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면접
어벤저 네트워크에 올려둔 최재철의 이력서에 답장이 왔다. 필수 교육만으로 D에서 C로 랭크가 오른 것이 그럭저럭 어필이 된 것 같았다.
소형 길드에서 열다섯 장, 일반 길드에서 두 장이 왔다.
길드란 국가나 기업의 하청을 받아 의뢰를 대신 처리하는 단체로, 주로 어벤저로 이루어진 소조직이다. 그중에서도 소형 길드야 일종의 스터디 그룹 같은 것이고, 일반 길드부터가 어벤저 일로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그룹에 속한다.
보통 C급 어벤저는 길드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기업에 소속되는 어벤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국가에 소속되는 어벤저는 많지만, 군 복무 중에 어벤저 스킬이 각성해 선출되는 케이스로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만족하다가 복무 기간이 끝나면 전역한다.
최재철은 군인이 아니므로 당연히 길드행이다. 그 자신도 그럴 생각이었고. 그런데 길드가 아닌 곳에서도 서류 심사를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기업이었다.
“응? 기업?”
혹시나 싶어서 기업명을 확인하니 진가규가 회장인 WF는 아니었다. 어벤저업에서는 선두를 달리는 WF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대기업인 TA였다.
C급을 상대로 기업이 먼저 접촉을 해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은 B급 이상의 인재나 길드에서 경력을 쌓은 경력자를 위주로 뽑았다. 그런데 기업이 C급을 상대로 먼저 접근을 해오다니? 최재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재철은 어벤저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당연히 인맥이고 뭐고 없다.
그때, 이지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최재철은 곧 고개를 저었다. 이지희는 필수 교육만으로 B급이 된 특이 케이스긴 하지만 최재철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에 어제 이력서를 올렸을 것이고, 빨라도 오늘 입사 시험을 볼 터였다. 그런 그녀가 TA에 무슨 영향력이 있겠는가? 이지희가 추천해줬을 거란 추측은 버리는 게 나았다.
“그럼 뭐지?”
최재철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쨌든 어떻게 생각해도 이 기회가 좋은 기회인 것은 맞았다. 대기업 경력을 쌓으면 이직도 쉽고, 인맥을 쌓기에도, 재산을 모으기도 쉽다. 실전 경험 속에서 A급 어벤저가 된다는 시나리오도 자연스럽게 작성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경력을 쌓아 WF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타인의, 특히 진가규의 관심 밖에서 적 내부로 파고들기에 이만한 방법도 없다.
그는 면접 준비를 서둘렀다. 새 양복도 빌려야 했고, 구두도 장만해야 했다. 최재철의 것은 전체적으로 너무 낡았다.
*
다음 날, 최재철은 면접장에 있었다.
면접장을 들어간 순간, 그는 자신의 복장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어벤저들은 다들 움직이기 편하고 튼튼한 전투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명은 어디서 구했는지 미군 전투복을 구해다 입고 있었다.
번쩍거리도록 닦은 구두에 딱 맞는 정장을 챙겨 입고 머리까지 깔끔하게 다듬고 온 건 이 50여 명의 어벤저 중에서는 최재철 하나였다.
주위에서 그를 바라보는 다른 면접자들, 즉 어벤저들의 시선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어벤저 면접은 실전으로 이뤄진다는 건 어벤저 네트워크에서도 듣지 못했다. 아마도 중견 어벤저들이 신인을 곯려먹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리라. 어느 사회에서든 흔히 있는 일이다.
최재철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을 견뎠다. 이 정도 굴욕이야 충분히 참아낼 수 있었다.
‘뭐, 실전 면접이라면 실력으로 보여줄 기회가 있겠지.’
답답하게 꽉 맨 넥타이의 위치를 바로잡으며, 최재철은 생각했다. 아예 이 김에 이 정장을 콘셉트로 밀고나가는 것도 생각해 볼 만했다.
TA는 매년 이런 식의 공개 면접을 보는 모양이었다. 어벤저의 랭크를 보지 않고 실전을 통해 입사자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심하면 사상자도 발생한다고 한다.
고작 C급 어벤저인 최재철에게 연락이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쨌든 직접 보고 실전을 거쳐 뽑겠다는 건 최재철에게는 유리한 방식의 면접이었다.
