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50화 (50/201)

50화

쾅!

피터의 주먹이 땅을 내려쳤다. 아이젠은 가볍게 뒤로 뛰어 그의 주먹을 피했다. 그러나 피터는 아랑곳없이 계속 아이젠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마치 파괴권의 그렉처럼, 피터의 주먹은 길들지 않은 거친 야생마와 같이 아이젠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부웅!

‘이 녀석…….’

아이젠은 기감으로 피터의 온몸을 훑었다. 단련된 근육이 섬세하게 그의 몸 사이사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씩 몇 년간 근육을 단련해야만 이런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즉 엄청난 노력이 수반된 결과물이라는 뜻.

그런데, 그런데 도대체 왜.

“왜 약물을 쓰지?”

“뭐야?”

“왜 아모스를 먹느냐고 물었다. 네 신체 조건 정도라면 그런 편법을 쓰지 않고도 더 높은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훗,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콰앙! 피터의 주먹이 눈 바닥 위를 내려치며 눈보라를 일으켰다. 한순간 안개가 형성되어 아이젠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피터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안개 속에 숨어들었다. 안개 틈바구니로 피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블렌하임 대장님을 처음 만난 건 1년 전이지. 그때 내가 주제도 모르고 대장에게 달려들었다가 어떻게 됐는지 아나?”

피터의 음성은 안개 전체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사방에 울려 퍼졌다. 소리가 일정한 방향이 없이 아이젠의 머리 위를 휘젓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젠은 피터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피터의 움직임은 안개 탓인지 아이젠의 기감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난생처음 벽을 맞닥뜨렸다.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장의 밑에 들어가 아모스의 힘을 받아들였지. 그리고 지금 난 그 누구보다 강해졌다! 체력 단련만으로 높은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허울 좋은 소리는 하지 마라!”

쑤욱!

한순간 아이젠의 등 뒤에서 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어쭙잖은 체면을 챙기려다 오늘 내게 죽는 거다!!”

부웅!!

피터의 주먹이 거세게 아이젠을 향해 덤볐다. 이 속도라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젠은 피하지 않았다.

쾅!!

피터의 주먹이 아이젠의 팔뚝에 닿았다. 주먹이 멈추고, 그 충격에 의해 거친 파동이 형성되어 주변의 안개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정작 주먹을 맞은 아이젠은 멀쩡했다.

“아니?!”

오싹!

피터는 당황할 새도 없었다. 팔뚝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아이젠의 눈동자가, 마치 그를 집어삼킬 듯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팟! 피터는 곧장 뒤로 서너 발자국 물러섰다.

‘큭, 겁이라도 먹은 거냐, 피터!’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피터는 눈앞의 남자 아이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이젠이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해서가 아니었다! 지난날 그에게서 받았던 상처들이 울고 있을 뿐!

“아이젠……!”

피터에게 아이젠은 그 자체만으로 트라우마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리라 다짐하는 피터였다.

“죽어어어!”

피터는 오른팔을 뒤로 멀리 뺐다. 그리고 온 힘을 주먹에만 실어 아이젠을 향해 휘둘렀다.

그사이, 아이젠은 겸허한 눈빛으로 피터를 깔보기를 그만두고 몸에 담아 둔 모든 내공을 풀었다.

사아아― 그러자 무혈신공이 빠져나간 아이젠의 몸은 완전히 날것이 되었다.

‘오러를 풀었다! 무슨 짓이지?’

흥분한 듯 보이는 피터는 생각보다 냉철한 판단으로 아이젠의 몸에서 오러가 빠져나갔음을 알아챘다. 무슨 묘수라도 품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제 와 고민하기엔 주먹이 너무 앞질러 갔다. 피터는 쥔 오른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웬 속셈인진 모르겠지만, 그냥 죽어라!’

콰앙! 피터의 주먹은 아이젠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다.

으드득― 으드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젠이 공중에 붕 떴다. 그의 몸은 이어 큰 소릴 내며 눈밭 위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휘오오오오…….

눈보라 치는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 공백을 메웠다. 아이젠과 피터 중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끄으으으아아아아아!!”

피터 쪽이었다.

피터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오른손이 성벽이라도 친 듯 형편없이 으스러져 있었다.

“으으으흑! 이 새끼, 대체 무슨 짓을!!”

“아무것도.”

펄쩍. 넘어져 있던 자세 그대로 일어난 아이젠은 뺨에 난 흠집을 어루만졌다. 맞은 쪽 입 안이 터지긴 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퉤, 바닥에 뭉친 피를 뱉은 아이젠은 사박사박 피터에게 걸어갔다.

“나는 그 허울 좋은 소리로 이 위치까지 올라왔다.”

“……!”

