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ide 1. 르브리에 (10/16)

Side 1. 르브리에

그는 르브리에라는 이름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에 잉태되어 태어났던 시절까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다른 이들과 달랐다는 것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애석히도 날 때부터 괴물이었다. 그는 보통의 인간들과 육체의 조건이 달랐고, 다쳐도 순식간에 나았다. 그리고 광기에 휩싸였다. 갈증, 미치게 만드는 갈증이 문제였다.

어릴 적에는 그 충동을 더 조절하지 못했다. 1황자 부부는 아들을 아끼고 사랑했으나 제 아버지에게 아들을 보이면 살해당할 것을 알아 몰래 키웠다. 황적에는 이름을 올렸으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품 안에만 숨겼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보통의 인간이었고 그는 괴물이었다. 짐승의 목을 빨고, 피를 먹고, 삼켜야 했다. 돼지의 피를 마시며 처음에는 역겨움에 구역질을 하면서도 부모와 함께 살고 싶어 참았다. 나중에는 그것조차 감지덕지해 꿀꺽이며 삼켰지만.

슬프지만 그 생활도 한계가 있었다. 끝은 생각보다도 더욱 빨리 찾아왔다. 아버지가 믿고 믿었던 동생의 배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황제에게 고발했다. 1황자가 사실은 괴물이며, 그 자식을 보면 괴물의 씨앗임을 알 수 있다고!

르브리에는 개처럼 끌려 나갔다. 송곳니를 황제의 앞에서 가축처럼 들쳐야 했으며, 칼로 팔을 그어 회복되는 모습을 공개해야 했다. 유난히 희고 투명한 피부는 실험하는 자들에 의해 내밀한 곳까지 곳곳 파헤쳐져야 했고, 그 어디에도 황족에 대한 대우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고, 또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종족에 대해 알지 못했다. 피의 갈증에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리는 어린 괴물을 난감하게 바라보다가 1황자가 숙청되는 날 같이 처리하기로 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나를 죽여도 좋아요. 우리 엄마, 아빠만 살려주세요!’

2황자에게 빌었다. 그가 제 행복한 생활을 끝장낸 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벌벌 기며 빌었다. 제발, 제발. 눈물과 침이 뜨겁게 흘러내렸지만, 그는 오히려 저를 목 졸랐다. 죽으라고, 괴물 새끼 따위는 죽으라고 윽박질렀다.

‘흐으으윽……. 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르브리에는 가차없는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반쯤 타 버린 시체라고 생각한 육체가 시체 꾸러미 안에 버려졌다. 아마도 그렇게 며칠만 더 방치되었다면 정말 기적적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르브리에의 인생은 끈질겼다.

그는 살았다. 지나가는 들짐승의 등을 덮쳐 피를 쭉쭉 빨아 회복했다. 팔로 다리로 기어갔다. 그리고 헐벗은 몰골로 가장 던져져서는 안 되는 골목 안까지 기어들어 갔다. 그때는 몰랐다. 인간은 가끔 괴물보다 더한 괴물들이라는 것을.

그는 강했지만, 어리고 어리석었다. 인간들은 사악한 혀를 부릴 줄 알았고 속임수라는 것을 쓸 줄 알았다. 제 힘과 특이성을 알게 된 인간들은 족쇄를 채웠다. 창굴은 끔찍했다. 어둠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축도 그리 키우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삶이었다. 빼어난 외모 탓에 굴욕적인 일도 많이 당했다. 저를 탐하며 허리를 흔드는 것들을 노려보며, 버티고 또 버텼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 년이 될 때까지. 이를 악물며 다짐하고 복수를 각오했다. 힘을 얻는 순간 저것들을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

‘전하, 저는 페르달 공작입니다.’

그는 르브리에에게 있어 구원이었다. 부모 외에 유일하게 괴물을 향해 손을 내민 자들이었다. 하지만 인자한 얼굴의 부부는 어쩌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르브리에의 부모의 가장 충직한 신하였다. 그리하여 흔적을 뒤지고 쫓아 르브리에를 찾아냈다. 황제의 끈질긴 감시하에서도.

