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열락을 경험하다
오로지 후각에만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아니, 시각은 현란하여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너무 과하면 어지러운 것처럼 달콤하고 농밀한 향기에 점점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나른한 숨이 내뱉어진다. 짐승의 허기를 촉진하는 그 향은 배 속 깊은 곳을 요동치게 했다. 내장이 꿈틀거리고 아래가 후끈했다. 당장 처박거나 처박히고 싶었다.
“페르달, 이리 와.”
다리의 근육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엉덩이가 단단하게 조여진다. 과격하게, 배 속이 부서질 기세로 날뛰고 싶다. 손가락이 근질거려 단숨에 날카로운 손톱을 빼고 싶다는 듯 흔들렸다. 아아, 배가 고프다. 들리지 않을 꼬르륵 소리를 듣는 기분을 느끼며 하리드는 손을 뻗었다. 눈앞이 벌겋게 변했다.
흰색의 천 아래 비추지 않는 살갗이 야속하다. 모든 것이 궁금했다. 저 유려한 선을 가리고 있는 옷가지를 잡아 찢으면 달빛 아래 어떻게 빛날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 내가 왜 가요?”
너.
너에 대한 생각.
“제기랄, 당신. 소문과는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소문은 거짓이기 마련이지.”
“그래도 이 정도 차이는 사기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희고 매끄러운 피부 위를 핥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쩍 달라붙는 피부의 달콤함은 천상의 진미이리라. 잘근잘근 피가 나지 않게 깨무는 근육은 쫄깃할 것이고, 앓는 신음을 내며 흐트러지는 놈의 신음은 노래처럼 고울 것이다.
“모른다고? 그렇게 잔뜩 발정난 눈을 한 주제에.”
“그래 보이나? 내 눈이?”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오밀조밀하게 단단한 배의 근육을 혀로 희롱하고, 수컷의 향을 진하게 풍길 아랫도리를 끄집어내 핥으면. 활처럼 휘는 허리가, 튀어 오를 땀방울이, 보통의 인간들이 행할 날것의 반응을 짐승은 즐겁게 상상했다.
그리고 그 광경에 스스로가 취했다. 저 향기로운 인간. 은밀하게 숨겨진 곳곳에서는 지금보다 더욱 진한 향기가 날까. 성기도, 땀이 찰 오금도, 단단한 허벅지도, 그리고 그 사이의 숨겨진 그곳도. 그 살내음은 또 얼마나 달콤할까. 맡으면 미쳐 버릴 만큼 달달한 것은 아닐까.
스읍, 숨을 들이마셨다. 음험하게 솟아오르는 심리를 숨기며 하리드 브리첼은 묵묵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당장 달려들지 않기 위해 떠드는 말에 불과했지만.
“페르달에 대해서는 나도 들어 본 적이 있지.”
“무엇을? 그건 좀 궁금하군요. 당신이 소문에 밝을 것 같진 않지만.”
저 여유로운 웃음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표정을 보고 싶다, 그리 생각하며 하리드는 마음껏 떠들었다.
“그 외양이 여인보다 곱고 화려하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공작을 염원하지 않는 이가 없다. 화제의 중심이니 그를 바라보지 않는 이가 없더라. 황제의 얼굴은 몰라도 페르달 공작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수도에 없다.”
“이런, 그런 소문이 돌았습니까?”
“그래. 그리고 공작 역시 밤을 가리지 않다더라. 맞나? 꽤나 과격하다고 하던데.”
그가 비스듬히 웃었다.
“그래서 내가 소문대로 아랫도리가 헤프면 지금 당신이 하려는 짓 모두가 용인될 수 있다고 그리 착각하는 겁니까?”
“착각이 아니라면.”
어깨를 천천히 틀어잡으니, 손끝에 차가운 육체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과정에 하리드는 인간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왜. 이 접촉이 싫나?”
“…….”
“아니면 좋나? 페르달, 말해 보시지.”
