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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2. 도주 (11/16)

Side 2. 도주

제국을 역사에 비유하자면, 지금은 분명히 인간들의 암흑기였다. 밤은 이제 인간들의 것이 아니었고 지배를 하던 이에서 지배를 받는 이로 떨어져 내렸다. 살벌하고 두려운 공포가 지배하는 것이 르브리에가 새로운 깃발을 내건 뱀파이어 제국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밤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뱀파이어가 이를 들이밀더라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대 황제이자 괴물의 왕인 르브리에는 오로지 인간을 흡혈하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그 끔찍한 쾌락을 주는 흡혈로 인해 문제가 하나씩 터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어둑한 골목길. 깊게 갈색의 후드를 쓴 남자가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재빠른지 꼭 고양이와 같이 날쌨다. 담을 넘고, 골목을 뛰다가 길을 꾀고 있는 것처럼 복잡한 곳으로 거리낌 없이 움직였다.

“…….”

그리고 사내는 어딘가에 서서 벽을 매만졌다. 특별한 문양이 새겨진 그곳에서 문을 두드리자, 놀랍게도 벽이 움직였다. 스으윽,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생겨난 것처럼 벽에 공간이 생긴 것이다. 주변을 빠르게 살핀 후드 남자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검은색의 공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밖과는 다른 훈훈한 공기가 사내를 맞이했다. 붉은색의 은은한 불빛, 그리고 하나 놓여 있는 테이블, 그곳에서 기다리는 다른 남자.

후드를 쓰고 있던 이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거두며 자신을 기다린 남자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오랜만이다, 룩센.”

후드를 벗은 자는 다름 아닌, 하리드 브리첼.

웨어울프도 뱀파이어도 눈에 핏발이 서 찾고 있는 대상이었다.

* * *

“꼴이 그게 뭐야.”

룩센은 투덜거리며 따뜻한 차를 가득 따라 주었다. 피식 웃으면서 하리드는 그것으로 입을 축였다. 몸은 거북하지 않았지만, 미묘한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이전과 상태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 1년이 흘렀어, 하리드. 언제 돌아올 셈이야.”

“…….”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뱀파이어 왕국이 세워지고, 괴물의 존재가 인간들의 세계에 드러났다. 요람에는 뜨거운 화제가 들끓었다. 붉은 밤, 그들의 광기를 잠재우고 이끌었던 수장은 사라졌는데 인간 세상은 난리가 났다. 멸망의 예언시가 뱀파이어 종족 자체를 가리켰다는 것도 드러났다.

젊은 종족들은 전쟁을 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이가 많은 장로들은 결사반대했다. 수장을 찾아라. 그들이 원한 건 오로지 그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돌아갈 것인가.

그는 동족들을 버릴 수도 없었지만, 그들을 위해 르브리에를 칠 수도 없었다.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다, 여태까지. 그래도 하리드, 널 내가 가장 잘 알잖냐.”

“돌아가자고 하는 거면.”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

룩센은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그리고 눈을 굴리다가,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너 임신했지.”

“…….”

철렁하고 심장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왜냐하면, 지금 하리드 브리첼은 잉태의 기미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 수장은 반려가 같은 성별이었을 때 수컷의 씨를 잉태할 수 있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아니…….”

“부정하지도 거짓을 말하지도 말고. 너는 분명히 르브리에 그 망할 놈에게 끌리고 있었지.”

“…….”

“반려라고, 뜨거운 눈으로, 네 성격을 보았을 때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상황을 모면할 정도의 감정이었다면.”

룩센의 눈빛은 퍽 우울했다.

“넌 원했겠지, 그놈과의 아이를. 네가 간절히 원하지 않았다면 잉태하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나는…….”

“단순한 성욕 같은 소리 좋아하네. 반려이기 이전에 너나 그놈이나, 지독해. 보는 사람이 더 짜증 날 정도로 자기들밖에 몰라. 제발, 제발 그거 사랑이라고 하자. 그냥 서로 손잡고 잘 살아라.”

“끔찍한 소리.”

“왜. 애를 가진 시점에서 넌 그놈을 간절히 바란 거 맞아, 수장님. 어지간히 사랑하지 않고서야 수컷 수장이 어찌 수컷의 아이를 품을 수 있겠어. 이론적으로 가능은 해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네가 그래서 필사적으로 도망 다닌 거잖아. 지랄 발광할 젊은 것들이 네 아이를 찢어 놓을까 봐.”

