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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9화 (19/201)

19화

제이슨이 검을 뽑아 들려는 그 순간, 다행히도 간신 수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얘기였다.

“궁금할 텐데 왜 물어보질 않나? 아이젠 도련님이 이 안에 있지 않냐는 이야기.”

“…아. 이미 소문이 파다한 이야기라서요.”

“그래? 하긴, 지금 이 가문 내에 그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아이젠은 어쨌든 그린우드 가문의 핏줄이었다. 대내외적으로 그가 감옥에 갇혀 있단 사실은 비밀이었다.

그래도 하수인들의 뚫린 입에 자물쇠를 채우기란 불가능한 일.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 아이젠이 벌써 두 달째 수감 중이란 건 하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건 모르겠지? 그 아이젠 도련님이 말이야…….”

간신 수염이 비밀 얘기를 한다는 듯 제이슨에게 속삭였다.

“독방에 갇혀 있어.”

“예?”

제이슨은 살짝 놀랐다. 왜 독방이지?

피스풀 지하 감옥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것은 흉악범 쉐인이었다. 이미 그런 사실 정도는 숙지하고 온 제이슨이었다.

제이슨이 미처 묻기도 전에 간신 수염이 먼저 말했다.

“쉐인이라는 죄수를 몰아내고 아이젠 도련님이 독방을 꿰찼어.”

“…설마요. 쉐인은 1급 흉악범 아닙니까? 그런 자를 아이젠 도련님이 어떻게……. 그리고 독방에 갇히는 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나서서 그 안에 틀어박히신단 말입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

제이슨은 겁먹은 체했다. 물론 실제로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이라면 제이슨도 여러 번 본 경험이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공자님’의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서 있을 때 아이젠의 망나니 같은 만행들을 수차례 직접 보았던 것이다.

‘그 빼빼 마르고 사내구실도 못 할 것 같은 아이젠이 쉐인을 이겼다고?’

그럴 리가 있나.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제이슨은 참았다.

‘분명 쉐인이라는 자가 독방에서 나가기 위해 무슨 수를 쓴 거겠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아이젠은 별 방도 없이 독방에 갇힌 걸 테고.’

아이젠이 독방에 갇혀 있다면 얘기가 더 쉬웠다. 제이슨이 그를 죽이는 게 더 수월할 테니.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빨리 밥만 주고 나오라고. 왠지 으스스하잖아.”

“알겠습니다.”

간신 수염의 말에 제이슨이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자 마침내 간신 수염이 떠나갔다.

간신 수염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 피스풀 지하 감옥의 문을 열어젖힌 제이슨은 뒤에 줄을 서 있는 하녀들을 쳐다보았다.

“있잖아.”

“예?”

하녀들이 고개를 들어 제이슨의 얼굴을 살폈다. 제이슨의 용모는 꽤 빼어난 편이라 하녀들 중엔 볼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제이슨이 환하게 웃으며 한 말에 그들의 표정은 삽시에 굳고 말았다.

“너희는 목격자가 될 테니 필요 없다. 여긴 나 혼자 들어갈 테니 다 잠들어 주도록.”

“…예?”

사아아아―

암기가 진득한 바람이 제이슨과 하녀들을 훑고 지나갔다. 하녀들은 갑자기 눈의 초점을 잃더니.

털썩! 철퍼덕!

저마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암흑 마법, 졸음의 파도!’

이것이 바로 제이슨이 스물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그린우드 공작 가문의 흑기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제이슨은 암흑 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 이 능력으로 얼마나 많은 적들을 남몰래 속여 왔는가.

졸음의 파도에 당한 적은 잠깐의 기억 상실을 앓기에 깨어나도 하녀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암흑 마법에 애검까지. 아이젠은 순식간에 죽을 것이다!’

제이슨은 오러를 다룰 수 있는 2성의 검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젠이 살아남을 방도는 명백히 존재하지 않았다.

끼이이익― 쿵!

피스풀 지하 감옥 안으로 들어온 제이슨은 복도에 서서 양옆으로 있는 다인실 감옥들을 훑어봤다.

‘정말 아이젠은 독방에 있나 보군.’

제이슨은 잠들어 있는 죄수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중 아이젠의 모습은 없었다.

그때 인기척을 눈치챈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거기 누구쇼.”

“음?”

몸을 일으킨 것은 여리여리한 체형의 남자였다. 수형 번호 096이라는 이름표가 가슴팍에 붙어 있었다.

“난 배식 담당 하수인 제이슨이라고 한다.”

“그래요? 난 도미니크.”

울컥, 제이슨은 자신과 맞먹으려는 도미니크에게 화가 났다.

‘죄수 따위가 어디 감히 흑기사인 나에게.’

제이슨이 짐짓 교도관 흉내를 내며 말했다.

“수형 번호 096. 이곳에서 누가 자기 이름을 쓰게 되어 있나?”

“아, 예. 죄송합니다. 얼른 밥 좀 뿌려요. 배고파 죽겠네.”

제이슨은 대답 없이 보따리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096에게 내밀었다. 조금 전에 하녀들에게서 수집한 것이었다.

‘빵과 우유에는 독이 주입되어 있지.’

