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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22화 (22/201)

22화

‘분명 뒷배가 있을 테고.’

제이슨에겐 뒷배가 있다. 그리고 그 뒷배가 일전에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자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아이젠이었다.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지금에 이르러서는 겨우 독 따위에 당할 아이젠이 아니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게다가 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꾸 암살로만 죽이려고 하다니?

‘뒷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맘에 안 들어.’

일대일 결투를 선호하는 아이젠으로서는 수하들 뒤에 숨어 헛방만 날려 대는 그 배후라는 작자가 영 맘에 안 들었다.

‘싹을 자를까.’

아이젠은 무릎을 꿇고 벌벌 떠는 제이슨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그럼 다시 질문. 배후가 누구지?”

“……!”

제이슨의 안색이 변했다. 현실 감각이 돌아온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명령 이행에 실패했다.’

흑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명령이든 완수해 내는 것. 그리고 제이슨이 받은 임무는 아이젠의 살해. 그걸 실패했다. 제이슨은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 말할 수 없습니다…….”

임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뒷배가 누군지까지 밝힐 수는 없었다. 제이슨에게도 기사도라는 게 있으니까.

‘말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아이젠이 제이슨과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모로 꼬며 말했다.

“음. 주인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는 건 멋진데, 너 이대로 돌아가면 어차피 임무 실패를 빌미로 네 주인한테 죽어.”

“…….”

아이젠의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제이슨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말했다.

“그래도 말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십시오.”

“아까 말한 기사도, 뭐 그런 건가?”

“비슷합니다.”

“질문을 새로 하지. 선택지를 두 개 줄게. 돌아가서 네 주인에게 임무 실패를 보고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할래? 아니면 여기서 자백하고 죽은 것으로 위장해 망명할래? 개인적으론 뒤엣걸 추천한다.”

제이슨은 망설였다.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제이슨에겐 죽은 것이니까. 전자는 육신의 죽음, 후자는 기사도의 죽음.

제이슨이 날이 반밖에 남지 않은 참철검을 집어 들었다.

“저는… 저는 이곳에서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검을 제 목에 휘둘렀다.

아이젠이 빙긋 웃었다.

“그 기개는 맘에 든다.”

제이슨의 칼날이 목에 가 닿기 전에.

팡!

“결사신권, 뇌살(腦殺).”

아이젠은 양손으로 제이슨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커헉……?!”

그러자 제이슨이 칠공분혈을 일으켰다.

주르륵― 주르륵―

“어헉……. 컥…….”

제이슨이 고통에 신음했다. 결사신권 뇌살은 상대의 머릿속에 내공을 직접 흘려 넣어 뇌 일부를 녹여 버리는 2성의 기술.

“이로써 너는 한 번 죽었다.”

그리고, 녹아 버린 뇌가 모조리 얼굴 밖으로 분출되고 나면.

“이제 두 번째 삶을 살자. 정신 차려.”

상대를 자신의 입맛대로 개심해 버리는 기술.

“…예, 아이젠 공자님.”

척!

제이슨이 부복했다. 아이젠을 향한 존경심을 담아.

아이젠은 빙긋 웃었다. 이 몸으로는 2성의 경지에 오른 후 뇌살을 처음 써 본 건데 썩 잘 먹힌 듯했다.

제이슨은 흑기사라고 했다. 흑기사는 첩보에 능하니까 뇌살로 개심해 놓은 이상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이었다. 예를 들면.

‘분명…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지?’

아이젠은 내공을 이용해 그간 지하 감옥을 찾아왔던 하수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젠의 독살의 배후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사건 이후 두 달, 아직까지 못 잡았다면 앞으로도 못 잡는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곳에서 밝혀 볼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아이젠이 독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생각 외로 널리 퍼져 있었다. 어디서 이야기가 샜지?

상념을 털어 낸 아이젠이 제이슨을 보고 말했다.

“…제이슨, 다시 물어보겠다. 네 배후가 누구지?”

미소를 담아서.

“꼭 좀 말해 줬음 좋겠다.”

잡아서 죽일 거거든.

그러나 제이슨의 입에서는 실망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음?”

뇌살로 개심해 놨는데도 배후를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아이젠은 사정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이 걸려 있구만.”

“그렇습니다.”

주술. 즉 제이슨은 주인을 밀고할 수 없도록 봉인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흑기사가 임무에 실패하는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주인의 이름을 밝히고 다닌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까.

아이젠은 이 자리에서 범인을 밝히는 것은 제쳐 두기로 했다. 그 대신 그는 제이슨에게 지시했다.

“제이슨, 넌 이제부터 네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 아이젠을 죽였다고 보고해라.”

“그 말씀은…….”

“한 달 뒤 내가 나갈 때까지 주인을 속여.”

그 이유는 남은 한 달 동안은 평화롭게 수련에만 매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또 암살자를 보낸다면 물론 실전 수련치야 더 쌓을 수 있겠지만…….