“…….”

“내게도 말하지 않고.”

부풀지 않은 제 배를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아이는 1년 동안 전혀 자라지 않았다. 있는 것이 맞는 건지 스스로 유심히 기운을 돌려보아야 했을 만큼 조용했다.

그건 아이에게 웨어울프의 피가 흐른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웨어울프의 새끼는 부모 양쪽의 관심과 기운을 받고서야 제대로 자라났다. 만약 이대로 도망자의 생활을 계속한다면 이 아이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차라리 돌아가라.”

“어디로 갈 수 있겠나.”

“갈 수 있지. 우리에게 돌아오든, 아니면 지금까지도 널 찾느라 난리 중인 그 뱀파이어 새끼에게 찾아가든. 그 아이는 낳아야지. 그러고 평생 살 순 없잖아, 수장님아.”

“…….”

“젊은 놈들이 헛지랄을 하긴 했지만, 하리드. 너 우리 배신한 거 아니다.”

의외의 말에 하리드는 눈을 크게 떴다. 룩센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룩센은 매우 꺼칠하고 피곤한 낯이었다. 갑자기 비어 버린 수장 대신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것 같아 미안했다.

“이시르 그 늙은이가 처음부터 노망이 난 거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얼마나 좋아. 마주치기 전에 피하기라도 했을 거 아니냐. 그냥 네 피 찔러 넣어 처음부터 보지 않고 죽였겠지.”

“그랬을지도.”

“그런 거야.”

룩센의 말은 무척이나 신랄해서, 여태까지 조금씩 하리드를 파고들어 왔던 자조들을 순식간에 떨궈 주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는 말들이었다. 그런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나.

“이시르는 어떻게 됐지?”

“멸망의 예언시는 그녀에게도 독이었나 봐. 오래지 않아 죽었다.”

“……동족들이 더 힘들어졌겠군.”

“그랬지. 그녀에게 의지하는 것들이 꽤 있었으니.”

콸콸 쏟아지는 것은 술이었다. 알싸한 향기에 목이 말라졌다. 하지만 술잔을 만지려는 제 손을 탁 치는 룩센의 얼굴이 상당히 매서웠다.

“어딜 임산부가. 꿈도 꾸지 마시지?”

“……룩센.”

“으르렁거려봤자 아무 소용 없다. 안 무서워. 술 금물이야, 너 혼자 다닐 때도 이건 지켰겠지?”

“하, 사람을 뭐로 보고. 마시지 않았다.”

“그래, 그래. 그건 용서해 주지.”

꿀꺽거리며 술을 퍼마신 룩센이 크으,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돌아가는 형국은 잘 알고 있고? 아, 아니지. 도망간 척해 놓고 사실 저 뱀파이어 새끼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고 있었으니, 알 건 다 알겠는데. 너 사실은 르브리에 그놈 지키고 있었지?”

하리드는 비스듬하게 시선을 돌렸다. 뜨끔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대화인데도 역시 넌 짜증 난다.”

“누가 할 말을 해? 이 빌어먹을 수장 새끼야.”

너무 오랜 세월을 알아 온 친구란 이래서 불편하다. 하리드는 입술을 씰룩였고 룩센은 쌍욕을 내뱉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자조도 스쳤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말해 주면. 황녀는 오래지 않아 자살했고, 지금 인간 세계는 완벽히 그놈들 지배를 받는 중이다. 우리는 1년간 치열하게 전쟁을 해 왔지만 지금은……. 바뀌었지.”

“무엇이?”

룩센은 손가락으로 술잔을 두드렸다. 그리고 고민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교섭하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

“교섭? 웨어울프들이?”

“그래. 그만큼 절박하거든.”

“…….”

“젊은 애들이 생각보다 많이 죽었어. 너도 알다시피 르브리에나 그놈들은 긴 세월을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냐. 아주 영악하고 영리하지. 뭣 모르고 달려드는 것들은 쉽게 잡혔어.”

“…….”

“본래 전쟁이 그런 법이겠지만.”

하리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불길했다. 지금 룩센이 내뱉는 말들이, 그리고 그 상황이. 뱀파이어와 웨어울프, 천적인 두 괴물들이 협정하려 한다. 긴 1년의 전투를 마치고. 그런 상황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잠깐. 너, 설마.”

