이곳에 당도해 주십시오.’

소가주전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고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음에도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제이슨이었다.

* * *

아이젠은 무혈신공을 멈췄다. 타고 있던 그런트가 또다시 몸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야, 이씨. 움직이지 말랬지.”

“그릉, 그르릉…….”

그런데 그런트의 반응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히힝―

모니카를 태우고 있던 말도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아이젠은 그런트에서 내렸다.

“도련님, 콜록, 무슨 일 있으세요?”

“거기 누워 있어, 모니카.”

사박. 사박.

아이젠은 몇 걸음 앞으로 걸었다. 얼음벽을 지난 뒤에도 여전히 눈밭이라 걸을 때마다 눈 밟는 소리가 났다.

“그르릉. 그르릉!”

그런트는 몇 차례 그르렁거리는가 싶더니.

“그르릉!!”

이내 얼음벽이 있는 산 아래쪽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이젠은 굳이 그 녀석을 붙잡지 않았다. 붙들어 놓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테니.

동물들은 다가올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두려움을 품는다. 하물며 마물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터. 그리고 이제는, 아이젠도 그 위협을 느낄 수 있었다.

저릿저릿―

피부가 저려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젠과 그런트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달랐다. 그런트가 위협에 느끼는 것이 두려움이라면, 아이젠이 느끼는 것은 기대감이었다.

“누구냐. 나와라.”

눈보라가 내리쳐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아이젠은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다.

잠시 고요함이 자리하는 가운데, 마침내 눈 속에서 하얀 발이 튀어나왔다.

쿵― 쿵―

걸을 때마다 거대한 땅울림을 내며 아이젠을 향해 다가오는 생명체가 있었다. 그것은 거대했다. 그런트보다 최소 세 배는 더. 아이젠보다는 당연히 더 많이. 그래서 아이젠은 그 미지의 존재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 존재에게 아이젠이 말했다.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아이젠.”

- 내게 이름은 없다. 나는 이곳의 파수꾼일 뿐이니.

그건 오크였다. 온몸을 새하얗게 물들인 오크.

오크는 흔하디흔한 마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여행자들을 잡아먹는 흉악한 마물로 유명하지만 기본은 하급 마물.

그러나 아이젠은 눈앞의 하얀 오크에게서 ‘하급’이라는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중급? 상급? 아니면 최상급?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인력(引力) 같은 것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하얀 오크, 그러니까 화이트 오크가 말했다.

- 얼음벽을 뚫고 들어왔는가?

“…그렇다면?”

- 이곳부터는 그린우드의 핏줄이 아니라면 지나갈 수 없다.

“난 그린우드인데.”

그 말을 듣자 화이트 오크가 허리를 굽혔다. 아이젠에게 인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손으로 땅을 짚기 위해 몸을 숙였을 뿐.

화이트 오크는 새하얀 눈 바닥에 오른손을 올렸다. 그의 오른손에서 푸른 기운이 솟아나는가 싶더니.

쑤욱!

그의 오른손에 무언가가 뽑혀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검. 한눈에 봐도 정순해 보이는 순도 높은 참철검이었다.

“…그거로 한판 하려고? 좋지.”

아이젠은 또다시 겨룰 상대를 만났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아직 사신강림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눈앞의 상대를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해 볼 만해!’

충분히 견줄 만하다. 그러나.

- 난 너와 싸우지 않는다, 그린우드의 피여.

“……?”

화이트 오크는 아이젠의 기대를 배반하고, 그 검을 아이젠에게 내밀었다. 아이젠은 말없이 그 검을 받아 들었다.

“…이걸 왜 나한테…….”

- 네가 진정 그린우드의 핏줄이라면, 그 검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해 보라.

이 검으로?

아이젠이 멀거니 그 검을 바라보고만 있자 화이트 오크가 덧붙였다.

- 이것은 영설산에 당도한 그린우드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시련. 힘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어떤 식으로 증명하면 되는 건데?”

- 그 검으로 나를 베어 보아라. 너의 힘이 앞으로의 고행을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

“고행이라…….”

- 걱정하지 마라. 네가 벤다 한들 나는 작은 상처도 입지 않으니. 이건 그저 시험일 뿐이다.

아이젠은 여전히 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만 있었다. 화이트 오크는 아이젠의 눈동자 너머에 있는 올곧은 강기를 느꼈다.

- ‘강한 아이로구나.’

강하다. 나이는 분명 어려 보이지만, 같은 나이대에서는 견줄 상대가 없을 만큼 견고하다. 단순히 가진 바 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이 아이는 꽤나 높은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 ‘그러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누구라도, 이 산에서 내려가야만 한다.’

화이트 오크는 벌써 수백 년째 이곳 영설산을 지키는, 말하자면 산의 화신이었다. 수백 년 전 그린우드의 초대 가주와 모종의 계약을 맺어 이곳에서 소가주전의 예선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힘의 증명’이란 간단했다.

- ‘제시된 참철검으로 나를 베는 것.’

