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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44화 (44/201)

44화

【 위험한 영설산 】

탄탈리스 제국은 지금 낮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이었으나, 북해는 제국의 북쪽 끝에 있는 땅으로 사시사철 겨울의 온도를 유지하는 지역이었다. 덕분에 땅이 척박하고 풀도 자라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흙바닥이던 지대는 어느덧 눈이 쌓인 땅으로 바뀌어 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아이젠의 말이 다시 천천히 앞을 향해 걸을 때마다 새 눈 밟는 소리가 들렸다.

휘오오오―

마침내 눈발이 더욱 거세져 이제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게 되자 모니카는 말에서 내렸다. 그녀는 말의 배 쪽에 달아 뒀던 보따리를 뒤져 겨울옷을 꺼내서는 아이젠에게 입혔다.

“북해에 도착했다는 건, 영설산도 멀지 않단 소린가?”

“영설산은 북해 끝자락에 있어서 좀 더 걸릴 거예요. 그래도 이 속도라면 일주일이면 도착할 것 같네요.”

일주일이라. 금방이군.

눈이 지나치게 많이 온다는 점만 빼면 지도에 의지해 어려움 없이 영설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참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쉬운 거 아냐?’

영설산에서 만년한철을 캐는 일이 이토록 쉬운 것이라면 그린우드 가문뿐만이 아니라 개나 소나 북해를 찾아올 것이었다. 하물며 이게 소가주전 예선이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쉽다는 건 분명 중간에 어떤 위험 요소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아이젠은 문득 사흘 전 바네사 둘째 공자가 오러 점을 봐 주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북해 초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거야. 긴장 늦추지 말고, 항상 태세를 가다듬는 걸 잊지 마.’

그땐 바네사가 또 실없는 소리를 한다며 웃어넘겼지만, 꼭 오러 점이라는 비과학적인 것의 결과를 믿지 않더라도 북해에는 위험 요소가 있을지도 몰랐다. 가령 예를 들면…….

“그르르릉…….”

히힝―! 어디선가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리자 말이 놀라 몸을 펄쩍 일으켰다. 덕분에 아이젠은 낙마할 뻔했으나 균형을 잡고 말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쉿.”

아이젠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 주변을 둘러봤다. 눈 섞인 바람이 아이젠의 얼굴을 계속 때려 대서 코앞에 뭐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크와아아앙!”

“……!”

눈발 속에서 무언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아이젠을 덮칠 듯 달려들어 왔다.

펄쩍!

아이젠은 한순간 말에서 내려 모니카를 품에 안고 높이 뛰었다.

히힝―!

말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눈 바닥 위에 쓰러졌다.

“그르릉!”

그것은 말의 옆구리에 송곳니를 들이밀고 쩝쩝 입맛을 다셨다. 말인지 노새인지 조랑말인지 모를 아이젠의 말은 처량하게 죽어 갔다.

처음 보는 짐승이었으나, 그것은 아이젠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런트다.”

돼지를 닮은 이족 보행 마수, 그런트. 주로 추운 지역에 서식하는 무리형 마수였다.

무림과 이 세계를 통틀어 마수라는 존재는 난생처음 보는 아이젠이었으나, 그는 이상하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직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전생을 각성하기 이전에 그런트를 몇 번 봤던 것 같았다.

“그르렁!”

아이젠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런트는 하던 식사를 멈추고 아이젠과 모니카를 돌아봤다. 모니카는 그런트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나자빠졌다.

“도, 도련님! 그런트예요! 마수라고요! 어, 어, 어떡해요!!”

“어떡하긴. 뒤로 물러나 있어.”

“도련님은 어쩌구요!”

“내 한 몸도 건사 못 할 거였으면 소가주전에 나간단 소리 따윈 애초에 하지도 않았어.”

“그르르릉!!”

사락― 사락― 그런트가 흉포하게 소리 지르며 아이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육중한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눈 밟는 소리는 감성적이기 그지없었다.

‘박살.’

콰앙!

