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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46화 (46/201)

46화

* * *

‘그러고 보니 좀 걸리는 게 있어.’

아이젠은 눈밭을 걸으며 의문을 품었다. 그의 머릿속 한구석에 작게 자리한 정보에 의하면, 그런트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마수. 그렇다면 그 무리의 우두머리 격이 되는 아비나 어미 그런트가 있어야 하는데… 조금 전 아이젠이 상대한 100마리의 그런트 중엔 그런 존재가 없었다.

‘단순히 우두머리를 두지 않은 것뿐인가? 그게 아니면…….’

고민하던 아이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생각한다고 해 봤자 해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한편 모니카는 지도를 보며 앞장서 걷고 있었다. 그녀의 인도에 따라 그 발자국을 따라가니 아이젠의 눈앞에 거대한 나무숲이 나타났다.

“도련님, 여기예요.”

“어.”

눈나무 숲의 나무들은 대나무처럼 높고 곧게 뻗어 있었다. 가지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는 점만 빼면 실제로 죽림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휘오오오―

눈도 뜨기 힘들 만큼 눈발이 내리치는 이 북해 한가운데에 대체 어떻게 이런 거대한 규모의 나무숲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아이젠에게는 오늘의 눈보라를 피하게 해 줄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 줄 터였다.

모니카의 도움을 받아 뚝딱뚝딱 천막을 친 아이젠은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모니카가 말에서 챙긴 배낭에서 꺼낸 도구로 따뜻한 차를 우려내 아이젠에게 주었다.

“도련님, 드세요.”

“어, 고맙다.”

“전 그럼 밖에서…….”

“응?”

모니카가 인사하고 천막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이젠은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 가?”

“네? 그야 밖에 나가죠. 이 천막은 도련님 소유인걸요. 저는 오늘 밖에서 눈을 덮고 자면 돼요.”

“얼어 죽을 일 있냐? 그냥 있어.”

“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했다. 하물며 귀족과 하인의 관계라면? 설령 두 사람이 아무 감정이 없다 해도, 두 사람이 같은 천막 아래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을 가문에서 알게 되면 모니카는 쫓겨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모니카는 거세게 손사래를 쳤다.

“아녜요! 저는 밖으로 충분합니다! 브라이슨 가문 사람들은 추위에 강해서 이런 눈보라쯤은…….”

그렇게 말하며 모니카는 눈나무 숲 바깥을 가리켰다.

휘오오오오!!

그러나 그곳엔 블리자드라 불러도 손색없는 설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

“이 폭풍 속에서 잠을 자겠다고? 그런트가 눈으로 이빨 닦는 소리 하고 있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앉아.”

“하, 하지만 하인장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면…….”

“너랑 나만 입 닥치고 있으면 누가 어떻게 아는데? 설마하니 내가 먼저 입을 열 일은 없을 테니까 귀찮게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빨리 앉아라.”

“…알겠, 알겠습니다.”

이윽고 모니카는 아이젠과 뚝 떨어진 곳에 가 앉았다. 천막은 생각보다 내부가 넓어서 두 사람이 중앙에 불을 지피고 앉아 있어도 공간이 꽤 넉넉했다.

괜한 걱정을 하는 모니카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모니카가 제일 잘 알았다. 오늘 밤 아이젠과 모니카 사이에 아무 일도 없으리란 것을.

그렇게 모니카는 불을 보면서 멍을 때렸다. 밖과 달리 뜨뜻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이젠은 아니었다.

‘소가주전…….’

영설산까지는 대략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했다. 그곳에서 또 이것저것 하고 소가주전이 끝날 때까지 대략 한두 달 정도가 걸린다 치면 어느덧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때면 아이젠의 나이도 열일곱 살이 된다.

열일곱 살 전에 무혈신공을 단련해 결사신권 3성 상위를 이룬 것만 해도 대단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조금 전 그런트 무리와의 혈투에서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가주전에서… 5성을 달성하겠다!’

일견 어리석고 막연한 목표로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젠은 스스로가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물론 아이젠이 스스로의 확신만으로 5성에 오를 수는 없었다.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

‘실전 수련치를 더 쌓는 것뿐.’

소가주전 본선이 시작되면 실전을 펼칠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었다. 피와 살점을 튀기며 혈전을 벌이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젠이 바라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아이젠은 높이, 더 높이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도련님.”

모니카의 부름에 아이젠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는 모니카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중앙의 불만 바라보며 말을 받았다.

“왜.”

“도련님이 건강하신 걸 보고 가서 다행이에요.”

“뭐?”

그제야 아이젠은 모니카를 쳐다봤다. 모니카는 자못 감상에 젖은 얼굴이었다.

“도련님, 제가 왜 아무도 데려가지 않겠다는 도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극구 이 소가주전 동행을 자청했는지 아세요?”

“그야…….”

그러게? 왜 그랬지?

아이젠은 가문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다. 아니, 좋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형편없이 엉망진창이었다. 모니카가 아무리 아이젠의 직속 하인이라고 해도, 아이젠이 굳이 필요치 않다는데 모니카가 나서서 동행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게. 왜 그랬는데?”

아이젠이 묻자 모니카는 잠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번 소가주전을 마지막으로… 저는 그린우드 가문을 떠나요, 도련님.”

“떠난다고?”

“네. 실은… 저 결혼해요, 도련님.”

“응? 결혼?”

아니, 새파랗게 젊은데 벌써 결혼을? 이제 겨우 스물두 살 아니었나? 아니, 그보다 어떻게? 어디서 어떻게 남자를 만나서 결혼까지 약속했단 말인가. 맨날 자신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그의 마음을 헤아린 듯 모니카가 설명을 해 줬다.