제이슨이 암흑 마법을 쓴다곤 하지만 마력을 담는 단전이 작아 마법을 물 쓰듯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여 그는 아이젠 살해의 목격자가 될 죄수들은 이 빵과 우유로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그가 모시는 공자가 지시한 일이었다. 제이슨은 그 뜻대로 따를 뿐. 게다가 어차피 죄수들이니 죽여도 슬퍼할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도미니크가 빵과 우유를 받아 들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었나 봅니다? 원래 하녀들도 잔뜩 데리고 왔었던 것 같은데.”

“인력이 재배치됐다. 너희 같은 죄수 놈들에겐 낭비였던 거지.”

“쳇, 예쁜 얼굴들 좀 구경하나 했더니만.”

마침내 도미니크가 빵을 입에 물었다. 우물우물, 빵을 맛있게 씹는 그를 보며 제이슨은 피식 웃었다.

‘잘 가라, 멍청한 죄수.’

“그런데…….”

도미니크가 갑자기 씹기를 멈췄다.

“빵 맛이 좀 이상한데?”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먹어라! 곰팡이가 좀 폈기로서니 죄수 주제에 불평하는 것이냐?”

“큭큭. 이봐, 제이슨이라고 했나?”

도미니크가 빙긋 웃었다.

“당신 다 뽀록났어.”

퉷! 도미니크가 제이슨을 향해 빵 조각을 뱉었다. 제이슨은 순간적으로 검을 뽑아 들어 그 빵 조각을 잘라 버렸다.

썩둑―!

날카롭게 잘린 빵이 바닥에 떨어졌다.

“배식 담당 하수인이 그런 훌륭한 칼 솜씨를 가지고 있을 리 있나. 게다가 빵에 독까지 바르고. 뭐냐, 너?”

“…어떻게 알았지?”

“암살자 노릇 오래 하긴 틀렸구만? 당신 검에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다고.”

“닦는다고 닦았는데 냄새가 남아 있었나……. 개코가 따로 없군.”

제이슨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검으로 썰어서 도미니크를 토막 내리라 다짐했다. 그가 다짐하는 것은 대부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그때 잠든 줄 알았던 죄수들이 몸을 일으켰다.

“크크큭, 이 자식 뭐야?”

“여긴 피스풀 지하 감옥이다. 우릴 얕보는 데도 정도가 있는 거 아니냐?”

“두 달 전 그 일 이후로 이런 재밌는 일은 또 간만인걸?”

“어이, 도미니크! 그 자식 혼 좀 내 줘! 파하하!”

우득. 제이슨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들 알고 있었나? 내가 평범한 배식 담당이 아니라는 걸?”

“피스풀 지하 감옥의 죄수들을 얕보지 마라. 뭐, 애초에 그린우드 가문에 잘못을 저질러서 수감된 놈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부터가 난센스지만.”

도미니크가 약 올리듯 창살에 기댔다.

“뭣 때문에 여길 오셨을까, 암살자 나리?”

“흑기사.”

“뭐?”

“암살자가 아니라 흑기사다. 칭호를 똑바로 해라.”

“아하, 흑기사!”

도미니크가 손뼉을 치며 실실 웃었다.

“그 개 새끼 집단!”

“…뭐라고?”

제이슨의 눈이 분노로 이글이글 불탔다. 도미니크는 아랑곳없이 답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그 개 새끼 집단. 나도 대충은 알지! 자존심도 없이, 자기 줏대도 없이 그냥 주인이 하라니까 멍멍 컹컹. 개 새끼랑 다를 게 뭐냐?”

“…후후. 후후후후후!”

제이슨은 억지로 웃더니 애검을 손에 꽉 쥐었다.

“너, 입을 잘못 놀렸어.”

“그래서, 개 새끼께서 뭣 때문에 여길 오셨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지. 나는 독방에 볼일이 있고, 독방 열쇠는 너희 죄수들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걸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마.”

물론 거짓말이었다. 목격자가 될 죄수들을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자 도미니크가 푸핫 웃었다.

“이야~ 몇 달 전 일이 생각나네. 재밌는데?”

“재미? 넌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나?”

“그래, 재밌어.”

도미니크가 미소를 지우고 말했다.

“근데 이걸 어쩌나? 나는 순순히 열쇠를 내어 드릴 생각이 없는데요, 개 새끼 나리.”

제이슨이 씨익 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면 너희 모두를 죽이고 열쇠를 빼앗아 주마.”

* * *

“하아.”

독방 안에 정좌하여 앉아 있던 아이젠은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심상(心想)에서 깼다.

물론 실제로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이 독방은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니까. 그러나 아이젠은 소리의 흐름을 들을 수 있었다. 지하 감옥의 벽을 타고, 독방의 바닥을 타고, 아이젠의 귓가에 소리가 진동으로 전해졌다.

쿵! 퍽! 싹둑! 으아악! 촤악! 뻐억! 쾅! 투콱! 와장창! 죽여! 사람 살려!

“…….”

한숨이 나오는구만. 이 감옥에서 시끄럽게 굴 일이 대체 뭐가 있다고. 단체로 쌈박질이라도 하는 건가?

덕분에 아이젠은 불쾌함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어떤 새끼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그는 모두를 닥치게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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