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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20화 (20/201)

20화

* * *

“끄으으…….”

“으윽… 젠장…….”

피스풀 지하 감옥은 시체의 바다가 되었다. 흑기사 제이슨에게 덤벼들었던 죄수들은 저마다 몸에 최소 세 개 이상의 자상을 남기고 죽어 갔다.

“후우……. 흥! 형편없는 놈들.”

제이슨이 말했다.

쓰러진 죄수 중에는 마창술사 도미니크와 파괴권의 데릭도 있었다. 데릭은 이미 저쪽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죽어 있었다. 이 안에서는 나름 실력자인 도미니크와 데릭조차, 제이슨에게는 지나가는 죄수 1에 불과했다.

도미니크는 바닥에 엎어진 채 죽어 가면서 제이슨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이… 개 새끼가…….”

“한 번만 더 나를 개 새끼라고 부르면…….”

그러나 제이슨은 뒤에 할 말이 더 생각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일 건데 뭘 더 어쩌겠나.

“됐다. 그냥 죽어라.”

제이슨은 씨익 웃으며 도미니크의 목덜미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커헉…….”

“질긴 놈.”

몇 차례 고통에 신음하던 도미니크는 마침내 숨을 거뒀다.

“후우.”

제이슨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도미니크의 품을 뒤졌다. 그런데 도통 열쇠가 없었다.

“제길, 대체 어느 놈이 가지고 있는 거지?”

이상한 일이었다. 죄수들의 몸을 다 뒤졌는데도 열쇠가 나오지 않다니.

‘이 감옥의 독방 열쇠는 분명 죄수들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이슨은 2성의 검사였기에 죄수들을 사과 썰듯 베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총합하면 100번이 넘는 칼질을 하다 보니 그도 어느새 피로감에 찌들어 버렸다.

그는 얼른 열쇠를 찾고, 독방 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아이젠이라는 놈을 죽이고 싶었다. 그 뒤 공자님께 포상을 받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끄응……. 시끄러워…….”

독방 바로 옆, 복도 끝에 있던 다인실에서 누군가가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로 몸을 일으켰다. 구속구를 차고 있는 손으로 산발 머리를 긁적이던 그 남자는 창살에 몸을 기댔다.

제이슨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상황에도 잠이나 퍼질러 잤다고?’

그러나 그는 남자의 눈빛에서 살기를 느끼고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대충 알 만했다. 저자가 바로 쉐인이군.

제이슨이 뭔가 묻기 전에 쉐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야. 다 죽인 거야? 나 빼고 스물여덟 명 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의 숫자가 스물여덟이나 됐나? 그래, 내가 다 죽였다. 뭔가 불만이 있는 눈빛인데?”

“있지. 내가 죽이려고 했는데……. 아쉬워라.”

이게 뭔 소리지?

죄수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제이슨은 쉐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쉐인, 맞지? 5년간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던.”

“맞아.”

“그럼 독방으로 가는 열쇠는 너한테 있을 것 같은데.”

“열쇠? 없는데.”

“뭐라?”

“열쇠 없다고. 아이젠이 가지고 들어갔거든. 저 독방 안에.”

쉬익! 제이슨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쉐인이 갇혀 있는 다인실의 철창을 베어 버렸다.

탱그랑! 탱―!

쉐인은 어느새 뒤로 멀찌감치 이동해 제이슨의 검을 피했다. 그러더니 태연히 철창이 잘린 다인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선 쉐인은 팔짱을 끼고 턱을 괴더니 갑자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가만있어 봐. 그럼 이제 이 감옥을 나 혼자 쓰는 건가? 독방보다 낫네! 여기가 훨씬 넓잖아!”

“독방 열쇠를 아이젠이 가져갔다고? 웃기는 소릴 하는군. 그냥 죽여 주마. 어차피 네 품을 뒤지면 열쇠가 나올 테니까.”