“6개월 전에 저택을 찾아오셨던 체호프 후작님 기억하시죠? 그때 후작님의 둘째 아드님이신 이반 체호프 공자님께서 저를 보시자마자 마음에 두셨다고 해요. 그 뒤에 정식으로 가문에 청혼을 해 오셨어요. 저를 첩실로 들이고 싶다고. 테오발트 가주님께서 허락하셨구요.”

정실이 아닌 첩실로 혼인을 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명예로운 일이라 할 수 없겠지만, 귀족이 노예를 ‘정식으로’ 첩실로 들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결이 좀 달랐다. 공식적으로 모니카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뜻이니.

‘게다가 체호프 후작이라면 분명히…….’

탄탈리스 제국의 다섯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린우드의 가주 테오발트와 같은 선상에 있는 전쟁 영웅. 그런 사람의 둘째 아들이 모니카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해 오다니.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와, 대단한데? 아니, 모니카가 그렇게 예쁜가? 못난 얼굴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첫눈에 반할 정도도 아닌 것 같은데.”

“도련님……. 저 듣고 있는데요.”

“들으라고 한 소리야. 하여튼 축하해. 그럼 이제 부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첩실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이니 부인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니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실부인이 따로 계셔서, 저는 부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없어요. 그냥 평소처럼 모니카라고 부르시면 돼요. 무엇보다 도련님께는 부인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구요.”

“그래? 알았어. 평소대로 모니카라고 부르지, 뭐.”

“감사합니다.”

“그럼, 소가주전이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는 거야?”

“아마도요. 체호프 후작 가문의 부지는 그린우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끝나고 당장 출발해도 올해 안에 도착 못 할지도 몰라요.”

“그래……. 아무튼 축하해. 축의금 빵빵하게 넣어 줄게.”

그 말에 모니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도련님은 아쉽지도 않으세요?”

“뭐가 아쉬워. 가끔 놀러 가면 되지.”

“큰일 날 말씀이세요! 다른 남자의 첩이 된 저를 만나러 오시겠다뇨.”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남이가?”

아이젠이 호탕하게 대하자 모니카도 피식 웃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밤만 지나면 더 이상 아이젠 도련님을 볼 수 없게 된다. 모니카는 그 사실이 아쉬웠다. 왜냐하면, 아이젠이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크고 자란 것이 바로 모니카였으니까.

‘아이젠 도련님…….’

비록 양아치 개망나니 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젠이긴 했지만. 자신의 몸에 두 개나 되는 상처를 남긴 아이젠이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젠은 모니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신 주인이었다.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것이 비록 이성적인 감정은 아닐지라도. 분류하자면 차라리 모성애에 가까울 것이었다.

“자, 그럼 이만 주무시죠, 부인.”

“도련님! 놀리지 마세요!”

“놀리긴 누가 놀린단 말이옵니까, 부인. 하나 부인께서 그리 느끼셨다면 그는 모두 제 불찰이겠지요. 부디 소신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도련님.”

“응?”

“꼭… 꼭 계속 봬요. 알았죠?”

“누가 들으면 지금 당장 떠나는 줄 알겠네. 소가주전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래도요. 미리 약속하는 거죠.”

“그래, 알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젠은 기감을 스치는 싸늘함을 느꼈다. 그건 글자 그대로 ‘싸늘함’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피가 식어 버리는 느낌. 체온이 한순간에 극점 아래로 내려가 버린 듯한 느낌. 아이젠은 본능적으로 모니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모니카, 피해!”

피융― 쐐액!

화살은 글자 그대로 ‘쏜살’처럼 날아와 천막을 꿰뚫고 모니카의 가슴을 찔렀다.

콱!

그 순간 아이젠을 찾아온 것은 첫째는 경악, 그리고 둘째는 침착이었다.

‘안 죽었어.’

모니카의 가슴이 화살에 꿰였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이젠이 거기까지 깨달음과 거의 동시에.

쐐액―!

또 한 대의 화살이 천막을 향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은 이번에는 실수 없이 소리의 흐름을 정확히 포착했고.

‘잡는다.’

츠팟! 꽈악!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붙잡아 냈다. 화살은 초속 65m의 속도로 목표물을 향해 덤벼든다. 아이젠은 그것의 몸통을 정확하게 잡아챈 것이었다.

‘…….’

아이젠은 싸늘한 얼굴로 제 손에 들린 화살을 바라보았다. 끝에 독이 발려 있었다. 독의 점성으로 봤을 때 상당한 수준의 맹독임이 틀림없었다.

“감히… 나한테 살을 날려? 뒤질라고.”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팽이인지 확인하기 전에 아이젠은 우선 모니카의 상태를 살폈다.

“커헉, 도, 도련님…….”

모니카는 놀란 얼굴로 쌕쌕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당황과 고통, 그리고 중독에 의해 그녀는 고통에 겨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젠이 모니카가 화살에 맞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그래서, 아이젠은 천막이 찢어진 두 부분과 자신의 머리, 모니카의 가슴에 박힌 화살의 각도를 삽시간에 계산한 후.

‘저쪽이다.’

곧바로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박― 사박―

멀리 누군가가 눈나무 숲 사이로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 밟는 소리가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트는 아니었다. 그런트는 활을 쓰지도 않고,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치는 개체도 아니었다.

사람이다. 사람.

아이젠은 귀를 기울이고 소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주먹을 꽉 쥐었다.

‘결사신권―’

꾸드드득―

아이젠의 주먹에서 근육이 요동쳤다.

아이젠은 구태여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거기 멈추라고 외치지도 않았다. 어차피 안 멈출 테니까. 적을 멈추게 하고 싶다면 발목을 잡아채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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