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 *
탕―
아이젠이 게오르크의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도련님!”
모니카가 불쑥 나타나 아이젠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잇, 깜짝이야.”
이런 게 곤란하다. 아직 무혈신공을 배우지 않아 기감을 펼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젠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다가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무혈신공을 어서 배워야 할 텐데.
‘빨리 폐관에 들어야겠어.’
“괜찮으세요, 도련님? 어디 해코지 안 당하셨어요?”
“내가 해코지를 왜 당해?”
“게오르크 공자님의 하수인인 데릭 기사님을 해치셨으니까요!”
“누가 들으면 내가 데릭의 손모가지라도 자른 줄 알겠네. 고귀하신 기사님 몸엔 상처 하나 안 냈거든?”
“그래도요. 그래서, 뭐래요?”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네 상상에 맡길게.”
복도를 걸으며 아이젠이 고민한 것은 지하 감옥에 갇히는 방법이었다. 16년간 살아오면서 온갖 패악질을 부렸을 텐데도 아이젠은 겨우 두 번밖에 수감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웬만한 망나니짓으로는 감옥에 갇히지 않는다는 건데.’
옛일을 되짚어 보면 그 이유가 떠오를 법도 한데, 이상하게 안개라도 낀 것처럼 기억이 희미했다. 이강철이었던 전생을 깨우치면서 아이젠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 몇 개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불편하네.’
아이젠은 슬쩍 뒤로 돌아 모니카에게 물었다.
“모니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러는데… 내가 지하 감옥에 왜 갇혔었지?”
“그게… 첫째 번에는 하인의 몸에 발길질을 해서 멍이 들게 하셨기 때문이고, 둘째 번에는 각목으로 하인의 허리를 쳐 박살 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야, 이거 아주 미친 새끼 아냐?
그런데 미친 새끼라고는 해도 뭔가 패악질의 수준이 그렇게 높다고 볼 수는 없었다. 요는 두 경우 다 자기 하수인을 괴롭혀서 감옥에 갇혔다는 건데, 그건 아이젠이 평소에도 많이 하고 있는 일 아닌가.
‘아, 물론 원래의 내가. 지금의 나 말고.’
아이젠은 의문이 들어서 물었다.
“그 정도는 평소에도 많이 하는 짓인데… 왜 특히 그 두 경우에만 내가 감옥에 갇혔을까?”
“그, 글쎄요……. 항상 사고가 터진 뒤 가주님과 독대 후 수감되셨는데,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까지는 저도 잘……. 도련님께서 가장 잘 아시지 않을까요?”
모르겠는데. 아이젠의 머릿속에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거라곤 가주가 얼굴이 굉장히 험상궂은 노인네라는 것 정도.
그때였다.
“야!”
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이젠이 아는 얼굴이 서 있었다.
‘어, 저 자식은 분명히…….’
그린우드의 셋째이며 아이젠보다 세 살 연상. 내년에 성인식을 앞뒀지만 아직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아이젠과는 다른 의미의 망나니.
‘한스 폰 그린우드.’
아이젠의 둘째 형이었다. 그는 얼굴에 ‘나 장난꾼이오’라고 써 붙여 놓은 듯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한스가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아이젠에게 걸어왔다. 키는 아이젠과 비슷했지만 더 마른 편이었다.
“너! 네가 뭔데 감히 게오르크 형님 집무실에서 나와? 네까짓 게 뭔데 감히!”
아이씨. 이런 유형이었지, 참. 괜히 시비 걸어서 빡치게 하는 유형 말이다.
아이젠은 대충 분위기 좀 맞춰 준 뒤 한스를 털어 내기로 했다.
“평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지요, 한스 형님.”
“응? 어, 그래.”
“게오르크 공자님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가 좀. 직접 물어보시죠?”
한스는 우물쭈물했다. 척 보니 게오르크를 존경하지만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난 네깟 놈이 게오르크 형님과 무슨 말을 나눴는지 알아야겠다! 네 입을 통해서! 말해 봐!”