유연하고 늘씬한 백사슴 같은, 당장에라도 날갯짓을 해 날아갈 것 같은 백로를 닮은 인간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스운 우려였다. 짐승의 빠르기를 인간이 어찌 이길까? 놈이 비죽 비웃었다. 가파른 절벽 같은 웃음이었다. 눈은, 얼음처럼 차다. 하지만 짐승은 그 속에 숨겨진 것을 비틀어 읽었다.
별 가루 같은 호기심. 숨겨진 것이 궁금하여 기어코 코끝을 들이밀어 보는 어린 짐승처럼, 유순한 호기심이 손끝에 잡혔다. 놈은 자신을 궁금해하고 있다. 기꺼운 일이다. 배고픈 짐승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짐승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영악한 꾀였다.
“맞습니다. 틀린 소문은 아닙니다. 쾌락만큼 정신없이 빠지기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겁 없는 인간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 거리에.
“나도 당신에 대해서 좀 궁금하군요……. 냉정하고 냉혹하여 황제가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황제의 개. 충직한 기사. 그런 것치곤 당신 쪽에서 발정난 개처럼 내 입술을 마구 빨았던 것 같지만. 의외였어요. 반전 매력입니까?”
“시작은 너였으니 해결도 네가 해야지. 단순해.”
“그럴까요? 그러면 당신의 몸값은 얼마나 합니까. 성 한 채 값은 하나?”
“그럴지도 모르지.”
놈이 큭큭 웃었다. 사실 실없는 헛소리였다. 입술 한 번에 성채 하나라. 농인 것을 읽어 낸 인간이 더 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턱을 까닥인다.
“생각보다 유쾌하군요. 재미없는 기사님이라고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렸을까. 성 한 채 값이라. 내가 보기만큼 유능해서 그럴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만큼의 돈을 주어 당신의 입술을 사면.”
“사면?”
하리드 브리첼이 마음껏 눈앞의 인간을 시선으로 훑었듯이, 보답이라도 하듯 인간의 시선 역시 그에게 향했다. 아까의 비웃음만 가득한 냉랭함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나른하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시선이 허리춤을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바지에 둘러싸인 다리를 훑고, 탄탄하고 팽팽하게 경직된 허벅지를 핥고, 열정과 욕구로 뜨끈하게 땀이 차기 시작하는 흰 셔츠를 훑고, 그리고 벌어진 살갗의 피부를 직시했다. 조금씩, 조금씩 가슴이 들썩였다.
“근엄하고 정숙한 공작 각하께서는 입술 그 이상의 것이라도 내게 바칠 겁니까? 아, 정확히 묻죠. 어디까지 바칠 겁니까? 내 육체에 처박길 원하는 바깥의 음험한 인간들과 같습니까, 아니면 내 것에 꿰뚫려 마구 울부짖길 바라는 겁니까? 당신의 그 아무도 처박지 않았을 엉덩이 구멍이라도 바칠 겁니까?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며? 스스로 엉덩이 구멍을 벌리며? 궁금해서요.”
비웃는 입술이 예뻤다. 한가득 베어 물어 깨물면 달콤한 과즙을 내뿜을 석류처럼 짙은 색깔이다. 하리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스멀스멀 풍기기 시작하는 짐승의 본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뒤돌아 뛰어가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는다. 간이 부은 놈이었다. 그 배짱이 마음에 든다.
“넌, 내 어딜 원하지? 돈을 낸 사람이 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 이런. 내가 고르라?”
“그래.”
“부르는 대로 다 할 자신은 있고?”
“들어보고 판단하지.”
“흐응…….”
휘어진 눈이 하리드의 몸의 특정한 부위를 가늠하듯 훑었다. 달라붙은 바지로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만한 수컷의 상징과 보이지 않을 뒤에 숨겨져 있을 음습한 그곳을.