화이트 오크는 초대 가주와도 힘을 겨룬 적이 있을 만큼 강한 마물이었다. 즉 이제 겨우 핏덩이에 불과한 그린우드의 어린아이들이 화이트 오크를 벤다고 한들 단칼에 쓰러질 리 없는 화이트 오크였다.

화이트 오크는 아이들이 검에 담은 단 한 번의 힘으로 그들이 가진 힘을 시험했다. 그리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탈락이었다.

- ‘그 아이는 아슬아슬했지. 이름이 한스라고 했던가.’

한스의 일격을 받았던 화이트 오크는, 한스 정도가 딱 이 시험의 합격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못한 아이들은 통과할 수 없는 것.

- ‘하지만 그 아이는 대단했어. 이름이 게오르크라고 했지.’

한스보다 좀 더 일찍이 만났던, 게오르크라는 아이의 일격은 예상외였다. 하마터면 그조차 정신을 잃을 뻔한 일격을 맞았으니.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 만난 이 아이젠이라는 아이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화이트 오크는 검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 ……? 왜 검을 휘두르지 않지?

아이젠은 멀뚱멀뚱 계속 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화이트 오크는 실망하기 직전이었다. 설마, 마물인 자신에게조차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소심한 녀석인가. 그 정도로 심약한 아이라면 영설산을 오를 자격이 없었다.

- 어서 해라. 시간을 오래 줄 순 없어.

“…….”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아이젠에게 실망을 느낀 화이트 오크.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젠은 여전히 검을 휘두르지 않았고, 결국 화이트 오크가 그의 하산을 명령 내리려는 그때.

“싫은데.”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 뭐라?

“싫다고.”

- …날 베기가 싫다는 말이냐? 그 정도로 나약한 아이라면 영설산을 오를 자격이…….

“그게 아니라.”

아이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후우…….”

한순간 몸에서 내기를 지웠다. 그러고는 다시 몸의 모세 혈관에서부터 기운을 끌어올려 온몸 곳곳으로 내공을 흘려보냈다.

무도한 기운으로 가득 차오르는 아이젠의 몸을 보며, 화이트 오크는 경탄해 마지않았다.

- ‘대단하군!’

이 정도로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아이라니. 그래서 더 아쉽다! 힘이 있음에도 자신을 베지 못할 정도로 심약할 정도라면! 소가주가 되기엔 자질이 부족하다.

그러나 직후 벌어진 일은, 화이트 오크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핫!”

- ……?!

아이젠은 참철검의 칼날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의 온몸이 부들거리고, 날붙이에 베여 손에서 피가 흘러나왔음에도, 아이젠은 칼날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빠지직!

우두둑!

꽈드드득!

참철검의 칼날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챙강!

칼날이 부러졌다. 순전히 아이젠의 양손에 의해!

- 마, 만년한철을… 부쉈단 말인가? 맨손으로?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이젠은 부러뜨린 칼날을 손에 쥐고, 있는 힘껏 내공과 힘을 불어넣어.

빠드드드득!

파스스…….

칼날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참철검은 칼날을 잃고 손잡이만 덩그러니 남아 바닥에 내던져졌다.

“그놈의 참철검, 참철검. 그만 좀 해라.”

- 너…….

“난 검 따위 필요 없어.”

아이젠은 피가 흐르는 자신의 양손을 들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피가 흐르긴 했지만 상처가 크진 않았다.

“난 이 주먹 하나로 이곳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갈 거야.”

- ……!

화이트 오크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아니면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쿵!

아이젠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뭐야, 왜…….”

- 오랜만이로구나, 너 같은 녀석은.

수백 년 만인가. 화이트 오크는 자신이 최초에 만났던 그린우드 녀석을 떠올렸다.

- ‘설마?’

그리고 가만히 떠올렸다.

설마 그 녀석은,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소가주전의 예선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결정한 건가? 참철검가에서, 검을 다루지 않는 녀석이 언젠가 등장할 날을 기다리면서?

- ‘초대 녀석, 너한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아득히 먼 미래까지 예측한 그를 향해 화이트 오크는 존경을 품었다. 그리고 눈앞의, 자신보다 몇 곱절은 작은 소년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품었다.

- 그것 역시 또 하나의 길이 되겠지. 축하한다, 소년. 시련에 통과했다.

“어. 아싸.”

영문도 모르고 시험에 합격한 아이젠으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아이젠은 멋쩍어하는 얼굴로 화이트 오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만 일어나시지. 보아하니 뭔가 영물… 같으신데.”

- …음. 날 영물이라고 부른 건 네가 처음이군.

화이트 오크는 아이젠의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푸슉!

화이트 오크가 등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철퍼덕 앞을 보고 엎어졌다.

“……?!”

그리고 나타난 것은.

“네가 아이젠 폰 그린우드인가?”

아이젠이 내내 기다리고 있던 자였다.

“…네놈이 블렌하임이냐?”

아이젠의 손에 또다시 힘이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