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해서 복수한다-7화 (7/32)

7. 이지희

토요일.

지금 그가 도착한 곳은 홍대 앞의 한 카페였다. 카페의 문을 열자마자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성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곧 찾을 수 있었다.

카페에 혼자 앉아서 가장 싼 에스프레소를 시켜다 홀짝이고 있는 이지희의 모습은 한 마디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그 안의 내용물을 노려보는 모습은 별로 꾸미지도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번져 나오는 미모 덕분에 일견 우아하게도 보였지만, 그것도 몇 초에 불과하다. 에스프레소에 혀를 대보고 쓴 듯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은 마치 카페라는 곳에 처음 온 촌뜨기 아가씨의 모습 같았다.

“아, 스승님, 오랜만이에요.”

그러다 에스프레소의 작은 잔 너머에서 최재철의 모습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순진하고 활발한 10대 소녀 같았다. 몇 초 사이에 휘릭휘릭 바뀌는 그녀의 표정은 지켜보고 있자면 재미있기까지 하다.

“왜 먹을 줄도 모르는 에스프레소를…….”

“아, 어떻게 아셨어요?”

최재철의 말에 이지희는 놀란 토끼 눈을 떴다. 아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오늘은 제가 밥값을 내죠.”

최재철의 말에 이지희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괜찮아요. 스승이라는 말 듣는 것도 간지러운데 밥이라도 사야지.”

“하지만 제가 랭크도 높아서 연봉도 더 높을 텐데.”

1초간 침묵.

“친구들한테 눈치 없냐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

“아뇨, 저 친구 없어요.”

농담이겠지. 농담일 거야. 그런 가슴 아픈 소릴 쉽게 내뱉다니. 최재철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김인수에게도 친구는 없었다. 그가 힘 있는 자들에게 핍박 받을 때, 친구라던 놈들은 모두 그의 주변을 떠났으니까.

‘아니, 그래도 이계에는 친구가 있잖아.’

그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잘 생각해 보니 친구란 것들 중 인간은 하나도 없긴 하지만, 어쨌든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지구에는 없지만 말이다.

‘그만하자…….’

“스승님?”

생각에 빠져든 그의 얼굴을 이지희가 들여다보았다. 큰 눈동자 속에는 호기심이 찰방찰방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가죠.”

“네, 스승님!”

이지희는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계였으려나, 이 아가씨…….’

물어보면 금방 대답해 줄 것 같은 분위기지만 두 배의 질문이 뒤따라올까 무서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최재철이 이지희를 불러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도 TA에 입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최재철과는 달리 특채로 뽑히긴 했지만, 어벤저 랭크에 차이가 있으니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최재철보다는 며칠 빨리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출근을 시작할 자신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러냈다.

물론 단순한 인맥 관리의 의미도 있다. 별일 없을 때 부르지 않고 필요한 때만 연락을 하면 인성의 밑바닥을 금방 들키고 마니, 이런 사소한 일로 만나두는 것도 인간관계에는 중요했다. 적어도 최재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지희는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었다.

“영화 예약 시간 늦겠어요, 스승님! 서둘러요!!”

“영화? 예약? 그게 무슨…….”

“아이참, 빨리요!”

이지희는 최재철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

차원 균열이 열리고 세상이 팍팍해지면서 가장 퇴보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문화였다. 영화관에서 10년 전의 영화를 그냥 틀어주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게 10년 만인 최재철의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나도 재밌었다. 자신이 굶주려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가 음식을 입에 넣은 후에야 비로소 배고픔을 인지하는 것과도 같이 최재철은 정신없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재밌으셨어요?”

“아, 네. 뭐.”

그래도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걸 인정하는 건 이상하게 꺼려졌다. 정확히는 부끄러웠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 제가 예약해 둔 집이 있어요!!”

“아니, 오늘 밥값은 제가 낸다고…….”

“땡! 예약하느라 벌써 선금 줬어요! 그래서 늦으면 안 돼요. 자, 얼른 가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으며 이지희는 다시 최재철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본 이동이 달리기라니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최재철은 순순히 따라서 달렸다.