큰 홀에 듬성듬성 자기들 멋대로 어벤저들이 선 가운데, 앞의 단상에 누군가가 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마이크를 두 번 치자 웅성거림이 걷히고, 모두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폐사의 면접에 참여해 주신 면접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면접시험관인 현오준라고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1번부터 10번까지, 앞으로.”
쓸데없는 건 다 쳐내고 필요한 수순만 진행한다는 인상이다. 열 명의 어벤저 면접자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단상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면접시험관은 10번까지의 이력서를 확인하며 물었다.
“여러분 모두 서약서에는 서명하셨죠?”
네, 옙, 그렇습니다. 각자의 대답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면접 전에 사전에 받은 서약서란 이 면접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꽤나 섬뜩한 내용이었다. 면접자들의 대답을 들은 면접시험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했다.
“좋습니다. 덤비십시오.”
최재철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의 면접이었다. 그러나 장본인들은 미리 알고라도 있었던 듯, 열 명의 어벤저가 ‘와’ 소리를 지르며 단 한 명의 면접시험관에게 동시에 덤벼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열 명이 추풍낙엽이 쓸려가듯 우르르 쓰러졌다.
“좋습니다. 3번, 10번, 합격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불합격. 다음, 11번부터 20번까지!”
다음 열 명의 면접자가 앞으로 나아가, 면접시험관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아니, 미친. 능력자를 얕봐도 분수가 있지.’
눈앞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광경을 보며, 최재철은 헛웃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대마법사인 그조차도 이런 방식은 상상하지 못한다. 아무리 차원력이 적은 상대라도 상성과 활용 방법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공격을 해올 수도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초보자는 더욱 위험하다. 능력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이런 오만한 면접 방식을 채용할 만한 능력은 있는 듯, 최재철 직전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면접이 진행되었다.
“다음! 아, 51번? 최재철 씨?”
면접시험관의 시선이 최재철을 훑었다.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은 시선이 조금 신경 쓰였다.
“혼자 남으셨군요. 죄송합니다만, 덤비십시오.”
가장 랭크와 경력이 낮고 짧았던 탓인지, 최재철이 가장 마지막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면접시험관에게 덤비는 척을 했다.
‘일단 합격은 해야겠지.’
최재철은 일부러 차원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근력만으로 주먹을 날렸다. 면접시험관은 당연히 그 일격을 피하고 카운터를 걸어왔다. 최재철은 반사적으로 카운터를 피하고 바로 역공을 날렸다. 면접시험관은 별로 당황하지 않고 역공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다음 일격.
‘아, 그냥 맞아줘야 하나.’
최재철은 잠깐 생각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그냥 공격을 막았다. 면접시험관의 일격에는 차원력이 실려 있었기에, 최재철도 최소한도의 차원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 일격을 막아내자, 면접시험관은 공격을 멈췄다.
“…51번, 합격.”
면접시험관은 이채로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시선을 너무 끌었나.’
최재철은 약간 후회했지만 합격했으니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2차 면접은 오후에 장소를 옮겨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합격자 분들은 절 따라오시고, 불합격자 분들은 치료를 받은 후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면접시험관은 그런 말을 남기고 면접장에서 나가 버렸다. 최재철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고, 그의 뒤를 따랐다.
*
10명 남짓한 합격자는 군용 헬기에 탑승했다. 일개 기업이 군용 헬기를 운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차원 균열이 열린 한국은 10년 전의 최재철이 알던 국가와는 많은 점이 달랐다.
“지금부터 우리는 양구로 갈 겁니다. 우리 회사가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지역이지요.”
최재철은 자신을 현오준라고 소개한 면접시험관이 더 이상 회사를 폐사라고 하지 않고 ‘우리 회사’라고 지칭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 이유는 바로 드러났다.
“2차 시험은 바로 실전입니다. 적당히 긴장해 주십시오. 죽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위험해지면 제가 도와드릴 테니 어지간히 상황이 꼬이지 않는 한 괜찮을 겁니다.”
아직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2차 시험은 실전 업무를 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현오준은 1차 시험 합격자들에게 아직 높임말을 쓰고는 있었지만, 태도나 행동은 이미 부하 직원을 대하는 것 같았다.