“역시 넌 눈치가 빨라.”

불길함이 확신이 되어 쭈뼛 섰다. 어떻게, 네가!

“룩, 센!”

“독약은 아니야. 몸에 해도 안 갈 거야. 잠깐 자고 일어나면 돼.”

“…크윽!”

벌떡 일어나 의자를 움켜쥐려는 순간, 눈앞이 핑글거리면서 돌았다. 크윽 이를 악물며 참아 봤지만, 몸에 힘이 훅 빠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술 먹지 말라고 잔소리했던 놈이 감히 약을 먹여?

배신감으로 노려보듯 바라보자, 룩센이 어깨를 으쓱하며 속삭였다. 미안, 친구. 그래도 너도 이제 좀 그만 돌아가라.

털썩하고 쓰러지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 * *

1년간 어떻게 지냈던가. 이렇게 허망하게 잡힐 것이 아니었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리드는 어떤 소리를 내뱉지 않았는데도 제 곁에 있는 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자 역시나 예상한 인물이 의자에 앉아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녕, 하리드 브리첼.”

심장이 먼저 알아보고 울었다. 튀어나올 것 같다.

기쁨일지 아니면 절망 섞인 탄식일지. 하리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르브리에.”

유려하게 웃고 있는 달콤한 향취의 남자.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은발을 반짝이며, 그가 스스로의 입술을 매만지며 웃었다.

“술래잡기는 즐거웠어요?”

“르뷔.”

“나는 더럽게 재미없었는데, 기사님은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 다니더라고요. 그렇게 나한테 잡히기 싫었나 봐.”

살기를 띤 것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붉은 눈은 지독했다.

“정말 미친 것 같았어요.”

몇 개월 전에 먼발치에서 보았을 때보다도 더욱 비틀리고 꼬여 있었다. 빌어먹을, 치솟는 욕을 참으며 하리드는 의식되기 시작한 반려의 달콤한 향기와 미치게 만드는 허기에 시트를 꽉 쥐었다.

“왜 모른 척해요. 왜. 난 당신을 보자마자 발기했는데. 당신을 보자마자 옷을 벗기고 그 살갗에 이를 박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는데요.”

“…….”

“우리 내기한 거 아닌가?”

빌어먹을 술래잡기.

“잡았어, 하리드 브리첼. 내가 이겼으니, 이제 포기해. 당신 동족들도 그러겠다 수긍했어요. 내 손 잡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새끼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면.”

“…….”

르브리에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 끓는 점을 넘어버린 액체처럼, 낮고 거친 목소리로 그가 손톱을 세웠다. 하리드의 손등을 따라 붉은 선이 길게 기어졌다가 사라졌다.

“이제는 더 못 참아. 하리드. 또 도망치면 정말 다 죽여 버릴 거야. 널 묶고 있는 그 동족들.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 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고 도망가지도 마.”

제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 키스하는 반려의 접촉을 그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그도 간절히 바랐다. 어쩌면 이 순간을. 조심스럽게 벌어지는 입술을 파고들어 오는 르브리에의 뜨거운 혀를 기쁘게 핥으며 하리드는 그의 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 * *

“허억, 헉, 하악!”

“아아, 가만히, 있어 봐요, 후우…….”

“하, 하악…… 으, 읏, 하윽, 으응!”

빠듯하게 구멍을 파고 들어온 성기가 배 속까지 뚫을 기세로 거세게 박혔다 빠지길 무한 반복했다. 얼얼하게 벌어졌던 구멍이 오므릴 새도 없게 다시 두꺼운 기둥을 품어야 했다.

활짝 벌어져 주름 하나 없을 정도로 벌어진 항문은 가엾어 보였지만, 성기를 박는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엉덩이를 틀어쥐고, 다리를 활짝 잡아 벌렸다. 추삽질을 오가며 혹사당한 주름 사이로 거품이 잃으며 정액이 떨어졌다.

“하읏, 윽, ……으으읏!”

“하아, 하. 빌어먹을.”

불알까지 박아 넣을 것처럼 허리를 찧을 때마다 쿵, 쿵 육체의 어딘가가 침대 헤드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삐걱거리는 침대의 소리가 불안할 정도로 격한 흔들림이었다.

“하아, 하……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어.”

“……흐, 으윽, 읏, 윽, 앗, 학…… 악!”

“이렇게 미치게 만들어 놓고 왜 이리 도망을 잘 가는 겁니까.”

