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34화 (34/201)

34화

“도착했습니다, 공자님.”

마침내 사울이 뒤로 돌아 아이젠을 내려다봤다.

벌컥― 사울은 뒤돈 채로 기사 학교 상급반의 문을 열었고, 드러난 것은 학교의 뒤뜰 같은 공간이었다. 운동장처럼 흙바닥으로 덮인 넓은 땅에, 가장자리에는 듬성듬성한 풀이 자라나 있는.

그리고 그곳에는 대련복을 입은 앳된 청년들이 여럿 있었다. 대충만 헤아려 봐도 스무 명은 족히 될 듯한 숫자였다.

그들은 떠들다 말고 일제히 사울과 아이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 눈동자에 물음표를 띄운 채였다.

사울은 좀 더 앞서 걸어가, 운동장 옆쪽의 유일하게 돌바닥으로 덮여 있는 자리 위에 섰다. 아이젠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다들 주목하거라.”

사울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가 아이젠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여기 계신 아이젠 공자님을 모르는 아이는 없겠지? 오늘부터 아이젠 공자님은 너희 기사 학교 상급반 학생들과 함께 수련을 받게 되셨다.”

사울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상급반 생도들은 딱히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들은 저마다 서로를 곁눈질하며 눈으로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흐음.’

그걸 가만 보던 아이젠은 그들의 눈빛에서 투기를 느꼈다. 그러니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저 망나니가 오나?’라고 말하는 듯한 투기.

굳이 입에 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그 차별적인 시선이 전달된다. 그런데 그 투기를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재밌는데?’

확실히 상급반은 뭔가 다르다는 건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기술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러면 오히려 한스 때보다 배울 점이 많을지도 몰랐다.

“아이젠 공자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지요.”

사울이 넌지시 손짓하자 아이젠이 돌바닥 위에 섰다.

“뭐, 대강 그렇게 됐으니 잘들 부탁한다.”

“얼마나 계시는 겁니까?”

누군가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글쎄, 길면 한 한 달 정도? 정확히는 생각 안 해 봐서 잘 모르겠는데.”

소가주전이 한 달 뒤였다. 아이젠으로서는 그사이 여기서 쌓을 수 있는 수련치는 전부 뽑아 먹고 갈 생각이었다. 뽑아 먹을 게 없다면 하루 만에라도 나가 버리고.

한 달이라는 말에 생도들의 눈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럼 혹시 모의시험도 함께 보시는 겁니까?”

누군가가 그렇게 묻자 사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공자님께서 너희처럼 기사를 목표로 하시는 줄 아느냐? 2주 뒤 있는 너희의 모의시험과는 별개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예.”

그러자 주눅 든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하. 그러니까 2주 뒤에 모의시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젠이 사울을 상대로 했던 그 밀봉서 뺏기 시험 말이다. 모의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기사 승급 시험에도 도전할 수 있다 했으니, 생도들 입장에선 나름 혈안이 되어 있는 문제일 터.

‘기사가 되려고 열심들이구만.’

사울이 아이젠은 그 문제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고 공표하자 그제야 생도들 중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다들 잠시 대기하고 있도록. 공자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10분이면 됩니다.”

“그래요.”

그렇게 사울 장로가 떠나가자.

조용―

상급반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도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하니 아이젠은 괜히 좀이 쑤시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아이젠이 멍하니 서 있는데.

“야, 하지 마.”

“괜찮아. 나와 봐.”

어디선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이 멀리 바라보니 한 생도를 다른 생도가 막아서고 있었다. 그 생도는 말리는 생도를 밀어내고는 아이젠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카인이라고 합니다.”

“…그래.”

패기가 형형한 눈빛, 단단한 턱과 6척 장신의 키, 그리고 온몸 여기저기 따지지 않고 자리 잡은 근육. 카인이라는 생도는 모든 신체 조건에서 아이젠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이는 아이젠과 비슷한 것 같았다.

구도는 자연스레 아이젠이 카인을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젠이 겁을 먹은 것은 아니고, 그저 살짝 흥미가 동했다.

“무슨 일이지, 카인?”