팽팽하게 솟는 것 같은 엉덩이 사이로 근육이 수축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감정이 들었던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까마득한 짐승들의 수장은 당혹스러움 반, 즐거움 반으로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값에 따라 고르는 곳이 다르겠지요. 자, 가격을 매겨 봅시다.”
“떠들어 봐.”
상대가 목 뒤로 음성을 삼키듯이 낮게 웃었다.
“당신의 앞과 뒤의 가격은 같습니까? 참혹함을 따지자면 뒤가 더 비싸야 맞겠지요. 그래요, 그럼 그에 맞는 금덩어리라도 얹어 드려야 하나. 취향은 과격한 게 좋습니까, 아니면 부드러운 게 좋습니까?”
그가 느릿하게 제 바지 앞섶을 훑으며 농을 쳤다. 물건의 크기가 커 보이기는 하니 저걸 받아들여 농탕질 치려면 힘들 수도 있겠다. 하리드는 고개를 까닥하며 부러 그의 손 아래에 훑어지는 수컷으로 시선을 보냈다. 흐음. 여유 있는 나른한 숨.
“그런 걸 수도 있고.”
“취향을 맞춰 봐야 하는 겁니까?”
“그래.”
“악취미네요.”
아니. 하리드는 작게 속삭이며 입술을 한쪽으로 끌어 올렸다.
“네가 내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도발을 했듯. 정보를 줄 수는 없으니, 똑같이 해야지. 그래서 내가 네 앞을 원할 것 같나, 뒤를 원할 것 같나? 맞춰 보라니까.”
차가워지는 푸른 눈을 바로 코앞에 두고 손을 뻗는다. 인간의 호흡이 멈추는 순간이 무척이나 달았다. 그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순간의 뜨거움이란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사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은 완벽한 거짓말.”
“…….”
“넌 언제나 필요에 따라 그 누구와도 뒹굴 수 있는 인간이다. 거기에 취향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거야, 페르달.”
상대의 눈이 순간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목소리 또한 같았다.
“이거야 원, 누가 그랬습니까. 기사란 머리가 단단하게 굳어 대가리를 굴릴지 모르는 인종이라고. 여봐란듯이 그 주장을 뒤집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아니. 네가 숨기지 않은 것이지.”
풍성하게 자리 잡은 투명한 듯한 빛의 속눈썹으로. 사르르, 단단하게 단련된 손바닥을 스치는 감촉이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간지러웠다. 놈은 솜털조차 구름처럼 달콤할 것 같았다.
“의심하라. 관심을 가져라. 경계하라.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모호하게 행동했지 않나? 네 속셈은 뭐지? 오늘 내게 다가온 이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순전히 같은 공작에 대한 호기심과 호의였을 뿐입니다만.”
정색한 주제에 르브리에는 피하지 않았다. 되레 그래서 어쩌려는 거냐는 듯 픽 비웃으며 푸른 눈을 차갑게 굳힌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붉은 입술을 바라보며 점점 고개를 바짝 붙였다. 숨결, 호흡.
“넌 처음부터 날 알고 접근했다.”
“…그건 순순히 인정한 듯싶기도 하지만. 그래서요?”
눈과 눈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가면조차 떨어져 그들 사이를 가리는 것이 없었다. 아까와 같은 거리, 하지만 다른 느낌이다. 이대로 와락 달려들면 사냥감은 짐승의 입김에서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페르달, 너는 상황을 쉽게 흔들기 위해 날 당황하게 하고자 했지. 그래서 대뜸 이곳으로 끌고 왔고 키스를 한 거다. 맞겠지?”
스읍, 하리드는 숨을 들이마신다. 느릿하고 잔잔하게. 여유롭게.
“네 입맞춤은 나쁘지 않았어. 그러니 말해 봐라, 내게서 무엇이 궁금했던 것인지.”
“이 무슨 좋은 배짱입니까. 하하, 뭐든 물으면 말해 줄 건가요?”
“네가 하는 짓에 따라서.”