제이슨이 말하자 쉐인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넓은 감옥을 혼자 쓰는 게 불만이냐?”

“뭐? 아니, 그런 것에 불만을 가지는 게 아니다! 난 너에게서 열쇠를 빼앗으려는 거지!”

“방해하지 마. 누가 뭐라고 하든 난 여기 혼자서 쓸 거야.”

쑤욱!

쉐인이 별안간 입 안에서 검을 뽑았다. 제이슨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참철검? 그린우드 가문의 검이잖아……. 네가 어떻게 그 검을 가지고 있는 거지?”

“캬하하하! 싸워 보자, 이 새끼야!!”

갑자기 성격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쉐인이 제이슨에게 펄쩍 날아들었다.

‘대화가 안 통해!’

제이슨도 검을 들었다.

채앵!

공중에서 검이 부딪쳤지만 제이슨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놈이 이 지하 감옥의 일인자인 건 분명하군.’

초식을 배운 검술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야수처럼 휘두르는 검에는 분명히 힘이 실려 있었다. 지하 감옥 정도에서는 대장을 먹을 실력이었다. 하지만…….

‘2성의 기사인 내겐 어림도 없다!’

태앵!

쉐인의 검을 튕겨 내 흘린 제이슨은 그의 배에 자신의 애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기분 나쁜 소리가 나며 쉐인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크헉.”

“그냥 얌전히 열쇠를 내놨으면 아프지 않게 죽여 줬을 텐데. 화를 부르는 재주가 있군.”

“너, 제법… 하네…….”

털썩! 마침내 쉐인도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죽진 않았는지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났다.

‘그것도 겨우 몇 분 정도겠지.’

제이슨은 그의 품을 뒤졌다. 그런데 쉐인에게도 열쇠는 없었다.

“젠장!”

대체 뭐야?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는 거냐고?!

그때 제이슨은 조금 전 쉐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젠이 열쇠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했지.”

그게 사실이라면?

제이슨은 독방으로 눈을 돌렸다. 단단한 철문이 철옹성처럼 독방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었다. 문 안쪽으로 단단한 철 빗장이 걸려 있어 열쇠를 넣고 돌려야만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열쇠가 없다면 독방 안으로 들어갈 방법은 단 하나.

‘문 틈새로 걸려 있는 빗장을 잘라 내는 것.’

하지만 제이슨은 그런 귀신같은 검술을 쓸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런 일은 그린우드 검술을 최소 3성은 이뤄야 가능할 터…….

제이슨은 자신이 어떤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는지 상기했다.

‘죽여 버리고 와. 그린우드 가문에 검도 못 쓰는 반편이는 필요 없다.’

공자는 분명 아이젠을 죽여 버리고 오라고 했다. 검도 못 쓰는 반편이는 필요 없다는 말은 제이슨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제 검술로는 아이젠 공자님이 갇힌 독방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변명하면 자신의 목이 무사할 수 있을까?

꿀꺽.

제이슨은 침을 삼켰다.

“내가 어떻게 이 위치까지 왔는데!”

임무에 실패할 수는 없었다. 해 보는 수밖에.

“그린우드 파생검술 2성, 커버넌트 오러.”

제이슨은 애검에 오러를 둘렀다. 초월적인 집중력으로 예리하고 섬세하게 두르는 오러였다. 그리고, 독방 문을 향해.

부웅!

검을 휘둘렀다.

칼날은 정확히 문과 벽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을 베고 지나갔다.

싹둑― 철컹!

안에 걸려 있던 빗장이 깨끗하게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됐다! 으하하!”

제이슨은 스스로 이룬 경지에 감탄했다. 이 정도면 가히 3성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한 검술 실력이었다. 얼른 공자님께 돌아가서 이 일을 보고한다면 자신의 직위는 더더욱 상승하리라.

제이슨이 그렇게 생각할 때 독방 문이 끼이이 열렸다. 빗장이 풀려 문이 힘을 잃고 열린 것이었다.