“흐…… 으으, 읏, 으응!”

“정말 미치라고? 당신이 날 버리고 동족들에게 간 줄 알았을 때는, 정말 다 죽여 버리려고 했었는데.”

“하아, 아 ……윽!”

“당신의 괴물들에게 돌아간 게 아니었어. 그래, 그걸 알게 되었을 때 말이에요. 얼마나 기뻤는지 정말, 당신이 눈앞에 있었으면 누가 보는 앞이더라도 당장 이렇게 쓰러뜨리고 구멍을 꿰뚫었을 거예요.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알아요?”

“하, ……으, 아!”

거칠게 뒤흔들려 하리드는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음성을 내뱉으면 새는 것이라곤 저 밭은 신음 소리뿐이었다. 정점을 푹 찌르면 발작을 하며 성기에서 튀어 오르는 정액이 시트에, 벽에, 그리고 저를 끌어안고 있는 흰 괴물의 몸에 난잡하게 묻었다.

잘근거리며 씹는 송곳니가 아프고 아릿하게 살을 내리누르다가, 목덜미를 은근하게 파고들어 붉은 액체를 탐할 때면 눈앞에 번개가 치는 쾌락이 몰아쳤다.

푹, 푹, 마치 삽질을 하는 것처럼 파고들어 온다. 찰싹거리며 엉덩이가 그의 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굉장히 질척였다.

“차라리 계속 박아 넣고, 있으면 도망을 못 갈, 텐데. 그렇죠?”

“흐으, 하, 하응…… 읏, 헛, 소리를…… 읏, 윽!”

“입만 살았지. 여전히. 그 고고한 표정을 한 주제에, 아래로는 이렇게 오물거리면서 내 정액을 질질 흘리고 있잖, 아요. 하아……. 당신 모습이 얼마나, 야한지 알아? 또 거울을 보며 싸게 해 줄까요?”

“으, 흐, 으…….”

“반려라는 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요. 당신이 없는 동안, 나는 매일 매일 목 말라 죽어가고 있었어.”

벌써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뜨는 모습을 본 게 두 번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기절한 순간에도 다시 눈을 뜨면 거세게 뒤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모호했다.

엉덩이가 닫히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페니스가 들락날락 괴롭혔다. 이제 마른 적이 없을 만큼 축축했다. 허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의 피를 퍼먹거나, 그가 제 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하리드는 앓는 소리를 길게 내면서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즈으윽, 소리를 내며 거대한 기둥이 아래에서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활짝 벌려진 허벅지로 상대의 머리카락이 간지럽히며 쏟아졌다.

“여기, 깨물어도 됩니까?”

“하, 하아…… 그, 만…….”

“된다고요?”

푸욱.

“……!”

몸이 활처럼 휘었다. 예민하고 깊숙한 여린 살갗, 사타구니 가까운 허벅지 깊숙한 곳에 그의 송곳니가 깊게 처박혀 치솟는 액체를 게걸스럽게 빨았기 때문이다. 젖은 소리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울렸다. 벌떡 서는 성기를 희롱하듯 꽉 쥐며 즐겁게 피를 탐하는 뱀파이어는 정도를 몰랐다.

흐으, 제 것 같지 않은 갈라진 신음 소리와 함께 꺼덕이는 성기의 뿌리를 차가운 손가락이 쥐어 왔다.

“이, 제, 허억, 헉, 그, 더 이상, 안, 하아…….”

“아니에요,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당신 체력이 얼마나, 후우.”

“윽, 아!”

“대단한데요.”

뿌리를 꽉 움켜쥐자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동시에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엉덩이를 확 치켜들어 다시 두꺼워진 살덩어리를 르브리에가 처박았다. 구멍이 확 벌어지고 흐물거리며 닫히지도 않던 곳에 뱀파이어의 성기는 빠듯한 압박감을 가득 주며 파고들어 왔다.

“하으으, 으윽!”

“지친 것 같아도 다시 꽉꽉 깨물고, 또 씹는단 말입니다.”

느릿하게 파고들어 와 천천히 빠져나간다. 부러 느끼라는 듯이 그 적나라하게 배 속을 간지럽히는 감각에 하리드 브리첼은 자지러졌다. 다리가 경련하듯 벌어지려고 하면 그가 꽉 쥐며 허리에 감게 했다. 경련하며 뛰는 복부를 훑어 내려오는 손이 즐겁게 속삭였다.

