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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3화 (3/201)

3화

‘무혈신공으로 단전을 열 수 있기 때문이지.’

문제가 있다면, 단전을 열기 위해서는 폐관 수련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로 길이가 다섯 보폭, 세로 길이가 다섯 보폭 정도인 작은 정육면체 모양의 입방체 방이 필요했다. 그 작은 방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소리를 차단한 채 혼자 폐관 수련을 해야만 제대로 된 무혈신공을 단련할 수 있었다.

기간은 대략 한 달 정도. 그러나 이런 위세 높은 공작 가문이라면 홀로 있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주어질 리 없었다. 어딜 가나 하수인들이 따라붙을 테니.

‘혼자 있고 싶어요. 다들 가문 부지에서 나가 주세요.’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 아이젠은 곧장 침대에 누워 병약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모니카였다. 그녀는 음식들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와 아이젠의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식사입니다, 도련님.”

“고마워.”

“예?”

모니카는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왜?”

“바, 방금 뭐라고 말씀…….”

그녀는 이내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도리질을 쳤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식사 시간 되시길.”

음식들은 조촐했다. 흰죽,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조림.

마침 배가 고팠기에 아이젠은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는 동안 모니카는 옆에 서서 아이젠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모니카?”

“예, 도련님.”

“식사는 했어?”

“예? 아뇨, 아직입니다.”

“그럼 밥 먹고 와.”

“예?”

아니, 뭘 자꾸 예예거려.

“못 들었어? 가서 밥 먹고 오라고.”

“하, 하지만…….”

“왜 그러는데?”

“도련님께서 식사 중에는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여자 하인을 방에 들이라고 하셔서…….”

어라. 아이젠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왜 그러라고 했더라?”

“그, 그것이…….”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냥 말해 봐.”

“여인이 식사 시중을 들면 남자로서 정력이 넘치는 느낌이 드신다고…….”

땡그랑.

반사적으로 숟가락을 떨군 아이젠은 이마를 탁 짚었다. 그는 깊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런 미친. 고작 열여섯 먹은 애새끼가 지랄 염병 떨고 자빠졌네.’

자신의 그릇된 과거에 몸서리가 쳐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왜 그딴 말을 했을까? 반성합니다, 나 자신.

수습하고자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 모니카.”

“예, 도련님.”

“그건 그냥, 뭐라고 하지……. 그냥 해 본 소리, 그래, 농담이었어.”

“…농담이요?”

“맞아, 농담. 하하. 그냥 농담으로 해 본 소린데 다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네. 하하하허하허.”

“…….”

그러나 모니카는 웃지 않았다. 아이젠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나가, 모니카.”

“죄, 죄송합니다! 아주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아하하하하!”

“나가라고. 혼자 있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달칵.

모니카는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갔다. 그제야 아이젠은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그동안 내 평판이 어땠을지… 대충 예상이 가는구만.”

왜 하필 이런 망나니처럼 살아왔을까.

이강철이라는 과거를 눈뜨기 전의 아이젠은 틀림없이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투정 부린다고 바뀌는 건 없을 테니 아이젠은 불평을 관두기로 했다.

아이젠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평상복으로 옷을 갖춰 입었다.

‘밖으로 나가서 혼자 있을 만한 곳이 있을지 살펴봐야겠어.’

이 방 안에 있는다고 해결될 것도 없고.

그렇게 아이젠이 조심조심 문을 열고 나가는데.

“안녕하십니까, 아이젠 도련님!!”

“깜짝아, 씨.”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앞을 돌아보니 모니카를 포함한 하인 대여섯 명이 아이젠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모니카 이건 밥 먹으라니까 왜 안 가고 여기 있어?’

아이젠은 멋쩍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래, 수고들 해요.”

그렇게 그들을 휙 지나치니 놀란 쪽은 하인들이었다.

“바, 방금 도련님이 뭐라고 하신 거야? 수고하라고 하신 거야?”

“응! 게다가 존댓말로!”

“저 망나니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뭘 잘못 드셨나? 갑자기 왜 저러셔?”

