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한바탕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 후, 대련실이 무너져 내릴 듯 울렸다. 실제로 지반이 내려앉기라도 한 양 대련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뭐야?!”
“사울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벌컥! 대련실 문을 열고 기사 후보 생도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곧 먼지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그림자를 보고 숨을 삼켜야 했다.
아이젠의 주먹과 사울의 목검이 공중에서 힘을 겨루고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조금도 밀려나지 않는 두 힘의 격차를 후보 생도들은 보았다.
사울이 읊조렸다.
“문을 닫아라.”
“자, 장로님!”
“닫아라, 어서!”
그가 소리를 지른 건 생도들에게 힘이 뻗칠까 우려되어서도 있지만, 이 대련이 타인의 손에 의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사울의 입술이 귀에 걸렸다. 크크, 사울이 높은음으로 웃었다.
“좋군요. 좋습니다, 공자님!”
파앙!
사울이 힘을 주자 아이젠의 주먹이 밀려났다. 아이젠이 사울의 힘에 밀려서? 아니, 아이젠은 그저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팔꿈치를 뒤로 뺀 것뿐이었다.
‘결사신권―’
‘파생검술 5성―’
‘교아(鮫牙)!’
‘역근검격!’
쿠웅! 빠지직― 빠지직―!
‘크으! 밀린다!’
교아는 박살보다 힘이 약하다. 아이젠은 사울의 놀랍도록 묵직한 검격에 맥을 못 추고 밀려나야 했다. 주먹이 찢겨 나갈 듯 고통이 매서웠다.
그러나 사울의 목검도 그 내구도가 끝에 다다른 것인지, 검 끝부터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아이젠과 사울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다음 합이 대련의 끝이리라는 것을.
“장로.”
“예.”
“전력으로 덤비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이젠은 단전에 남은 마지막 내공을 끌어모았다. 갈퀴로 긁듯이 끌어모은 아이젠의 내기는 조금 전까지 휘두른 모든 권법에 쓰인 내공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사울도 시큰거리는 손목을 무시하고 검 손잡이를 꽉 잡았다. 오러를 쓸 생각은 없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 초식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주는 것이 아이젠 공자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
그렇게 다시 한번.
‘결사신권, 박살(撲殺)!’
‘파생검술 6성, 역속검격(力速劍擊)!’
콰아앙!!
아이젠의 주먹과 사울의 검이 맞부딪쳤다.
찌릿찌릿!
‘밀리고 있나!’
사울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이 어린 공자님이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을까?
쉬지 않고 단련을 했다고 해도 고작 3개월이었다. 무슨 기막힌 신공이라도 알고 있지 않는 한 이 짧은 기간 만에 이만큼의 힘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아이젠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으니.
그런데 그때.
‘결사신권―’
“……?!”
‘박살(撲殺)!’
아이젠의 나머지 왼쪽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런, 방심했다!’
주먹이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것을 보자 일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저 주먹에 맞았다간 인생의 굴곡이 파도처럼 물결치리라. 그래서.
‘파생검술, 오러 흘리기!’
사울은 본능적으로 오러를 쓸 수밖에 없었다.
파앙!
“윽?!”
사울이 오러를 비틀어 아이젠의 주먹을 흘려보내자 아이젠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원을 그리며 한 바퀴 회전해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리고 화살이 내리꽂히듯 빠른 속도로 대련장 바닥에 처박혔다.
콰과과과!
바닥을 뚫고 들어간 아이젠은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 파묻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잠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울은 어느새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쓸어 만졌다. 그의 민머리가 온통 땀으로 범벅돼 있었다.
‘대련에서 이 정도로 긴장감을 품었다니.’
테오발트 가주와 대련했을 때도 이런 감각을 느낀 적이 있던가? 물론 그때는 두 사람 다 오러를 쓰지 않았지만.
“헛.”
사울은 뒤늦게 본인의 실수를 알아채곤 숨을 삼켰다. 대련에서는 오러를 쓰지 않는 게 규칙이라고 해 놓고 오러를 써 버린 것이다.
곧 먼지가 걷히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이젠의 하반신뿐이었다. 상반신은 바닥에 처박힌 것이다.
아이젠의 하반신이 목소리를 냈다.
“…좀 꺼내 주시겠어요?”
“예? 아, 예에에.”
사울은 허겁지겁 잰걸음으로 아이젠에게 달려가 그의 다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뽁 하고 아이젠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흙바닥에 처박힌지라 얼굴이 흙투성이였다.