“여기에 내 것이 있, 어요. 느껴져요? 손바닥 아래로 움직이고 있어.”

“흐으, 흐…….”

“느리게, 흐우, 당신도 느낄 수 있게 말이야.”

르브리에는 끈질겼다. 하나씩 다 나열하겠다는 듯이 입을 대고 그것에 대한 감상까지 늘어놨다. 하리드로서는 조금 더 집착스럽게 변한 제 반려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이제 정말 그만해도 되지 않나, 멍한 머리로 생각하고 있으려니 빙긋 웃는 얼굴이 예쁘게도 펴졌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아는데요.”

“하아, 하…….”

“난 아직 안 돼.”

야릇하게 웃으며 피 내음 나는 미소를 르브리에가 머금었다. 그리고 몇 번을 짓씹어 번들거리는 액체에 젖은 젖꼭지에 손을 뻗으며 동시에 아래를 벌리며 파고들었다.

퍼억!

“……아!”

“……하리드.”

그 순간, 검지와 엄지로 유두를 비틀었던 르브리에가 기이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헐떡이면서 눈을 뜨며 고개를 내린 하리드 역시 우뚝 굳었다.

“이게 뭡니까?”

“…….”

“이거 뭐야.”

쥐어짠 유두 끝에 몽글하게 뭉친 희뿌연 액체가 있었다. 서늘하고 끔찍한 침묵이 도래했다. 그러고 보니 하리드는 아직도 말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몸을 겹치느라, 자신이 지금 그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뱀파이어는 어떨지 모른다. 그러나 수컷이 임신할 수 있는 상황은 웨어울프에게도 극히 예의였다. 징그럽게 여기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아이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붉은 눈이 더 짙어졌다.

“이거 내가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그래요?”

“……읏.”

하리드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지금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유심히 살폈다. 지금 르브리에는…… 아무리 봐도 웃고 있었다. 그뿐인가. 갑자기 확인이라도 해야겠다는 듯 하리드의 양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도톰한 살점을 비틀 듯 움켜쥐었다.

“……!”

“젖었잖아.”

하도 물고 빨아 예민한 성감대가 되어 버린 유두를 세게 누르자, 배에 박혀 있는 성기를 꽉 죄며 하리드는 작살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허리가 활처럼 휘며 전신을 타고 흐르는 쾌감을 참느라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 너, 그렇게…….”

“젖었어요. 하리드 브리첼. 당신, 내 아이. 내 아이를.”

“후우, 후, ……그건, 하아.”

“언제였어. 언제부터 이 안에 있었어.”

그가 꾸욱 배를 아프지 않게 눌러 왔다. 정확히는 느릿하고 조금은 세게 쓰다듬었다. 마치 그 안에 있는 흔적을 찾으려는 손길처럼 끈적하고 집요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젖을 흘릴 정도의 상태였단 말이지. 수장이 애를 가질 수 있단 거 정도야 나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그렇게 보내고 내가 웨어울프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을까 봐?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건 꽤 구미가 당겼습니다. 당신과 날 닮은 아이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거든.”

“하아, 앗, 아!”

“걱정 마요. 웨어울프 수컷은 아이를 가져도, 격하게 밤낮없이 뒹굴어도 아이에게 해가 없다고 하니까.”

“으윽, 윽!”

“그런 거나 알아보고 다녔단 말이야, 내가. 당신만 생각하면서.”

격하게 자지러지며 가슴을 세게 빨아 올리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허리가 절로 들썩이며 마주한 르브리에의 복부에 성기를 거칠게 비볐다.

마치 기쁜 것처럼 마구 성기를 움직이면서, 르브리에는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하.”

“홀쭉한데. 왜 1년 동안 하나도 자라지 않았어요?”

대답하는 것이 곤욕인 상태였는데도, 상대는 거듭 말을 걸었다. 혀를 씹을 뻔한 것을 참으며, 흔들리는 상태로 하리드는 천천히 내뱉으려 노력했다.

아이. 제 아버지를 드디어 만난 아이가 배 속에서 기쁨으로 요동치는 것 같아서 눈시울이 핑 돌았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면서 얼마나 배 속의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사죄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르브리에는, 불같이 화를 내거나 냉정하게 돌아설 것이라 생각했던 르브리에는 왜인지 빙긋 웃고 있었다.