그들에게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자신과 이름이 같은 아들이 있었다. 병약하고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받은 아들은 해외에서 요양 중이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과 같은 날, 같은 시, 그리고 같은 성별로 태어난 이름마저 같은 아이. 몸이 약해 덜컥 죽어 버린 페르달 공작 부부의 아들. 제 그림자.

‘제 아들을 대신해 주십시오. 그것이 전하께 남은 유일한 방도입니다. 준비한 대로 제 아이와 전하의 이름은 같습니다. 다만, 제국 내에서 있으실 순 없으니 제 아들이 요양 갔던 곳으로 은밀히 모시겠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지?’

‘그게 제 아이를 살아가게 할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압니다.’

요양 생활은 르브리에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았다.

단순히 그곳이 편해서가 아니라, 응당 황족으로 배워야 하는 것을 몰래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기에 그곳에서 제 피와 힘에 대해 자각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연이었다. 강도를 당해 칼에 찔려 버려진 어린 소년. 귀족가의 아이였으나 힘 있는 가문의 아이도 아니었고, 첫째도 아니었다. 반면에 귀족 가문의 아이를 찌른 강도들은 영지의 힘 있는 유착 세력이었다.

‘도와줄까.’

변덕이었다. 과거의 제가 생각나서 문뜩 든 생각이었다. 충동이었다. 손을 내밀었고, 퀭하게 죽어가는 아이가 그의 손을 잡았다.

‘살고 싶어요.’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죽어가는 아이에게 힘을 주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날이 인간에게 송곳니를 꽂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엘 폰 라리트는 자신의 첫 번째 종이 되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

새롭게 태어난 혈족은 제 이름과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더욱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르브리에의 명령에 복종했다. 손가락을 까닥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존재를 죽일 수 있고 살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붉은 액체의 맛.

흡혈의 감각은 눈물이 날 만큼 짜릿하고 강렬했다. 이것이었다. 사람의 피, 혹은 자신들 뱀파이어로 변한 인간의 피. 그가 마시고 채워야 했던 것은 그 피였다. 그는 진정 괴물이었던 것이다.

* * *

복수는 퍼즐을 맞추듯 순조롭게 완성되어 갔다. 그는 훌륭하고 멀끔한 페르달 공작이 되어 그 자리를 이었고, 은밀히 늘려간 자신과 뜻이 맞는 복수자들은 인간들 몇십 명이 달려들어도 지지 않을 강력한 혈족이 되어 제게 충성을 맹세했다.

괴물들의 왕국. 뱀파이어들이 지배하는 세상. 그는 그것을 꿈꿨다. 감히 황제는 제 발치도 따라오지 못하리라. 지배받는 자가 아니라 지배하는 자가 되리라. 냉혹하게 빛나는 붉은색의 눈동자는 복수, 오로지 복수만 떠올렸다.

다르지 않을 그날들 중 하나, 그 남자를 보게 된 것은 바로 그 일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리드 룬 브리첼. 브리첼 가문에 대해서는 황제 때문에 경각심을 갖고 수많은 조사를 해서 알고 있었다. 그 가문의 특이성과 비정상적인 과거도. 그리고 현 가주인 하리드 그 작자는 더더욱 괴이하다는 것을. 겨우 10년짜리의 과거를 갖고 있는 주제에 도무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위를 보여 줬다.

잠시 아주 잠시 의심해 보기도 했었다. 혹시 자신과 같은 동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무정한 심장도 흥분을 했었다. 그렇게 간절히 찾아왔었지 않던가.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괴물들은 없단 건가?’

인간들 사이에서 홀로 태어나 뱀파이어의 왕이 된 그는 자신이 종족의 첫 번째이자 근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바랐다. 자신과 비슷한, 인간이 아닌 종족들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 뭉클한 동질감으로 이 인생이 조금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오늘 브리첼 공작이요!’

