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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1. 질투 (14/16)

Side 1. 질투

“나쁘지 않아 보이네. 머리 하나, 팔 두 개, 다리 두 개. 어디 하나 잘려 나간 것도 없고, 감금된 상태도 아니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바람처럼 가벼운 목소리를 듣고 있던 하리드의 눈썹이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제법 괘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톱을 세워서 무엇 하겠냐는 생각을 하며 어깨에 힘을 뺐다. 그는 상대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날 잡아다 르브리에에게 바친 것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을 테니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다.”

뼈가 있는 말에도 룩센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뱀파이어 왕이 제 반려를 그토록 아껴서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하던데, 용케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줬군? 의외였어.”

“네가 청했다고 하던데.”

“그래, 그랬지. 내가 그랬지, 수장님. 이렇게 바로 들어줄 줄은 생각 못 했지만 말이야. 역시…… 반려란 무섭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라, 용건.”

하리드는 꽤 민망한 그 소문을 부정하진 못했다. 처음 웨어울프의 이야기를 전해 줄 때의 르브리에의 표정은 굉장했다. 정말 내뱉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내뱉는다는 기색이 역력했고, 이야기를 들은 하리드가 거절해 줬으면 하는 것이 절실해 보였었다.

하지만 하리드는 이곳에 있다. 결국 르브리에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대체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인지. 뱀파이어의 왕은 지금도 문밖에서 눈을 불처럼 빛내고 서 있었다. 어찌나 기척을 잘 숨기는지, 룩센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하리드는 생각했다. 내가 도망갈까 의심스러운 것인가.

“큭, 넌 어째 변하지를 않냐, 하리드.”

“…….”

“우리의 용건은 간단해. 알아야 했으니까. 누군가가 냅다 버리고 간 종족들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는 처지라서 말이야. 뭐, 이것도 나름 재밌긴 하지만. 역시 뒷바라지가 내 특기인가 봐, 빌어먹을.”

원망이 담긴 말은 아니었다. 하리드는 가볍게 웃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다가, 살짝 한숨을 쉬듯 웃어 버렸다.

“힘든가.”

“반려를 찾고 의무감과 본능 사이에서 비쩍비쩍 마른 갈대처럼 죽어가던 친구 놈 보던 순간보다는 백배는 행복하구만.”

“그래. 결국, 네가 그와 나를 만나게 해 준 셈이니. 너에게는…… 감사할 뿐이다.”

순간, 농담 어린 얼굴을 집어치운 룩센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면 행복하게 살아.”

“…….”

“그걸 감사의 답으로 받을래. 더없이 행복해서 왕을 빼앗긴 우리가 질투조차 하지 못할 만큼, 행복해져라. 내가 널 위해 한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말이야.”

종족에게 룩센이라는 자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참으로 대책 없고 책임감 없는 수장보다 백배는 낫다.

하리드는 자세를 바로 하며 얼굴을 굳혔다.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만든 자리가 아니지. 룩센, 무엇을 원하지?”

빠르게 말을 알아들은 룩센이 호응했다.

“간단해. 종족 간의 회담. 밀약 말고 공식적인 맹약.”

“그렇군.”

“그래, 하리드. 너도 알다시피 지난 1년간 뱀파이어와 웨어울프의 사이는 최악을 달렸어. 이대로 쭉 지낼 수는 없는 일이지. 과거에 얽매여 살 수만은 없으니까.”

“증명된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건가?”

“이왕이면 확실한 것이 좋아.”

“넌 내가 주선하길 바라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그게 내 요구야. 그리고 그게 네가 종족의 수장으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 수장님, 물론 강요는 아니야.”

룩센은 빙긋 웃었지만, 하리드의 얼굴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수장을 잃어도, 결국 저들은 살아가게 될 것이다.

멸망의 예언시에 매달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현실의 오늘을.

* * *

르브리에는 푸른 달빛 아래에 서 있었다. 하리드 브리첼은 그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잠시 넋을 빼앗겼다. 제 반려는, 마치 얼음을 녹여 만든 것 같을 때가 있다. 황홀하다. 어찌하여 뱀파이어라는 것은 저토록이나 아름답게 태어난 것일까.