아이젠의 주먹이 그런트의 들창코를 강타했다. 그러나 코끝이 말랑말랑한 것이 충격을 흡수하는 재질인 듯했다. 역시나 그런트는 아파하는 기색 없이 아이젠에게 팔을 휘둘렀다.

“크와아아!”

파앙! 아이젠은 한쪽 팔을 들어 그런트의 주먹을 막았다. 아프진 않았으나 무게가 워낙 나가서 그가 기우뚱 넘어지는 자세가 됐다. 아이젠은 반대쪽 발에 힘을 주고 땅을 쾅 디뎌 벌떡 일어났다.

‘뇌살.’

슉!

짐승이든 사람이든 머리를 정통으로 맞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게 만들 기세로 아이젠이 그런트의 머리를 양손으로 찔렀으나.

쉬익! 그런트는 허리를 숙여 가볍게 피하고 역으로 아이젠을 향해 찌르고 들어왔다. 정확히는 피했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아이젠에게 달려든 것 같았다.

“그르릉!”

“거 돼지 새끼 되게 시끄럽네.”

“돼지 아니고 돼지형 마수요!”

“조용히 좀 해라, 모니카.”

이 와중에 그걸 바로잡고 싶니?

아이젠은 숨을 후웁 들이쉬고 주먹을 아래로 내렸다.

‘박살, 악지섬!’

퍼억!!

아이젠이 올려 친 주먹에 턱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런트가 10cm 정도 공중에 붕 떴다. 그런트의 턱에서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런트는 아파하지도 않고 곧장 아이젠에게 덤볐다.

“그르르렁!”

짐승이란 그렇다. 사람이라면 아파서 나뒹굴 만한 공격에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눈앞의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아파해 봐야 적자생존의 세계에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야수 같은 본능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재밌네, 이놈.’

아이젠은 문득 지하 감옥에서 만났던 쉐인이 떠올랐다. 쉐인도 마치 짐승처럼 덤벼드는 데만 초점을 둔 녀석이었다.

또 중원 무림의 개방 놈들도 떠올랐다. 개방이란 무림의 거지들이 모여 만든 집단인데, 구성원 전부가 거지인 만큼 근본도 없는 야수 같은 길바닥 무술을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쉐인이나 개방이나 그런트나, 다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공격이 지나치게 직선적이라는 것.’

턱!

아이젠은 정면으로 날아오는 그런트의 팔뚝을 붙잡았다. 굵기로만 따지자면 그런트의 팔뚝이 아이젠의 것보다 대여섯 배는 더 두꺼웠다. 하지만 그런트는 팔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릉?!”

당황해서 더 힘을 줘 빼내 보려 하는 그런트였지만, 아이젠에게는 허사였다.

“이 앞은 일방통행이다, 그런트.”

“그릉?”

“못 알아들어? 길 막고 서 있지 말라고.”

뻐억!!

아이젠은 반대쪽 손으로 휘어잡듯 주먹을 쥐어 그런트의 배에 찔러 넣었다.

“……!!”

그런트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투둑―!

아이젠의 주먹이 그런트의 등을 뚫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런트가 한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괜히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저승 가서 광명 찾아라.”

쿠웅! 아이젠이 주먹을 빼자 그런트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트는 개처럼 낑낑대는가 싶더니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모니카는 그 모습을 보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마수를, 그것도 북해의 마수를 맨손으로 쓰러뜨리다니!

“도, 도련님… 대단하세―”

“어, 모니카. 나 손 닦게 수건 좀.”

아이젠이 상황을 마무리하려는데, 모니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가만 보니 바닥에 그림자가 져 있었는데, 그게 좀 많았다. 아이젠은 그제야 다시 한번 그런트가 어떤 마수인지 생각났다.

‘추운 지역에 서식하는 무리형 마수, 그런트.’

‘무리형’ 마수.

잠시간 눈발이 멈추었다. 아이젠이 뒤를 돌아보자 그런트 무리가 그의 뒤에 벌 떼처럼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수가 족히 100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

모니카는 아연실색하며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아이젠은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바네사 공자님 오러 점 잘 맞네.”

이게 다 실전 수련치니까!