‘브리첼 공작이…….’

‘페르달 공작, 그가 승전했다고 해요!’

이예르라는, 그의 가련한 사촌은 꾸준히 그에 대해 떠들었다. 기록에 대한 관심을 떠나 처음 하리드 브리첼에 대해 귀를 기울였던 것은 그녀의 공이 컸다. 대체 어떤 작자이기에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은 제 사촌이 홀딱 넘어갔을까.

그렇게 부러 브리첼 공작이 황제의 명령으로 참여한 첫 번째 연회에 참석했다. 물론 원래도 그는 온갖 연회에 얼굴을 비추곤 했다. 그 연회장에서 그는 동족을 늘렸고, 정보를 사고팔았으며, 조금씩 황제 아래의 귀족들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후끈한 공기와 다른 연회보다 더 더럽고 음습한 황제의 그 대연회에 발을 디뎠다. 그때의 감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심장이 꿰뚫리는 것과 비슷했었다고 해야 할까.

“저게 브리첼…….”

지독한 수컷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강인한 전사라는 것을 내보이는 자였다. 짙고 짙어서 밤의 바다 같은 흑빛의 머리카락도, 탄력적으로 건강하게 빛나는 광택 있는 피부도, 그리고 그 진하게 빛나는 흉흉한 금색의 눈동자도.

부드럽고 억센 검은 털을 지닌 거대한 짐승 같았다. 발걸음 하나하나 나른하게 내디디며 저보다 약한 것들을 굽어보는 네발짐승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르브리에는 흥분을 느꼈다.

저보다 두꺼운 체구에 키도 비슷한 장신이었다. 여태껏 잠자리 한 번 해 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었지만, 그는 저보다 여리고 고운 그리고 흰 피부의 여성이나 미청년만을 상대해 왔다. 그런데 하리드 브리첼은 단 한 번도 어울리지 않았던 타입이었는데도, 심장이 크게 뛰었다.

크응, 하고 향취를 맡으며 달려들고 싶을 만큼 독특했다.

그래서 곤란한 처지를 어찌 빠져나가나 지켜보려 했던 상대를 구해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리드 브리첼은 언제나 제 예상과는 달리 튀었다. 대체 황제가 무엇을 믿고 이자를 그렇게 신뢰하는지, 황제가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었는데.

하리드 브리첼은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제일 어이가 없었을 때가, “너의 복수를 도와주지.”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무정하고 차가운 것 같은 얼굴을 한 주제에 눈빛만은 잡아먹을 것처럼 섹시했다. 뇌물 한번 받지 않을 것 같은 고지식한 기사의 얼굴은 잡아먹을 듯한 키스를 밀어붙이면 순식간에 허물어져서 그를 미치게 했다.

더. 더 허물어지는 모습을, 더 흐트러져 저 강직한 얼굴에 눈물까지 흘린다면 미쳐 버리지 않을까. 심술 맞은 얼굴로 일관하며 거리를 벌렸지만 어느새 르브리에는 하리드 브리첼을 마주할 때마다 상상 속에서 그를 마음껏 벗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벗기고 밀어붙이고 저 올라붙은 엉덩이를 마구잡이로 주물럭거렸다. 꿈속에서는 어느새 애원하는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벌름거리는 구멍에 제 성기를 찔러 넣고 있었다. 퍽, 퍽, 퍽 아주 사정없이 꿰뚫었다.

‘왜 내게 넘어오지 않지.’

인간들은 매혹에 약했다. 뱀파이어들은 태생적으로 그들을 홀릴 수 있는 향기가 있었는데, 그건 그들 종족이 진주처럼 매끄럽고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 강직하고 고지식한 기사는 그런 의미에서 넘어오진 않았다. 개처럼 성기를 발딱 세우며 매달리지도 않았고, 울부짖으며 노예처럼 애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집스럽게 눈을 빛내며 협박하듯 밀어붙였다. 그리고 스스로 거리낌 없이 탐했다. 손을 뻗고 마찬가지로 자신도 수컷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듯 사냥꾼이 되어 르브리에를 잡아먹으려고 들었다. 그게 르브리에를 미치게 했다.

