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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45화 (45/201)

45화

【 일벌백계 】

“궁금, 커헉, 궁금합니다. 제발 알려 주세요…….”

플로리안이 애원하자 남자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알려 주지. 내 주인이 불놀이를 좋아했기 때문이야. 어느 날 내 얼굴에 기름을 쏟아붓더니 불을 붙이더군.”

“부, 불을……?”

“엄청난 고통이 끝난 다음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사람이 불에 타면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난다던데 진짜 그런가 궁금했다고 하더라구.”

남자는 플로리안과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플로리안의 눈앞에 열쇠고리 같은 것을 들이밀었다. 자세히 보니 그 열쇠고리에는 이빨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모두 어금니였다.

남자는 그 어금니 중 하얗게 부식된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그 주인의 어금니야. 내가 처음으로 뽑은 어금니지. 생니일 때 뽑은 거야.”

“……!”

‘처음으로 뽑은’ 어금니라면, 저 어금니는 모두 남자가 뽑았다는 말이 된다. 스무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데.

“나, 나를… 죽이려고? 왜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냐!”

“넌 잘못한 거 없어. 이건 그냥 내 화풀이야.”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린우드 공작 가문의 새싹들을 모조리 짓밟아 버림으로써 나는 귀족들에게 경고할 거다. 일벌백계하는 차원이랄까?”

“그 어금니가… 모두 귀족의 것인가?”

“그랬지.”

플로리안도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귀족들을 죽여 그 어금니를 뽑고 다니는 미친 살인마가 있다고. 도시 괴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범인이 바로 이자인 듯했다. 이름이 분명…….

“블렌하임.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나?”

“뭐야. 날 알고 있나? 이거 민망한걸.”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네가 노예였던 시절 끔찍한 수모를 겪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귀족들을 죽이고 다니면 넌 그저 대역 죄인이 될 뿐―”

덥석!

플로리안은 블렌하임에게 입을 붙잡혀 뒷말을 잇지 못했다.

블렌하임의 얼굴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으극……!”

“왜지? 너희 귀족들은 아무리 노예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으면서 대체 왜!! 나는 너희 귀족들을 죽였다고 대역 죄인 소릴 들어야 하지?!!”

“으그극!!”

빠드득!!

블렌하임이 손에 힘을 주자 플로리안의 턱이 부서졌다. 단지 아귀힘을 꽉 쥔 것뿐인데 플로리안은 턱이 주저앉아 입 밖으로 힘을 잃고 빠진 치아와 피를 흘렸다.

“크허억! 어헉!”

“똑똑히 들어라. 나는 살찐 돼지들이 지배하는 제국의 모든 귀족들을 말살할 거다. 내 이름은 블렌하임이다!”

스릉― 싹둑!

블렌하임은 허리춤에 달려 있던 날카로운 쿠크리 나이프를 뽑아 플로리안의 목을 벴다. 플로리안의 머리는 깔끔하게 바닥에 떨어져 눈밭을 뒹굴다 어느 순간 멈췄다.

블렌하임은 바닥에 떨어진 플로리안의 어금니 중 가장 안쪽 어금니를 주워 열쇠고리에 달았다. 그러곤 후련한 얼굴로 쿠크리 나이프를 한 바퀴 빙 돌려 날에 묻은 피를 털어 낸 뒤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때 뒤에 조용히 서 있던 그의 동료가 입을 열었다.

“블렌하임 님, 이 녀석들은 그린우드 가문의 방계에 불과합니다.”

“날 무시하는 건가? 그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플로리안 ‘반’ 그린우드라 했으니.”

“저를 욕보였던 그 아이젠이라는 놈은 ‘폰’, 직계입니다. 놈도 분명 이 소가주전에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영설산에 있다 보면 직계 놈들을 만날 수 있단 소리로군.”

뿌득. 블렌하임은 어금니가 부서질 듯 이를 악물었다.

직계라는 것들은 가뜩이나 소수인 귀족 중에서도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미친놈들이었다. 블렌하임에게 있어 직계는 죽여야 할 1순위인 것이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너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아이젠이라는 놈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와 나의 목적이 같기에 동행하는 것임을 잊지 마. 앞으로 내 행동을 좌지우지하려는 듯한 발언은 하지 말란 얘기다. 알아들었나?”