헬기는 곧 착륙했다. 다른 지원자들의 안색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릴 듣고 긴장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므로 최재철도 최재철의 표정으로 긴장한 척을 하기 위해 애썼다.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은 최재철에게는 애증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그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위수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 외박을 나올 때 여기밖에 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군인에게 바가지를 심하게 씌우는 곳이라 이미지는 굉장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나름 추억거리가 없다고까지는 못할 지역이었다.
주말만 되면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로 붐비던 양구읍도 차원 균열이 열린 후 버려져 폐허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야 조금만 방심하면 어보미네이션이 나와서 돌아다니는 이 위험한 지역에 사람이 살 수는 없었다.
이제는 손님도, 주인도 없는 PC방과 당구장이 죽 늘어선, 원래대로라면 나름 번화가라 할 만했을 터인 거리 끝에서 입을 쩍 벌리고 서 있는 차원 균열의 모습은 최재철에게는 익숙했다.
싱크 홀이 수직으로 서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입을 쩍 벌린 그 구멍 속은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다. 세계의 균열이라고도 불리는 모양인데, 차원 균열이라는 명칭보다는 그게 더욱 적절한 것 같았다.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만 듯한 불안감이 본능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모습이다. 실제로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최재철이 그 문을 보고 느낀 감정은 기이하게도 안도였다.
‘내가 아는 그 차원 균열이 맞군.’
익숙함에서 오는 안도, 바로 그것이었다.
최재철 외의 면접자들은 차원 균열 주변 필드의 분위기에 압도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최재철과 달리 경험이 있는 어벤저들이라고 한들, 차원 균열 앞에까지 오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길드에서 그들이 주로 떠맡던 일은 자연 발생한 어보미네이션에게서 일반인을 보호하거나 현장을 격리하는 일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최재철은 그런 것까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안색에서 대충 사정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필드에 깔린 고농도의 차원력은 능력을 최소한도나마 다룰 줄 알게 된 이들을 압도했다. 가진 차원력이 적을수록, 그리고 경험이 적을수록 압박감은 더 커질 것이다. 최재철은 그들에게서 동정심을 약간 느꼈다.
“지금은 프로젝트 1팀이 업무 중입니다. 일단은 견학부터 좀 하시죠.”
최재철은 차원 균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프로젝트 1팀인 모양이었다.
“자, 그럼 현장에 도착했으니 우리 일터에 대해 강의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뭐, 너무 자세한 설명은 머리만 복잡하게 할 테니 여러분께서 맡으실 역할부터 간단히 말씀드리죠.”
현오준은 차원 균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여러분께서 맡으실 역할입니다.”
대장의 손가락 끝을 보니,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살금살금 발걸음 소리를 죽여 가며 차원 균열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저건 최재철도 처음 보는 미친 짓이었다.
“뭐 하는 거지?”
최재철이 자기도 모르게 뱉은 혼잣말에 현오준이 대답했다.
“저 역할을 디코이라고 합니다. 미군이 지은 명칭이죠. 저 디코이가 차원 균열 안쪽의 어보미네이션을 밖으로 꾀어내려고 하는 겁니다.”
현오준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비명 소리가 들렸다. 차원 균열로 접근하던 사람, 그러니까 디코이가 지른 비명이었다. 그는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었고, 그 뒤를 차원 균열에서 기어 나온 짐승, 어보미네이션이 쫓아오고 있었다.
디코이도 보통 인간은 아닌지 달리기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척 봐도 올림픽에 나가면 3연속 금메달 정도는 딸 정도의 대단한 각력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보미네이션의 속도가 더 빨랐다. 그는 곧 따라잡힐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매복하고 있던 화력지원 팀이 튀어나와 자동소총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어보미네이션은 큰 타격을 받고 놀라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고작 세 개뿐인 목숨을 순식간에 낭비하고, 어보미네이션은 총격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상적이로군요.”
저걸 나한테 시키겠다, 이거지? 최재철은 현오준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피식거리며 웃었다.