“네가 정말로 나를 이기고 싶었다면 그런 식으로 강해져선 안 됐어. 그건 편법이니까. 편법을 사용해서 날 쓰러뜨리면, 그게 어디 기쁠 것 같나, 피터.”

“네가… 네깟 놈이 뭘 안다고 떠들어!”

“알고 있다.”

아이젠은 불현듯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강철이던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자리해 있었다.

* * *

중원 무림, 이강철이 열 살이던 시절 그는 소위 말하는 왕따였다.

“야, 이 자식 고아래!”

“고아가 뭔데?”

“엄마 아빠 죽은 거!”

“엄마 아빠가 죽었어? 근데 얜 어떻게 살아 있지?”

강철은 주변 아이들에게 온갖 괄시와 멸시를 받으며 자라 왔다. 그뿐만 아니라 때로는 폭력도 당했다. 열 살이 될 때까지 그의 몸은 다치지 않은 날이 더 적었다.

“야, 얜 처맞아도 엄마 아빠가 데리러 안 온대!”

“너도 부모님 사는 데로 꺼져!”

퍽! 퍼억!

그날도 강철은 뒷골목에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저항하는 법을 몰랐던 강철은 그저 쪼그려 앉아 아이들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으흑, 하, 하지 마!”

너무 아파 그렇게 외칠 때면 아이들은 더욱 흥분해서 그를 때려 댔다.

그때였다.

“그만두지 못해!”

웬 남자아이가 나타나 소리치자 아이들의 주먹이 뚝 멈췄다. 아이는 강철의 또래처럼 보였다. 눈이 또랑또랑하고 키가 컸으며, 피부가 까무잡잡한 아이였다.

“으악, 도유진이다!”

“도망가자!”

아이들은 우르르 도망치고, 도유진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강철의 손을 잡아끌어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넌 왜 맞고만 있냐?”

도유진이 물었다.

“때리니까.”

강철이 멍청하게 대답했다.

“때린다고 맞고만 있으면 어떡하냐? 그럴 땐 너도 같이 때려야지.”

“그럼 더 맞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맞고? 우리 아빠가 말했어.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라고.”

“네 아빠가 누군데?”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냐. 그나저나 넌 이름이 뭐야?”

“…이강철.”

“이름 멋지다. 난 도유진이야.”

유진이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자 강철은 그 손을 맞잡았다.

“여자애 이름 같다.”

“너 왜 맞고 다니는지 알겠다.”

그렇게 강철과 유진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어린 나이임에도 함께 체력을 단련했고, 열네 살이 되던 무렵에는 어른조차도 동네에서 강철과 유진에게 함부로 덤벼드는 이가 없었다. 도유진이 골목대장이라면 이강철은 선도부 같은 느낌이었달까.

강철이 스승 이화도에게서 무혈신공을 사사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유진의 소식이 좀 뜸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마음속으로 유진을 계속 가장 친한 단짝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천마신교의 본당 건물에서였다.

“너… 네가 어떻게 여기에…….”

강철이 당황해서 묻자 유진은 태연히 대답했다.

“왜긴 왜야. 내가 천마신교의 직계 후계자이기 때문이지.”

“네가… 천마 도강문의 아들이었나?”

“그래.”

강철은 충격을 받았다. 도유진이 도강문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도유진의 눈에서 지난 어린 시절 보았던 총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변했구나, 도유진 너.”

“너도 마찬가지로.”

강철은 그날 유진을 죽였다.

유진의 몸은 형편없이 나약해져 있었다. 그가 체력 단련을 게을리한 것은 필시 아닐 것이었다. 강철이 보아 온 유진은 게으름뱅이가 아니었으니까.

그의 몸이 망가진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 역시 다른 천마신교 신도들처럼 천마 도강문의 내공을 몸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왜! 너라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잖아! 대체 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강철은 도유진의 죽어 가는 몸을 품에 안고 소리를 질렀다. 유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강철의 손을 꽉 잡았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라고 말했지……? 내가 틀렸어…….”

“도유진!”

“강철아. 혹시 기억하니? 우리 어릴 때 약속했던 거…….”

“……!”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강철은 도유진과 맺은 약조를 위해 오늘날까지 살아온 셈이기도 했으니까.

“둘 중 먼저 생사경에 도달하는 사람이… 금화 객잔에서 술을 사자고 했었지.”

“기억하고 있었구나…….”

콜록콜록!

도유진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피를 토했다. 그는 이제 죽는다. 강철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를 이 꼴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 놓고 죽지 말라느니, 살아서 약속을 지키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위선이었다.

“강철아, 난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어.”

그의 목소리에 울먹이는 기색이 서렸다.

“강철아. 존중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거야. 줄곧, 줄곧 네게 잘못된 걸 알려 준 것 같아 미안했어. 미안하다, 강철아. 미안해…….”

