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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24화 (24/201)

24화

검을 쥐고 있는 것은 머리를 뒤로 묶은, 스무 살을 갓 넘긴 듯한 여인.

‘바네사 폰 그린우드.’

아이젠의 누나이자 둘째인 바네사였다. 이 가문에선 특이하게도 공자와 공녀를 구분하지 않았다. 즉 바네사는 둘째 공자인 셈.

바네사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예전과는 딴판이야. 건강해졌다는 느낌?”

“…보자마자 칼부터 휘두르시는 겁니까, 둘째 공자님?”

“후후. 놀랐어?”

티잉―

아이젠이 오른손을 튕기자 바네사의 검이 멀어졌다. 그사이 모니카가 바네사에게 인사했지만 바네사는 못 본 듯했다.

바네사는 날 길이만 1m는 될 것 같은 참철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내가 좀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 아이젠이 또 망나니짓을 하다가 가주님께 끌려갔다, 그리고 지하 감옥 3개월 형을 처분받았다. 여기까진 내가 알던 아이젠 그대로인데…….”

그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감옥 안에서 수련을 했다느니, 주먹질로 감옥을 평정했다느니. 그런 괴소문도 들어서 말이야. 사실이니?”

“…….”

아이젠이 대답하지 않자 바네사가 먼저 다시 입을 열었다.

“침묵은 금이라고들 하지. 네가 꼭 내게 사실을 말해 줘야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너, 잊어버린 건 아니지?”

바네사가 아이젠의 한 발자국 앞까지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다신 쓸데없는 짓 안 하겠습니다, 쥐 죽은 듯 있겠습니다,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겠습니다. 네가 내게 했던 말들 말이야.”

“……!”

그제야 아이젠은 머릿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아이젠은 몇 년 전 바네사에게 치욕적인 굴욕을 맛본 적이 있었다. 괜히 한번 개겼다가 힘의 차이를 깨닫고 고개를 조아렸던 것이다.

‘자업자득이긴 한데… 자업자득이 왜 이렇게 많냐, 나 자식아.’

자꾸 한숨 푹푹 나오는 일들만 생기는 것 같았다.

앓느니 죽지. 아이젠은 고개를 쳐들고 대답했다.

“바네사 둘째 공자님 귀에 들어가라고 한 짓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소문이 전부 사실이라는 뜻?”

“3개월간 놀고먹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잖아요.”

“아니? 넌 3개월간 그냥 놀고먹어야 했어. 내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참철검가에서 주먹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아. 아이젠이 결국 한숨을 참지 못하고 내쉬었다.

“제가 공자님께 잘 보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뭐라고?”

그녀의 서늘한 칼날이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한껏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에라이, 격식 차리는 게 내 천성도 아니고.’

아이젠은 제 성격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공자님께 알랑거릴 필요 없잖아요. 사실 되게 애매한 위치 아니신가? 게오르크 공자님보다 검술 실력이 뛰어나길 하나, 한스 공자님보다 학식이 뛰어나길 하나.”

“…너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심지어 다섯째인 에밀보다도―”

아이젠이 말을 맺기 전에 바네사의 검이 날아들었다. 아이젠은 왼손으로 그녀의 칼 몸을 덥석 붙잡았다.

“……?!”

바네사가 놀라는 사이 아이젠이 뒷말을 이었다.

“…침착함 없이 쉽게 흥분하시고.”

“이게!”

바네사는 검을 빼려 했지만 이상하게 검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젠의 아귀힘이 너무 강했다.

‘어떻게 된 거지?!’

가만 보니 아이젠의 온몸에 자리 잡은 근육이 예사롭지 않았다. 열여섯 살짜리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짜임새였다.

‘대체 3개월 동안 감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설마 자신이 이따위 녀석에게 진다고? 그건 말도 안 되지.

뿌득―

바네사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단전에 힘이 들어갔다.

‘참철검술 2성, 그린 오러!’

그리고 그녀가 검에 가문의 비기인 그린 오러를 두르려는 그 순간.

“뭣들 하는 거냐!”

복도 끝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아이젠이 손에 쥔 힘을 풀었다. 그러자 바네사도 황급히 오러를 거두고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첫째 공자인 게오르크였다. 그는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회의장 앞이야. 너희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겠지만 예절을 좀 갖춰라.”