“왜 디코이라는 역할까지 두면서 어보미네이션을 여기까지 끌어내냐면, 저 차원 균열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현대 병기가 통하질 않습니다. 미군들은 저 영역을 ‘헬필드’라 부르더군요. 그래서 헬필드 바깥으로 어보미네이션을 끌어내야 총으로 저걸 처치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현오준은 빠른 목소리로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최재철은 병력들이 어보미네이션을 검은 천으로 감싸 나르는 광경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산업이다. 어보미네이션 시체라는 새로운 자원을 생산하기 위한 산업.
“긴장하지 않으시는군요. 음… 최재철 씨? 보통 처음 저 광경을 보는 신입 사원들은 얼굴이 새파래지던데.”
실제로 다른 합격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바로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어보미네이션을 필드 바깥까지 끌어내면 되는 겁니까?”
“네. 이해가 빠르시군요. 어보미네이션의 처치는 화력지원 팀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면 저도 개입할 테니…….”
“알겠습니다.”
최재철은 대답했다.
“해보죠.”
현오준은 최재철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딘가에 연락을 시도했다.
“최재철 씨, 최재철 씨는 3팀과 함께 하게 됩니다. 화력지원 팀을 소개해 드릴 테니 가서 인사라도 하시죠.”
“알겠습니다.”
최재철은 일어나서 현오준과 함께 화력지원 팀의 매복지로 향했다. 현오준은 화력지원 팀의 대장을 소개해 주었다.
우연인지 이것도 인연인 건지 대장은 구면이었다. 다름 아닌 김인수가 박기범을 죽일 때 그 자리에 찾아왔던 특수부대의 대장이었다. 이 인연도 신기했지만, 그 특수부대가 국가나 군대가 아닌 일개 기업의 소속인 것도 신기했다.
물론 김인수에게 대장은 구면이지만 대장은 최재철을 처음 볼 것이기에, 그는 되도록 깍듯이 인사했다. 서로 소개를 마치자 현오준은 다시 다른 합격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현오준이 돌아가자마자, 최재철은 대장에게 물었다.
“우리 팀은 동시에 몇 마리까지 상대할 수 있습니까?”
“전의 팀은 다섯 마리를 풀링했다가 전멸했었죠. 저만 남기구요. 아, 풀링이란 건…….”
“어보미네이션을 끌어내는 걸 말하는 거죠? 알겠습니다. 세 마리 이상의 부담은 드리지 않도록 노력해 보죠.”
대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완전 무명 신인이 나대는 꼴이니……. 하지만 최재철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최재철 본인이 이미 차원 균열을 다루는 데 익숙한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밝힐 필요는 없었다. 쓸데없이 정보를 넘겨줄 생각도 조금도 없었다. 어쨌든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해서 적당히 실력을 보여주고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으면 그만이다.
“뭐… 쫄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잘 부탁합니다.”
대장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입으로는 그런 말을 했다. 처세할 줄 아는 인간이로군. 최재철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
프로젝트 3팀, 최재철의 팀이 화력지원 팀 배치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 최재철이 디코이로서 차원 균열에 접근할 차례가 되었다.
최재철은 저벅저벅 차원 균열을 향해 걸었다. 조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걸을 뿐이었다.
차원 균열에 가까이 갈수록 진한 차원력이 그의 정신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최재철의 발소리를 듣고 최하급 어보미네이션 한 마리가 킁킁거리며 차원 균열에서 기어 나왔다. 박기범이 변이했던 그 어보미네이션, 리자드독이었다. 파충류와 개가 합쳐진 것 같은 혐오스러운 생명체다.
‘아니, 사실 반쯤은 생명체가 아니지.’
최재철은 자신의 귓불을 만지며 생각했다. 그는 저 짐승을 처음 상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 되살아나는 걸 봤을 때는 꽤나 놀랐었지.’
추억담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최재철은 속 편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최재철을 발견한 어보미네이션이 그를 향해 컹컹 짖으며 달려왔다.
최재철은 그 자리에 서서 리자드독이 덤벼들 때까지 기다렸다. 리자드독은 그의 목덜미를 노리며 입을 쩌억 벌렸다.
‘불쾌한 입 냄새로군.’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날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어보미네이션의 목을 쳤다.
퍽.
리자드독의 목이 땅 위를 나뒹굴었다. 어보미네이션은 그대로 절명했다.
하지만 곧 살아날 터였다. 이놈들은 목숨이 세 개다. 어떤 원리로 그럴 수 있는지 따지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으리라.
