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직 모니카만이 두 손을 모은 자세로 아이젠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아이젠을 정면으로 보고 선 데릭은 거둬들였던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리고 칼날을 손가락으로 퉁 치며 입을 열었다.
“아이젠 도련님, 혹시라도 착각하시는 내용이 있을까 봐 설명해 주겠습니다. 결투는 목검이나 가짜 칼을 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가문에서 하사받은 이 진검을 사용할 겁니다.”
“그래. 그렇게 해.”
“또, 결투는 어느 한쪽이 죽거나 승복할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 알았어.”
“…….”
“시작할까?”
“……?”
아이젠의 말에 데릭이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아이젠을 가리켰다.
“이보세요, 도련님.”
“왜? 아직 얘기할 게 더 남았나?”
“당연히 남았지요! 무기는 어디 있습니까?”
“무기?”
아이젠은 검을 쥐고 있지 않았다.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지도 않았다.
아이젠은 뭘 묻냐는 듯 제 손을 휘휘 흔들어 보여 주었다.
“무기라면 여기 있잖아.”
“어디 있다는 겁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손.”
“네?”
“이 두 손. 이게 내 무기야.”
데릭은 하마터면 헛웃음을 내뱉을 뻔했다. 그건 물론 지켜보던 참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린우드 공작 가문은 ‘참철검가(斬鐵劍家)’라는 이명이 있는 집안. 글자 그대로 ‘철조차도 베는 검술 명가’라는 뜻인데, 정작 그 자제는 검을 쓰지 않겠다고?’
하긴, 검을 쓰지도 못하는 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가?
그래도 검을 아예 들고 나오지조차 않을 줄이야. 데릭은 아이젠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집쥐 도련님이 미쳤나. 난 봐줄 생각 조금도 없는데, 설마 귀족이니까 내가 알아서 설설 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이지 확실하게 교육이 필요하겠군.
데릭은 자세를 잡았다.
“아이젠 도련님, 저를 얕보시는 거라면 굉장히 곤란합니다. 맨주먹으로 절 상대하시겠다니, 이거 서운한 마음까지 들려 하는군요.”
“그렇게 느꼈어? 근데 데릭의 태도에 내가 더 서운해. 내가 뒤끝이 좀 긴 편이거든. 다섯 번이나 말이 짧은 건 솔직히 선 넘었잖아. 안 그래?”
“…도련님, 제가 기사로서 충고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별로 들어 주고 싶진 않은데 들어야 하는 거지?”
“…가능한 한 빨리 항복을 선언하십시오.”
팟!
데릭이 발을 굴렀다. 그의 신형은 어느새 몇 걸음이나 떨어진 아이젠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제가 아이젠 도련님을 베어 죽이기 전에!”
휘익―
툭!
그러나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데릭의 진검은 앞마당 바닥을 내려쳤을 뿐이었다. 아이젠이 몸을 앞으로 굴려 이동한 것이다.
생각보다 몸짓이 빨랐지만 데릭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집쥐 공자 자식!’
데릭은 그린우드 가문의 검술을 익힌 1성의 기사였다. 검에 ‘오러’를 두를 수 있는 경지인 2성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1성만으로도 충분히 기사의 자격을 충족할 수 있었다.
‘초식, 하단 베기!’
아래쪽을 향해 검을 휘두른 데릭은 칼끝에 뭔가 걸려들길 바랐다.
휙―
하지만 벌떡 일어선 아이젠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데릭의 검 끝을 피했다.
‘짧았나!’
데릭은 그대로 검을 밀어 넣었다. 아이젠은 반 발자국만 오른쪽으로 이동해 다시 검을 피했다.
그 후로도 아이젠은 계속해서 데릭의 검을 피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하인들에겐 굉장히 기묘하게 보였다.
“도련님이…….”
“어떻게 저렇게 기민한 움직임을?”
“말도 안 돼!”
“멋있잖아?!”
“저렇게 재빠르다니!”
아이젠은 단전이 닫혀 있었다. 아이젠 그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젠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너무 가벼워.’