“르뷔.”

그딴 식으로 바라보면 씹어먹고 싶어진다.

“르뷔.”

저를 부를 때마다 송곳니가 튀어나올 것 같은 충동에 휩싸였다. 애칭을 가르쳐 주자 언제 무뚝뚝했냐는 듯 덥석 부르는 것이 또 얼마나 귀여운지.

분명 남자의 목덜미 살은 쫄깃할 것이다. 제 송곳니가 파고들어도 금세 낫지 않을까. 회복력도 탄탄할 것 같은 건강미 넘치는 피부는 자꾸만 침을 삼키게 했다. 그러나 더 미치겠는 것은 단순히 성욕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단순한 식욕도 아니었다.

르브리에는 하리드 브리첼이 재밌었다. 모든 흥미를 잃어버린 얼음 심장을 갖고 있는 그에게 있어 흥미라는 것은, 최고의 유희였다.

그를 보면 웃음이 났고, 그가 없는 곳에서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새 그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리드 브리첼이 곰의 굴에 대가리를 들이미는 줄도 모르고 일곱 번의 밤을 제시했을 때 그는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재미있는 상대가 알아서 다가오겠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여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언제든 이 희락은 끝낼 수 있는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하아, 하. 하아, ……윽, 천, 천히, ……읍!”

천천히라고? 미친 소리였다.

“더 빨리 해 달라고 재촉하는 겁니까?”

뜨겁게 성기를 감싸는 입 안은 황홀했다. 성기 좀 핥아 줬다고 아래를 마구 흔들만큼 풋내기가 아니었는데도, 그는 뭔가 달랐다. 단단한 치아가 성기를 스칠 때마다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미간을 살짝 구기며 올려다보는 표정을 보면 가학심이 솟았다. 더 괴로워하고,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목구멍을 마구 치고 머리를 움켜잡고 박아 넣었다. 어떻게든 더 핥고 먹으려 노력하는 모습에 아랫도리가 사정없이 발기하고 또 발기했다.

단계적으로 가자고 한 것은 그였으나 그 말을 뱉은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매혹적으로 흔들리는 기사의 육체는 괴물을 미치게 했다. 등에 손톱을 박아넣고 흐르는 피를 핥으면, 얼마나 짜릿할까.

첫날 제 것만 핥게 한 것은 그에게 손을 댔다가는 바로 구멍까지 파고 들어갈 것 같은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둘째 날은 더했다. 아무런 열정도 없는 것 같은 얼굴을 한 하리드 브리첼의 겉모습은 정말 딱 기사의 표본 같은 자였다. 꽉 조여진 근육질의 체구는 과하지 않아 아름다웠고, 짙은 그림자가 진 것 같은 이목구비는 잘생긴 매의 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런 자가 훌떡, 아무렇지 않게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바라보는 모습은. 그 괴리는, 눈앞을 뜨겁게 했다. 그가 제 이름을 부르며 침을 삼키느라 움직이는 목울대를 보면 목구멍이 발작했다. 당장 달려들어 저 달콤한 피를 씹어 삼키라고.

“키스해라. 네 그 부드러운 입술로, 게걸스럽게 빨아.”

“…….”

제 아래를 가리키며 그렇게 명령했을 때는 정말 잠시 이성을 잃었다. 발작하며 벗어나려는 성기를 꽉 움켜잡으며 바르르 떨리는 얼굴을 보며 정액을 그의 배 속에 처박았다. 크게 내뱉지 않은 교성, 앓는 것처럼 참는 그 모습은 더 괴롭혀 주고 싶었다.