그러나 어보미네이션은 한 번 죽으면 잠깐 행동이 멈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최재철은 어보미네이션를 잡아서 헬필드 바깥으로 던졌다.
수백㎏에 달하는 무게의 짐승을 쓰레기봉투라도 집어던지듯 쉽게 던지는 그 모습에 당황이라도 한 건지, 화력지원 팀의 대응은 조금 늦었다.
드드드드.
총소리가 들렸다. 최재철은 시선을 돌려 화력지원 팀이 어보미네이션을 완전히 처치한 걸 확인한 후에, 최재철은 다시 차원 균열을 향해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이놈들에게 학습 능력 따위는 없다. 이딴 건 하루에 수백 마리라도 죽일 수 있다.
최재철은 차원 균열 바깥으로 킁킁거리며 기어 나온 또 다른 어보미네이션을 바라보고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정확히 세 마리를 끌어내다 죽인 후, 최재철은 뚜벅뚜벅 걸어 필드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격렬한 움직임 탓에 흐트러진 정장을 정리했다.
“후.”
넥타이를 새로 고쳐 매고 있는 최재철에게 현오준이 접근해 왔다. 현오준의 표정은 뭔가 신기한 것, 혹은 이해의 영역을 뛰어넘은 것이라도 본 것 같았다. 최재철에게는 대단히 의외였다.
“최재철 씨, 정말로 C급입니까?”
처음으로 나온 말이 그거였다. 최재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 길게 떠들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최재철은 현오준을 지나쳐 걸었다. 현오준이 뒤돌아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걸 느끼며 최재철은 따가운 그 시선을 무시하느라 애썼다.
‘내가 좀 지나쳤나.’
최재철은 잠시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는 딱 C급의 차원력을 활용했을 뿐이다. 그 이상의 능력을 보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이런 반응은 다소 과장스러운 면이 있다고 느꼈다.
‘이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다들 할 수 있을 텐데?’
최재철의 생각을 딱 한 줄로 요약하면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치고는 다른 합격자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놀라움, 질시, 동경.
능력도, 정체도 감출 필요가 없었던 저쪽 세계에서는 익숙했던 시선이다. 대마법사였던 그에게 일반 능력자들, 혹은 일반인들이 보냈던 시선이기도 했다.
‘이상하군, 다들. 이들은 모두 C급 이상의 경력자 어벤저일 텐데, 왜 나를 이런 시선으로 보지?’
최재철에게는 그런 의구심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기색은 내비치지 않은 채, 최재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대기 장소에 자리 잡은 묘한 침묵을 깨며, 현오준은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 지원자를 받아보죠.”
다음에 손을 들어 올릴 지원자가 나올 때까지는 3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
결과적으로 최재철이 벌인 퍼포먼스는 다른 면접자들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남은 10명 중 8명이 지나치게 과감하게, 정확히는 최재철을 모방해서 움직이느라 위험에 처했다. 필드 안에서 그들을 구출하느라 현오준은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
‘꽤 괜찮은 차원 능력자로군. 아니, 지구에서는 어벤저였지, 참.’
최재철은 현오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현오준의 능력은 신체 강화 능력. 어벤저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능력이지만, 제대로 쓰는 건 어렵다. 그냥 능력을 각성한 것만으로 갑자기 격투기를 잘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현오준은 뛰어났다. 원래 그런 직업이기라도 했는지, 최소한도의 움직임과 차원력만 활용해서 위험에 빠진 면접자를 적절하게 감싸고 어보미네이션을 죽였다.
정말로 위험해지면 최재철도 힘을 보탤 생각이었지만,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기준으로는 무난하게 테스트가 끝났다.
“아무도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군요.”
돌아가는 헬기에서 현오준은 농담처럼 그런 소릴 했지만 굳은 표정 탓에 그리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현오준의 생각은 최재철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오늘 여러분은 디코이로서 실전을 거치셨으므로 수당이 나갈 겁니다. 어벤저 네트워크에 등록된 계좌로 입금될 테니, 한 번씩 등록 정보를 확인해 주시고 아직 계좌 등록이 안 되신 분들은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면접으로 참가한 작전으로도 수당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직 경제적인 사정이 그리 풍족하다고는 하지 못할 최재철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정규직 및 인턴직 채용의 여부는 차후에 각자 따로 연락을 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시 1차 면접을 보았던 건물로 돌아와 그렇게 사무적인 이야기를 끝낸 후, 현오준은 최재철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만 최재철 씨, 잠시 개인적인 시간을 제게 내주실 수 있습니까?”