풀썩. 유진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날 강철은 태어나 두 번째,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 * *

아이젠은 피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나도 너 같은 때가 있었고, 너 같은 아이를 본 적이 있어. 그래서 알아. 네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아이젠은 피터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그니까 너 한 대만 맞자.”

아이젠은 내공을 싣지 않은 주먹으로, 피터의 뺨을 날렸다.

짜악!

“크악!”

거친 소리와 함께, 피터는 2m 정도를 날아가 쓰러졌다. 일어난 그의 뺨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부어 있었다.

“이 새끼, 감히 내 뺨을……!”

“아, 좀 후련하다. 아직 멀었지만.”

피터는 땅을 딛고 일어났다. 오른손이 시큰시큰 고통스러웠지만 꾹 참고 일어설 수 있었다.

“내 방식이 잘못됐다고? 네가 뭔데 감히 그런 말을 지껄여! 애초에 내가 왜 대장의 밑에 들어가게 됐는데! 너만 없었으면……. 너만 없었어도 난!!”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마침내 피터는 품 안에서 아모스를 무더기로 쥐어 꺼내더니.

콰득!

입 안에 쏟아부어 씹어 삼켰다.

“야, 야. 그거 그렇게 한 번에 많이 먹어도 되는 거 맞아?”

“우욱! 크으으으!! 으아아아아!!”

피터의 고래고래 울리는 목소리가 아이젠의 고막을 거세게 때렸다.

피터의 몸이 조금씩 더 비대해지는가 싶더니, 한순간 수분이 쫙 빠진 것처럼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변해 갔다. 다친 오른손과 부었던 뺨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갔다.

“크으으!! 난, 난 틀리지 않았어! 왜냐면 틀려먹은 건 네놈이니까! 아이젠 폰 그린우드!!”

“말 심하게 하네.”

“죽여 버릴 거다! 뭉개서 죽여 주마!”

펄쩍!

피터의 거대한 몸이 하늘로 높이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 피터는 얼굴까지도 점점 푸석해지고 있었다.

그는 부서졌다가 수복된 오른손을 다시 한번 꽉 쥐어 아이젠을 향해 내려쳤다.

“‘그라운드 핵’!”

콰아아앙―!!

쩌적―

주먹이 눈밭 위를 때리자, 바닥이 쩍 갈라지는 소릴 냈다.

‘저건?’

단순히 힘만 강해진 게 아니었다. 아이젠은 피터의 주먹에 내공뿐만 아니라 모종의 속성이 실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라운드 핵은 ‘주먹에 대지의 힘을 담는 것’! 아모스의 힘을 극대화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쩌적― 쩌적―!

그사이 바닥이 내는 갈라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소리는 마침내 아이젠의 근처까지 와 있었다.

‘…대지의 힘이라고?’

피터는 주먹에 대지의 힘을 담아서 공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야, 설마…….”

“빠져 죽어라, 아이젠!”

콰르릉!!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아이젠이 서 있던 바닥이 아래로 푹 꺼져 주저앉았다. 아이젠 역시 그 바닥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랬어야 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아이젠의 몸은 여전히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땅은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아이젠이 여전히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공격이 너무 느려.”

아이젠이 어느새 피터의 등 뒤로 이동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를 잡힌 피터는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을 수조차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탓이었다.

“말도 안 돼. 아모스를 이렇게까지 복용했는데도…….”

“그러니까.”

“뭐, 뭐라고?”

“그러니까 그런 거야.”

아이젠은 피터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리고 힘을 줘 홱 돌리니, 피터는 어느새 아이젠과 마주 보게 되었다. 아이젠의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 같기도,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해 보였다.

“쪽팔리지도 않냐, 넌? 본인의 힘으로 단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런 약물에나 의존하다니.”

“크, 크으……. 아이젠 폰 그린우드으으으!!”

“꺼져.”

퍼억!!

피터의 배에 주먹이 꽂혔다. 아이젠은 무혈신공의 정수를 오롯이 한 주먹에 담아, 결사신권의 박살을 날렸다.

“커…헉!”

“피터. 너를 이 꼴로 만든 건 나야. 그러니까.”

아이젠의 시선이 피터에게 내려앉았다.

“네 악행을 매듭짓는 것도 내가 하겠다.”

파앙!

아이젠은 피터의 배에서 주먹을 뽑아냈다. 피터는 그 반동에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는가 싶더니.

“어……?”

어느새 자신이 무너진 땅바닥까지 밀려났음을 알아챘다. 대지의 힘을 이용해 땅을 무너뜨린 건 다름 아닌 피터 자신이었다. 그의 신형은 그렇게 허무하게.

휘이이잉!

땅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