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아이젠은 떨어져 내리는 봉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내려오는 각도를 정확히 계산해.
팡!
몸을 비틀어 봉을 피했다. 도미니크의 봉은 보람도 없이 피스풀 지하 감옥의 바닥에 흠집을 남겼다.
도미니크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한번 봉을 뻗었다. 순간 봉 끝이 마치 창처럼 날카롭게 일그러지는 듯 보였다.
“보여 주지! 필살, 마창…….”
다음 순간 아이젠은 지체하지 않고 발돋움해 도미니크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도미니크의 오른손을 잡아…….
‘이건 좀 아플 거다.’
꺾었다.
“아아악!”
툭― 도미니크는 고통 때문에 봉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이거 안 놔, 이 개새끼야!”
“두 가지 경고하지. 첫째, 반말하지 마. 둘째, 욕하지 마.”
“이 X발 놈이 뭐라고 지껄, 아아악!!”
도미니크가 욕을 하자 아이젠은 주저하지 않고 다시 그의 손을 꺾었다.
“평생 창 못 쥐고 싶어? 그게 소원이야? 그럼 그렇게 하고.”
“으, 으으으. 아, 아닙니다……!”
결국 도미니크가 굴복하자 아이젠은 그의 손을 놔줬다.
팩! 하고 아이젠의 손을 뿌리친 도미니크는 제 손을 움켜쥐었다. 아이젠이 잡았던 부위에 벌써 시퍼렇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제기랄, 대체 저 작은 몸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거지?’
필살의 기술을 선보이지도 못하다니……. 의문이 들었으나 제기할 수는 없었다. 봉을 놓은 도미니크는 아이젠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가 없는 그는 나약했다.
“쳇, 제대로 된 창만 있었어도 네놈 따윈!”
“제대로 된 창?”
아이젠이 도미니크에게 다가섰다. 도미니크는 위세에 밀려 뒤로 물러서다가 힘이 풀려 무릎을 꿇어 버렸다.
“제대로 된 창이 있었다면, 제대로 된 무기가 있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거냐? 에이, 설마. 난 맨손인데?”
“…….”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좀 대지 마라.”
“우, 웃기지 마라, 이 자식…….”
“어어? 또 반말하네?”
도미니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 작은 공자의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다는 걸.
아이젠이 손을 내밀었다.
“패배를 받아들인 표정이군. 그럼 내놔.”
“뭐라고? …요?”
“열쇠 조각.”
그제야 도미니크는 죄수복 안주머니에서 열쇠 조각을 꺼내 아이젠에게 던졌다.
아이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음. 또 열쇠 조각 가지고 있는 사람?”
장내가 조용해졌다. 도미니크는 이곳 피스풀 지하 감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그런 남자가 키 작고 왜소한 저 소년에게 당했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그러던 중 구석방에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상대하지.”
육중한 체구의 그는 이 감옥 안에서도 빵빵한 근육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는 이제 마흔 줄 정도에 돌입한 것으로 보였다.
‘수형 번호 067.’
이곳 피스풀 지하 감옥은 들어온 순서대로 수형 번호를 매긴다. 도미니크의 수형 번호가 096이니 067이면 그보다 고참이라는 얘기가 된다.
067이 주머니에서 열쇠 조각을 꺼내 보이자 아이젠은 067의 방 문을 열어 주었다.
“너도 이름으로 불러 주길 원하겠지?”
“그렉이다. 저기 넘어져 있는 도미니크와 마찬가지로 테오발트의 암살 미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
그렉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미약한 어둠에 가려져 있던 그의 몸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왼손 오른손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왼손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오른손이 비대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대충 평균보다 서너 배는 큰 치수의 오른손을 가진 그렉은 아이젠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주먹을 빙빙 돌렸다.
“이상하게 볼 것 없다. 나는 파괴권을 사용하거든.”
파괴권? 뭔지는 몰라도 되게 오글거리는 이름이었다. 유아기에 지은 이름인가?