“…예. 실례했습니다.”

“가자.”

블렌하임이 지시하자 그의 동료들이 뒤를 따랐다.

조금 전 블렌하임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 피터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바로 아이젠에게 마흔두 개의 상처를 입고 참다못해 그린우드 가문에서 도망친 하인이었다.

피터는 자신의 뺨에 나 있는 베인 상처를 어루만지며 속을 끓였다. 얼마 전 그린우드 가문에 심어 둔 첩자를 통해 아이젠이 소가주전에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 이 흥분감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

‘흥. 아이젠, 이 집쥐 공자 새끼. 네깟 게 그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소가주전에 나간다고? 나는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아이젠이 칼로 벤 상처들은 흉으로 남아 아직까지도 피터를 괴롭히고 있었다. 피터는 이번 기회를 절대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피터는 음흉한 미소와 함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온통 새까맣게 생긴 알약이었다. 피터는 주저하지 않고 알약을 입 안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러자 그의 미소가 한층 악하게 물들었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내겐 이 알약이 있으니까! 네놈 따위야 어차피 겨우 참철검술 1성도 달성하지 못했을 테니 나한텐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지!’

피터는 큭큭 웃으며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블렌하임의 뒤를 쫓았다.

* * *

후비적.

아이젠은 귀가 간지러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누가 내 얘길 하나?”

그러다가 문득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그런트를 쳐다보았다.

“아, 미안. 너 무시한 거 아니야.”

“크릉…….”

그런트는 매서운 눈빛으로 아이젠을 노려봤다. 마치 잡아먹을 듯 그를 노려보는 그런트의 눈빛엔 수많은 동료를 잃은 데 대한 슬픔도 담겨 있었다.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인마. 사람 잡아먹는 마수가 어디서 감상적인 척이야.”

아이젠은 주먹에 내공을 실었다. 그리고 뭔가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트를 향해 주먹을 꽉 쥐었다.

“간다.”

결사신권 3성, 환교신권(患矯神拳)!

파앙―!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응축된 내공이 아이젠의 손에서 쏘아졌다.

“크릉?”

대기가 왜곡되며 환교신권이 그런트를 향해 마치 한 마리의 날치처럼 쏜살같이 날아들었고, 불행히도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런트는 멍청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퍽!

“……?!”

그 대가는 컸다. 그런트의 가슴에 코르크 마개만 한 크기의 작은 구멍이 뚫렸다. 뻥 뚫린 제 가슴을 향해 그런트가 손을 올리는 순간.

“크르릉…….”

털썩!

그런트는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다. 일백 마리의 그런트 무리 중 마지막 남은 한 마리였다.

그런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린 아이젠은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피곤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이젠은 이마에 묻은 땀과 혈흔을 닦아 냈다.

‘몸풀기 정도는 됐구만.’

환교신권은 천 보 밖의 상대에게 내공을 날려 공격하는, 결사신권 유일의 원거리 공격. 제법 써먹음 직한 기술이었다.

‘결자해지.’

쑤욱! 운공을 하는 순간 몸 안으로 많은 양의 실전 수련치가 스며들어 왔다. 아이젠은 추운 날 몸서리치듯 잠시 부르르 떨었다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무혈신공을 갈무리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눈을 질끈 감은 채 처음 서 있었던 자리에 서 있는 모니카의 이마에 약한 딱밤을 날렸다.

“아야.”

“이제 눈 떠.”

“네에……. 앗!”

모니카는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그런트 무리를 보며 당황해 마지않았다. 숨을 헉 들이켠 모니카는 의문스럽다는 눈빛으로 아이젠을 쳐다봤다.

‘이걸 설마 도련님이 전부 다……?’

그런트는 수준이 높은 마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 겨우 열여섯 살 막바지에 이른 아이젠이 단신으로 일백을 고꾸라뜨릴 수 있을 정도로 허접한 녀석들도 아니었다.

대체 지하 감옥에서 아이젠 도련님께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이젠 도련님에게서 일전에 보였던 그 얇디얇은 몸매는 이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사실은 아이젠 도련님이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빼빼 마른 체형의 소유자였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거기엔 분명 모니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노력이 투입됐을 것이 분명했다.