“하리드 브리첼, 왜 그런 표정입니까?”

“너야말로. 왜 그러고 있지?”

“나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회담은 무사히 이뤄졌다. 하지만 모든 것을 확연하게 진행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온 르브리에의 얼굴은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는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하리드의 눈까진 속일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당신과 나는 반려니까, 속을 읽을 수 있을까. 궁금하군요.”

“…….”

“맞혀 봐요. 응?”

가까이 다가가면서 유심히 그의 기색을 살폈다. 빙그레 웃고 있는 눈, 장미꽃처럼 붉게 말려 있는 입술, 그리고 미동도 없는 미간. 손을 올려 매끄럽고 시원한 그 뺨을 쓸어내리자 차갑기만 하던 상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반응이 기껍다. 하리드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어버렸다.

“뭐가 불안한 거지, 르뷔.”

잠시 크게 뜨여졌던 눈이 곧 가늘어졌다.

“왜요. 내가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까?”

“그래. 뭔가를 갖지 못해 잔뜩 뿔이 난 어린아이 같군.”

“그따위 비유는 열 받는데요. 당신이 오래 살았을 뿐이지, 내가 어린아이인 건 절대 아니거든.”

불퉁한 목소리를 들으며, 하리드는 손을 움직였다. 차갑고 느릿하게 뛰고 있을 상대의 심장 위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차가운 옷자락이 사각거리며 피부 아래로 구겨졌다.

“말해라, 르브리에. 내가 너의 뭘 불안하게 만든 건지.”

“말하면 그 불안을 없애 줄 수 있습니까?”

“듣고 판단하지.”

“그게 당신이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나로 인한 것이라는 거군. 내가 널 불안하게 했나?”

팽팽한 대화가 맞섰다. 그러다 돌연 르브리에의 그린 듯한 이목구비가 와락 일그러졌다. 느긋함과 느릿함 속에 숨겨 두었던 초조함이 가시처럼 비죽 튀어나온다.

“당신.”

“내가 왜.”

하리드는 르브리에를 보았다. 흔들리는 그를 보았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태풍 앞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흩날리는 그를 보았다. 일그러진 얼굴에 가득한 그 초조함, 이글거리는 붉은색의 눈동자, 그 모든 것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당신이 당신 종족을 만나는 게 불쾌합니다. 아주, 불쾌해. 정말 심통 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라서 아주 더럽습니다.”

“어째서?”

입술을 달싹여 속삭인다. 내가 돌아갈까 봐?

짐승 같은 귀를 가진 반려는 그 속삭임을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잔뜩 구겨지는 얼굴을 보면서, 하리드는 웃어 버렸다. 저 모습을 보면서, 그 초조함을 보면서 웃음이 나는 자신이 참 고약하지 않은가.

하리드는 속삭였다.

“너그러워져라. 난 저들을 아예 버릴 수는 없다.”

“저들은 이미 수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래도. 네가 그들의 어미이며, 아비이고, 종족의 왕이듯 나는 그들의 머리이고, 이성이며, 영혼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우려하고 죄책감을 느끼겠지.”

불만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마주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앞에 네가 있다, 르브리에.”

“…….”

“나는 초원을 뛰어다니는 짐승이지. 괴물이야. 멀쩡한 손톱과 발톱이 있는데, 이렇게 주저앉은 것을 보면 모르겠나? 나는, 너를 선택했다. 내 모든 영광과 의지와 영혼을 버리고, 너를.”

“나를.”

“그래, 너를. 내 반려인 너를. 몇 번이고 선택하겠다.”

오로지 너를.

콧속을 적시는 달콤한 향기에 흠뻑 취해, 반짝이는 그 은사 속에 손가락을 깊이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귓불을 입안에 넣고 살짝 빤다. 흠칫하며 떨리는 목덜미의 피부를 입술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이를 내어 잘근 씹었다. 하리드의 숨이 끈적하게 흘러나왔다. 한층 짙어진 눈으로 그의 반려는 갈구하듯이 응시한다. 당장 먹어 치우고 싶다는 듯. 그 시선이 끔찍하게 달콤해 웃음이 나왔다.