*

조금 이른 저녁 식사의 메뉴는 파스타였다. 이태리 요리라면 군대에서 뽀글이로 먹은 스파게티라면 정도였던 최재철에게는 생경한 메뉴였다.

“입에 안 맞으시나요?”

“아뇨, 맛있습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파스타는 처음 먹어보지만 맛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바질향이 다소 당황스러웠을 뿐.

“전보다 밝아지신 것 같은데요.”

“아, 그게……. 헤헤.”

최재철의 지적에 이지희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제가 친구가 없잖아요.”

“네? 아… 네.”

“그래서 이렇게 누구랑 같이 노는 것도… 음… 처음? 아마 처음일 거예요. 그래서 들뜨는 바람에……. 티 많이 났나요?”

“네.”

최재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참, 부끄러워라.”

이지희는 붉어진 자신의 뺨을 자기 손으로 톡톡 쳤다.

“…뭐,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지만 이런 식으로 같이 놀아줄 사람이 필요하시다면야 언제든 연락 주시죠.”

“아, 정말이요?”

이지희는 상반신을 쑥 내밀다가 테이블을 엎을 뻔하자 간신히 진정했다.

“그, 그럼 사양 않고 연락드릴게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성격 밝고 활발한 인간에게 왜 친구가 없었을까 새삼 궁금해졌지만, 최재철도 묻지는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뭐, 저야 영광이죠.”

그래서 상당히 입 발린 대꾸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이지희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죠?”

“아뇨, 별로 영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

할 말 못 할 말 못 가리고 쑥쑥 찔러 들어오는 게, 확실히 인간관계에 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보통 생각은 해도 입 밖에 내지는 않는 말들을 직구로 시원스럽게 꽂아대는 그녀는 그런 성격 탓에 고생을 좀 했을 것이다. 교우 관계뿐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하긴, 그래서 좋은 거지만요.”

“네?”

“아, 제가 말했나요?”

“혹시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냐고 물으시는 거면… 네.”

“아하하, 안 좋은 버릇인데.”

민망한 듯 웃던 그녀의 입가에서 곧 미소가 사라졌다.

“제가 예쁘잖아요.”

아니, 밑도 끝도 없이 이건 무슨. 최재철은 어이가 없었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기는 했다.

“네, 뭐.”

“아하하, 재미있는 반응이네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별로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래보여도 저 꾸미면 굉장하다고요. 연예인이 될 뻔도 했으니까.”

어느새 그녀는 묻지도 않은 걸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이 사람한테 중요한 걸 알려주면 안 되겠군. 최재철은 속으로 다짐하면서 일단 맞장구를 쳤다.

“확실히 꾸미면 더 예쁘기야 하겠죠.”

“그렇죠?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연예인이 되려고 했었죠.”

“될 뻔했던 게 아니라요?”

“물론 될 뻔도 했죠. 오랜 시간의 노력이, …꿈이 이뤄질 뻔도 했었죠.”

그녀는 눈앞의 스파게티를 포크로 휙휙 저으며 말했다. 면이 한입 크기로 예쁘게 말렸다. 그녀는 그걸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다가 꿀꺽 삼켰다.

“맛있네요.”

그녀답지도 않게 화제를 돌리려는 시도에 최재철은 일단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렇네요.”

“깨닫는 게 너무 늦었어요.”

“네?”

“연예인을 하려면 얼굴만 예뻐선 안 된다는 걸.”

화제 돌리려던 거 아니었나. 최재철은 다소 당황했다. 그런 그에게 다소 기습적인 질문이 날아왔다.

“스승님께서는 꿈이 뭐였나요?”

“그런 거 없었습니다.”

그 대답은 최재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나왔다. 최재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프로세스는 전혀 거치지 않았다.

“살아남는 게 목표였죠.”

10년 전의 김인수가 갖고 있던 삶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집안 형편은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데, 그저 짐 덩이였을 뿐인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대로 침잠해 버릴까, 그런 유혹에도 몇 번이고 넘어갈 뻔했다.

그래서 간신히 구한 직장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래서 동생의 일을 신경 써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복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본말전도였다. 가족의 짐 덩이가 되기 싫어서 구한 직장이었을 텐데, 그 직장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가족들을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굳이 꿈이랄 걸 꼽자면 혼자 힘으로 살아남는 거… 였죠.”

