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아이젠은 다시 한번 쉐인의 턱을 올려쳤다.
퍼벅!
그러나 쉐인은 왼손으로 아이젠의 주먹을 막았다.
“소용없―”
“결사신권, 박살(撲殺).”
“……!!”
주먹을 아래로 내린 아이젠은 그대로 다시 쉐인의 턱을 올려쳤다.
뻐억!!
턱이 결딴나는 소리와 함께 쉐인의 몸이 붕 떠올랐다.
“결사신권, 박살(撲殺)!”
아이젠은 봐주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쉐인의 턱을 또 한 번 올려쳤다.
빠지직!!
쉐인의 턱뼈가 으스러지는 감촉이 아이젠의 손에 와 닿았다.
으드득― 그와 동시에 아이젠의 약지와 소지 뼈가 부서졌다.
털썩!
쉐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오른손이 참철검을 놓치고 말았다.
가장 약한 급소라는 턱을 두 번이나 정통으로 맞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나.
“으크크크크…….”
쉐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쉐인은 실실 웃으며 참철검을 다시 꽉 쥐고 몸을 일으켰다.
아이젠은 주먹을 매만졌다. 부러진 약지와 소지가 안에서부터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다. 얼른 손을 쓰지 않으면 영영 불구가 될 터였다.
“뭘 쪼개.”
“후후흐흐흐!! 퉷!”
쉐인이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었다. 피가 잔뜩 섞여 있어 새빨간 침이었다.
“가렵다, 가려워! 모기가 물었나?!”
“피나 좀 닦고 말하지?”
“이 구속구만 없었어도 내 본래의 실력으로 겨룰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쉐인의 말에 아이젠은 제 구속구를 쳐다보았다. 아까 전 쉐인의 참철검에 의해 흠집이 난 자국이 보였다.
“구속구 핑계?”
“핑계가 아니야. 죄수들을 철창에 가둬 놓고도 구속구를 채우는 이유가 뭐일 거 같냐? 게다가 손을 뒤로 묶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 묶었잖아.”
그러게?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아이젠이 대답을 기다리자 쉐인이 말했다.
“이 구속구는 구속자가 오러와 마나를 사용할 수 없도록 흐름을 차단한다. 다시 말해 나도 지금 오러를 쓸 수 없는 몸이란 말씀이야. 이 구속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오러를 쓸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오러와 마나를 쓸 수 없다고?
“어, 그럼 안 되는데.”
그건 아이젠에겐 치명적이었다. 왜냐하면 아이젠이 애초에 이 감옥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무혈신공을 운공하기 위해서였다. 이 세계에서의 오러란 곧 내공. 이 구속구가 있다면 아이젠은 무혈신공을 단련할 수 없었다.
어찌한다. 짧은 고민 끝에 아이젠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쉐인.”
아이젠이 보는 것은 쉐인이 들고 있는 참철검이었다.
“독방에 갇혀 있던 놈이 너라서 다행이다.”
* * *
도미니크는 죽어 가는 와중에도 아이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으휴, 저 저 미친 새끼…….’
그는 아이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마치 죽길 바라는 듯이 쉐인에게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거침없는 몸놀림 좀 봐라. 저렇게 무작정 달려들다가 어디 한 군데 잘리고 말지.’
칼에 베이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전투의 전 자도 모르는 초짜나 할 법한 행동. 당연히 전자는 아닐 테니 아이젠은 후자였다.
저럴 줄 알았다면 열쇠 조각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
‘창만 있었어도 저런 놈쯤은 손쉽게 이겼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하소연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이젠의 말마따나 그는 맨주먹이었으니까. 도미니크가 2년간 옥살이를 하며 모은 식후 이쑤시개로 만든 봉으로도 맨주먹의 아이젠을 당해 낼 순 없었다.
‘쯧쯧.’
도미니크는 허망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마 다음에 눈을 뜰 때쯤이면 둘 중 하나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도미니크가 그새 죽어서 가게 된 지옥의 살풍경, 또는 아이젠의 죽음.
그러나 사실 아이젠은 당연히 죽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쉬익! 쐐액!
