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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38화 (38/201)

38화

알고 있었다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사울 장로의 모습에 아이젠은 그의 뒷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는 여인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해 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대가 아이젠 공자님이셨으니 우는 여인으로서도 영광스럽기 그지없었을 테지요.”

“그건, 글쎄요.”

사울 장로는 부서진 우는 여인에게 다가가더니 그 잔해 속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스스스―

그것은 은은한 푸른 빛을 내고 있는 조약돌만 한 크기의 돌이었다. 돌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기묘한 형태로 새겨져 있었는데, 푸른 빛은 그 문자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제게 우는 여인이 어떻게 자동으로 움직이는 건지 여쭤보셨지요? 그 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울은 아이젠을 향해 돌을 내밀었다. 아이젠은 그걸 받아 들진 않았지만, 그 돌에서 나오는 기운이 평범치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게 뭔데요?”

“룬이라는 고대 물질입니다. 이건 통찰의 룬이라고 하지요.”

“룬? 룬이라면…….”

아이젠의 기억 속에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아이젠이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설명을 이어 갔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함께 있었다는 환상의 돌입니다. 아티팩트라고도 부르지요. 이 룬들은 그 위에 새겨진 이름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내는데, 통찰의 룬의 경우 말 그대로 통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통찰하는 힘 덕분에 우는 여인은 생명이 없는 목각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게 무슨 경천동지할 소리인가. 무림 바닥에서 주먹질을 하며 구르는 것이 전부였던 아이젠에게는 꽤나 파격적인 설명이었다.

그러나 아이젠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흐릿했던 지식이 사울의 설명을 듣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런데요? 마치 그걸 설명해 주기 위해서 일부러 우는 여인과 저를 싸움 붙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대단하십니다. 거기까지 꿰뚫어 보셨군요.”

“네?”

“맞습니다.”

“…왜?”

사울 장로는 아이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아이젠 공자님, 당신의 몸에도 그 룬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 *

‘결사신권, 결자해지.’

제 방으로 돌아온 아이젠은 결자해지를 사용해 우는 여인과의 전투에서 얻은 수련치를 무혈신공으로 치환했다. 그리고 곧.

“음―!”

고통에 신음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신공을 운공하면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덕분에 아이젠은 입 밖으로 주룩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닦아 내야 했다.

“아야야.”

결자해지를 마친 후, 아이젠은 단전에 자리한 무혈신공이 어느덧 3성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벌써 3성인가. 아니, 이제 3성이라고 해야 맞는 건가?”

무혈신공 3성은 바야흐로 초절정의 경지. 이제 겨우 열여섯 살짜리인 몸으로 아이젠은 초절정에 도달하는 쾌거를 이뤄 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구만리였지만, 그 사실에 한숨이 나오기보단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젠이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실전 수련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후우.”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잔기를 운공하던 아이젠은 조금 전 사울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 *

“제 몸에 뭐가 있다고요? 룬이 있다고?”

“예.”

아이젠은 저도 모르게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

‘이거였나? 지하 감옥에서 무혈신공을 운공할 때 심장에 느껴졌던 기운이.’

아이젠은 그가 쉐인을 밀어내고 꿰찬 지하 감옥 독방에서 무혈신공을 단련할 때 심장에 뭔가 오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던 일을 반추했다. 룬이라는 게 있을 만한 곳이라면 바로 그곳밖에 없었다.

“공자님의 심장에는 룬이 박혀 있습니다. 가주님께서 박아 넣으셨지요.”

“그건 왜죠?”

“공자님께서 막 태어나셨을 때 심장이 너무 약해 죽을 뻔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그 룬이 공자님의 부족한 심장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젠은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 만졌다.

통찰의 룬은 목각 인형에 불과한 우는 여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끔 했다. 그렇다면 아이젠의 심장에 깃들어 있다는 룬도, 아이젠의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맘대로 행동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 의문을 눈치챘다는 듯 사울이 통찰의 룬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통찰의 룬은 글자 그대로 통찰의 힘을 가졌기에 우는 여인 그 자체가 되었던 것. 공자님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룬과는 그 쓰임새가 다릅니다. 같은 강철이라도 검에 쓸 때와 방패에 쓸 때의 쓰임새가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그거 이름이 통찰의 룬이라고 했죠? 그럼 제 몸에 있는 건?”

“그건 직접 알아내 보셔야겠지요?”

사울은 한차례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표정을 겸허히 굳혔다.

“아이젠 공자님, 공자님이 심장이 약해서 죽을 뻔하셨을 때 그 몸에 룬을 박아 넣으신 것이 바로 가주님이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가주님께서는 아이젠 공자님을 내놓은 자식 취급 하시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셨다면 왜 굳이 살리셨겠습니까? 그냥 죽게 내버려 뒀으면 되었을 것을.”

“……!”

그린우드 가문에는 진실처럼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테오발트 가주는 넷째 아이젠을 버린 자식 취급 한다는. 하지만 사울 장로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

글쎄. 사실 이강철이었던 전생을 각성한 아이젠으로서는 딱히 새삼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자신의 입지가 생각했던 것만큼 좁은 것은 아닌가 보다 짐작할 수 있었다.

사울 장로가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부디 가주님께서 그 심장에 새겨 두신 룬을 항상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공자님.”

아이젠은 그간 망나니 같은 삶을 살아왔다. 사울은 이제는 좀 철이 든 것처럼 보이는 아이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라고.

“알겠습니다, 사울 장로.”

아이젠이 미소로 답하자 사울도 빙긋 웃음을 지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학교로 나오십시오. 전체 수련이 있는 날이니.”