이 자식은 말투가 왜 이러지? 열아홉 살 맞아? 아홉 살 아니고?
“아니, 뭐, 굳이 제 입으로?”
“이 자식! 참철검술도 못 쓰는 주제에 까불지 마라! 네가 검을 쥐지도 못할 동안 난 참철검술 2성을 달성했다고!”
갑자기 검술 얘기는 또 왜 나와? 네 똥 굵다, 인마.
할 말 없으면 욕을 하는 중원 길바닥의 낭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때마다 얼굴에 주먹 한 방씩 날려 주면 낭인들은 영원히 조용해지곤 했다.
“네, 대단한 검술을 알고 계셔서 좋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아이젠이 대충 무시하고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뒤쪽에서 한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빡―!
“……?!”
아이젠의 뒤통수를 제 검의 무딘 면으로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이 새끼가 처돌았나.’
아이젠은 누가 자기 뒤통수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했다. 하긴 누군들 좋아하겠느냐마는. 게다가 이건 손도 아니고 검이잖아? 날붙이다.
“이 자식! 감히 서자에 불과한 네가 날 무시…….”
뻑!
한스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젠이 주먹으로 한스의 얼굴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당탕!
“꺄악!”
옆에 서 있던 모니카가 화들짝 놀란 이유는 한스가 복도를 반만큼이나 날아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련님, 손이!!”
‘엥, 부러졌어?’
한스의 얼굴을 날린 아이젠의 새끼손가락이 달랑거렸기 때문이었다.
약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허약 체질이었을 줄이야. 주먹질 한 방에 손가락이 덜렁덜렁?
“아.”
그와 동시에 아이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왜 지난 두 번의 폭행에서만 자신이 수감되었는지.
‘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이젠의 취미는 칼로 하수인들의 몸에 상처를 내고 즐기는 것. ‘칼로’.
칼로는 아무리 험한 짓을 해 댄들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두 번 발과 각목을 사용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지하 감옥에 수감됐다. 그러니까 검을 쓰지 않고 폭행을 했기 때문에 지하 감옥에 갔다.
‘데릭 때는?’
기사 데릭과의 결투 때 아이젠은 그를 한 대도 때리지 않았다. 모니카의 손을 빌려 뺨을 때리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젠 자신의 몸으로는 한 대도 때리지 않았었지. 그건 곧 다시 말해서…….
“으아아악! 아이젠 이 자식, 감히 날 주먹으로 때렸겠다?! 코피 나잖아! 가주님께 다 말할 거다!! 다 발고할 거다!!”
배를 하늘로 향하고 넘어져 있던 한스가 엉거주춤하며 제 검을 뽑아 들려 했다. 그러나 자세가 안 나와서 낑낑거리기만 했다.
아이젠은 그런 한스의 얼굴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야, 잘됐다. 너 좀 맞을까?”
“뭐, 뭐라고?”
폐관 수련 하러 지하 감옥에 직빵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았다.
* * *
‘무릎 아프네.’
사태는 아이젠의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신속하게.
아이젠은 곧장 가문 원로들의 명에 의해 가주실에 끌려가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리고 약 두어 시간 정도 계속 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다.
가주 테오발트는 저택 내에 없었다. 탄탈리스 제국은 현재 전쟁 중이라 최전선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고, 그사이 아이젠은 도가니가 나갈 뻔했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가주 테오발트의 묵직한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가주실은 마치 인외마경처럼 어두컴컴했다. 그 탓에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가주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필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이젠이 낮은 목소리로 부름에 응했다.
“예, 가주님.”
“이곳 그린우드 참철검가에서 네가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단 하나, 검이 아닌 것으로 폭력을 휘둘렀을 때 빼고는 말이다.”
“예.”
아이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 테오발트의 찌르는 듯한 내기가 칼날처럼 몸에 박히는 듯했지만 생각보다 참을 만했다.
물론 테오발트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힘을 약하게 발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가 힘을 제대로 발현했다간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이젠의 몸은 녹아 버릴지도 몰랐다.
“지난 두 번의 옥살이로는 부족했느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