쉐인의 참철검이 날카롭게 휘둘릴 때마다 아이젠은 날랜 몸놀림으로 재빠르게 참철검의 궤도를 벗어났다. 쉐인은 묵직하고 쏜살같은 검귀였지만 그의 검이 향하는 길, 즉 ‘검로’는 너무나도 뻔했다.
‘직선.’
완벽하게 직선 궤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쉐인의 손동작만 자세히 살피면 검을 피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웠다.
“이잇, 이놈! 이 자식!”
점점 열이 오르는지 쉐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젠은 베일 듯 아슬아슬하게 베이지 않았다. 그 점이 쉐인을 점점 더 성질 뻗치게 했다.
쉐인을 흥분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아이젠이 바라는 것이었다.
‘와라.’
사람은 흥분하면 짐승과 같이 돌변한다. 아무리 냉정을 찾으려 해도 네발짐승처럼 뇌가 단순해지고 마는 것이다. 아이젠은 쉐인을 좀 더 약 올려 주기로 했다.
“야, 잘 싸우는 줄 알았더니 형편없네?”
“뭐라고오옷!”
부웅! 쉐인이 힘을 실어 휘두른 검을 아이젠은 살짝 허리를 굽히는 것만으로 피했다.
“이거 봐. 네 검은 내 털끝에도 닿지 못해. 그만 포기하지 그래? 지금 포기하면 봐주고.”
“웃기지 마! 햇병아리 주제에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나는 쉐인이야아아!”
부웅― 부웅―
공격이 점점 더 단순해졌다. 이젠 굳이 쉐인의 손을 보지 않고도 아이젠이 그의 검을 능히 피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쉐인의 팔뚝에 아로새겨진 핏줄이 점점 더 선명해져 곧 있으면 터질 것만 같았다.
아이젠이 다시 혓바닥을 놀렸다.
“그냥 봐준다니까? 내가 때려눕히기라도 할까 봐 그래? 안 그럴게. 진짜 약속.”
“으으으으아!! 날 어린애 취급 하지 마, 이 개자식아!!”
부웅!
“죽어 버려!”
쉐인의 검이 잔뜩 힘을 머금고 아이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그 검로를 느린 화면처럼 포착한 아이젠은 궤도를 정확히 계산했다. 그리고.
태앵―!
참철검의 진로 선상으로 구속구를 뻗었다.
“아니?!!”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은 아이젠도, 쉐인도 아닌 도미니크였다.
바닥에 엎드려 반쯤 시체가 되어 있던 도미니크는 전에 없이 놀랐다.
‘구속구를 잘랐다!! 어떻게 저런 기지를?!’
아이젠이 쉐인의 참철검을 이용해 제 구속구를 잘라 냈다. 조금만 방향이 엇나갔다면 아이젠은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둘 중 한쪽을 내줬어야 할 것이었다. 떠올린다고 해도 웬만한 담력으로는 실천에 옮기지 못할 전략.
‘그걸 고작 저 어린놈이 실행하다니!’
놀랍다! 정말이지 놀랍다. 설마 아이젠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였단 말인가?
쩌적―
아이젠의 양손을 묶고 있던 철로 된 구속구가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
쉐인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이젠은 갈라진 구속구를 비틀어 힘을 줬다. 그리고 양팔을 좌우로 쫙 펼쳐.
쩌적!
구속구를 완전히 박살 냈다.
뚜둑. 뚜둑.
아이젠의 손목이 유연하게 돌아갔다.
실제로 구속구에 묶여 있었던 건 겨우 한두 시간뿐이지만 관절에 남은 피로는 상당했다. 역시나 연약한 몸이었다.
‘얼른 쉐인을 처리하고, 독방에 들어가서 운기조식을 해야겠다.’
아이젠은 쉐인을 마주 보았다. 쉐인의 눈빛에서 당황한 기색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날 이용해 구속구를 자른 건가?”
“그래. 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고마워.”
“이 자식, 감히 날 우롱해?!”
“아니, 억울하네? 진짜 고마워서 고맙다고 말한 건데.”
아이젠은 부러진 오른손 약지와 소지를 접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뭐,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세 가지 경고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