‘도련님, 밖에 나가서 햇빛 보는 것조차 싫어하시던 분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간단한 산책조차 질색했던 아이젠이었다. 모니카로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정말 훌륭하세요, 도련님!”

“왜 이래, 징그럽게.”

“진짜로요! 진짜 진짜 멋져요!”

“응. 알아.”

모니카는 아이젠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로 했다. 그녀가 물음을 던질수록 곤란해지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하인이라면 주인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어야 하니까. 주인을 의심하는 것은 하인으로서 자격 박탈감이었다.

아이젠이 뒷덜미를 잡고 이리저리 뻐근한 목을 풀더니 입을 열었다.

“모니카.”

“네, 도련님!!”

“우리 이제 어쩌지?”

“네?”

아이젠은 대답 없이 눈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말을 가리켰다.

히힝―

말은 아까 처음 등장한 그런트에게 물어뜯긴 탓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주, 죽고 있네요…….”

“그래. 탈 말이 없다.”

죽어 가고 있는 말을 보며 간단한 후기를 남기는 모니카와 아이젠이었다.

고민하던 모니카가 말했다.

“혹시 몰라서 휴대용 천막을 가져왔으니까… 오늘은 이 근처에서 야숙을 하시는 게 좋겠어요.”

“이 눈보라 속에서?”

휘이이잉.

싸우느라 잊고 있던 눈발이 다시 휘몰아쳤다. 물론 아이젠에게 추위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아이젠은 모니카 쪽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니카는 걱정 말라는 듯 한쪽 손을 쭉 뻗었다.

“괜찮을 거예요! 지도에 따르면 이 옆에 눈나무 숲이 있어요. 높이 뻗은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 줄 테니 그곳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만 자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러자.”

그렇게 말하며 아이젠은 말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한쪽 손에 오러를 모았다.

“도, 도련님? 어쩌시려구요?”

“어쩌긴. 숨통을 끊어 줘야지.”

“네?! 하, 하지만…….”

“하지만?”

아이젠이 돌아봤으나 모니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부, 불쌍하잖아요…….”

“그러니까.”

“네?”

“그러니까 숨통을 끊어 준다는 거야.”

결사신권, 박살편(撲殺鞭)!

히힝―!

싹둑!

아이젠이 손날을 날카롭게 세워 말의 목을 내려치자 말의 목이 칼로 도려낸 듯한 자국을 남기며 깔끔하게 몸통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이젠은 쓰러진 말을 향해 묵념의 의미를 담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건 전사자에 대한 예우였다.

‘말이라곤 해도, 어쨌든 나 때문에 죽은 거니까.’

아무리 살찐 말이었다곤 해도, 아이젠이 좀 더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면 최초에 달려든 그런트를 상대로 굳이 피할 게 아니라 맞부딪쳐 쓰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랬다면 말은 다치지 않고 멀쩡했을 터. 말을 지키지 못한 데에는 아이젠의 탓도 있었다.

아이젠은 부조하듯 군마의 머리 옆에 돼지 육포를 던져 주었다.

“극락왕생해라.”

이 몸에 빙의한 지 몇 달 만에 3성 상위에 올라섰다. 4성이 코앞이고, 이전 생보다 훨씬 더 진도가 빨랐다. 하지만 그래서 뭐?

‘나는 아직 누구 하나 제대로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 게 아니야.’

언제부터 그런 터무니없는 자만감에 매몰되어 있었나. 정신 차려라, 아이젠. ‘벌써’ 3성 상위인 게 아니다. ‘이제 겨우’ 3성 상위인 거지.

아이젠은 마음을 다잡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도련님…….”

모니카는 그런 아이젠의 심경을 알아차리고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으나.

“이제 가자. 길이 험해.”

아이젠은 듣지 않고 먼저 앞장서 걸어갔다. 아이젠의 뒷모습을 보며 모니카는 그의 등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모니카는 아이젠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이었다. 하지만 아이젠의 정신 연령만큼은 어느덧 그녀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지에 올랐는지도 몰랐다.

도련님은 끝없이 성장할 것이었다. 나아가 어쩌면, 이 소가주전에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모니카는 흡사 어머니의 심정으로 씨익 대견해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그쪽 방향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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