‘룡피금강불침 같네. 짜증 나는 놈 얼굴이 떠올랐어.’
천마 도강문의 얼굴을 떠올려 버린 아이젠은 왠지 그렉이 싫어졌다.
그렉이 그 비대한 오른손으로 아이젠의 머리통을 슥 잡았다. 주먹과 머리의 사이즈가 거의 비슷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오히려 주먹 쪽이 더 컸다.
“그린우드치곤 주먹깨나 쓰는 것 같은데, 내 오른손 앞에서는 주름 잡지 않았으면 한다. 넌 주먹질의 기본도 안 돼 있어.”
“내가 기본도 안 돼 있다고? …뭘 보고 그렇게 느낀 거지?”
아이젠은 잠자코 들어 보기로 했다.
“주먹은 그렇게 엉성하게 쥐는 게 아니거든. 온 힘을 다해 꽉! 쥐어야지. 보여 줄까? 아, 지금 내가 주먹을 움켜쥐면 네 머리통이 터져서 볼 수가 없겠구나?”
그러자 죄수들이 환호했다.
“크하핫, 그렉! 저놈을 짓이겨 버려!”
“도미니크는 뻗어 버렸다! 그렉 네가 혼 좀 내 주라고!”
“큭큭, 이거 이거,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해서 흥미도 안 생기는데! 와하하!”
하나도 안 웃긴데 악당들은 뭐가 좋다고 항상 처웃는 걸까?
“…이름이 그렉이라고 했지?”
“그렇다, 아이젠. 그린우드의 어린 도련님아.”
“넌 입으로 싸우냐?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뭐라고?”
“두 가지 경고하지. 첫째, 반말하지 마. 둘째, 욕하지 마.”
“욕은 아직 안 했…….”
파박!
아이젠이 제 머리를 붙잡고 있는 그렉의 오른손에 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결사신권, 박살지(撲殺指).’
박살의 파괴 범위를 점으로 압축하는 응용기였다. 박살과 마찬가지로 아직 무혈신공의 힘이 없어 흉내를 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윽?!”
흉내라도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는 있었다.
주먹을 거둔 그렉은 출혈이 퍼지는 오른손을 보고 일순 당황했으나, 그도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이었다. 그렉은 당혹감을 거두고 곧바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느려.’
아이젠은 가볍게 피했다. 도미니크 때보다 공격이 더 느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렉의 주먹은 멈출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부웅! 부웅! 부웅! 부웅!
그야말로 쇄도! 그렉은 아이젠을 향해 계속해서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마침내 복도 끝에 다다라서 아이젠이 더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그렉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뒤져라!”
그러나 아이젠은 바닥으로 몸을 바짝 붙여 주먹을 피했다. 그렉의 주먹이 굳건한 철벽을 강타했다.
떠엉―!
강철이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아이젠은 어느새 그렉의 뒤로 이동했다.
“꽉 쥔 주먹으로 하는 주먹질은 그게 다인가?”
“이게!”
부웅! 부웅! 부웅! 부웅!
그렉은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그야말로 멧돼지 같은 쇄도였다. 아이젠은 어느새 반대쪽 복도에 다다랐다. 그렉이 다시 한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떠엉―!
아이젠은 방금 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또 주먹을 피했다. 그게 세 번, 또 뒤이어 네 번째 반복되자.
“헉, 헉! 이놈이……! 날 조롱하는 거냐?!”
이쯤 되니 그렉은 아이젠이 자신을 갖고 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야, 무섭다. 역시 기본기에 충실한 주먹이라 그런가, 한 대 맞으면 죽을까 봐 가까이 가지도 못하겠는데?”
“닥쳐! 이 서자 새끼!”
“네가 날 서자라고 부를 자격이나 있냐, 인마? 생각 좀 하고 말해라.”
그렉이 또 또 주먹을 휘둘렀다.
‘한 대, 한 대만 때리면 돼!’
아이젠이 자신을 얕보고 있다는 건 그렉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방심을 이용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