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화 (1/201)

1화

【 정마 대전 】

‘철이야, 너의 주먹으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너라.’

스승님, 바랄 걸 바라십쇼.

쿨럭!

이강철은 피를 토했다. 주먹 하나로 중원 무림을 제패한 투신이라기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큭큭. 아, 젠장. 아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기 전에 사랑하는 여인이라도 사귀어 두는 건데.”

“무슨 헛소리냐, 이강철.”

이강철의 중얼거림에, 눈앞에 서 있던 자가 대답했다.

눈앞에 있는 자는 새로이 중원을 집어삼킨 천마신교의 교주, 도강문. 그의 손에 죽어 나간 자들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천마 도강문은 조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너는 남색을 밝힌다는 소문이 있던데?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그게 뭔 실례되는 개소리야, 미친놈아.”

강철은 그냥 무공을 연마하는 데만 매진하느라 여인을 만날 시간이 없었을 뿐인데, 이상한 풍문이 돌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크크, 죽어 가는 중에도 혓바닥만은 팔팔하구나, 이강철 이놈.”

도강문의 왼손에 어린 마기가 이강철을 옥죄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이 쥐여 있었다. 언제든 이강철을 벨 수 있다는 듯이.

“끝이다, 투신 이강철. 중원은 이제 천마신교가 거머쥐도록 하지.”

“푸흐흐, 천마신교? 너 빼고 다 죽었는데 누가 뭘 거머쥔다는 건데?”

주변은 시산혈해였다. 전부 천마를 따르는 신도들이었으며, 모두 이강철이 죽인 것이었다.

피와 철로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그건 물론 이강철의 몸 역시 마찬가지. 그는 어디 하나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반면 천마 도강문은 마치 새로 살을 빚은 듯 멀끔했다. 심지어 피부에는 윤기까지 흘렀다. 나이가 예순은 넘었을 텐데 마치 스무 살 청년처럼.

도강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그려 냈다.

“신도들을 잃었지만 신도야 새로 모집하면 그뿐! 하지만 썩 놀랍긴 했다. 단신으로 천 명이 넘는 교도들을 모조리 죽이다니 말이야. 일기당천이라는 이명 그대로인가?”

이강철은 또다시 헛웃음을 흘렸다.

투신, 일기당천, 쇄금(碎金)……. 이강철을 지칭하는 별호는 쓸데없이 많았고, 그를 순수하게 이름으로 불러 주는 이는 오로지 그의 스승밖에 없었다. 그 스승이 벌써 10년도 더 전에 죽은 것이 한이라면 한이겠지.

‘돌아가시기 전에 무공이나 좀 제대로 전수해 주고 가실 것이지…….’

이강철의 무공은 한없이 완벽에 가까웠으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전수 도중 스승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쿨럭! 이강철이 다시 피를 토했다.

이강철은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무의 천재였지만 만 년에 한 번 나오는 초천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강철의 나이는 절해(絶海)의 경지를 달성하기엔 아직 좀 어린 서른둘이었다.

그런 작고 작은 결점(?)들이 하나둘 더해진 끝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천마 도강문과의 대결에서 패배를 만들어 냈다.

“금강조차 부순다는 네 권법도 결국 나 도강문의 몸은 꿰뚫지 못했다. 쇄금(碎金)이라는 이름이 울고 있겠군그래.”

“말본새 보니 알겠다. 너도 여자 친구 없지?”

“후후. 거참, 부모 없이 자란 놈이라 그런지 가정 교육이 덜 된 말투로구나.”

“부모 없이? 야, 너무하네. 패륜은 하지 말자, 진짜.”

“내가 다시 교육해 주고는 싶다만… 그럴 이유는 없지. 어쨌든 즐거웠다, 투신 이강철.”

“그냥 씹네. 사과해라.”

촤악!

도강문의 검이 이강철의 목을 그었다. 그 검은 이르되 신살검(神殺劍). 글자 그대로 신조차도 베어 죽인다는 검이었다. 그러나.

땡강!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이강철의 머리가 아니라 신살검의 칼날이었다.

“아니?!”

쉬이이―

신살검을 부러뜨린 것은 이강철의 주먹. 그의 주먹에서는 검붉은 기운과 함께 뜨거운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가정 교육이 뭐가 어째?”

“어떻게……!”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냐? 천마 도강문!”

“이놈이!”

“갈 때 가더라도 동귀어진은 해야 내 맘이 편하겠다, 이 자식아!”

이강철은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리고 도강문의 명치를 향해 온 힘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스승에게서 사사한 내가기공에 이강철만의 고유 권법을 섞은 절기의 무공. 바로 ‘결사신권(抉死神拳)’이었다.

콰앙―!

