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그렉의 파괴권은 글자 그대로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의 육중한 몸은 민첩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주먹에 담긴 위력만큼은 가히 제일권이라 부를 만했다. 단 한 방. 그것만으로도 아이젠 폰 그린우드를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리라.
그런데.
부웅! 부웅!
“헉! 헉!”
그렉의 주먹이 아이젠에게 닿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아이젠이 일부러 스치듯 피하는 걸 즐기고 있는 듯했다.
아이젠은 실제로 그러고 있었다.
‘주먹에 담긴 위력은 어마어마하지만 정작 그 덩치 때문에 너무 둔해. 역시 힘에만 치중하는 것도 좋지 않구나.’
아이젠이 이강철이던 시절 그는 그렉 같은 실책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근육을 키우는 데만 급급해 기민함과는 거리를 둬 버린 것이다. 위력만으로는 생사경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도, 즉 힘과 속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었다.
“허억, 허억, 이 얍삽한 새끼!”
“욕하지 말랬을 텐데.”
“너 같은 건 내 주먹에 한 방 맞기만 하면 바로 시체행이다! 얍삽한 몸놀림으로 주먹을 피하기만 하다니! 비겁한 놈!”
“엥? 자기가 느려서 못 때려 놓고 비겁하다고? 뱃살을 빼, 인마. 감옥에서 몸뚱어리 불려 뭐 하냐? 뒀다 국 끓여 먹냐?”
“죽어!!”
그렉이 최후의 힘을 짜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아이젠의 얼굴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젠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콱!
‘됐다!’
그러나 그건 그렉의 착각이었다. 아이젠의 코앞에서 멈춘 그렉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아이젠에게 가 닿지 못했다.
“어, 어떻게?!”
덜덜거리던 그렉의 주먹이 슬슬 왼쪽으로 빠졌다. 그제야 그 큰 주먹에 가려져 있던 아이젠의 손이 드러났다. 아이젠이 자신의 오른손을 그렉의 주먹에 살포시 얹는 것만으로 공격을 멈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크기로만 보자면 그렉과 아이젠의 주먹은 거의 여섯 배 차이가 났다. 근력으로 따지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일 터.
‘그런데 저 작은 주먹으로 내 주먹을 멈추다니?!’
그렉은 믿을 수 없었다. 파괴권을 연마해 온 자신의 지난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한 방 맞으면 바로 시체행이라고?”
“이… 자식……!”
“웬만해선 네 존심도 세워 줄 겸 그냥 한 대 맞아 주고 싶은데… 이런 힘의 분배가 엉망인 주먹엔 맞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네.”
아이젠의 몸은 확실히 형편없었다. 하지만 힘을 안배하는 데 있어서는 아이젠, 아니, 이강철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100의 힘이 있다면 100의 힘을 온전히 한곳에 집중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 근데 넌 100 중 90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어. 무식하게 손바닥 크기만 키워서 뭘 어쩔 건데?”
툭!
아이젠이 손을 놓았다. 그러자 그렉의 주먹이 다시 아이젠을 향해 날아들었고.
부웅―!
아이젠은 그 힘에 원심력을 더해 그렉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쿵!!
세상이 통째로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그렉은 그렇게 기절했다.
“결사신권에 관심 있으면 말해. 파괴권은 네 힘을 과신한 우둔한 결과물이다.”
아이젠은 그렉의 주머니에서 두 번째 열쇠 조각을 꺼냈다.
“자, 마지막은 누가 가지고 있지?”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아까 아이젠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딸기코가 되어 버린 수형 번호 103이었다.
쩔그렁―
그는 철창 밖으로 열쇠 조각을 툭 내던졌다.
“솔직히 삐쩍 말라서 이 정도면 내가 이길 수 있겠다 싶었는데… 포기다. 그린우드는 맨주먹으로도 잘 싸우는구나. 대단해.”
“해 보지도 않고 포기?”
“각자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거라며? 난 안 싸울 거야. 난 도미니크나 그렉보다도 약하거든. 네놈한테 쫄았다.”
“주제 파악을 잘하는 편이네.”
아이젠이 바닥에 떨어진 열쇠 조각을 주워 들자 103이 덧붙이듯 말했다.
“너보다는 감옥 고참이니 충고로서 말하지. 조심해라. 쉐인은 독방에 갇힌 지 5년이 넘었으니까. 지난 5년간 저 독방 문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고. 안에 있는 놈이 안 미치고 배기겠어?”