고무처럼 탄력 있는 살을 터뜨릴 것처럼 움켜쥐고 이지러지게 잡아 벌렸다. 손가락으로 괴롭혀 붉게 질척이는 그곳을 향해 혀를 들이민 것은 그다지 고민도 없는 일이었다.

“하아아악!”

눈물을 흘리는 저 강인한 수컷의 얼굴을 누가 또 보았겠는가.

르브리에는 즐겁게 웃으며 그를 미치게 하는 구멍에 열중했다. 저 단단한 제국의 검에게 이런 부위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조금만 만져도 축축하고 녹진하게 풀어지는 내벽은 혀를 마음껏 삼키고 조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핥아도 질리지 않을 것처럼 달고 달았다.

모든 여유와 즐거운 흥미가 차게 식은 것은 황녀와 함께 있는 하리드 브리첼을 보았을 때였다. 정확히는 무심한 듯 굴던 그가 유심히 그녀를 보았을 때, 관심의 순간을 보자마자 속이 비틀렸다.

‘대체 왜.’

눈길 한 번 돌리는 것도 불쾌했다.

‘왜 다른 여자를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그건 당혹스러울 정도로 선명한 질투였다. 세 번째 밤에는 다시는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주지 못하게 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가 모든 사고가 우뚝 멈췄다.

자신이 무슨 권리로.

고작 일곱 번 탐하기로 했다고 해서?

이렇게 집착하는 생각 자체가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르브리에는 얼핏 두려워졌다. 제 인생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다른 하리드 브리첼이라는 존재가. 그리고 변해 가는 자신이.

멀리하자. 거리를 두자. 지금 너무 빠져들고 있다. 이 상황에.

그렇게 되뇌며 기계적으로 탐하려고 했던 것도 아주 잠깐의 의지였다. 가만히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말하듯 눈빛을 전달하는 하리드 브리첼을 봤을 때, 어떻게,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이 안 어울리게 귀여운 남자는 자주 눈빛으로 말하려 들었다. 말로 내뱉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고 거북하다는 듯, 그 눈빛만큼은 솔직했다. 손가락을 더 거칠게 박아 넣길 원하면 뜨겁게 흐트러진 눈빛으로 몇 번이나 쳐다보며 애원했다. 유두를 거칠게 씹어 주길 바란다면 한껏 가슴을 내밀고 손목을 움켜쥐었다가 멀어지지 못하게 눈빛으로 그를 묶어 두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세 번째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말을 안 하는 겁니까, 브리첼. 그렇게 쳐다만 보면 알 수가 있나.”

초조했다. 지나치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어쩐지 우울해 보이는 하리드가 답지 않아서 어떻게든 해 주고 싶어졌다. 이상한 생각 따위 하지 말라고,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 않냐며 귓가에 속삭여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더 뜨겁고 더 녹아들 듯이 괴롭혀 줄 테니까, 이예르라 따위 보지 말라고 헛소리까지 내뱉고 싶었다.

“하리드라고 불러라.”

“……갑자기?”

“그렇게 불러.”

“……이상하군요. 내가 부른 적이 없었나? 아닐 텐데.”

이름을 부르라 조르는 그 얼굴은 영원히 담아 보관하고 싶을 정도였다. 귓가에 훅 하고 열이 올라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차갑고 서늘할 제 체온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그 예민해진 귓불을 꽉 깨물었다. 그 아릿한 고통에 파정할 뻔했다. 크게 부풀어 꺼덕거리는 성기를 당장 저 단단한 기사의 몸속에 박아 넣어야 살 것이다.

“오늘은 빼지 말고 네 짐승같이 커다란 성기를 내 안에 처박으란 말이다. 그게 오늘 네가 내게 치러야 하는 대가다.”