“당신. 아, 제기랄. 왜 그렇게, 멋있습니까?”

“네가, 하찮은 거다.”

“으음…….”

“이렇게 안달하는 모습은 왕답지 않아.”

“당신에게만 그런 겁, 니다……. 빌어먹을.”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기껍게 들으며, 무릎으로 상대의 다리 사이를 뭉근하게 문질렀다. 단단하고 뜨겁게 선 굵직한 성기는 간밤에 잔뜩 넓혀지고 혹사당했던 내벽을 움찔거리게 했다.

“르뷔.”

뜨겁게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입술을 한쪽으로 틀어 올렸다.

그리고 키스할 듯 다가가 속삭였다. 두 시선이 팽팽하게 맞닿았다.

“질투 따위 그만하고, 키스나 해라. 우리에게는 남는 게 시간일 텐데?”

* * *

쭈읍, 적나라하게 살갗을 빠는 소리가 질척했다.

“하아!”

“가만히.”

“으, 읏.”

“안 돼.”

이가 박히고 피가 빠져나갈 때마다 눈앞이 번쩍 튀고 온몸이 활이 된 것처럼 날뛴다. 잠시라도 이성을 놓으면 잔뜩 비성이 섞인 기이한 교성을 내뱉을 것 같아, 하리드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흐읏, 으…… 으읏.”

부들부들 떨리는 척추를 가느다란 손가락이 훑을 때마다, 구멍을 활짝 열고 파고든 굵직한 성기가 내벽 깊은 곳을 뜨겁게 마찰할 때마다, 차갑고 길쭉한 손가락이 경련하는 엉덩이를 움켜쥘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날카롭게 일어난 손톱은 단단하게 올라붙은 살을 할퀴듯 죄었고, 하리드는 그때마다 참지 못해 긴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하, 흐으읏!”

송곳니가 빠져나가는 순간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강하게 파고든 성기가 내벽 깊숙한 지점을 두드리자, 눈앞이 희게 변했다. 크게 부푼 성기의 끝에서 쾌락이 터져 나갔다. 팔다리에 힘이 추욱 빠지자 목덜미를 깨물며 처박던 남자의 입술 위로 미소가 그려졌다.

“하아, 하…….”

“이 감각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흰 눈이 확 떠졌다. 익숙? 그런 말도 안 되는 망발을. 치미는 분노에 목 깊은 곳에서 그르릉,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걸, 어떻게, 후우, 하.”

흡혈의 감각에 적응하는 건 짐승도 힘든 일이었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튀고, 당장 발기해 버리는 그 끔찍한 쾌락을 어찌? 르브리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느긋하게 웃으며 하리드의 복부를 느릿하게 훑었다. 짐승은 바르작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간지럽고, 뜨거웠고, 감미로웠다.

“왜. 사람은 누구나 적응의 동물이죠.”

“나는 인간이 아, 윽. ……니야.”

“그나저나 그리도 좋습니까? 이렇게…… 몇 번이나 쌀 만큼?”

“읏!”

“정말 보기 좋은 광경이에요. 얼마나 멋진지 압니까.”

나직하게 흘러들어 오는 목소리와 함께 척추를 따라 소름이 내달린다. 보란 듯이 손가락 끝에 피를 묻혀 쇄골부터 배꼽까지 간지럽히듯 훑는 감각 때문이었다.

“정액 범벅이 되어서 말이에요.”

“윽!”

“이렇게 좋아하면, 다시 발기해 버리지 않습니까.”

“흐, 읏.”

“그래도 쉬었다 해야겠죠? 나는 상냥한 반려니까.”

개소리.

엉덩이를 들썩이자 내벽을 꽉 채우고 있던 것이 스윽 빠져나갔다. 질척한 살점의 소리와 함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아, 하리드……. 당신이 좋아서 미치겠습니다.”