에이, 고작 5년 가지고 미치기야 하겠어.
아이젠은 대답하지 않았다.
“듣자 하니 쉐인은 자기가 나서서 독방에 갇힌 거래. 뭐, 나도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그래?”
안 물어봤는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이젠은 열쇠 조각들을 조립해 하나의 완성된 열쇠를 만들었다. 그리고 독방 앞에 가 섰다.
“수형 번호 103.”
“왜, 이제 와서 무섭냐?”
“아니. 아까부터 경고하고 싶었는데, 반말하지 말라고.”
“…….”
“그리고 걱정하지 마.”
절그럭―
끼이이―
“나도 나서서 갇히려는 거니까.”
마침내 독방 문이 열렸다.
* * *
쉐인이 처음 사람을 죽인 건 여덟 살 때였다. 불가피한 상황이라서, 또는 누가 시켜서 억지로 저지른 살인은 아니었다. 그저 그의 뇌가 외쳤다. ‘죽여라,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죽여라!’라고.
그렇게 쉐인이 죽인 것은 자신의 아버지였고, 그다음은 어머니였다. 설마하니 여덟 살짜리 아동이 제 부모를 죽였을 리 없다고 생각한 제국 경찰은 쉐인을 용의선상에 올리지도 않았고, 쉐인은 고모네 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도 쉐인은 고모부와 고모, 그리고 조카들을 모두 살해했다. 이듬해 보육원에 보내졌을 땐 보육원에 불을 질러 아이들을 모조리 죽였고, 제국 경찰들의 막사 내에서 보호를 받았을 땐 작은 날붙이 하나로 경찰들의 멱을 따고 다녔다.
그제야 쉐인은 생사를 불문하고 현상금 2만 골드가 걸린 수배범이 되었다. 그때 쉐인의 나이가 겨우 열세 살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어느 마술사 밑에서 자라난 쉐인은, 그곳에서 사사한 마술로 더 유능하게 살인을 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열여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죽인 사람의 숫자를 헤아리기를 그만두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쉐인은 모시던 마술사에게서 오러 사용법을 전수받았다. 기사들이나 쓴다는 오러를 마술사가 어떻게 익히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쉐인은 그 오러를 사용해 마술사를 죽이고 자기가 마술단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쉐인은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그는 마술 공연장에 찾아온 손님들 중 죽여 버리고 싶은 사람을 물색했다.
그렇게 눈에 띈 것은 한 모자(母子)였다. 공연 중에 이름을 물으니 클라우디아와 그의 아들인 아이젠이라고 했다. 아들 쪽은 이제 겨우 열 살 열한 살쯤 되었을까. 뼈밖에 없어 칼질하는 맛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어미 쪽은 살이 오동통하니 써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아쉽게도 쉐인은 살인에 성공하지 못했다. 갑자기 클라우디아의 지아비라는 남자가 찾아와 쉐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쉐인은 피스풀 지하 감옥 깊은 곳에 갇혔고, 자청하여 독방에 갇혔다. 독방에 갇힐 때 쉐인이 했던 말을 당시 그린우드를 섬기던 하수인은 회고했다.
‘제발 날 꺼내지 말아 줘. 내 안에 악마가 살아.’
* * *
쿵― 끼이이―
아이젠은 독방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무언가에 덜걱 걸려서 문이 열리다 말았다.
“뭐야.”
힘을 줘 잡아당겨 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독방 안에 걸린 걸쇠 너머로 누군가가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아이젠은 짐작하고 건너편에 있는 자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쉐인이냐?”
“열지 마…….”
“뭐라고? 잘 안 들려.”
“열지 말라고…….”
“안 돼. 이 독방에 볼일이 있거든. 좀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폐관 하게 나오세요, 얼른.
반쯤만 보이던 쉐인의 눈이 기묘하게 빛났다. 아이젠은 어떤 사람들이 이런 눈을 가지고 있는지 알았다.
‘살인마인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최소 일백이 넘는 살육을 저지르지 않은 한 이런 눈을 가질 수는 없었다.
“제발 열지 마……. 난 이제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아. 열면 널 죽이고 말 거라고…….”
“…….”
쉐인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스스로를 독방에 가뒀다고 했으니 뭔가 사연이 있는 거겠지.
근데 네게 무슨 사정이 있든 난 그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