“그건, 후우, 하, 읏…… 반려의 아이는 반쪽의 손길도 있어야, 하으응!”

“아. 그러니까 내 접촉이 필요하다 이 말이죠.”

“아, 앗, 너무, 윽!”

“기특한 녀석이네.”

집요하게 파고드는 추삽질이 거세졌다. 조금 더, 더, 더 빨리. 다시 삐거덕거리는 침대의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다리가 덜렁거리며 흔들리고 쥐어짜며 괴롭혀진 유두에서 축축한 것이 연신 흘러내렸다.

1년간, 한 번도 젖이 흐른 적이 없었다. 아이를 길게 품고 있는 이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반려를 맞이한 육체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액체가 맺히는 유두가 그 증거였다.

“……으윽!”

“맛있어. 더 먹어도 됩니까?”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다시금 거세게 빨렸다. 짓눌리고 주변의 유륜을 빙글 돌리는 손가락이 유려했다. 너무 강한 쾌감에 비명을 지르듯이 흔들리니, 그가 퍽 찔러넣으며 속삭였다.

“목 안아요.”

“흐으……!”

“어서.”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집요하게 귀에 박혔다. 한계까지 몰아가는 쾌감에 육체가 비명을 지르며 반응했다. 하으, 흐. 기어가듯 몸을 돌리고 싶어도 가운데가 꿰뚫린 가련한 늑대는 도망도 갈 수 없었다.

식은땀이 맺힌 이마의 머리카락을 핥듯이 혀로 훑으며 뱀파이어는 기쁘게 속삭였다.

“당신도 날 원한 거야. 그렇지.”

푸욱, 푹, 찌걱, 살갗이 대답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파고들고 후벼파고 다시금 내벽이 희롱당했다. 불이 붙은 것 같아. 어느새 르브리에의 어깨를 움켜쥔 손톱은 변형해서 인간의 것을 벗어났지만,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서로를 탐하는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달콤한 내음이 하리드를 바짝 흥분하게 했다. 단단하게 당기는 성기의 뿌리에 회음부가 욱신거렸다.

“하리드 브리첼, 당신도 다르지 않았어. 그랬던 거야.”

철썩, 쩍, 철썩.

“아악……!”

하얗게 변질되는 것과 함께 아랫도리에 뜨겁고 축축한 것이 질펀하게 퍼졌다. 파정의 쾌감에 엉덩이 사이에서 부푼 꼬리가 불쑥 튀어나왔는데도 뱀파이어는 까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꼬리를 거세게 움켜쥐고 바짝 치켜들어 그 아래에 구멍을 더 잘 보이게 옆으로 굴렸다. 그리고 희뿌연 액체가 새어 나오는 구멍을 짙은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꼬리가 잡아당겨지는 감각에 발가락이 잔뜩 오므라들었다.

“당신을 망가뜨리고 싶어요.”

“흐으, 하…….”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게.”

“너, 이상해졌, ……으윽, 이제 진짜 안, 안…….”

도망가지 마요. 뒤에서 안아 오며 파고들어 오는 그 뜨거운 기둥을 느끼면서, 하리드는 결국 흐느끼듯 울어 버렸다. 도망갈 생각 없다고 말을 해도 듣지도 않을 것 같았다. 이 미친놈. 상태가 왜 저렇게 변한 건지 모르겠다. 가엾은 꼬리까지 희롱당하며 위아래로 쥐어짜여야 했던 가엾은 짐승의 수장은, 그렇게 한참을 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한번 해가 떴을 때, 하리드는 드디어 까무룩 기절할 수 있었다.

“자는 거예요? 잊으면 안 됩니다. 도망가지 않는다고 분명 말했어.”

질긴 놈이었다. 100번도 더 넘게 말했을 것이다. 까무룩 잠기는 의식 속에서도 어이가 없어 입술을 휘었던 것 같다.

하리드는 긴장이 풀리자 안온함 속으로 파고들었다. 긴 술래잡이가 끝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까마득한 피곤함 속에 의식이 잠겨 들었다. 배 속의 아이도 기뻐 투웅, 하고 운 것 같다. 그건 이 지독한 반려의 곁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도 보고 싶었으니까. 그의 피도, 체취도, 숨결도, 그와의 섹스도, 저를 부르는 음성도, 그리고 르브리에의 존재 자체가 그리웠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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