“개인적인 시간이라면…….”
“예, 회사 업무와는 관계없이.”
현오준은 여전히 격식을 차린 말투와 태도로 말했다.
“제가 일개 어벤저로서 최재철 씨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현오준의 모습을 주변의 다른 이들이 생경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지나쳤군. 지나치게 실력을 보였어.’
최재철은 속으로 통탄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이미 늦은 일이었다.
*
며칠 전에도 최재철은 식사를 얻어먹은 적이 있다. 상대는 이지희였다. 그때는 일식 돈가스였지. 그는 눈앞에 놓인 참치 대뱃살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돈가스를 주문하면 나오려나.’
대뱃살 너머에는 게가 등딱지를 까고 흰 속살을 내보이고 있었다.
‘안 나올 것 같군.’
그는 결론을 내렸다.
최고급 일식집이었다. 대체 언제 예약한 건지 룸까지 따로 잡은 상태였다.
“드시죠.”
현오준은 자신은 아직 젓가락에 손가락도 뻗지 않은 채 말했다. 마치 최재철이 젓가락을 들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보였다.
“사양하실 것 없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만.”
최재철은 말했다.
“이런 걸 매일 드십니까?”
“그럴 리가요.”
농담에는 웃어주는 것이 예의라는 양, 현오준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뭐, 저도 A급 어벤저라 먹겠다고 생각하면 매일 먹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습니다. 태생이 태생인지라 먹는 것에 돈을 쓰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태생이 태생? 그 말도 신경 쓰였지만,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그게 아니었다.
“그럼 이건 뭐죠?”
“접대입니다.”
현오준은 별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최재철 씨의 호감을 사고 싶어서 하는 지출입니다. 아니, 투자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인간은 오랜만에 보았다. 최재철은 현오준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빛을 보았다.
“왜 제게 그런 말씀을? 전 일개 C급 어벤저입니다.”
“저도 시작은 D급이었습니다.”
현오준은 뭐 대단한 걸 고백이라도 하는 양, 그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최재철은 놀라는 척을 해야 했다. 최재철의 리액션에 만족한 건지, 현오준은 계속해서 말했다.
“시작 랭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능력을 본인이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오늘의 면접자 분들은 전원 신체 강화 계열이나 파괴 계열의 어벤저만 모셨는데, 랭크는 최재철 씨가 가장 낮지만 가장 완벽한 능력 활용을 보여주셨습니다.”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그래봐야 저는 C급 아닙니까?”
“저는 최재철 씨가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C급으로 끝날 인재는 아닐 테지요. 이력서로 보기에는 최재철 씨가 필수 교육 당일에 C급으로 성장하셨다고 하던데요.”
“예, 뭐…….”
“그렇다면 A급으로도 금방 성장하시겠지요.”
너무 확신을 갖고 말하기에, 최재철은 다소 황당함을 느꼈다.
김인수는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그대로 좌절해 버리는 차원 능력자를 몇이나 보아왔다. 그런데 이 현오준라는 인간은 자신의, 아니, 최재철의 가능성을 이렇게도 쉽게 믿고 있었다.
무지함에서 오는 긍정성이라는 것은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는 것을 되새기며, 현오준에게 되물었다.
“그 성장을 누가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B급으로 끝나도 상관없습니다. 최재철 씨는 제가 꼭 필요로 하는 인재니까요.”
“어디에 말씀이십니까?”
“차원 균열 진입 탐사입니다!”
현오준은 그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저는 필드를 넘어 차원 균열 너머로 가볼 생각입니다. 그 모험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이죠.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이제까지 그 차원 균열 진입이라는 걸 혼자서 줄곧 해온 김인수의 입장에서 들으면 현오준의 각오는 다소 웃기게 들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고작 A급 차원 능력자에게는 힘에 부치는 모험임은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단신으로 차원 균열 진입 후 생존을 담보받기 위해서는 단일 차원 능력자가 아닌 마법사가 필요하다. 즉, 적어도 혼자 다섯 종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능력을 지닌 차원 능력자를 포섭해서 함께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오준이 보기에 최재철은 그가 필요로 하는 능력의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흥미로운 프로젝트로군요. 혹시나 제 힘을 필요로 하신다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최재철의 대답에 현오준의 얼굴이 활짝 폈다.