아이젠이 퉤하고 흙을 뱉으며 말했다.
“오러를 쓰셨네요?”
“예. 죄송합니다……. 규칙을 어겼으니 제가 졌습니다.”
“그것 때문에 진 건 아닐걸요.”
흔들―
아이젠이 손에 쥔 밀봉서를 사울에게 내밀었다. 그제야 사울은 자신의 오른쪽 주머니를 매만졌다. 분명 대련 전에 넣어 둔 밀봉서가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부터 없었지?
“아니, 대체 어느 틈에…….”
“제가 이겼죠?”
사울은 이내 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것 참. 예. 완벽히 승리하셨습니다.”
“아싸.”
기뻐하는 척했지만 아이젠은 알고 있었다. 사울이 본디 힘을 전부 낸 것은 아니란 것을. 정말로 오러를 끝까지 끌어올려 썼다간 아이젠도 지금 상태론 당해 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오러 없이도 이 정도의 검술이라.’
참철검술이니 파생검술이니 하더니, 오러가 힘의 크기를 결정하는 전부인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한스를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하기도 죄송한 실력. 만약 사울이 오러까지 최대치로 썼다면 얼마만큼의 위력을 냈을까.
‘그랬다면 나와 사울 장로 둘 다 팔 한쪽씩은 내놔야 했을 거야.’
뭐, 그렇게 된다면 그건 누구의 이득도 아니고 둘 다 손해만 볼 뿐이니 아이젠은 딱 이 정도에서 대련을 끝맺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젠은 바지를 탈탈 털고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대련복을 입길 잘했네요. 옷을 완전히 버렸어요.”
“예? 아, 예.”
“그나저나 어떠셨습니까? 한 달간 대련 상대를 해 달라는 제 부탁, 들어주실 만한 실력인가요, 저.”
아. 그런 부탁을 했었지, 참.
사울은 잠시 말을 삼켰다가.
“훗.”
이내 훗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 밀봉서를 개봉해 보시겠습니까?”
“어라. 열어 봐도 되는 거예요, 이거?”
“물론입니다. 직접 힘으로 쟁취해 가셨으니까요.”
그 말에 아이젠은 밀봉서를 풀어 펼쳐 보았다. 밀봉서 자체가 손가락만 한 크기의 종이였기 때문에 안에는 몇 글자 적혀 있지 않았는데.
[정진]
그 단 두 글자만이 밀봉서 위에 자리해 있었다.
“정진이라.”
“그 두 글자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아이젠으로서는 썩 마음에 드는 단어였다. 정진, 그것이야말로 아이젠이 평소 가장 자신 있게 행해 온 것이었으니.
“좋네요. 사울 장로님의 뜻인가요?”
“제 뜻이기도 하고, 검은 뿔 기사 학교의 설립 의의기도 하지요.”
사울 장로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도련님, 기사 학교 상급반에서 수련해 보시겠습니까?”
* * *
‘결사신권, 결자해지(結者解之).’
후욱!
아이젠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내공의 흐름을 만끽했다. 추운 겨울날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갈 때처럼 부르르 몸이 떨렸다.
‘후우. 이렇게나 많은 양의 수련치라니.’
사울과의 대련에서 아이젠이 얻은 것은 귀중했다. 비록 정식 결투가 아니라 대련에 불과했지만, 한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수련치를 얻어 낸 것이다. 덕분에 아이젠의 무혈신공은 현재 3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벌써 3성이 코앞이라. 좋아.’
이렇게 실전 수련치로 무혈신공을 예쁘게 단련할 수 있는 건 아이젠이 지하 감옥에서 한 달 내내 무혈신공 연마에 매진한 덕분이었다.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내공이란 거칠기 그지없어서, 이처럼 연마를 통해 겉면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공정 작업이 꼭 필요했다.
물론 그 공정 작업이라는 걸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되새기지 않았더라면 아이젠 역시 3성은커녕 1성도 간당간당했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젠은 사울의 기사 학교 상급반 훈련 제안을 수락한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아. 아주 좋아.’
앞서 걷는 사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젠이 한 생각이었다.
기사 학교 상급반이라면 좀 전에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이름이 뭐였지? 콜드? 콜트? 그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런 자식보다는 훨씬 한가락 하는 놈들만 모여 있을 것이었다. 그런 생도들을 상대로 실전 수련치를 쌓는다면 결사신권 3성에 이르는 것도 머지않은 일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