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47화 (47/201)

47화

‘환교신권!’

투웅―!

아이젠의 손아귀에서 포탄처럼 쏘아진 기공은 벼락같이 뻗어 나가 멀리 눈밭으로 도망치는 누군가의 발을 꿰뚫었다.

퍽!

“크악!”

청년 남성의 비명이 들렸다. 이것으로 잠시나마 발목은 잡았다.

그래서, 아이젠은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가 모니카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니카는 어느새 천막 바닥에 엎어져 헐떡거리고 있었다.

“도, 도련님……. 헉.”

“침착해. 숨 크게 들이쉬지 마. 아픈 거 알겠지만 숨을 천천히 쉬어야 해. 그래야 덜 아파.”

“…헉! …헉!”

“옳지, 잘한다. 비상약 같은 거 있지?”

아이젠은 제발 모니카가 비상약을 챙겨 왔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다행히 모니카는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천막 구석에 놓아둔 보따리를 가리켰다.

“아, 안에… 금창약이…….”

아니, 겨우 금창약으론 안 될 것 같은데.

모니카의 피부가 벌써 목까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짐작한 대로 맹독이 맞았다. 아이젠이 처음 빙의했을 때 맛봤던 맹독과는 다른 종류로, 훨씬 약한 독이지만.

그래도 내가기공을 단 한 번도 수련해 본 적 없을 모니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이대로라면 10분도 못 버틸 것이었다.

“모니카.”

“헉……. 네, 도련님…….”

“호흡 유지하고 기다려.”

아이젠은 다시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멀리 쓰러져 있는 인영을 향해 다리를 크게 뻗었다.

‘무혈신공, 목롱보(目弄步)!’

팟!

아이젠이 다리를 좁히자 아이젠과 인영 사이의 공간이 마치 종이가 접힌 듯 줄어들었다. 아이젠은 단지 한 걸음을 내디딘 것만으로 인영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목롱보는 무혈신공 3성에 다다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보법. 한달음에 거리를 좁혀 달리는 그 특이성 덕에 무림에서는 축지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크윽.”

인영은 짐작한 대로 청년 남성이었다. 서른 살쯤 되었을까? 타국의 것인 듯한 군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장착식 쇠뇌가 매여 있었다. 그것으로 독화살을 쏜 모양이었다.

환교신권에 맞은 탓에 남자의 발목에선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의 양이 상당해 눈밭을 붉게 적실 지경이었다. 핏물 사이로 남자의 발목에 동전만 한 크기의 작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너냐? 나한테 화살 쏜 게?”

“이 새끼… 저 멀리서 무슨 수로 날 공격한 거지? 사술이라도 쓰는 거냐?”

“해독제 내놔.”

“큭큭……. 내가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는군.”

“네가 도적인지 산적인지 그딴 건 안 궁금해. 당장 해독제 내놔.”

“그냥 줄 수야 없―”

퍼억!

아이젠의 주먹엔 거침이 없었다. 바닥에 넘어진 남자를 향해 아이젠은 박살을 날렸다.

“커헉!”

남자는 기절할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기절하진 않았다. 아이젠이 딱 그 정도로 힘을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내놔, 해독제.”

“크윽, 이 개새끼! 내가 누군 줄 알아?!”

“몰라. 궁금하지도 않아.”

뻐억!

한 방 더. 아이젠은 이번엔 남자의 견갑골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견갑골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급소다. 제대로 맞으면 웬만한 성인 남성도 며칠은 앓아눕고, 까딱하면 실신한다. 이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으허헉…….”

“해독제.”

“으흐윽, 메르헨!!”

남자가 뭔가 외치자.

파스스― 파스스―!

눈나무 숲을 헤치며 무언가가 아이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숲에서 들리는 소리엔 일정함이 없었다. 여기서 들렸다가 저기서 들렸다가, 마치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는 것처럼 아이젠을 향해 달려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이젠은 그 움직임을 잡아낼 만큼 눈이 좋지는 않았다. 3성 상위 정도로는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할 수 없었다.

근데, 그냥 안 봐도 된다.

‘결사신권, 교아!’

투확―!

아이젠은 대충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사선으로 손을 내리그었다. 교아를 사선으로 긋게 되면 아이젠의 전방은 모두 유효 범위 내가 된다. 즉.

