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7화 (7/201)

7화

“도, 도련님, 어찌 부르셨습니까.”

“데릭. 모니카에게 사죄해라.”

“……!”

데릭의 표정이 구겨졌다.

“너는 아까 내 재산인 모니카에게 손을 댄 것으로도 모자라 모욕적인 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죄해.”

“기, 기사인 제가… 천민 따위에게, 노예 따위에게 사죄하란 말씀입니까?”

“왜, 싫어? 그럼 하지 마. 아까 네 입으로 말했지? 결투는 어느 한쪽이 죽거나 승복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난 네 항복을 승복할 생각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결투하자.”

“아니…….”

데릭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 이상 아이젠과 결투하는 건 사양이었다. 결국 데릭은 모니카를 향해 굴욕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미, 미안하다, 모니카.”

“예? 아……. 예에.”

모니카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니카, 그건 사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용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예? 그럼 어떻게 해야…….”

“이렇게.”

아이젠은 모니카의 오른손을 덥석 붙잡고는.

짝―!

냅다 데릭의 뺨을 후려쳤다. 데릭은 그 반동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크윽!”

“꺄악! 도, 도련님!”

“눈에는 눈, 뺨에는 뺨이지. 이것으로 용서했다.”

사실 자신에게 말을 놓은 것에 대해서도 사죄를 받고 싶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러나 데릭의 눈은 서슬 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아이젠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옆에 선 모니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런 꼴을 당하는 건 다 이년 때문이잖아. 이 노예 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야.”

“…예?”

“어디 보냐?”

“그, 그것이…….”

데릭이 우물쭈물하자 아이젠은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눈깔 이쁘게 떠, 이 개새끼야. 확 쑤셔 버릴라.”

“윽,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한 가운데.

“거기 무슨 일이냐!”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히익!”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데릭은 고개를 조아렸다.

“게,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린우드 가문의 첫째 공자,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아이젠, 그리고 데릭. 이게 무슨 소란이지?”

바로 아이젠의 큰형이었다.

* * *

“이렇게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아이젠.”

이곳은 그린우드 저택의 5층, 게오르크의 집무실.

“네, 첫째 공자님.”

아이젠이 유순한 말투로 대답했다. 데릭이 아이젠에게 짜증 나게 군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게오르크와는 별개의 일이었다. 데릭의 주인인 그에게 신경질을 낼 수는 없는 노릇.

게오르크가 하하 웃었다.

“공자님이라니. 그냥 편하게 큰형님이라고 부르래도.”

“이게 더 편합니다, 공자님.”

“그래? 네가 그렇다면 뭐…….”

게오르크의 말을 흘린 아이젠은 아까부터 그의 옆에 엎어져 있는 두 남자를 슬쩍 보았다. 아니, 그들은 엎어져 있다기보단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 짐작이 맞는다. 이 두 사람은 죽은 자들이다.”

“…집무실을 시체로 장식하는 취미가 있으신 건 아닐 테고요.”

“물론 그런 악취미는 없지. 이 두 남자는 너를 독살하려 했던 자들이다.”

“……!”

아이젠은 두 가지 지점에서 놀랐다. 첫째로는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자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 둘째로는 자신이 독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게오르크가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사실.

이번에는 아이젠이 먼저 선수를 쳤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독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우연히. 저택 뒤를 얼쩡거리던 두 남자를 붙잡아 추궁하니 아이젠 너를 독살하려고 했다더구나.”

“그래서 죽인 겁니까?”

“아니다. 이들이 어금니에 감춰 둔 독으로 갑자기 자결했다.”

게오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이젠, 네가 가문의 입지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깨우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살해의 위협조차 묵인해선 안 돼.”

사실은 묵인한 게 아니라 누가 배후인지 직접 알아내려 한 거였는데.

아이젠은 입이 썼다.

‘갑자기 독으로 자결했다는 건 어딘가 꺼림칙해.’

어쩌면 이 게오르크라는 작자가 아이젠을 죽이려 한 장본인일지도 몰랐다. 자기가 지시해 놓고 실패하자 시치미 떼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증거 없는 추궁은 금물. 아이젠은 게오르크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턴 꼭 보고하겠습니다, 첫째 공자님.”

“오냐. 아 참, 얘기 들었다. 데릭이 하극상을 했다고?”