주먹이 도강문의 가슴팍에 닿는 순간 마치 망치로 내려친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고.

빠드득―

부서진 것은 이강철의 주먹이었다.

도강문은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후하하! 역시 쇄금 이강철이구나! 매서운 주먹이야. 하지만 내 몸엔 상처 하나 내지 못했어!”

도강문의 몸이 마치 금강석처럼 흰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이 새끼, 몸에 별님이라도 박은 거냐?”

“크큭, 이강철, 네놈의 주먹은 소림의 금강불괴조차도 깨부수지? 하나 내 몸은 금강불괴를 웃도는 무공, 룡피금강불침이다!”

룡피금강불침(龍皮金剛不侵). 해석하면 용의 금강과 같은 피부는 꿰뚫을 수 없다는 뜻.

“웃기고 있네. 뭔 있어 보이는 한자는 다 갖다 붙였구만.”

말은 그리했으나 도강문의 룡피금강불침은 어딜 봐도 금강불괴보다 높은 경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보석,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몸이라니.

“이 몸에 생채기라도 내려거든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야 할 게야. 크크크!”

“하하.”

이강철은 실소했다.

생사경이라. 그런 경지가 있다고는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승님으로부터 말이다.

화경보다도, 현경보다도 높은 경지. 그야말로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자만이 올라설 수 있는 경지, 생사경.

그러나 이강철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아무리 권기를 갈고닦아도 생사경에 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도강문의 입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놈, 뭐가 그리 웃기지?”

“크크큭.”

“왜 웃는 것이냐고 물었다! 감히 천출이 나를 비웃는가?!”

“아니, 고마워서 그러지.”

“뭐라고?”

“네놈은 내가 오르지 못한 나무를 쳐다보고 싶게 만들었어.”

파앙!

이강철은 주먹을 쫙 폈다. 그리고 도강문의 명치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아직 달성하지 못한 생사경의 경지. 스스로 개발했으나 아직 닿지 못한 결사신권 최상위의 무공. 오를 수 있을까?

‘못 오르면 어쩔 거야. 그냥 해 보는 거지!’

그 순간이었다.

‘너 자신을 믿어라. 그럼 세상에 못 이룰 것이 없을 테니.’

왜 갑자기 스승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지.

‘스승님, 이상한 소리 마세요. 나 같은 걸 믿었다간 큰코다칠 겁니다.’

이강철은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쥐어짜, 최후의 권기를 날렸다.

“결사신권, 무혈귀로(無血鬼路).”

…쿠궁!

일대에 지진이 일어났다. 음속의 폭음처럼 소리가 뒤늦게 울리는 거대한 지진이었다.

땅이 울리고, 시체를 파먹던 까마귀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날아갔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도강문은.

“…크헉!”

뭉친 피를 토했다. 그는 이내 바닥에 털썩 무릎까지 꿇고 말았다.

“이럴 수가! 룡피금강불침을 뚫다니……!”

그러나 쓰러진 것은 도강문만이 아니었다.

“……!”

비명조차 지를 힘이 없었다. 이강철은 그렇게 바닥에 철퍼덕 엎드려 쓰러져 버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윽, X발, 드럽게 아프네……!”

이강철은 생사경의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다. 최후의 무공 ‘무혈귀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실마리를 보았다.

‘완벽하지 않은 무공으로도 천마 놈의 최후 절기를 꿰뚫다니. 진짜 그 경지에 오른다면 얼마나 빼어날까.’

아쉬운 한편으로 무척이나 뿌듯하기도 했다. 그 단서나마 잡을 수 있었기에.

‘좀 더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살았다면 반드시 생사경에 올랐을 것이다. 가능하면 애인도 사귀고.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생명의 불씨가 다하는 것이 느껴졌다.

도강문이 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천마 도강문이 고작 길바닥 출신 애새끼한테 당해 죽다니……!”

“…….”

“크크, 크크크. 과연 대단하다. 쇄금이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은…….”

풀썩. 마침내 천마 도강문도 엎어졌다.

강철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품 안에서 돌 조각을 꺼내 들었다. 돌 조각에는 스승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스승이 강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스승님…….’

깊은 밤이 지나 천마신교에 해가 밝아도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 시체의 수가 자그마치 일천둘이었다.

* * *

…까지가 이강철의 기억이었다.

꿈이었을 리는 없다. 그게 꿈이라면 이강철은 지난 32년의 인생마저 모두 꿈으로 치부해야 했으니까.

‘그건 내 전생이었어.’

깊은 새벽, 시체처럼 자던 공작가의 넷째 아들 아이젠 폰 그린우드는 잠에서 깨어났다. 폭신폭신한 침대 위에서.

그는 조금 전, 자신이 이강철이었던 전생을 깨달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