“흐으.”

이쪽이 할 말이다. 르브리에의 모든 것이 언제나 그를 미치게 했다. 달뜬 신음을 내뱉으며 발치에 매달리게 만든다. 애원하게 만든다.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부르며 흔들리게 만들었다. 진탕되는 것이 감각인지 아니면 이성인지 모를 정도로. 그리하여 체면도 위신도 모두 흙바닥에 버리게 만들었다.

“당신이 내게 물리면서, 아래를 세울 때면 말입니다.”

“하아, 하아, 르, 뷔…….”

“하, 그때의 기분은 말이에요. 정말 더럽게 좋습니다.”

“후우.”

“두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웨어울프의 섹스는 최고의 타락이고, 사냥은 최고의 쾌락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 흡혈은, 저 날카로운 송곳니의 끝이 제 살갗에 박힐 때는 영혼마저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당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고 싶어집니다. 그건 굉장히 신사답지 못한 생각들이죠. 하, 떠오른 그 생각들을 내뱉으면 당신은 도망갈까?”

“도망가지 않, 으읏.”

“그래도 들어줄 겁니까? 이 욕망들을? 그리고 들어줄 겁니까? 내 부탁들을? 당신이 말했잖습니까. 나를, 나를 선택했다고. 응?”

“흐읏! 르, 뷔!”

“아아.”

손톱 끝이 잔뜩 빨렸던 유두의 끝을 꾸욱 눌렀다. 그 알싸한 통증에 꽉 다물린 이빨이 입술을 찢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입안에 가득 찬다. 차가운 손가락이 두드리듯 입술을 훑었다. 피가 묻은 손끝을 혀로 싹 훑는 반려의 얼굴은 무척이나 사악했다.

“달콤해. 왜 당신은 빨릴 때의 표정마저 내 취향이지? 이렇게 취향이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람을 항상 미치게 만들잖아요.”

그렇다. 꼭 인간들이 말했던 악몽 속에서 튀어나온 악마 같다. 그것들은 그토록 아름답다지.

눈을 가늘게 뜨며 올려다보자 붉은 혀가 스스로의 입술을 핥았다. 축축해지는 그 붉은 살점이 눈을 어지럽혔다.

“당신 피부 위에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 기분이 이상해.”

“……하아, 하, 어떻, 게?”

“배고파집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잘도 저런 거짓말을.

“하, 그게 아니라, 발정, 이겠지.”

“…….”

“하아, 왜, 아닌가?”

“이런. 내 짓궂은 기사님……. 정말 일부러 이러는 거지?”

비웃듯 말하자 붉은 눈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건 황홀한 빛이었다. 아주 그윽하게 숙성된 포도주를 떠올리게 했다. 비릿하고 달콤한 향이 뒤섞여 머리까지 멍해지는 것 같다. 하리드는 상대의 매끈한 도자기 같은 피부 위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복부를 강하게 틀어쥐듯 힘주었다가 자국이 남는 흰 피부 위를 간지럽힌다. 황홀하게 좋았다.

“!”

빠져나갔던 성기가 자연스럽게 구멍을 찾아 파고드는 순간에도 하리드는 두 눈을 똑바로 떴다. 살갗이 벌어지고, 빠듯하고 야릇하게 깊은 동굴 속을 헤집는 것은 뜨겁고 흉악했다. 짐승과 괴물의 눈이 질척하게 뒤섞인다. 르브리에의 눈이 만족스럽게 휘었다.

“이제는 꽤 익숙하게 들어가는군요. 반기는 것같이 말이에요.”

“후우, 후……. 너, 지금. 갑, 자기.”

“당신의 것이 하나씩 내게 맞춰 변해 가는 것은 굉장히.”

“하, 하아, 하. 윽!”

“굉장히 만족스러워.”

고개를 숙인 상대가 턱 아래의 얇은 피부를 싸악 훑었다. 맺힌 땀방울과 핏방울을 훔친 것이다.