“전체 수련?”

“와 보시면 압니다. 늦으시면 안 됩니다?”

“네, 뭐.”

“아, 참.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사울 장로는 아이젠에게 검은 띠를 내밀었다.

“생도 카인과 이걸 걸고 대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랬죠.”

“받으십시오. 새겁니다.”

아이젠은 순순히 카인에게서 빼앗은 검은 띠를 풀고는 새 검은 띠를 받아 허리에 졸라맸다.

사울이 아무 말도 않자 아이젠은 제 발이 저렸다.

“…왜 뭐라 안 하세요? 수련생들끼리 마음대로 검은 띠를 걸고 내기를 했는데.”

“말한다고 들으실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아니, 대체 내 이미지가 왜 이러지? 내가 그렇게 위아래도 없는 사람처럼 보여? 진짜 그래?

아이젠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제가 웬만하면 말을 잘 듣습니다, 장로.”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하대를 하겠습니다, 공자님.”

사울이 지긋한 어투로 말했다.

이제야 그 말이 나오는구만. 당연한 얘기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 스승이 제자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것부터가 어폐가 있었다.

“흐음. 네, 부디.”

* * *

그렇게 아이젠은 일찌감치 하교(?)해 방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이 몸에 빙의한 후로 제대로 쉬어 본 날이 없는 것 같았다. 매일이 수련과 결투였으니…….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몸에 빙의한 이후뿐만 아니라 이강철일 때도 아이젠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스승님에게서 배운 무혈신공을 연마한 이후부터는 하루하루 쉴 새 없이 전진만 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래. 무혈신공 3성도 각성했겠다, 오늘 밤만이라도 좀 편하게 누워서 쉬어 보자.”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하고 침상 위에 엎어졌다. 심장에 있다는 룬이 좀 찜찜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그렇다고 뽑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때였다.

“도련님!!”

벌컥! 모니카가 활짝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젠은 옷을 다 갖춰 입었음에도 엉겁결에 이불을 끌어 올렸다.

“야, 야! 노크는 하고 들어와야지!”

“아, 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뭐 본 것도 없을 텐데 모니카가 손으로 눈을 가리는 게 아이젠은 좀 짜증이 났다.

“이 정도로 죽을죄면 넌 진작에 부관참시까지 당하지 않았을까? 할 말만 하고 나가. 왜, 뭐, 또 뭔데?”

“도련님, 얘기 다 들었어요! 사울 장로님께 대드셨다면서요?”

대들어? 뭐야, 이건 또. 무슨 얘기가 어떻게 와전된 거야.

“그런 적 없―”

“장로님이 보시는 앞에서 생도를 두들겨 패셨다던데요?”

…어? 아니, 그게, 액면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카인은 맞을 만했단 말이다. 실제로 사울이 보는 앞에서는 때리지도 않았고.

아이젠은 또다시 억울해졌다.

“이제 나쁜 버릇을 좀 고치셨나 했더니, 또 그러시면 어떡해요!”

“아니, 그거는 오해―”

“자꾸 이러시면 제가 앞으로 가주님을 뵐 낯이 없어요, 도련님!”

“그러니까 그건 오해라고 말했―”

“안 되겠어요. 일어나세요! 저랑 같이 사울 장로님 뵈러 가요! 뵙고 사과드려요!”

“아! 안 그랬다고, 오해라고! 이것들이 진짜 누구를 개망나니로 보나. 내가 아무리 성격이 모났다곤 해도 어르신한테 함부로 대들고 그러지는 않…….”

…그건 또 아닌가? 생각해 보니 사울 장로에게 이것저것 따지고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괜히 말만 더 길어질 것 같아서 아이젠은 그냥 손사래를 쳤다.

“내일 찾아뵙고 사과드릴게. 나가.”

“사, 사과를 진짜 하신다구요?”

“네가 하라며.”

“도련님께서 아랫사람에게 사과하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나를 아주 그냥 양아치로 보네?”

“도련님, 이건 그냥 혹시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사과라는 건 죄송합니다 또는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서…….”

“아, 나가!”

“안녕히 주무세요!”

베개를 집어 던진 뒤에야 모니카는 쌩하니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저게 요 며칠 너무 편하게 대해 줬더니 정신이 나갔나?”

언제 한번 눈물 빠지게 혼내 줄 테니까 각오하라고 생각하는 아이젠이었다.

* * *

“죄송합니다, 사울 장로님.”

“……?”

아침 일찍 검은 뿔 기사 학교에 방문하자마자 아이젠은 사울을 찾아가 사과부터 했다. 사울은 책을 읽다가 영문을 몰라서 대답도 못 하고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제가 어제 너무 좀, 무례했달까요? 건방졌던 것 같아서요.”

“…….”

무례라. 글쎄?

물론 사울은 아이젠보다 훨씬 연상이었다. 아이젠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네 번은 반복해야 사울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누가 더 웃어른인가를 따지면 당연히 아이젠이었다. 아이젠은 누가 뭐라 해도 폰의 이름을 부여받은 그린우드의 직계. 사울은 장로라고는 해도 큰 차원에서 보면 결국 그린우드를 모시는 하수인일 뿐. 그런데 무례라니.

피식. 사울이 웃었다.

“괘념치 마십시오, 공자님. 그렇게 느낀 적 없으니.”

확실히 지하 감옥에 들어가기 전후로 사람이 확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사울이었다.

아이젠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니, 하대하신다더니?”

“지금은 수업 중이 아니니까요. 수업이 시작되면 그때부턴 하대를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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