휘몰아치는 자기혐오를 가슴 속에 꾹 눌러 담으며 그는 담담히 말을 맺었다.

“그렇군요.”

이지희는 말했다.

“꿈이란 걸 가지기엔 너무 팍팍한 세상이긴 하죠.”

꿈을 가지고 있던 소녀가 그 꿈을 버릴 때의 표정은 어땠을까. 지금 이지희의 표정이 아마도 그 답에 가까우리라. 그녀는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마지막 면을 포크에 말았다.

“사실 저, 이런 음식 처음 먹어봐요.”

“저도 그렇습니다만.”

“맛있네요. 맛있어요.”

“그렇네요.”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

결과적으로는 이지희와의 만남은 최재철에게 당장 크게 득이 되지는 않았다. 그녀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자기 앞가림도 버거워하는 처지였다. 최재철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을 정도로 회사 사정을 파악했을 리도 없었다.

“아, 다음 주 월요일에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요.”

“그거 저도 참가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오리엔테이션은 같이 받겠네요.”

그런 대화가 오갔다. 결론을 내자면 최재철과 이지희는 서로 갖고 있는 정보량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지희가 TA의 면접시험을 프리패스로 통과한 터라 면접시험과 차원 균열에 대해서 더 잘 몰랐다. 이런 부분은 최재철이 이지희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공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우량주라고 해도 좋았다.

재능이 재능으로 머무를 뿐이라면 무용지물이겠지만, 김인수는 이계에서 차원 능력자 육성기관인 ‘상아탑’의 장을 맡았던 인재이다. 그는 이지희의 재능을 끌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이지희는 만약 지구에서도 세력을 꾸릴 생각이라면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재였다.

그런 단순한 손득실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김인수에게 오늘의 만남은 의의가 있었다. 김인수 본인은 그다지 자각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복수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느라 피폐해진 그의 정신에 조금이나마 윤기를 더해주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호적인 상대와 손익과 관계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상황 자체가 김인수에게는 드물었다. 아니, 지구에서는 이지희가 유일할지도 몰랐다.

“흠.”

김인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이불 위에 몸을 던졌다. 이불에서 냄새가 났다. 최재철의 것인지 김인수 본인의 것인지 이제는 분간조차 가지 않는 미묘한 냄새였다.

내일 해가 뜨면 볕 아래에 이불을 말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일어난 김인수는 이불 빨래를 했다. 스스로 이불 빨래를 하는 게 얼마만일까. 어쩌면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로 처음일지도 몰랐다. 물을 짜내고 창문 너머로 이불을 널고 나자, 이상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기왕 집안일을 하게 된 김에 이 방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청소를 하기로 했다. 끼니를 때웠던 편의점 음식들의 포장이나 비닐봉지 등의 흩어져 있던 쓰레기를 한데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고 먼지를 한 번 쓸어낸 것뿐이었지만, 방의 환경이 한결 쾌적해졌다.

걸레질을 하자 바닥에서는 먼지가 시커멓게 묻어나왔다. 걸레질까지 끝내고나자 왜 지금까지 이러고 살았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다.

오후에는 밖에 나가 프라이팬과 계란 한 판을 샀다. 냉장고를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지구에 온 뒤로 처음으로 직접 만든 계란 요리를 먹었다. 따뜻한 밥이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전기밥솥도 사야 하나.’

사온 계란 6개를 전부 해치운 후, 김인수는 배를 두드렸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행복감이란 말인가. 그 행복감에 그는 죄악감에 젖었다. 동생과 어머니, 아버지의 복수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행복하다고 생각하다니.

‘아니, 아니지.’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자신을 한계에 몰아붙일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깎아가면서까지 복수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적들은 그가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고 피해를 입기 바랄 테니까.

복수는 완전한 승리로 비로소 완성될 터였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인내심과 여유였다. 충동적으로 진현우를 살해해 버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김인수는 스스로에게 여유를 부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배가 부르니 깨달음이 찾아오는군.’

김인수는 픽 웃었다. 썩 괜찮은 일요일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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