“꺄악!”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물체라도, 반드시 맞는다.

쿵! 털썩!

눈밭 위로 떨어졌음에도 큰 소릴 낸 그것은 남자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소리의 정체는 여자가 양손에 쥐고 있는 쌍검인 것으로 보였다.

“메, 메르헨!”

“길버트…….”

메르헨이라 불린 여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절했다.

이름이 길버트인 듯한 남자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아이젠을 돌아봤다. 아이젠이 할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해독제.”

그러나 길버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별안간 품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

검은색으로 물든 흉흉한 빛깔의 알약을 꺼내 들었다.

아이젠은 길버트가 꺼낸 알약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얘기로는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검은 뿔 기사 학교에서, 카인에게.

“너, 그 알약… 어디서 났지?”

“궁금한 게 없는 것처럼 굴더니 그건 왜 묻지? 이랬다가 저랬다가 박쥐 같은 놈.”

“잠깐 사이에 네놈한테 물어볼 게 산더미처럼 많아졌다. 하지만 그 전에 해독제부터 내놔.”

길버트는 아이젠을 깔보듯 훗 웃더니.

까득!

알약을 입 안에 집어넣고 씹었다. 그러자 길버트의 몸이 변화를 보였다.

“우오오오오!!”

아이젠은 미지의 적을 향해 달려들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모니카의 상태가 한시가 급하지만 그는 우선은 목롱보를 사용해 서너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났다.

“카아아아아!!”

길버트의 발목에 났던 상처가 메워졌다. 그의 얇던 종아리는 오래 운동한 사람처럼 두꺼워졌고, 하반신에 맞춰 상반신도 변화를 일으켰다. 길버트의 몸집은 순식간에 콜로세움에서 수차례나 우승한 검투사처럼 커졌다.

“후우…….”

마침내 변화를 마친 듯 길버트가 싱긋 웃었다. 키도 커져 아이젠이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할 지경이 되었다.

“크하하하하!! 네가 내 발을 꿰뚫고 메르헨을 쓰러뜨리지만 않았어도 좋게 말로 하려고 했다만! 아무래도 대화가 안 통하는 놈인 것 같구나, 넌!”

“대화?”

이 새끼들이 다짜고짜 화살부터 쏴 놓고 대화는 무슨 놈의 대화?

아이젠이 조금만 늦게 화살을 잡아챘다면 그의 옆머리에는 지금 간교한 화살이 꽂혀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제 머리에 화살이 박히게 놔둘 아이젠이 아니었지만.

“도적놈들과 말을 섞어 줄 만큼 내 혓바닥이 저렴하진 않은데.”

“네놈을 두들겨 패서 곤죽으로 만든 다음 데려가 주마!”

“내가 맞아 줄 것처럼 얘기하네.”

“너무 쫄아서 감각이 어떻게 돼 버렸는가 보지? 너와 나의 덩치 차이가 안 느껴지냐? 지금 내 눈에 넌 마치 툭 하면 부러질 이쑤시개처럼 보인다. 이대로 척추뼈를 뽑아 줄 수도 있는데, 바란다면 그렇게 해 주고. 크크크.”

웃기고 있네.

아이젠은 고개를 저었다.

“도적놈 따위가.”

“우린 도적이 아니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맞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궁금한가?”

“그래, 궁금해.”

길버트는 쇠뇌가 묶인 왼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파칭―!

쇠뇌 안쪽에서 세 갈래 칼날의 클로가 쑥 나왔다.

“‘슈퍼 네일’!”

“……!”

슈슈슈슉!

길버트가 팔을 휘두르자 클로에서 기묘하게 뒤엉킨 참격이 날아들었고.

‘박살 연타!’

파바바방!

아이젠은 주먹을 쥐어 그것 모두를 강타했다. 덕분에 참격은 아이젠의 발치에도 닿지 못하고 눈밭에 떨어졌다.

“칼날을 날리는 공격? 거대해진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공격이구만.”

“큭큭큭. 전선에서 내 별명이 뭐였는지 아나? ‘목 사냥꾼 길버트’였다!”

“왜 자꾸 궁금하지도 않은 별명 자랑질을 해 대는 거야, 이 새끼들은.”

마창술사 도미니크, 파괴권의 그렉에 이어서 이번엔 목 사냥꾼 길버트냐?

