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저 밑바닥으로 】
처벅처벅.
신발도 없이 지하 감옥에 들어선지라 아이젠의 발바닥은 차가운 철 바닥에 쩍쩍 붙었다. 지하 감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죄수에게는 발을 보호할 신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가문의 직계인 아이젠이라 해도.
생각보다 폭이 넓은 복도 양옆으로는 쇠창살로 출입이 막힌 다인실 감옥들이 있었다.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아이젠은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독방은 어딨지?’
폐관 수련을 하려면 그곳이 필요했다. 가로 길이가 다섯 보폭, 세로 길이가 다섯 보폭 정도인 작은 정육면체 모양의 입방체 방이.
복도 중앙쯤 걸어갔을 때 앞서가며 안내하던 하수인이 아이젠을 돌아보았다.
“아이젠 도련님, 이 옷을 입으십시오.”
하수인이 내민 옷은 죄수복이었다. 가슴팍에 125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아이젠이 옷을 다 갈아입자 하수인이 한쪽 방을 가리켰다.
“여기가 도련님께서 쓰실 방입니다.”
가리킨 쪽엔 이미 덩치 큰 남자 셋이 수감돼 있어 북적북적해 보였다. 그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니, 왜 우리 방이야!”
“이미 꽉 찼다고!”
“조용!”
탱― 탱― 하수인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으로 창살을 두들겨 죄수들을 진정시켰다. 하수인이 다시 아이젠을 돌아봤다.
“이곳에서 3개월간 생활하시게 될 겁니다. 이미 두 번 수감되어 보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그 말을 하자마자 하수인은 곧장 후회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응?”
뭘 잘못했다는 거야, 이 녀석은 또.
아이젠은 대꾸하기를 포기하고 말을 돌렸다.
“됐고, 그냥 물어보는 건데 혹시 독방은 어디 있지?”
“독방은 복도 끝에 있습니다. 지금은 위험도 1급의 수형자가 수감되어 있고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하고 있죠.”
하수인이 설명을 잇는 동안 아이젠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슬쩍 고개를 옆으로 빼 복도 끝에 있다는 독방을 바라보았다.
독방은 다른 방들과는 달랐다. 엄숙한 강철 문이 출입을 막고 있었으며, 회를 칠한 듯한 벽으로 이루어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오직 철문 밑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식판만 드나들 수 있었다.
‘완벽해.’
구멍은 여닫을 수 있는 구조라 대강 보니 소음도 차단될 듯했다. 아이젠이 무혈신공을 수련하는 데는 저기가 최적의 장소일 것이었다.
마침내 설명을 마친 하수인이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아이젠이 3개월간 먹고 잘 방의 문을 열어 주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얌전히 방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으나.
‘안 되지, 안 돼.’
아이젠이 자기가 세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었다.
“저기.”
“네, 도련님.”
문을 열려던 하수인이 동작을 멈추고 아이젠을 돌아봤다.
“넌 그린우드 가문의 하수인이지?”
“예, 그렇습니다.”
“난 그린우드의 핏줄이니까 말하자면 네 주인.”
“물론 그렇습니다, 도련님.”
아이젠은 말을 마친 뒤 양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손을 꽉 쥐었다.
우두둑― 우두두둑―
뼈마디가 뒤틀리며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한스를 때리느라 부러졌던 아이젠의 새끼손가락이 제자리를 찾았다. 뼈는 여전히 부러져 있었지만 어쨌든 제자리를 되찾았다. 하수인은 그걸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자기가 다 아픈 느낌이었다.
아이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가령 내가 널 기절시키고 네가 가진 열쇠를 빼앗으면 어떻게 되지?”
“…예?”
“괜히 네가 벌을 받는 건 아니지? 그럼 좀 미안할 것 같아서.”
하수인은 피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서, 설마 도련님…….”
아이젠이 지그시 눈을 감고 묵묵히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제길!”
하수인은 다급하게 검을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채앵―!
검 손잡이를 잡은 하수인의 오른손을 아이젠이 발로 짓밟아 검을 못 뽑게 막기 전까진.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
“너무 원망하진 마라.”
퍽!
아이젠은 손날로 하수인의 뒷덜미를 쳐 기절시켰다. 손이 구속구로 묶여 있어 불가피하게 양손으로 당수를 갈겼다.
“…….”
잠시 고요가 흘렀다. 이 피스풀 지하 감옥에 수감된 수형자는 약 서른 명. 그들이 모두 깨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속삭이는 말을 아이젠은 들을 수 있었다.
“방금 뭐였지?”
“아이젠이 부하를 쓰러뜨렸다.”
“아이젠이라고 했어?”
“아이젠 폰 그린우드? 여기 이미 두 번이나 수감됐다던?”
“X발! 그린우드의 핏줄이라고?!”
“어딨어? 찢어 죽여 버려야 하는데!”
하나둘씩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아이젠은 반응하지 않고 천천히 하수인의 옆에 떨어져 있던 열쇠 꾸러미를 주워 들었다.
짤랑짤랑―
열쇠는 한눈에 봐도 이곳의 방을 모두 열 수 있을 만큼 많았다. 그걸 보는 죄수들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아이젠은 열쇠 꾸러미를 흔들며 독방 앞으로 다가섰다.
“음,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리고 열쇠를 하나씩 독방 문에 꽂고 돌려 봤다. 그런데 모든 열쇠를 넣고 돌려 봐도 독방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그 꾸러미로는 독방 문 못 열어!”
아이젠은 목소리를 낸 죄수에게 다가갔다. 그의 옷에는 103이라는 수형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럼 어떻게 열지?”
“그 전에 질문이 있다. 왜 독방 문을 열려고 하는 건데?”
“저 방에 볼일이 있어서.”
“쉐인이 순순히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쉐인. 그게 바로 독방에 갇혀 있는 수형자의 이름인 듯했다. 위험도 1급이라는.
“순순히 안 나오면 강제로 나오게 할 건데.”
“독방을 열려면 특수한 열쇠가 필요해.”
“어디서 구하지?”
“내가 호구냐? 물어보는 대로 대답해 주게. 알려 주면 뭘 줄 건데?”
“살려 줄게.”
“뭐라고?”
103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엇차.”
퍽!
아이젠은 창살 틈으로 주먹을 집어넣어 103의 코를 때려 주었다. 아이젠의 주먹부터 팔뚝까지가 너무나 얇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으헉!”
103이 제 코를 부여잡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의 코에서 후드득 피가 떨어져 내렸다.
“이… 개새끼가!!”
103은 창살 틈으로 팔을 빼려 했지만 그의 팔뚝이 너무 두꺼워서 불가능했다.
아이젠은 약 올리듯 웃었다.
“딸기코가 됐네?”
“죽여 버린다, 이 X발 새끼야!!”
“그러니까 진작 말했으면 좋았잖아. 한 번만 더 묻는다. 독방 문을 어떻게 열지?”
한참을 씩씩대던 103은 주변 죄수들이 말리자 겨우 진정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여기 스물여덟 명의 죄수 중에 세 명이 독방 열쇠 조각을 가지고 있어. 그걸 조립해야만 독방 문을 열 수 있다.”
“뭐야? 열쇠가 죄수들한테 있다고?”
“그래.”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방법으로만 열 수 있게 만들어 놨대?”
“너처럼 열쇠를 훔치는 놈이 나타나도 독방만은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겠지.”
“아.”
그렇구나. 아이젠은 납득했다.
“머리 좀 썼는데?”
“후후, 이제 알겠냐, 이 멍청아?”
왜 네가 뿌듯해하냐?
아이젠은 묻고 싶은 걸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