흥미가 동한 이유는 하나. 카인의 대련복 때문이었다. 다른 생도들의 대련복보다 낡고 해진 것은 둘째 치고, 카인의 대련복 허리에는 다른 생도들과 달리 검은색 띠가 매여 있었다. 다른 생도들은 전부 흰색인데.

둘러보니 카인 말고도 검은 띠를 맨 생도가 몇몇 더 있었다. 그러나 그 수가 다섯이 채 되지 않았다.

카인은 아이젠의 시선이 자신의 허리띠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곤 띠를 들어 보였다.

“왜 검은색인지 궁금하십니까?”

“궁금하다기보다는……. 아니, 궁금해.”

“검은 띠는 선임 생도라는 상징입니다. 흰 띠인 일반 생도들을 지휘할 권한이 있다는 뜻이죠.”

“선임 생도라는 건?”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실력이 좀 있단 뜻입니다.”

그래 봤자 아직 기사가 되지 못한 후보 생도 아닌가?

아이젠은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카인이 지레짐작하고는 말을 이어 붙였다.

“확실히 저는 아직 기사 작위를 받지 못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사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미 기사가 되기에 충분한 실력이지만 아직 기사 작위를 받는 건 이르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곳 검은 뿔 기사 학교는 생도들만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인데, 저는 사울 장로님께 좀 더 수련을 받고 싶거든요. 덜컥 기사가 되었다간 더 이상 사울 장로님의 지도를 받지 못할 테니까요.”

허허, 참제자로다. 그러니까 사울 장로에게 더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기사 승급 시험을 미루고 있단 얘기였다. 아이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네. 그래서?”

“기사 데릭을 이기셨다고 들었습니다.”

“데릭? 아. 어, 기억난다. 그랬지.”

“데릭은 제게 질 것을 두려워해 일부러 이 검은 뿔 기사 학교를 떠나 기사 승급 시험을 치렀죠.”

“그런데?”

“즉 제가 데릭보다 위라는 소리입니다. 사울 장로님께서는 저를 이미 파생검술 2성의 경지를 넘었다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비록 어째선지 오러는 잠시 봉인해 두라고 하셨지만…….”

“…계속 듣고 있자니 서론이 좀 길다. 본론만 말하지?”

사락―

카인은 제 허리에서 검은 띠를 풀어 한쪽 손에 들었다. 풀어 놓고 보니 길이가 생각보다 길었다.

“사울 장로님에게 인정받은 아이젠 도련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이 검은 띠를 걸고 아이젠 도련님께 대련을 요청합니다.”

웅성웅성―

그제야 생도들이 저들끼리 작은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야 사람 냄새 난다.

“그 검은 띠를 내가 가져서 얻는 이득이 뭔데?”

“혹시 들리십니까?”

카인이 갑자기 겨우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아이젠도 목소리를 죽이고 대답했다.

“뭐가.”

“생도들이 하는 얘기 말입니다.”

아이젠은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저 멀리서 떠드는 생도들의 목소리를 이미 들을 수 있었다.

“저거 그 집쥐 공자 맞지?”

“응, 주먹 쓴다던.”

“가문 회의에서 대놓고 주먹을 썼다던데.”

“미친 거 아냐? 그래 놓고 여긴 왜 온 거야?”

“우리랑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서자 주제에.”

“데릭을 이길 때도 무슨 사술을 쓴 거라던데?”

“나도 들었어. 독을 먹여서 이긴 거래.”

“난 독이 아니라 암기라고 들었는데.”

“독 바른 칼로 이긴 거래. 비겁하게.”

“참철검가에서 그런 비겁한 수를 써도 돼?”

“안 되니까 망나니지. 괜히 사람들이 개망나니라고 부르겠어?”

이게 정말 그린우드의 수행 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나 싶을 만큼 다채로운 험담. 자기들 나름대로는 속닥속닥 말하는 걸 테지만… 아이젠의 귀는 숨소리마저 포착할 수 있었기에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들린다면?”

“저들의 입을 모두 닥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검은 띠가 있다면 말이죠.”

딱히… 그냥 들어도 상관없는데.

나라님도 욕하는 게 세상이었다. 한두 마디 욕 들어 먹는 걸 두려워해서야 큰일을 도모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이 녀석한텐 흥미가 좀 생기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