“그럼 난… 투신 아이젠이다.”

슈슈슈슉!

길버트가 다시 한번 손을 휘젓자 참격이 덤벼들었다.

파바바방!

아이젠은 이번에도 주저 없이 박살을 연타로 날려 그것들을 모두 맞혀 떨어뜨렸다.

“대답해 줄 말이 있을 텐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었다. 대화하고 싶다며?”

“내가 언제 네놈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냐! 네놈이 대화가 안 통하는 놈인 것 같다고 했지!”

“왜 이래, 민망하게. 내가 또 의외로 대화가 잘 통하는 놈이야. 그러니까 말해 봐. 목적이 뭐냐. 왜 우릴 습격했지?”

길버트는 잠시 잠자코 있는가 싶더니 마침내 거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대장님이 네 얼굴을 보고 싶다신다. 얌전히 따라오면 사지는 멀쩡하게 해 주지.”

“대장? 그게 누구지?”

“알려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나?”

“엄마가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지 말랬어.”

“큭큭, 아직 젖도 안 뗀 거냐? 어린놈의 새끼가 따박따박 말대꾸나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이젠은 길버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독제 내놔.”

“이 새끼가, 기어코 나랑 제대로 한판 싸우고 싶단 거냐?”

“네놈이 쏜 화살 때문에 내 하인이 죽어 가고 있다. 너희 대장이란 놈은 죽어 가는 동료를 내팽개치라고 가르쳤나?”

“…….”

“협박용으로 화살을 쏜 거라면 당연히 해독제도 가지고 있을 거 아냐. 내놔라. 하인에게 해독제를 놓아 준 뒤 혈색이 돌아오면 얌전히 널 따라가마. 나쁘지 않은 거래 아니야?”

길버트는 고민하는 얼굴로 아이젠을 노려봤다. 보아하니 검은 알약을 먹는다 해서 이지까지 좀먹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천마 도강문의 내공처럼 대상을 강화시키는 효과만 있는 듯했다. 하긴 카인도 정신 상태는 멀쩡했으니.

마침내 길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도 무작정 싸우자고 달려들 만큼 생각 머리 없는 놈은 아니니까.”

팅!

길버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아이젠에게 던졌다. 아이젠이 잡아챈 그것은 손바닥 절반만 한 크기의 작은 약병이었다. 안에는 파란색 액체가 들어 있었다.

‘확인.’

아이젠은 기감의 강도를 크게 올렸다. 덕분에 눈보라가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눈나무 숲에 적막이 흘렀다. 길버트는 갑자기 기압 차가 커진 듯 귀가 먹먹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파란색 액체는 해독제가 확실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아이젠은 다시 한번 다리를 크게 뻗어 목롱보로 천막 앞까지 성큼 다가섰다. 천막을 열고 들어가자 모니카의 피부는 이제 거의 가지 인간처럼 보일 만큼 푸르딩딩해져 있었다.

“도, 도련님…….”

“아픈 거 알아. 입 벌려.”

“도련님, 너무 아파요……. 살려 주세요…….”

“입.”

모니카가 입을 벌리자 아이젠은 주저 없이 약병에 든 파란 액체를 모니카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니카의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몇 초쯤이 더 지나자 모니카는 평온을 되찾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이젠은 모니카가 깨지 않게 하고자 조심스레 그녀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그 후 그녀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브라이슨 가문은 추위에 강하댔지? 여기서 조금만 있어.”

아이젠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메르헨을 어깨에 짊어진 길버트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자, 이제 따라와라. 괜한 싸움은 나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여기서 널 죽여 버렸다간 나만 대장한테 혼나거든.”

“…있잖아.”

멈칫.

앞서가려던 길버트가 아이젠을 돌아봤다. 아이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천막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뭐지?”

“사실 난 싸울 때 온전히 주먹만 쓰는데, 그런 내가 왜 ‘권신’이 아니라 ‘투신’이라고 불리는지 궁금하지 않아?”

“흥. 내가 그런 질문에 대답해 줘야 하나? 얌전히 따라오기나 하지 그래.”

길버트가 날 선 어투로 답하자 아이젠은 고개를 들었다. 아이젠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뭐라고?”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해, 이 개새끼야.”

콰앙―!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