“예, 부디!”
*
최재철이 차원 균열 진입 탐사에 참가하겠다고 말한 건, 그에게도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차원 균열 너머는 자원의 보고였다. 물론 목숨이 위험한 공간인 건 맞지만, 김인수에게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는 차원 균열 안에서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현오준의 제안은 김인수에게 있어서도 크게 기꺼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있어…….’
신경 쓰이는 점이 몇 개 있었다.
왜 굳이 현오준이 아직 입사도 하지 못한 최재철을 고급 일식집에 데려가 접대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면접 담당자이고, 최재철이 입사한 후에도 상급자이다.
그런데 오늘 현오준이 얻고자 한 것은 명백했다. 그가 원한 것은 대답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상급자로서 명령한다든가, 면접 담당자로서 압력을 넣는 것도 가능했음에도 그런 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는 것 자체가 김인수에게는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현오준이 선하고 정의로운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무의미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이들이나 할 짓이다. 그리고 김인수는 대마법사다. 어리석음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간 중 하나였다.
“판단 근거가 너무 적군.”
김인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귀가하고 말았다.
*
새삼 느끼는 거였지만, 최재철의 이 자취방은 생각 외로 괜찮은 은신처였다.
아무리 좁고, 낡았고, 엘리베이터도 없고, 제대로 된 전열 기구와 가구도 없다 한들 서울 시내에서 관리비 포함 월세 35만 원은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이렇게 괜찮은 매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낡은 빌라의 입주민은 최재철뿐이었다. 원래는 방음도 잘 안 될 터인 이 방이 이렇게도 조용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뭐, 귀신이라도 나오나?’
자신의 상상이 웃겨서 최재철은 피식거렸다. 하지만 뭔가 뒷사정이 없다면 입주민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환경이기는 했다.
좀 더 말이 되는 추측을 떠올려 보자면, 이 빌라에서 어보미네이션이 출현해 참극이라도 벌어졌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적절했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해도 사람이 죽어나갔던 집에 들어가서 살기는 꺼려지게 마련일 테니 말이다.
‘돈을 벌면 여기서 나가려고 했지만, 계속 이대로라면 여기서 공방을 차려도 되겠는데.’
차원 균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마법 기물을 제조할 수 있는 공방도 필요해질 터였다. 마법사의 공방에는 입지 조건이 몇 가지 있는데, 이 자취방은 워낙 조용하고 인기척도 없는 곳이라 결계를 치기에도 좋고 공간도 안정화되어 있어서 입지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문제는 공방을 만든 뒤에 입주민이 새로 들어오면 어쩌느냐 정도였다.
‘뭐, 이 주변 방을 내가 싹 사버리든가 하면 되겠지.’
최재철로서 직장에 취직해서 적절한 신분을 손에 넣으면 이계에서 가져온 귀금속과 보석을 처분할 수도 있게 될 거고, 그러면 돈에 쪼들릴 일도 없게 된다.
박기범의 신원으로 보석을 몇 개 처분해 볼까 고려해 본 적도 있지만, 집안의 패물을 몰래 들고 나온 탕자처럼 보일까 봐 못 했다.
게다가 지금의 박기범은 사망자, 혹은 살인범이니 어딜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요 며칠간 뉴스 사이트를 봤지만 박기범의 소식은 물론 진현우의 소식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게 좀 꺼림칙했지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다. 진씨 가문에게 언론 장악은 손쉬운 일일 테니 말이다.
“빨리 출세를 해야지, 원.”
최재철은 툴툴거리며 빌려온 양복을 벽+에다 걸었다. 생전 처음 헬기도 타보고 해서 그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지쳐 있었다.
자연스럽게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그는 이불 위에 몸을 뉘였다. 오늘 차원 균열 가까이 간 덕택에 소모했던 차원력을 상당히 회복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낭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재철은 취직에 성공했다.