그리고 하리드 브리첼이 겁도 없이 그렇게 말했을 때, 흰 괴물은 마음껏 제 욕망을 풀어놓기로 했다. 몸을 두 쪽으로 갈라 버릴 것처럼 허리를 뒤흔들며 마구잡이로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하도 쥐고 벌린 상대의 엉덩이는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박고 싸고 다시 후벼파듯 흔들어도 부족했다. 단단한 석고상 같은 남자인 주제에 그의 내부는 너무 쫄깃하고 뜨거웠다. 그리고 깊었다. 깊숙이 자리잡은 예민한 곳을 성기로 찔러 주면 바르르 떨리는 등줄기와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를 바라보며 르브리에는 당장 그의 목에 이를 막고 뜨거운 피를 흡혈하지 못하는 것에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정말 괴물이라면.

자신과 같다면, 차라리 동족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제 수족이 되어 반항 어린 눈빛을 보내지 않는 하리드 브리첼은, 그 브리첼이 아니지 않을까.

오므리려는 다리를 다시금 벌리고 처박고, 그 단단한 허벅지를 제 어깨에 허리에 걸치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구멍을 괴롭혔다.

“하악, 하…으, ……읏, 윽, …으!”

억눌린 신음 소리를 들으면 르브리에는 더 거칠어졌다.

“그래요. 스스로 엉덩이를 잡아 벌려 봐요.”

더듬거리는 느릿한 손으로 제 엉덩이를 잡아 벌리는 모습에는 이가 악물어졌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그의 배 속에 페니스를 박는 그 순간이 너무나 완벽했다. 도저히 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넣고 잠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황홀했다.

* * *

점점, 하루가 지날수록 미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정보고 뭐고 오로지 그와의 잠자리에 집중했다. 오묘한 얼굴로 헐떡이면서,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또 타올랐다. 한 번 더, 얼마나 알랑방귀를 뀌며 그놈의 ‘한 번 더’를 말했는지 모르겠다.

서서도 했고, 누워서도 했고, 짐승처럼 네발로 기듯 계속 처박으면서 기게도 했다. 그래도 그 억센 자세에도 불평 하나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갈구하고 뜨겁게 움직이는 파트너는 꼭 짐승 같았다. 더 기막힌 것은 그래도 모자랐다. 하루의 밤은 너무 짧았다. 이대로 숨겨놓고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게 잡아놓고 싶은 욕심이 치솟았다.

박는 건 르브리에였는데도 잡아 먹히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제발 그 진저리나게 만드는 얼굴 좀 보라고 그의 아래를 처박으며 거울 앞에 세워서 스스로를 보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하리드 브리첼은 오로지 르브리에만 봤다. 오로지, 자신의 뒤를 후벼파고 있는 게 누구인지만 관심이 있다는 듯, 그 진지한 눈동자로 르브리에만 담았다.

그렇게 마치 사랑에 빠진 풋내기처럼 뜨거운 상상만을 하며 어떻게 그를 괴롭혀야 좋을지 생각하는 허물어진 자신을 일깨운 것은, 낯선 인간 때문이었다.

“나엘, 그건 뭐지?”

“이곳을 기웃거리던 놈입니다. 알아보니 브리첼 가문에서 나온 이더군요. 어찌할까요, 주인님.”

브리첼이라고?

“데려와라.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질질 끌려온 놈은 체구가 컸다. 번뜩이는 눈빛을 한 사내놈은 젊은 티도 났다. 노련한 하리드와는 퍽 다른, 하지만 무언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면이 있는 애송이였다. 르브리에는 이때까지만 해도 즐거웠다. 하리드가 숨기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가벼운 즐거움만으로 웃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포로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정보들을 던졌다.

“그분은 우리의 수장이다! 너 따위 연약한 인간을 단박에 죽일 수 있는 우리의 위대한 수장이시다!”

그렇게 마구 지껄였다. 의기양양하게.

“헛된 꿈에 부풀었군. 나약한 인간, 우리는 오로지 너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나온 것뿐이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쓰라린 말들을.