“그거 압니까, 하리드?”

“으흐…….”

“당신이 내게만 보여 주는 그 모습들, 얼마나 야한지.”

“하아, 하.”

“뜨겁게 조이고 있어요.”

목소리가 달다. 뜨겁다. 울컥하고 조여드는 것은 내벽이 이 살덩어리를 얼마나 반기는지 알려 주는 것이었다. 눈앞이 붉게 물들어 이성을 놓을 준비를 하는 육체가 안달이 났다. 터질 듯 뛰는 박동은 반려의 것에 닿는 기쁨을 노래하고 짐승을 달뜨게 했다.

“하지만,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엉덩이를 조이고, 허벅지를 푸들거리며 떨리게 했다.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손톱이 찌이익 시트 자락을 찢는 모습에도 상대의 날카롭고 아름다운 웃음은 바뀌지 않았다.

“뭘 원해, 하리드 브리첼?”

“흐, 읏.”

“뭘 원하냐고. 내 뭐를 원해?”

가까이 다가온 그 얼굴. 피 냄새와 피부의 달콤한 향기. 하리드는 손을 움직여 르브리에의 목덜미를 거칠게 쥐었다.

“뭘 해 줄까. 말해 봐요. 어서 말해 봐.”

너.

“어서요.”

오로지 너.

더 깊고 아찔하게 파고드는 감각에 구멍을 꽉 조였다. 그리고 읏, 소리를 내는 붉은 입술을 가득 삼켰다. 아, 달다. 달았다. 정신없이 빨며 재촉하듯 허리를 흔들었다.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서. 어서. 어서 더 빨리, 더 박아. 정신없이 흔들어. 내게 미쳐 버려라, 운명아.

“제, 기랄. 그런 얼굴로, 말입니다. 이렇게 구멍을 조이는 건 대체 언제부터, 하.”

반려의 피는 달다. 뱀파이어의 왕이 짐승의 피만 취하게 된 것처럼, 길을 잃고 굶주린 웨어울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만 미치는 것은 너무나 아찔한 감각이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하리드는 흰 어깨에 매달리듯 손톱을 박았다.

“하으, 윽!”

“당신의 향기, 변했습니다. 더…… 달아졌어.”

“후, 으!”

허리가 마구 뒤흔들렸다. 퍽, 땅을 파헤치는 것 같은 묵직한 소리가 배 속을 두드렸다. 엉덩이를 터뜨릴 듯이 꽉 쥐는 아픔조차 쾌락이었다. 고개를 뒤흔들며 하리드는 미칠 것 같은 쾌락 속에서 몸부림쳤다. 온몸이 부서졌으면 좋겠다. 몸을 반쪽으로 쪼개는 것처럼, 엉덩이 사이를 꿰뚫는 것이 더 깊이, 더 거칠게 박혔으면 좋겠다.

그래서 뼛속까지, 이 핏속까지 괴물의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 고동치고 요동치는 생명의 태동이 기쁘다는 듯이 울었지만 그런 것조차 이성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르브리에.

“르…… 뷔, 하아!”

“더, 불러요.”

“르, 뷔, 으읏, 흑, 윽! 르, 르뷔, 하아, 윽!”

“더 불러. 날, 나를 불러.”

“르뷔, 아, 르, 뷔!”

“그래, 내 이름. 그거야. 당신의 반려. 하리드 브리첼.”

그의 초조함이 좋다. 불안이 좋다. 종족을 만날 때 내비치는 가녀린 연약함이 좋다. 이 얼마나 음습하며, 불건전한 생각인가. 제게 집착하고 불안으로 일그러져 짙어지는 시선이 아찔하게 느껴진다니. 하지만 이게 짐승의 본능일지 몰랐다.

르브리에가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운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목줄에 매인 개가 된 것처럼 정신없이 꼬리를 흔드는 기분이다. 생리적으로 맺혀 흘러내리는 것은 뜨겁고 투명한 눈물이었다. 거칠게 뒤얽히며 입안을 파헤치는 혀를 달콤하게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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