“이게 또 묘한 감동이 있군.”
어벤저 전용 단말기로 날아온 채용 합격 문자를 보며 그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그의 인생에서 첫 대기업 입사, 첫 정규직 채용을 달성한 것이다. 12년 전의 감각이었다면 감동해서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이다. 가족들이 다 모여서 외식이라도 갔겠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픽 한 번 웃고 단말기를 내려놓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축하해 줄 사람도, 축하받을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어벤저로서는 로열로드라고 할 수 있는 기업에의 취직에 성공했으니, 최재철에게는 상당히 경사였다. 김인수에게도 괜찮은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면접시험 때 잡은 어보미네이션에 대한 수당도 함께 들어왔다. 세 마리 합쳐서 천만 원 정도. 추가로 생명 수당이 500만 원이 추가되었다.
혼자서 최하급 어보미네이션을 잡았을 때에 비하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현오준과 화력지원 팀의 백업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상식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C급 어벤저인 최재철은 어보미네이션 세 마리를 혼자 능력으로 다 잡지는 못하니, 이 돈이 적다고 항의를 하는 건 그다지 합리적이지는 못했다.
이렇게 받은 1,500만 원을 김인수는 모조리 최재철의 어머니에게 송금했다. 원래 첫 월급은 부모님에게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김인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최재철의 신원값을 50만 원만 딱 주고 입 닦는 것도 줄곧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다 변명이지.’
김인수는 송금을 마치고 쓴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기 부모에게 하지 못한 효도를 최재철의 어머니에게 대신하며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뭐, 어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김인수는 일부러 소리 내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껄껄 웃어대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최재철의 집 전화기가 울부짖었다. 갑작스러운 거액의 송금에 놀란 최재철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온 탓이었다. 김인수는 최재철의 목소리로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얘야, 이 돈은 뭐니? 뭐 위험한 일에 손 댄 건 아니지?”
큰돈을 기뻐하기보다 먼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최재철의 부모님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왜냐하면 최재철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었다.
“TA에 취직했어요.”
“TA? 그게 뭐니?”
해외에서 한국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벤저 임무를 주로 다루는 외국계 회사라 그런지 장년층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대기업이에요. 아, 저 어벤저 라이센스를 따서요.”
“뭐, 어벤저? 그거 위험한 거 아니니?”
대재해 전의 구세대에게 있어서 어벤저는 그런 인상이리라. 그야 일상적으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당연히 위험하다.
그러나 본래 직업을 잃고 다른 직업을 구할 여력마저 없어 그대로 말라죽어 갔어야 할 운명이었던 최재철에게는 이 어벤저라는 직업도 감지덕지하다. 아니, 이 정도면 굉장히 훌륭하다.
이런 걸 최재철의 어머니에게 이해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얘!”
“끊을게요.”
김인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구나, 최재철.”
다시 전화기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여기까지다.
그는 아예 집 전화기의 전화선을 뽑아버렸다.
“최재철, 네겐 미안하지만 여기서부턴 불효 좀 해야겠다.”
대리 만족은 여기까지다.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드는 것도.
그는 날카로운 시선을 벽에 던졌다.
이제 최재철의 부모와는 연락을 끊을 것이다. 송금을 할 일은 더욱 없다. 다른 무언가를 나눌 일도, 얼굴을 마주 볼 일조차 없을 것이다.
300만 원이면 블랙마켓에서 어보미네이션에 의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릴 수 있다. 어벤저 네트워크에서 뒤늦게 손에 넣은 정보였다. 어벤저가 되지 못했다면 애초에 얻을 수 없었던 정보였으니, 최재철이라는 이름이 없었으면 어차피 그림의 떡이긴 했다.
얼굴과 안전성까지 합친 가격이 1,500만 원이라면 그럭저럭 합당한 가격이리라. 그 값을 치른 것이다. 최재철이라는 이름과 모습을 빌리는 대금을 치른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다 치렀다.
이제 더 이상 ‘대리 효도’같은 걸 할 생각은 없다.
“하려면 진짜 효도를 해야지.”
그의 진짜 부모에게 진짜 효도를.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진짜 효도가 의미하는 건 단 한 가지다.
복수.
완전무결한 보복.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