아까 저택의 앞마당에서 있었던 일을 게오르크도 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젠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데릭의 모습이 어찌나 형편없던지.

“하극상이라기보다는… 결투를 좀 했습니다.”

“결투의 원인이 하극상이었지. 잘했다. 데릭이 요즘 자주 건방을 떤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더구나. 이번 기회에 데릭은 파면했다.”

‘파면?’

기사라고 하지 않았나? 기사는 제국 황제의 명을 받고 임명되는 것. 공작 가문의 자제라곤 해도 함부로 파면할 수는 없을 텐데.

아이젠이 묻지도 않았는데 게오르크가 알아서 대답해 줬다.

“데릭이 기사 신분이라고는 해도 평기사였다. 내 권한으로 충분히 파면이 가능하지.”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데릭 이야기는 이걸로 끝. 증거 없는 추궁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의심해 봄 직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아이젠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이젠은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지고자 했다.

“데릭과 겨루며 알았습니다. 가문의 검술이라는 것도 별 볼 일 없던데요. 제가 비록 단전이 닫혀 있어 검을 배우진 못하지만, 그 정도 수준이라면 안 배워도 될 것 같았습니다.”

게오르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검어졌다.

게오르크는 점잖고 인자한 인상을 가졌다. 아이젠은 원래부터 심사가 꼬인 사람인지라 이런 인물만 보면 그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어 했다.

‘게오르크 같은 유형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 자존심을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가면은 금세 깨져 버린다. 그를 증명하듯 바로 게오르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검을 쥐지도 못하는 팔푼이인 네놈이 할 말이냐?”

좀 전과 비교했을 때 말투가 거슬릴 정도로 사나워졌다.

“데릭은 고작 1성의 검사였다. 그리고 가문의 검술을 배우긴 했지만 ‘참철검술’은 아니었지. 참철검술은 그린우드 직계만이 배울 수 있으니까. 너나 나처럼 말이다.”

“…그렇지요.”

“참철검술은 그린우드 본가만의 고유 검법. 그린우드 성씨가 아닌 자들이 배우는 검술은 참철검술의 하위 검법인 ‘파생검술’에 불과하다. 네가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 해도 그 점을 잊지는 마라.”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그린우드 가문은 참철검가라는 이명이 있을 만큼 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런 가문의 비술을 아무나 익힐 수 있어서야 안 되겠지.

‘게오르크의 얼굴은…….’

어느새 그의 얼굴은 다시 온화함을 되찾은 뒤였다. 가면을 벗겨 내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단계에서 게오르크가 날 독살하려 한 배후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의외로 게오르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머리 운운한 건 미안하구나. 나도 참, 말이 쉽게 거칠어져.”

“네, 뭐.”

“아이젠, 너는 널 독살하려 한 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가 아무리 가문에서 망나니짓을 하고 다닌다 하더라도 일개 낭인 둘이 너의 암살을 공모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주한 사람이 있을 거야.”

“글쎄요.”

“독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지? 왜지?”

여기서 솔직하게 대답해도 괜찮을까?

“누가 적인지 모르니까요.”

“그 말은… 설마 가문 내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냐?”

여기서 ‘가문 내’라는 것은 단순히 하인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었다. 그린우드 가문의 형제자매 중에 범인이 있으리라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이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첫째 공자님을 포함해서.”

그러자 게오르크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의 손이 빠르게 제 허리춤에 있는 검 손잡이로 날아들더니.

부웅―!

그대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칼날은 아이젠의 코앞에 멈춰 섰다. 하지만 아이젠은 딱히 쫄지 않았다. 물러서지도 않았다. 게오르크의 검에는 살기가 없었으니까.

“아이젠 너… 눈빛이 좀 달라진 것 같구나.”

이크, 너무 고개를 빳빳이 세웠나?

아이젠은 겁먹은 척 눈을 피했다.

“눈빛만요.”

“아니. 기세 또한 늠름해졌어.”

다들 자꾸 늠름하다고 하네? 그게 그렇게 겉으로 티가 나는 건가?

게오르크는 다시 검을 거둬들였다.

“후후. 아버님께서 널 자식 취급 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넌 여전히 내 동생이다. 적어도 나는 좀 믿어 줬으면 좋겠구나.”

“…네. 믿습니다.”

아이젠은 잠시 간격을 두고 말했다.

“1할 정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