“자, 돼지 새끼들아. 내가 너희 형제를 죽였다.”

“도, 도련님, 돼지 아니고 돼지형 마수요.”

아이젠은 방금 자신이 죽인 그런트의 사체를 가리키며 그런트 무리를 도발했다. 그러자 몇몇 그런트가 킁킁 흥분했다. 마수들이 설마 아이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아이젠이 자신의 동료를 죽였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분하냐? 겨우 인간 따위한테 친구가 이렇게 당한 게?”

“그르릉…….”

“분하면 덤벼. 날 집어삼켜 봐.”

“크르르릉―!!”

북해에 그런트들이 우짖는 소리가 넓고 곧게 울려 퍼졌다.

“도련님, 대체 왜 도발을…….”

모니카가 당장에라도 눈물을 한 바가지 쏟을 것처럼 울먹거리는 걸, 아이젠은 못 본 척했다.

“지금부턴 각자 생존이다, 모니카.”

“네?! 아, 안 도와주시구요?!”

“내가 널 왜 도와줘.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빠.”

아이젠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무서우면 그냥 내 뒤에 붙어 있든가.”

그 말에 모니카는 아이젠의 등 뒤에 바싹 붙었다. 어느새 모니카는 아이젠보다 키가 작아져 있었다.

‘도련님, 언제 이렇게 키가 크셨지…….’

다다다다! 모니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런트들은 물불을 안 가릴 것처럼 아이젠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모니카는 겁먹어 눈을 질끈 감고, 아이젠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야 짐승 새끼지.”

팟!

아이젠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런트들의 정중앙으로 뛰어들었다.

* * *

휘오오오오―

영설산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눈보라라고는 하지만 영설산에서는 비 내리는 것보다 자주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었다.

눈이 쌓인 땅 위, 한 청년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청년은 검을 쥐었지만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오른쪽 눈에 스며들어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듯 보였다.

청년의 이름은 플로리안 반 그린우드. 참철검가 그린우드 방계의 일원이었다.

그린우드 가문은 현재 한 개의 직계와 다섯 개의 방계 가문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번째 방계, 즉 5 방계의 장남이 바로 플로리안이었다. 직계로 치자면 게오르크 정도의 포지션이며 나이도 그와 비슷했지만 실제로는 게오르크보다 훨씬 약자인 축에 속했다.

그렇다고 한들 플로리안이라고 이렇게 피투성이가 될 만큼 허약 체질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엉망이 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헉. 헉. 퉷.”

숨을 헐떡이던 플로리안이 눈 바닥 위에 가래침을 뱉었다. 침에는 피가 진득하게 섞여 있었다.

그 옆으로 몇 조각으로 처참하게 짓뭉개진 동생 틸만의 시신이 보였다.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조차 거둬 버리는 틸만의 그 참혹한 모습은 플로리안으로 하여금 헛구역질이 나오게 했다.

‘이럴 수가. 참철검술의 3성 상위인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플로리안과 틸만은 적에게 단 한 번의 검격도 맞히지 못했다. 플로리안으로서는 믿기 힘든 굴욕이었다.

사락사락. 그때 한 남자가 눈을 밟으며 플로리안의 앞에 다가섰다. 이 참상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억울한가?”

남자는 플로리안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플로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얼굴을 뒤덮을 듯한 단발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자 왼쪽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내 이 왼쪽 얼굴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아나?”

“…몰라.”

“그래? 왜 이런지 궁금하지?”

“안 궁금해.”

퍽! 남자는 플로리안의 왼쪽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끄아아악!”

플로리안의 얼굴이 함몰되어 주저앉았다. 평범한 사람의 주먹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궁금하지?”

“크흑, 안 궁금하다고 했잖아, 이 X발 놈의 개같은 새끼야!”

플로리안의 입에서 귀족의 그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험한 소리가 뱉어져 나왔다.

퍽! 퍽! 퍽!!

남자는 플로리안을 계속해서 때렸다. 왼쪽 안구가 파열되고 시야가 흐려질 때쯤에야 플로리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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