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기사 생도들의 중심에서 】
“말 까지 마라, 콜트. 난 예의 없는 놈들을 제일 싫어해.”
아이젠의 경고를 받은 콜트는 오히려 더 기세등등해져서 소리쳤다.
“그렇게 예의 있으신 분이라 그동안 그렇게 미친 개새끼 같은 짓거리를 해 오셨나 보죠?”
“그래. 반성 중이야.”
“그리고 또 듣자 하니 뭐 주먹을 쓰신다면서요? 참 나, 그린우드의 성씨를 가지고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왜 부끄러워야 하는데?”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그린우드가 검술 명가니까! 우리가 지금 이 기사 학교에서 뭘 배우고 있을 것 같습니까? 파생검술을 배우고 있다고!”
콜트의 귀가 시뻘게졌다.
“우린 그린우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참철검술을 배우지 못하는데, 아무리 서자라고 한들 직계라는 양반이 검술을 그렇게 등한시하면 우리가 너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아이젠 ‘도련님’?!”
이건 맞짱 뜨자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아이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참… 미안하게 됐다.”
“흥. 미안한 줄은 아십니까?”
“근데 딱히 박탈감을 느낄 만한 실력도 아닌 거 같은데. 혼자 너무 설레발치는 거 아니냐? 누가 들으면 네가 검으로 정점이라도 찍은 줄 알겠다. 뭐라도 찍고 나서 말해. 이제 막 기초 검술 배우는 생도 주제에 무슨.”
큭큭큭. 다른 생도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콜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기초 검술조차 못 다루는 주제에 지금 누구에게 설교를 하는 겁니까!”
“그리고 넌 왜 하필 잡아도 그런 줄을 잡았어.”
“…뭐라고요?”
“다음엔 좀 더 단단한 라인을 타. 네가 잡았던 데릭은 썩은 동아줄이었다.”
뿌득. 콜트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감히 데릭 기사님을 그런 식으로 평가하지 마십……!”
스릉― 콜트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든 그 순간.
퍽!
“커헉?!”
콜트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콜트는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다신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검을 뽑아 보지도 못하고 초급반 우수생 콜트는 그렇게 기절했다.
아이젠의 주먹에서 마찰열에 의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젠은 결사신권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주먹에 무혈신공을 담지도 않았다.
‘생도들 실력은 겨우 이 정도인 건가? 아니면 이 녀석이 너무 약한 거?’
웅성웅성― 갑작스러운 사태에 생도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아이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울 장로님을 불러오든지, 계속 막아서든지. 어떻게 할래?”
시간을 끄는 건 질색이었다.
* * *
콱!
가주 테오발트와 장로 사울의 목검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잠시 힘을 겨루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의 목검을 튕겨 냈다.
“힘이 꽤 늘었군, 사울 장로.”
“하하, 어디 가주님만 하겠습니까?”
사울 장로는 미소를 지으며 테오발트에게 목검을 찔러 들어갔다. 테오발트는 여유롭게 그것을 맞받았고.
턱― 부딪쳤던 목검은.
팡!
크게 튕겨 나갔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사울은 손잡이를 놓지 않고 목검을 꽉 쥐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멀어지자 테오발트와 사울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대련 자세를 잡았다. 사울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가문 회의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천 년짜리 원탁이 망가져 내 상심이 몹시 크다네. 새로 주문 제작 하도록 지시하게.”
“그러지요. 그나저나 아이젠 공자님은 이전과 성격이 많이 달라지신 듯합니다?”
꿈틀. 테오발트의 눈썹이 찌푸려지는 순간을 사울은 놓치지 않았다.
휘익― 콱!
그러나 사울이 뛰어들며 날린 회심의 일격은 테오발트의 목검에 막혔다.
“달라지긴 무슨. 아이젠은 그 언행을 조심해야 하네. 너무 불경하지 않던가.”
“입가의 미소나 지우고 말씀하십시오, 가주님.”
후후. 테오발트는 소년처럼 웃어 보였다.
