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6화 (16/201)

16화

쉐인은 아이젠이 펼친 세 손가락에 초점을 맞췄다. 마치 단숨에 저 손가락을 잘라 내 버리겠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구속구에서 풀려났다고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구속구는 오러를 차단하는 장치일 뿐. 네놈은 암만 좋게 봐 주려 해도 몸에 오러가 쌓여 있을 것 같지 않아.”

“첫째, 반말하지 마.”

“너 같은 새끼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때마다 난 항상 희열을 느끼곤 했지.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이더라? 난 네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살인을 저질러 왔어! 알겠냐, 이 개새끼야?!”

“둘째, 욕하지 마.”

“네까짓 놈이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나느으은!!”

팟! 쉐인이 또다시 아이젠을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흥분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차가운 정신을 유지했다.

‘아이젠의 공격은 주먹. 주먹은 검보다 길이가 짧다! 다시 말해 놈이 주먹을 뻗기 전에만 공격하면 돼!’

쐐액―!

쉐인은 아이젠을 향해 내리꽂히면서 참철검을 제 앞에 내세웠다. 아이젠이 제아무리 날랜 주먹의 소유자라도 참철검의 뒤에 있는 쉐인을 공격할 수는 없을 터.

그때 아이젠이 나머지 한 손가락을 접었다.

“셋째.”

투확!!

아이젠은 다시 세 손가락을 펼쳐 들고 쉐인을 향해 휘둘렀다.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지나고, 눈을 깜빡이니 아이젠은 어느새 쉐인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

쉐인은 몇 초 정도 서 있었다. 그리고 몇 걸음 더 앞으로 걷기도 했다. 하지만 몇 수를 헤아리는 순간 그의 온몸은 차가운 바닥과 맞닿아 있었다.

털썩!

“네가 가진 무기를 과신하지 마.”

“커허윽……!”

쉐인은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다.

어떻게 참철검 뒤에 있는 자신을 공격했지?

쉐인은 자신의 온몸에 마치 상어가 물어뜯고 간 듯 갈기갈기 자상이 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사신권, 교아(鮫牙)!’

교아는 결사신권을 2성의 경지까지 달성하면 사용할 수 있는 무술. 손가락을 세워 상대를 단숨에 찢어발기는 ‘권법’이며, 무서운 점은 상대가 피하든 피하지 않든 어쨌든 맞는 필중의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젠은 현재 결사신권 2성은커녕 1성도 달성하지 못했고, 몸에는 처음 이 소년에게 빙의했을 때 새벽에 잠깐 독을 빼고자 무혈신공을 운기함으로써 쌓인 아주 적은 양의 내공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젠도 무리한 무술을 사용한 반작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풀썩. 아이젠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공이 없는 자가 내공이 필요한 권법을 썼을 때 따르는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공이 없는 만큼 혈공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즉 생명을 담보로 내공을 혈도에서 착취하는 것.

‘혈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아이젠의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흘러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강둑을 개방한 것처럼 막을 틈도 없이 혈기가 몸 밖으로 새어 나갔다.

한번 몸에서 빠져나간 혈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을 정도로 형편없진 않은 아이젠이었다.

‘침착해, 아이젠. 한때 투신이라 불렸던 너야.’

아이젠은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호흡에 집중했다. 마치 죽은 것처럼 호흡의 빈도를 점점 낮춘다. 10초에 한 숨, 30초에 두 숨, 1분에 세 숨…….

“후우…….”

그렇게 심장의 고동을 서서히 멎게 한다. 이렇게 되면 생명의 기운은 더 이상 몸 밖으로 흘러 나가지 않는다. 심장이 멈추면 죽으므로, 몸에 있는 모든 혈기가 심장을 되살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심장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까지 혈기가 빠지기 전에 미리 몸을 가사 상태로 만들어 혈기를 붙잡아 두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아무리 헤엄친들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심장이라는 갈퀴에 잡힌 혈기도 다시는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억겁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흐읍!”

아이젠은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우! 후우! 후우! 쿨럭, 쿨럭!”