제이슨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

수련에만 매진하고 싶다, 그 때문도 있었지만,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은 제이슨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

“…….”

말을 끝까지 들은 제이슨은 다시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젠 공자님의 혜안에 감탄을 느낍니다.”

“그 괴상한 말투는 좀 고치는 게 좋겠다.”

“가 보겠습니다.”

팟!

제이슨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이젠은 그가 떠난 자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결국 이 가문에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을 거야.’

위협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그저 귀찮을 뿐. 원래 이런 부류의 놈들은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더 집요하게 암살을 시도하는 법이니까. 생사경의 경지를 목표로 하는 아이젠에게 다른 신경 쓸 요소가 생긴다는 건 방해만 될 뿐이었다.

언젠가는 가문을 떠나야 할 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럼 단련을 계속해 볼까.”

제이슨이 어련히 잘 보고하겠거니 하며, 아이젠은 다시 독방에 갇혔다.

“끄응…….”

당연히 옆에서 죽어 가는 쉐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 * *

“죽였다고? 확실해?”

“예.”

자신에게 주술을 건 공자의 물음에, 제이슨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이슨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그것이, 아이젠 도련님은 이상하게도 지하 감옥 깊은 곳 독방에 홀로 갇혀 있었습니다.”

“독방? 거긴 절대 못 여는 곳이라고 하던데. 아이젠이 어떻게 거기 들어가 있었지?”

“얘기를 드리자면 좀 깁니다만, 어쨌든 독방 문을 열고 암흑 마법으로 잠재운 다음 독을 먹여 죽였습니다.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엔 독방 문을 닫아 은폐했습니다.”

“소생 가능성은?”

“결단코 없습니다.”

“큭큭. 그래?”

공자가 얍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몇 차례 더 크게 웃더니 제이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다, 제이슨! 고생이 많았구나.”

“아닙니다, 공자님.”

그 순간이었다.

푸슉!!

“……?!”

제이슨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의 등을 뚫고 나온 칼날이 달빛에 반사되어 선명하게 빛났다.

“이해 좀 해라. 아이젠이 감옥에서 살해됐으니 조사가 시작될 텐데, 네가 살아 있으면 나한테 안 좋은 일이잖아.”

“크헉……! 어, 어떻게 이런 짓을……. 제가 공자님을 모셔 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러니까 이해 좀 하라니까. 평민 신분으로 날 모시는 흑기사 위치까지 올라왔으면 꽤 출세했잖아? 이제 그만 밑바닥으로 꺼져.”

쑤욱! 공자가 칼날을 뽑았다. 그러자 제이슨의 배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후회…할 겁니다, 공자님…….”

털썩.

제이슨이 쓰러지자, 공자가 허공에 대고 손짓을 했다.

“어이, 두 명만 나와 봐.”

그러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처리해라. 벌써 썩은 내가 나네.”

“예.”

두 그림자는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즉시 제이슨의 주검을 거두어 갔다.

방 안에 완전히 혼자 남게 되자 공자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나머지 셋만 더 죽이면… 내가 그린우드의 유일한 직계 혈족이란 말이지.”

그린우드 직계의 핏줄은 현재 오 남매였다. 넷째인 아이젠을 죽였으니까 이제 나머지 셋만 죽이면 그가 유일하게 남는 직계.

‘비록 소가주전이 남긴 했지만.’

소가주전은 그린우드의 직계와 방계 중 인물을 몇 명 선발해 경합을 치러, 그중 가장 뛰어난 자를 다음 대의 가주 후보로 추대하는 시험이었다. 직계인 그가 설마 방계 따위에게 질 리는 없을 테니, 직계 셋만 더 죽이면 그가 다음 가주 후보가 될 것이었다.

“큭큭. 크크큭.”

참으려 했지만 공자의 입에선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주. 내가 가주라니.”

꿈이 한 발짝 현실로 다가오자 절로 폭소가 나왔다.

그러다가도 그는 웃음을 뚝 그치고 고민에 잠겼다.

“가만. 그러고 보니 아이젠이 죽었다는 걸 지금 밝힐 필요는 없겠지. 괜히 내가 의심받으면 안 되니까.”

어차피 아이젠은 한 달 뒤 출감이 예고되어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도 웬일인지 독방 안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배식을 담당하는 하수인들도 아이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겠지. 배식구로 음식을 넣어 줄 수만 있고 독방은 절대 못 여니까.

“한 달 뒤에 아이젠이 출감할 때, 그때 아이젠이 죽었단 사실이 자연스럽게 밝혀질 거야. 그때까지만 참자.”

그때까진 그냥 조용히 있자고 생각하는 공자였다.

입이 근질거리지만 대업을 위해선 참아야지. 그게 참된 군주의 자세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을 마치자 머릿속에 있던 구름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공자는 아무도 없는 방을 둘러보며 하하 웃어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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