“어찌 됐든 좋은 일 아닌가. 이제 그 아이가 주먹을 써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을 테지.”
“음. 가주님께서 암묵적으로 인정하셨으니까요. 소가주전까지지만.”
“그래.”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이젠 공자님은 가문의 직계. 참철검술을 배우지 않아도 괜찮으시겠냐는 말입니다.”
휘익― 툭!
테오발트가 내려친 목검을 사울이 간신히 막아 냈다.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다시 한번 시작됐다.
“괜찮고말고! 자네도 말하지 않았나. 검보다 뛰어난 무기가 있다면 검에만 치중하지 말고 다른 무기에도 의지하라 했던 게 바로 초대 가주님의 말씀이라고.”
“그야 그렇습니다만……. 하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요. 왜 하필 검이 아니라 주먹을 쥐셨을꼬.”
쾅! 쾅!
두 사람의 목검이 공중에서 여러 차례 맞부딪쳤다. 분명 나무로 만든 목검임에도 불구하고 공중에서 만날 때마다 지진이 나는 듯한 소리를 냈다.
“아이젠도 이제 철이 든 거 아니겠나?”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자네 생각은 어떻길래?”
“아이젠 공자님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그것’ 말입니다.”
멈칫. 테오발트의 손이 멈춘 틈을 타 사울이 검을 찔렀다.
파앙! 그러나 테오발트는 허리를 비틀어 그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그것이 바야흐로 빛을 내기 시작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부웅! 테오발트가 거세게 검을 휘두르자.
팍! 마침내, 사울의 목검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사울은 빨갛게 달아오른 손바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졌습니다. 오러를 쓰지 않는 대련에서도 지는군요.”
“오러를 쓰는 대련이었다면 자네는 몸성히 퇴근 못 했네.”
“하하하. 그건 그렇겠군요.”
“자네 정말 참철검술 배울 생각 없나?”
“저번부터 자꾸 무슨 말씀을. 가문의 규율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참철검술은 오직 그린우드의 성씨를 가진 자들만이 배울 수 있는 검법. 사울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고 해도 그는 외척이므로 참철검술을 배우는 것은 규율에 위배되었다. 사울은 그저 파생검술의 달인이었다.
테오발트는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이것으로 임무 실패에 대한 질책은 끝이네.”
“아이젠 공자님의 암살 배후를 발본색원해 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됐어. 자네가 찾지 못했다면 세상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거겠지. 이 이상 마음 쓰지 말게.”
“전선으로 돌아가십니까?”
옷을 갖춰 입는 테오발트를 보며 사울이 묻자 테오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울의 얼굴이 자못 비장해졌다.
“결국 리타스나트 공화국이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탄탈리스 제국은 현재 이웃 나라인 리타스나트 공화국과 냉전 중이었다. 그러나 곧 냉전이 끝나고 열전이 시작될 기미가 보였다.
테오발트가 말했다.
“전쟁이 가속화될 걸세. 자네도 언제든 전쟁에 나설 채비를 하게.”
“이 나이 먹고 전쟁이라니, 참으로 서글픕니다.”
“서글퍼? 후후. 자네야말로 입가의 미소나 지우고 말하게, 사울.”
사울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다.
“인자하기만 한 줄 알았던 자네가 호전광이라는 걸 가문 사람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게야.”
“커험, 그건 지나친 오해이십니다.”
“실없는 소리. 이만 갈 테니 가문이나 잘 지키고 있게.”
“예, 가주님.”
이윽고 가주 테오발트가 자리를 뜨자 사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전쟁이라.”
그때 누군가가 대련장에 들이닥쳤다.
“사, 사울 장로님!”
기사 후보생 중 한 명이었다.
“웬 소란이냐.”
“와, 와 보셔야겠습니다. 글쎄 아이젠 도련님이 몇몇 아이들과……!”
아이젠 공자님이 설마 또 무슨 짓을?
자못 심약한 마음을 이끌고 후보생을 따르는 사울 장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