급하게 혈기를 모으느라 아이젠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말았다.

“아이고, 이 아까운 거.”

아이젠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 좀 불안정하긴 했지만 그의 몸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아무리 불가피한 상황이었다지만, 다시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 금단의 비기로구만.’

물론 혈공을 쓰지 않았으면 그대로 쉐인의 참철검에 당해 죽었겠으나…….

아이젠은 더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했다. 지나간 일을 복기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앞날을 바라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그였다.

“켈룩, 켈룩!”

엎어져 있던 쉐인이 기침했다. 기침할 때마다 어디가 쑤시는지 쉐인의 표정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크크크. 이 어린 자식, 좋은 승부였다…….”

“개새끼 소새끼 할 땐 언제고.”

“큭큭큭큭. 죽을 때 죽더라도 이름이라도 알고 가자. 날 쓰러뜨린 대단하신 사내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둬야지. 안 그래? 네 이름이 뭐지?”

이름? 아, 이 녀석은 계속 독방에 갇혀 있느라 내 이름을 몰랐겠구나.

아이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 주었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쉐인은 어딘가 익숙한 이름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깨달았다.

5년 전 자신이 죽이려 했던 모자의 이름. 그게 분명 어미 쪽이 클라우디아, 그리고 자식 쪽이…….

“아이젠 폰 그린우드?!”

“깜짝이야, 씨.”

쉐인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라면 자신이 이 피스풀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 원인이 아닌가! 클라우디아와 아이젠을 죽이려다가 실패한 쉐인은 테오발트라는 남자에게 붙잡혀 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었다.

“이런 개같은! 네놈만 아니었어도 내가 사람을 한 다스는 더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뭐? 아.”

그제야 아이젠은 머릿속 깊숙이 잠겨 있던 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 쉐인이란 남자가 자신과 어머니를 죽일 뻔했던 지난날의 조각이었다.

아이젠은 헛웃음을 지었다.

“뭔 개소리야, 이 자식아. 언젠 더는 사람을 죽이기 싫다고 독방에서 내보내지 말아 달라더니.”

“…….”

하긴 그렇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쉐인은 반박할 수 없어 다시 풀썩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젠은 그런 쉐인을 보며 생각했다.

‘팔팔한 거 보니 죽진 않겠네.’

그건 피스풀 지하 감옥 안에 있는 다른 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쉐인의 단칼에 당했다고 생각했던 죄수들 모두 끙끙 신음하는 소리를 내며 어쨌든 살아 있었다.

그래, 어쨌든 살아 있으면 된 것이다. 살아 있어야 분노도 하고 복수도 하는 법.

“이따 밥 주러 누가 오겠지. 그때 가서 치료들 받아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이젠은 쉐인의 혈도를 짚어 박살지를 찔러 넣었다.

투둑!

이렇게 해 두면 쉐인은 힘이 약한 하녀조차도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었다.

아이젠은 널브러져 있는 죄수들을 흘끔 보고는 마침내 독방 안에 들어섰다.

차박―

독방의 바닥은 차가웠다. 바깥보다 더 강도가 높은 철을 쓴 듯한 독방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젠은 독방을 둘러봤다. 크기는 대충 다섯 평 정도. 독방이라기엔 호화로울지도 모르겠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해골은 쉐인이 죽였다는 하수인이겠고, 반대쪽 구석에는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 인간답게는 생활할 수 있게끔 하는 구조물이었다.

그 외에 독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철 덩이로 둘러싸인 아무것도 없는 공간.

“바로 내가 원했던 공간이야.”

가로 다섯 보폭, 세로 다섯 보폭의 입방체. 아이젠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이곳에서 다시 시작이다.”

이곳이 바로 아이젠이 3개월간 무혈신공을 운공하고, 또 몸을 단련할 장소. 아이젠은 만족스레 웃으며 독방의 문을 닫았다.

끼이이이이―

쾅!

묵직한 소리를 내며 마침내 아이젠은 스스로를 다섯 평의 좁은 공간에 가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