“죄송합니다, 첫째 공자님.”

아이젠이 먼저 사과하자 게오르크는 바네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죄송합니다, 공자님.”

“바네사, 너도 이제 스물한 살이니 너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아이젠과 힘겨루기를 할 나이는 아니지 않을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지켜볼 테니까.”

게오르크가 먼저 회의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네사는 그의 뒤를 따르는 한편 아이젠에게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아이젠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아니, 먼저 시비 건 게 누군데.”

아이젠도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장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생각보다? 아니, 정말이지 아주 넓었다.

중앙의 강철로 된 원탁은 가문의 직계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처럼 보였다. 게오르크와 바네사가 그리로 가 앉았기 때문이었다.

‘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강철의 원탁.’

아이젠의 머릿속에 자리해 있던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그 강철 원탁을 중심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붙박이 의자들이 빙 둘려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몇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꽤나 연로해 보이는 자들이 주축이 되어.

‘가문의 장로들이군.’

아이젠은 굳이 싹수없게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가문의 장로들은 저마다 맘에 안 든다는 시선을 아이젠에게 던져 왔다.

‘아니, 왜 다들 나만 저렇게 봐. 억울하네.’

“도련님.”

아이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모니카가 속삭였다.

“왜?”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부디 그냥 알겠다고만 하세요.”

뭔 소리야?

아이젠이 모니카를 돌아보자 모니카가 아이젠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냥… 뭐가 됐든 그냥 알겠다고만 말씀하세요! 아셨죠?”

“…뭐 내가 무조건 알겠다고 해야 하는 일이라도 있나 보지?”

“그냥 그렇다고 하세요. 아시겠죠? 꼭이에요!”

모니카는 그렇게 말하곤 회의장 뒤편으로 이동했다. 하인들은 서서 참관하는 것 같았다. 그 옆으로는 정복의 기사들이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그야말로 가문의 일원 모두가 참여하는 자리.

마침내 원탁과 붙박이 좌석의 빈자리들이 대부분 채워졌다. 셋째인 한스와 처음 보는 다섯째 에밀도 원탁으로 와 앉았다. 한스는 아이젠을 힐끔하더니 못 본 척했다. 얼굴엔 아이젠이 때리고 남은 흉이 져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가주 테오발트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의 옆에는 머리를 빡빡 민 장로도 보였다.

‘사울 장로.’

아이젠의 머릿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기척만으로 아이젠은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가주실에 있었던 자가 저 사람이로군.’

아이젠이 가주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 그때 누군가가 가주실에 함께 있었다.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아이젠도 잠자코 있었다. 그게 바로 저 사람. 아이젠은 모른 척 테오발트와 사울에게 인사했다.

테오발트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리가 하나 비었군.”

“기젤라 공작 부인께서 불참하셨습니다.”

“그래……. 자리로 가지.”

마침내 테오발트가 원탁에 앉자, 가문 회의가 시작됐다.

* * *

공자는 표정을 숨기느라 애써야 했다. 제이슨에게서 분명 죽었다고 보고받은 아이젠이, 멀쩡한 얼굴로 원탁에 앉아 있었으니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게다가 저 몸은 또 대체 뭐란 말인가? 저게 이제 갓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는 사람의 몸이 맞아? 약이라도 맞은 거 아냐?

‘요즘 힘을 비정상적으로 키워 주는 알약형 마약이 유행이라던데. 아냐, 감옥에서 그걸 먹었을 리는 없어. 그럼 대체 어떻게 단기간에 저런 몸을 만든 거지?’

공자와 심각하게 비교되는 몸이었다. 지금 맞붙는다면 누가 봐도 공자가 질 거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공자는 머리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지만 속내를 드러낼 순 없으므로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수밖에 없었다.

‘흥, 그래 봤자 몸만 저럴 뿐, 검술은 나한테 안 되겠지. 기껏해야 서자에 불과한 놈이 적자인 나를 이길쏘냐.’

공자는 그렇게 감정을 갈무리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아이젠은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제이슨이 거짓 보고를 올렸다.

‘감히…….’

하지만 제이슨은 이미 죽였다. 책임을 물을 자가 없었다.

아이젠이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일 수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었다.

‘우선은 상황을 지켜보자. 가문 회의가 끝난 후에… 그때 결정해도 되는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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