전생의 그는 온몸이 근육질이라, 평범한 체격임에도 몸무게가 150근(약 90kg)이나 나갔었다. 그런데 이 몸은 기껏해야 70근이 조금 넘을까 싶었다. 삼분의 일. 거의 뼈밖에 없는 신체라 몸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이거야, 원. 몸이 가벼운 것도 좋지만 얼른 단련을 시작해야겠네. 이거 이렇게 가벼워서 팔 굽혀 펴기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젠은 계속해서 날아드는 데릭의 공격을 피해 냈다.
이쯤 되니 당황스러운 것은 데릭 쪽이었다. 그는 기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헉, 헉, 헉!”
“숨차 보이는데? 항복할 거냐?”
“헉, 웃기는, 헉, 소리, 마십시오!”
데릭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1성을 이룬 검술이 무색하게 초식이 갖춰지지 않은 검 놀림이었다.
휙― 휙―
당연히 아이젠에게 작은 상처라도 하나 날 리 만무했다. 데릭의 검은 허공을 가르느라 바빴다.
‘이 정도인가?’
아이젠은 이번 결투에서 그린우드 가문의 검술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자 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문의 직계도 아닌 데릭이 제대로 된 검술을 배웠을 린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겠지 싶어서 좀 지켜봤던 건데.
‘이 녀석으론 안 돼. 더 볼 것도 없겠다.’
아이젠도 슬슬 숨이 찼다. 몸이 너무 허약하니 겨우 이 정도 움직인 것만으로도 폐활량이 모자랐던 것이다. 극독에서 흡수한 내공이 있다곤 해도, 너무 미약한 내공인지라 이렇게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게 전부였다.
“이익, 으아아아!”
데릭이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아이젠을 향해 내려쳤다.
데릭의 실력은 실전용이 아니었다. 딱 대련용 수준.
휘익― 착!
아이젠은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데릭의 검 날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붙잡았다.
“아닛……?!”
데릭도 놀랐지만 하인들은 더 놀랐다.
“검을…….”
“잡았어?!”
“세상에, 저럴 수가!”
모니카는 감격의 눈물을 쏟을 뻔했다.
‘도련님! 어쩜 저렇게 날래실 수가……!’
하지만 아이젠이 울지 말랬으니 참았다.
“헉, 헉!”
숨을 헐떡이던 데릭은 그 자세 그대로 멈춰 버렸다.
“데릭, 넌 동작이 너무 커. 실전에서 이렇게 검을 휘둘렀으면 바로 죽었을 거야.”
“도련님, 헉, 이럴 수가……. 힘을, 헉,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
“숨겨? 그럴 리가. 보여 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숨을 다 쓴 데릭이 풀썩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런 데릭에게 아이젠은.
‘어디, 이 작은 몸으로 어느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해 볼까?’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
데릭은 눈을 감아 버렸다. 눈앞에 날아드는 아이젠의 주먹이 마치 태산처럼 크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파앙―!
그러나 주먹은 데릭을 가격하지 않고 콧잔등 앞에서 멈췄다. 데릭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1성의 기사인 내가 집쥐 공자 따위한테!’
그래도 데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의 온몸이 아이젠에게 패배했음을 증명하듯 덜덜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다니. 그것도 이 집쥐 공자에게.
‘쯧.’
하지만 정작 아이젠은 자신의 주먹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단전도 닫혀 있고 근육도 없는 몸이라 결사신권도 형편없기 짝이 없었다. 이 정도면 그냥 결사신권을 흉내 낸 수준.
‘쳤으면 내 주먹이 부서졌을지도 몰라.’
지난 생에선 현경의 경지까지 올라갔던 그였는데 이런 몸이라니. 어느 세월에 생사경을 달성하려나.
‘뭐, 차근차근 시작하자. 시간은 많으니까 무혈신공을 단련한 후 결사신권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는 거야.’
그러려면 우선 지하 감옥부터 찾아봐야 할 테지. 폐관 수련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 데릭 같은 놈이 자꾸 귀찮게 하지 않는 곳을 찾으려면 거기가 유일할 것이었다.
데릭이 털썩 땅을 손으로 짚었다.
“제, 제가 졌습니다. 항복하겠습니다.”
“거부한다.”
“예?”
“항복 거부한다고.”
아이젠은 멀리 서 있던 모니카에게 손짓했다. 모니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