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3. 인연의 실은 끝나지 않는다
하리드는 생소한 건축물을 보았다. 깊고 깊은 숲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광활한 성에는 투덜거리는 청년 하나와, 나른한 눈빛으로 그런 청년을 바라보는 은발의 뱀파이어가 하나 있다. 다른 군식구들도 있었지만 하리드가 주목한 것은 바로 그 둘이었다.
‘왜, 웃어. 머저리 같은 새끼야. 내가 널 죽게 한다는데 웃음이 나와?’
‘홀로 남는 것보다는 황홀하지.’
‘좋다고, 웃냐.’
‘네가 우는 모습은 더 기쁘군.’
‘아체르.’
‘소르웬.’
상당히 입이 더러운 것 같아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주절거리면, 그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다는 듯 웃어 보이는 뱀파이어는 굉장히 노련해 보였다.
하지만 하리드 브리첼은 그 겉모습 이면을 보았다. 왜 저들이 자신의 꿈에 보인 것인지. 저들과 자신의 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요즘 들어 입버릇이 된 것처럼 아주 이후의 일들을 궁금해하는 제 반려에게 이야기해 줄 거리가 하나 생기지 않았는가.
비록, 조금 당혹스러운 모습의 미래의 자신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
아련한 꿈속에서 빠져나와 눈을 떴을 때, 그는 서늘한 공기를 느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몸은 역시나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있는 팔의 주인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엉덩이 사이에 불편한 감각을 보니 또 빼지 않고 잠든 모양이다. 이 빌어먹을 뱀파이어가. 하리드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르브리에, 빼라.”
“……으응.”
“잠든 척하지 마.”
“……너무해요. 조금만 더요.”
“읏.”
“당신이 움직이니까 커지잖아요.”
이제 배가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피부 위를 타고 오르는 뱀처럼 올라온 흰 손이 헐벗은 제 배를 부드럽게 매만지는 것에 하리드는 훈계하려던 것도 포기해 버렸다.
“후우.”
“왜, 깼어요. 더 잘 것이지.”
그리고 1년 사이에 상당히 어리광이 늘어버린 듯 제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한 종족의 왕을 한심하게 토닥였다. 움찔하고 파고 들어와 있는 놈의 것이 조금 커진 것 같았지만.
“꿈을 꿨다.”
“무슨 꿈?”
“우리의 환생이었어.”
“……뭐? 정말입니까?”
어깨를 잘근 깨무는 질척한 소리를 들으며, 하리드는 신음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그곳의 왕이더군. 숲의 왕.”
“그리고?”
느릿하게 핥는 긴 혓바닥이 이번에는 목덜미를 핥았다. 싸악.
“으응, 그리고 나는… 인간이었, 읏….”
“당신도 곁에 있었습니까? 내 곁에.”
“나는 조금, 당혹스럽던데.”
“어째서요?”
“말투가, 아!”
“말투가 왜.”
끈적한 손길이 이번에는 밤새 회복되어 잦아든 말랑한 살점을 괴롭혔다. 부드럽게 매만지며 원을 덧그리다가, 손톱을 세워 꾸욱 가운데를 짓눌렀다. 엄지와 검지로 세우듯 빙글거리자 심이 단단하게 섰다. 옆을 꽉 누르자 결국 유두가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흐응…….”
“이제 여기가 좋아요, 기사님? 아니면 내 손길이라 좋나?”
“그렇게 부르지, 으읏…….”
“나도 좋아요. 당신 젖꼭지 만지는 것. 빨면 더 좋아요.”
“닥, 흐으, 흥…….”
“흔들어도 됩니까?”
“이미, 흔들고, 있……으면… 으읏, 윽…….”
부드럽게 파고들고 빼는 것을 반복하는 성기가 조금씩 뜨겁고 크게 부풀었다. 바짝 엎드려 시트에 스치는 유두의 감각에 앓는 소리를 내고 있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조르며 재촉했다.
그래서요. 무슨 꿈이었는데요. 설명을 마저 해 줘야지.
“너는 뱀파이어, 왕이었, 윽.”
“지겹게 또 왕이었습니까? 흐응. 그래서, 당신은.”
“흐으, 응, 나는 입이 더러운…… 인간, 반쯤은…….”
“왜요, 당신이 쌍욕이라도 했습니까? 그건 상상하기 어려운데.”
꽈악 하고 르브리에가 뒤에서 가슴을 쥐어짜듯 움켜쥐자 숨이 턱 막혔다.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며 귀가 그의 입에 삼켜졌다.
“나는, 황자였어…….”
턱을 돌려 깊게 키스하는 르브리에를 음미하면서, 하리드도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빠져나가려는 것을 꽉 조이며 움켜쥐기도 했다.
“후우, 그러면. 환생한 우리는, 같이 죽지 못하는 겁, 니까?”
“아, 하, 으, 아니, 으.”
“어떻게?”
“내 피, 흐, 변형된 웨어, 울프라서…… 읏, 윽, 널 죽일 수 있는 독이, 하아, 하!”
“그렇게 또 흘러간단 말이죠.”
거칠게 주름을 파고들어 와 내벽의 튀어나온 곳을 문지르듯 누르며 르브리에가 웃었다. 웃음소리에 허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거 나쁘지 않은데요. 미래에도 우리는 함께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입버릇 더러운 인간이 되어서, 그리고 나는.”
“……윽, 읏, 윽, 잠, 잠만 더럽게 많, 던, 데, 읏……!”
“그렇게 살다 죽어갔겠죠. 지금의 우리처럼.”
뱀파이어의 왕국과 미래의 시간들, 까마득히 피가 옅어져 결국 태어나지 않고 변질될 웨어울프들, 그리고 수장은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사실. 사라질 미래와 환생의 미래를 엿봤으나 그것은 말하지 않았다.
웨어울프가 사라질 거라던 미래는 씁쓸했지만.
그건 이미 멸망의 예언시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생물의 이치였지.
하리드는 현실에 직시하며 달콤한 한숨을 흘렸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현재의 르브리에가, 배 속의 아이가, 이 둘이 자신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