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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2화 (2/201)

2화

【 꼭 시비 거는 놈들이 있다 】

아이젠 폰 그린우드. 16세의 어린 소년. 날 때부터 약했고 앞으로도 약할 몸. 단전조차 닫혀 있는 싸구려 신체.

“윽, 대가리야.”

아이젠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피가 흐르는 속도가 빨라지고, 온몸이 쿡쿡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 전생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그의 뇌는 과부하가 와서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였다.

‘……!’

아이젠은 방문 밖의 살기를 느꼈다. 새벽녘, 16년 만에 전생을 깨닫자마자 살기를 느낀 것이다.

귀를 기울이니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처리했지?”

“그래. 방금 죽였어.”

“정말 죽은 거 맞아? 제대로 확인한 거 맞냐고.”

“그렇다니까! 한 방울이면 마수 수백 마리를 죽일 수 있다는 극독을 주사기로 주입했는데 안 죽고 배기겠어?”

극독?

‘……?!’

그제야 아이젠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언가가 몸속을 거칠게 휘젓고 있었다.

‘맹독이다.’

중원 무림에서 독공으로 유명한 사천 당문에서조차 이런 강한 독을 쓰는 것은 보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독에 맞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터.

하지만 투신 이강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진정해라, 나 놈아. 몸이 바뀌었어도 내가기공을 단련할 수는 있잖아.’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아이젠은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어 곧장 명상에 잠겼다.

눈을 감고, 코로 숨을 들이마신 뒤 입으로 내뱉는다. 이것을 반복한다. 시간이 영원으로 느껴질 만큼.

마침내 아이젠의 감각 안에서 주변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무혈신공(武孑神功).’

이것이 바로 그의 스승에게서 사사한 내가기공, 무혈신공이었다. 무혈신공은 단전이 닫혀 있어도 내공을 단련할 수 있는 신비한 연공법이었다.

그렇게 셈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흘렀을 때, 아이젠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퉷!”

어두운 방바닥 어딘가를 향해 침을 뱉었다.

치이익―!

그가 뱉은 침은 바닥을 녹이며 아래로 파고들어 갔다. 극독을 포함해 몸에 있는 독기를 모두 뱉어 낸 것이었다.

‘이로써 맹독은 제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젠은 극독 안에 잠들어 있던 미약한 내기를 흡수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힘은 미약하나 아이젠에게는 최소한의 내공이 될 것이었다.

독은 제거했다. 하지만 그를 죽이려 했던 자들은 제거하지 못했다.

벌컥!

아이젠은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당연히 아이젠의 살인을 공모한 자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그새 반나절이나 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있을 리가 없지. 제길.”

그 순간이었다.

“아이젠 도련님?”

쉭!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이젠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눈앞의 여인이 그가 아는 얼굴임을 알아채고 얼른 손을 멈추었다.

부웅―!

손이 멈추자 바람이 여인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모니카 브라이슨. 나를 모시는 하인이야.’

여인은 잠시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멈춰 있다가, 아이젠의 주먹을 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아이젠 도련님! 제가 감히 뒤에서 존함을 부르는 결례를!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

이번엔 아이젠 쪽에서 상황 파악이 덜 돼 고개를 갸웃했다.

‘뭐 이렇게까지 사죄를 해?’

그때 머릿속으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는 검술 명가로 유명한 그린우드 공작 가문의 넷째. 특징은 인간 말종에 상종할 수 없는 개망나니 양아치 건달 새끼.

취미는 하수인들 몸에 칼로 상처를 내고 심심할 때마다 그 수를 헤아리는 것. 최고 기록은 42개의 상처가 있는 피터라는 하인으로, 그는 참다못해 몇 년 전 가문에서 도망쳤다.

‘그렇군. 난 지난 16년간 인간쓰레기였지?’

순간 지난날의 과오가 떠올라 아이젠은 얼굴이 붉어졌다. 이강철이었다면 행하지 않았을 일들이 속속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아이젠은 한편으로 생각했다. 비록 이 몸은 단전조차 닫혀 있는 형편없는 신체이지만…….

‘어쩌면… 이번엔 생사경의 경지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강철이 한평생 간절히 바란 소원은 생사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지난 생에서는 천마 도강문 때문에 너무 일찍 죽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번 생에서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젠은 모니카의 전신을 살폈다. 기감으로 살펴보건대 신체에 아직 상처가 두 개밖에 없었다.

‘두 개‘밖에’라니. 정신 차려라, 아이젠. 이제 너는 이강철이 아니라 아이젠이야.’

이제 그는 이강철이 아니었다. 서른두 살의 이강철은 천마신교와의 혈투에서 죽고 없었다. 그는, 아이젠이다.

아이젠은 무릎을 굽혀 모니카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모니카가 숙였던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

모니카가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자 아이젠이 말했다.

“그만 일어나, 모니카. 무릎은 잘못한 게 있을 때만 꿇는 거야.”

모니카는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이젠의 손을 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리고 일어났다. 하지만 선키가 아이젠보다 크게 보이지 않도록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였다.

“그, 그런데 도련님, 어쩐 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계세요?”

모니카가 묻자 아이젠은 잠시 대답을 삼켰다.

‘가만있어 봐. 모니카도 나를 죽이려 한 자들과 한통속일지 모르지?’

아이젠을 독으로 죽이려 했던 자들은 둘. 설마하니 그 둘이 독살을 주도한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기엔 너무 허술했으니까. 분명 사주한 자가 따로 있을 터. 그리고 그자와 모니카가 같은 편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아이젠은 슬며시 웃었다.

“그냥 눈이 떠졌네.”

그는 굳이 간밤에 있었던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예, 예에.”

“모니카, 물 한 잔만 갖다줄래?”

“예, 그럼 아침 식사도 함께 가져오겠습니다.”

“응? 식사를 방에서 하라고?”

그렇게 반문하자 모니카는 멀뚱히 아이젠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난 다른 형제들과 밥을 같이 안 먹지?’

아이젠은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 취급 받기 때문이었다. 아이젠은 그 사실이 떠올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갖다줘.”

* * *

아이젠은 방에 정좌로 앉아 제 몸을 살폈다. 구석구석 기감을 펼쳐 살펴본 결과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와, 내 몸이 이렇게 허약했을 줄이야.”

아이젠의 몸은 단순히 동년배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온몸에 근육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팔다리 어느 한 군데 앙상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정도면 뼈 위에 살가죽만 붙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극독에 조금 담겨 있던 내공을 흡수하긴 했어도 단전이 닫혀 있으니…….

“검술 명가의 아들이지만 검술을 배울 수는 없는 몸이다, 이거지.”

이런 비극을 보았나.

아이젠은 왜 자신이 내놓은 자식인지 새삼 깨달았다. 검을 배우지 못하는 아들은 당연히 가문의 눈 밖에 난 존재일 것이었다. 가족끼리의 식사 자리에도 함께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굳이 날 죽이려 했지?”

어차피 가문에서 내놓은 자식이라면 승계 구도에서도 밀리는 게 바로 아이젠일 것이었다. 굳이 맹독까지 써서 죽일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의아했지만 생각한다고 결론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으니 아이젠은 그 문제는 잠시 제쳐 놓기로 했다.

아이젠은 침대에서 일어나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해 보았다.

휙― 휙―

비실비실하다.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맥 빠지기 짝이 없었다.

“이거야, 원. 생사경의 경지고 나발이고 내일 당장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그러나.

“오히려 좋아. 도전 의식을 자극해.”

이강철의 결사신권은 다른 모든 무술이 그렇듯 단전이 닫혀 있으면 수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젠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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