“반려가 그리 달콤한 것인 줄 아는가? 너는 반려를 탐하며 눈물로 애원하겠지만, 수장께서는 의무에 따라 그 피로 널 죽이고 말 것이다. 그 선택의 때에 버림받고 우는 모습이 선하군!”

괴물, 괴물이라고. 그 하리드 브리첼이 깨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처럼 부러지고 찢어져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괴물이라고.

그것만큼은 즐거웠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전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멸망의 예언시인지 뭔지는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하리드 브리첼, 그의 속내였다.

처음부터 노리고 제 곁으로 왔단 것인가. 처음부터, 그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밤들도 제 목숨을 노리고. 그래서 그렇게.

반려라는 달콤한 어감을 지닌 관계라고 하면서. 그래서 그를 보면 미칠 듯이 성기가 솟아오르고 갈증이 치솟으며, 그를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묶어 두고 싶어지는 거라고 하는데. 어째서 그는 반려가 죽일 수 있는 관계라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하는가.

이렇게, 이렇게 머리를 뜨겁게 만들어 미치광이로 만드는데.

하리드가 자신의 반려라면, 자신 역시 하리드에게 욕구의 대상이 되는 반려가 되어야 수지가 맞지 않겠는가.

“하리드 브리첼.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다가왔는지는 알 바 아니야. 이미 내게 잡혔다는 게 중요하지.”

“……주군. 위험합니다.”

“아니.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둬라.”

“주군.”

“나엘, 내가 너에게 두 번 명령해야 하나?”

그렇게 마지막 밤. 이제 모든 것을 터뜨리고 무너뜨리는 순간만 남은 밤. 나엘은 만류했지만, 그는 하리드 브리첼을 만나러 갔다. 이제 황제를 무너뜨리고 왕국을 차지하는 것 따위는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르브리에의 머리에 가득 찬 것은 오로지 그 남자였다.

그의 개. 그의 짐승.

그를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 * *

“으르르릉.”

그런데 웬걸. 정말로 짐승이 되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창문 너머에 서 있는 그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실 웨어울프인 하리드 브리첼의 모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미관상 아름다운 뱀파이어와는 꽤 달랐다. 거칠게 솟아오른 털과 이빨, 그리고 네발로 기는 그 모든 모습은 훌륭한 개과의 짐승이었다.

‘그래도 이 냄새. 하리드 브리첼의 것이군.’

잔뜩 발정할 때의 냄새가 짙었다. 발끈 아래를 세운 채 네발로 뛰어 제게 달려왔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조금 흉측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게 하리드라고 생각하니 조금 귀여웠다. 꼬리도 있고, 귀도 있군.

“크와아아앙!”

“이런.”

하지만 여유는 짧았다. 짐승의 본능이라는 것이 대단하긴 한지, 이성을 잃어버린 하리드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힐 쇠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 살기. 손톱이 휘둘러졌다. 샛노랗게 빛나는 짐승의 눈알을 응시하면서 머리를 움켜잡고, 뒹굴며 저를 죽이려고 이를 드러내는 것을 막고 싸웠다.

기둥이 부러지고 방 안의 것들이 박살이 났다. 그래도 좋다고 다시 일어나 달려드는 것이 정말 개새끼 같았다. 확 손톱을 박아 넣을 수도 없고 봐주면서 싸우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몇 번 피를 보았을까. 꼭 만족한 것처럼 짐승이 체구를 줄였다. 우드득 까드득 하고 꽤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저건 또 뭔가 싶어 눈을 깜빡이자, 그곳에는 그가 잘 알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든 겁니까?”

“크으, 흐으.”

“하, 제기랄.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합니까?”

시간도 별로 없는데 싸움만 한 시간을 했다. 이제 그들이 하곤 했던 은밀한 접촉을 할 수 있을지 기대했다. 더욱 유혹하고 매혹해서 그가 종족이 아닌 자신을 선택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할 셈이었다.

하지만 하리드는 인간으로는 돌아왔지만, 아직도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하기만 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여 제 키스를 졸랐다.

“흐응…….”