“저런 맑고 깊은 목소리는 처음 들어 봐.”

그들의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아이젠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하인들이.

“조, 좋은 아침입니다, 도련님!”

“도련님, 식사는 괜찮으셨는지요!”

“나, 날씨가 썩 좋습니다, 아이젠 도련님!”

다양한 레퍼토리로 아이젠에게 인사를 해 왔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억지로 말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요, 좋은 아침입니다. 네, 천하 일미였습니다. 그래요? 비가 안 왔으면 좋겠네요.”

그럴 때마다 아이젠은 대충 웃어 주며 그들을 지나쳤고, 그럴 때마다 하인들은 고개를 기우뚱하며 아이젠을 보내 줬다.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한 가지였다.

‘저 인간 왜 저래?! 자상하게!’

* * *

검술 명가 그린우드 공작 가문. 탄탈리스 제국의 전쟁 영웅, 테오발트 폰 그린우드가 가주로 있는 명망 높은 집안.

그래서일까? 가문의 부지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얼마나 큰고 하니, 부지 내에 공원도 있고, 수련장도 있고, 학교도 있고! 심지어 부지 외곽에는 법정까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공작령’이 아니라 그냥 ‘저택 부지’가 이 정도라는 거다.

“법정은 대체 왜 있어?”

아이젠이 그렇게 자문하자 어느샌가 옆에 다가온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야 그린우드 가문에 해를 끼친 자들을 테오발트 가주님께서 직접 처벌하시기 위함입니다.”

“아잇, 깜짝이야.”

“죄송합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모니카였다. 그녀는 또다시 머리를 허리보다 낮은 각도로 숙였다.

저러다가 조만간 허리 나가겠다, 나가겠어.

“일어나, 모니카.”

“예!”

그러나 모니카는 일어났어도 구부정한 자세였다. 보아하니 아이젠이 대충 이런 말이라도 해 둔 모양이었다. ‘나보다 높이 서 있지 마라’.

“그냥 똑바로 서. 허리 쫙 펴고.”

“아, 옙!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마. 고마워하지 마.”

그제야 모니카는 허리를 쫙 폈다. 그녀는 대충 아이젠보다 10cm 정도는 더 큰 듯했다. 여인으로서 작은 키는 아니었다.

“밥은 먹고 나 쫓아다니는 거야, 모니카?”

“예?”

모니카는 이번에도 괴상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짜증 나게, 진짜.

“제발 물어보면 한 번에 대답해 주면 안 될까?”

“앗, 죄송합니다. 예, 식사는 간단하게 때웠습니다.”

아이젠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린우드의 부지는 너무나도 넓다. 하지만 그 어디를 가도 혼자 조용히 있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든 가문의 하인이 배치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의 옆에 이 모니카라는 여자가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이래서야 폐관 수련을 할 수가 없잖아. 단전을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어.’

추측건대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허락되진 않을 테고, 부지에 혼자 있을 공간도 없다라.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아이젠이 물었다.

“모니카, 혹시 이 집 안에 혼자 조용히 있을 만한 곳이 어디 없겠어?”

“혼자 조용히요?”

“그래. 조용히, 아무 소음도 없이.”

“으음…….”

그녀로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지 신음하며 길게 고민했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그으래?”

“딱 한 군데를 빼고는요.”

“한 군데? 그게 어딘데?”

“지하 감옥입니다.”

지하 감옥?

“음. 나는 ‘집 안에서’ 혼자 조용히 있을 만한 곳을 물은 건데.”

“그러니까 지하 감옥이요.”

“이곳에 지하 감옥이 어떻게 있지. 맞다, 있네.”

생각났다. 아이젠은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하긴, 법정이 있는데 지하 감옥이라고 없을까? 놀랍게도 이 공작가의 부지에는 지하 감옥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지하 감옥에는 혼자 조용히 있을 공간이 있나?”

“글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위험한 죄수는 소음이 차단된 독방에 따로 가둬 두곤 하니… 아마 그곳은 조용할 겁니다.”

독방? 그런 곳이 있다구?

“그으래? 그렇단 말이지?”

아이젠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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