제이슨은 독방 문을 확 열어젖혔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네놈을 죽이러 왔……. 윽?!”

선전 포고 하던 제이슨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독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열기가 제이슨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공기가 한바탕 흩어지자 제이슨은 뒤늦게 독방 안을 살필 수 있었다.

“헉?!”

그리고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 기사들 사이에서는 집쥐 공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형편없는 신체를 소유한, 가문 내에서 유일하게 승계 구도의 탈락 선상에 있는 자. 그 아이젠이, 독방 정중앙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그것도 오른손 엄지손가락 하나로.

“밖에서 시끄럽게 굴었던 놈이 너냐?”

아이젠의 목소리는 마른 피처럼 차가웠다.

‘뭐, 뭐지? 대체 무슨?’

이게 그러니까, 뭐지?

제이슨은 두 눈을 의심했다.

아이젠은 상의를 탈의한 채 물구나무서 있었다. 그의 몸에 군살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열여섯 살짜리의 작은 몸에 단단하고 맹렬한 근육이 섬세하게 들어차 있었다. 팔뚝은 그리 두껍다고 볼 수 없었으나, 100근짜리 망치도 휘두를 수 있을 만큼 견고해 보였다.

그러니까, 제이슨이 그동안 봐 왔던 아이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게 아이젠? 그 집쥐 공자 아이젠?’

그러고 보니 기사 데릭이 아이젠에게 패배해 가문을 떠났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이젠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 묻게 하지 마. 밖에서 시끄럽게 굴었던 놈이 너냐고.”

“뭐, 뭐라고?”

아이젠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원래 이런 목소리였던가? 경박하던 망나니는 어디 가고 이런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천천히 하반신을 내린 아이젠이 독방 위에 똑바로 섰다. 그러자 그의 복근, 대흉근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나 아이젠의 호남형 얼굴에서는 피로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 번 묻는다. 밖에서 시끄럽게 굴었던 놈이 너야? 한 번만 더 물어보게 하면 뒤진다, 진짜.”

“그, 그렇, 그렇습니다, 공자님…….”

왜 자신이 높임말을 쓰고 있지?

제이슨이 당황하는 사이 아이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피곤하니까 문 닫고 나가. 앞으론 조용히 하고.”

“예…….”

제이슨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시키는 대로 할 뻔했다. 하지만 이내 망각했던 자신의 임무가 머릿속에 등불처럼 떠올랐다.

‘난 아이젠을 암살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미 ‘암살’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꽤 있었지만, 어쨌든 제이슨은 아이젠에게 칼끝을 겨눴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네게 선포하노라. 난 널 죽이러 왔다!”

“그래?”

“그, 그렇다!”

“누가 시켰는데?”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개인적인 원한으로 아이젠 널 죽이러 왔다.”

“개인적인 원한이라. 하긴, 이 몸이 저지른 업보가 한두 개여야지.”

아이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마침내 고민을 끝낸 그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알았다. 죽여 봐라.”

“…뭣이라고?”

“대신 나는 널 막도록 하지.”

“……!”

제이슨은 더 대화하는 건 손해라고 느꼈다.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애검에 오러를 둘렀다.

“오호라. 오러를 쓸 줄 알아?”

“그래…….”

아이젠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지난 한 달간의 성과를 체험해 볼까.”

쉬익! 제이슨이 검을 휘둘렀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연마한 오러가 둘려 있는 검이었다.

쐐액! 촤악―!

검은 아이젠의 몸을 정확히 두 동강 냈다.

…고 제이슨은 생각했다.

땡그랑!

두 동강 난 것은 제이슨의 검 쪽이었다. 아이젠의 주먹에서는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어우, 야, 미안.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네.”

아이젠은 바닥에 떨어진 제이슨의 칼날 반쪽을 주워 들었다.

“이거 어떻게 붙일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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