평소라면 절대 내지 않았을 그 흔들리는 교성과 빼어 내민 혀, 그리고 제 이름을 부르면서 꽉 쥐는 팔, 뜨겁게 선 성기를 르브리에의 배에 사정없이 문지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르뷔, 제발…… 흐으, 하아…… 이곳이 간지럽, 간지럽다…….”

“제기랄. 이게 대체 뭐하자는, 난잡한…… 당신 진짜.”

달콤하게 속삭이던 하리드가 배신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부드럽게 얽혀들며 키스를 조르던 것이 갑자기 이를 세우면서 르브리에의 목을 물어뜯은 것이다.

“!”

정말 흠칫할 만큼 아팠다. 뱀파이어의 구강구조와는 완전히 달랐다. 더욱 깊고 날카로운 이빨은 사정없이 그의 어깨를 후벼팠다. 피가 울컥하고 솟구쳐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흑발의 남자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맛있습니까?”

쭈욱, 쭉. 쭈압. 마치 어린아이가 젖병을 빨 듯이 거센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뱀파이어가 가장 느끼는 목덜미에 바르르 허리가 떨렸고, 나중에는 정신없이 먹으려 드는 그 모습이 애틋하고 가련하게 느껴졌다.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어요. 배 터지게 먹게 해 줄 테니까. 아래도 위에도 말입니다…….”

꿀꺽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니, 그도 군침이 돌았다. 뱀파이어의 가장 희락인 섹스는 목을 처박고 섹스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이 짐승들도 그건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황홀하게 바르르 떠는 금색 눈을 바라보다가 르브리에 역시 송곳니를 뽑았다. 그리고 그 몇 번이나 먹고 싶었던 목덜미에 달려들었다.

“크으응!”

뱀파이어의 송곳니에는 상대를 쾌락의 정점으로 달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는데, 흡혈할 때 그의 상대는 몇 번이나 파정하고 지쳐 떨어지길 반복했다. 하리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전신이 경련하듯 튕기며 교성을 터뜨렸다.

“하아앙, 하악, 하아앗…… 앗, 아윽…… 아으응!”

평소보다 더욱 적나라한 소리를 들으며 그는 마음껏 그의 달콤한 피를 먹었다. 체액을 교환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그 젊은 늑대인간 수컷을 괴롭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각인되어 묶인 반려다.

피와 피를 한 번씩 맛보았으니.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 빌어먹을 검을 들어 마지막 날 자신을 죽이겠다고 선택한다면.

“내 복수는 처참하게 끝나겠지만.”

헐떡이며 피를 퍼마시고 빨리다가 지친 듯 쓰러져 자는 하리드 브리첼의 옆모습을 르브리에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콧대가 높기도 하다. 간지럽히듯 그의 입술을 매만지며 아티팩트로 피범벅이 된 방 안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아직은, 아직은 알게 하고 싶지 않다. 그가 괴물이라는 것에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르브리에 자신과는 달리, 하리드는 아닐 수도 있었다. 기겁하고 혐오할 수도 있다. 여태껏 그를 보아 왔던 수많은 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니까 아직은.

르브리에는 잠든 그의 입술에 조용히 키스했다. 스치듯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그 살을 음미했다. 움푹 들어가 단련된 그의 척추를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그 모든 것들을 각인했다.

이윽고 그가 깨어나 바보 같은 말을 지껄이는 것을 기쁘게 들으며, 장단을 맞추며, 눈을 빛냈다.

그가 만약에 검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한다면, 절대. 절대로 이 남자를 놓치지 않으리라. 죽음마저도 그를 빼앗아 갈 수 없게 단단히 제 곁에 묶어 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놓을 수 없는 반려였으니까.

그건 더없이 만족스러운 굴레였다.

“그러니까 나를 선택해요, 내 기사님.”

그는 고요히 웃으며 모든 것이 끝날 밤을 향해, 황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아, 긴 복수의 끝을 맺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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