“하는 짓?”
벌어지는 입술을 따라 놈의 입술을 매만지다 슬쩍 엄지의 끝을 놈의 입술 사이로 밀어 넣는다. 도톰한 살이 벌어지며 습하고 뜨거운 감각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허리가 찌릿했다.
“페르달.”
“뭐 하자는 거죠?”
손끝에 느껴지는 축축함. 노려보는 시선이 짜릿하다. 그는 웃었다.
“빨아.”
“…….”
차갑게 느껴졌던 피부와는 다른 뜨거움. 놈의 숨결. 숨결을 마셨다. 눈을 가늘게 뜨자 달려들 듯 노려보던 상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모양 좋은 입을 스르륵 벌려 엄지를 핥는다. 손가락을 타고 움직이는 붉은 혀가 농익은 길을 만들었다. 다른 손가락으로 상대의 물기 있는 입술을 느릿하게 훑는다. 그림을 그리듯이.
뾰족하게 세운 혀의 끝이 손가락을 타고 연약한 손바닥의 살을 파고든다. 쑤시듯 훑고 훑는다. 우악스러운 짐승의 손가락 역시 마음껏 노닐었다. 입술을 벌리고 흰 치아를 두드리고 매만진다. 훑고 핥으며 치열을 건드린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타액이 주르륵 흘러내려도 추태란 없었다. 보기 좋았다.
“페르달.”
더 벌려.
종용하는 듯한 그 뜨거운 밀착에 상대의 몸이 흠칫 떨렸다. 마주치는 시선을 잡아먹을 듯 응시하며 짐승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웃으며 손을 크게 벌려 다시 한번, 마음에 들었던 늘씬한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상상하기 힘들만큼의 만족스러움은 포만감과 비슷했다.
“아주 맛있게 무는군.”
“우음…….”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손가락을 더 집어넣자 혀가 요동을 쳤다. 그리고 그 순간, 페르달이 인상을 살포시 찡그렸다. 단단한 손톱이 입 안의 여린 살을 스쳤기 때문이다. 아니, 그 때문인가? 상대의 턱관절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것이 느껴졌고,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읏.”
“느꼈나?”
“…….”
잠시의 노려봄과 동시에 움직임이 변했다. 짐승은 변한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 이번에는 이쪽이 당했다.
“아.”
추욱, 쭙. 빨아들이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손가락을 씹거나 거부할 것 같은 냉랭함과는 달리 보란 듯이 벌어진 입술에서 나온 뜨거운 살덩어리가 손가락을 훅 빨아들여 애무하기 시작했다.
“윽!”
순간, 하리드는 이를 악물었다. 짜르르 번지는 감각이 참혹했다. 겨우 손가락 하나 빨린 것으로 왜 이런 기분이 든단 말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물결이 훅 스쳐 지나간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소름이 퍼졌다.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내장이 뜨겁게 벌름거렸다. 벌어진 치아가 손가락 끝을 꽉 깨물었다. 아릿할 정도의 세기로.
그러고는 다시 입술을 오물거리며 깨문 부위를 핥고 보듬는다. 발간 혀가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핥았다. 손가락을 타고, 손을 타고 투명한 타액이 강물처럼 흘러내린다.
“크읏…….”
그 뜨거운 접촉에 아래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뜨겁게 팽창한다. 칼이라도 집어 던질 듯 뜨겁기만 한 매서운 눈길을 마주한다. 참을 수 없었다. 숨이 거칠어졌다. 놈이 빨고 있는 손가락을 물리고, 벌어진 인간의 입술로 달려들었다.
“흐읍!”
“큿.”
검은 동굴. 습하지만 향기가 나는 뜨거움 속으로 혀를 마음껏 집어넣는다. 게걸스럽게 이곳저곳을 유영한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환희의 함성을 삼키며 달큼하기만 한 타액을 삼킨다. 사막을 헤매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엉키는 놈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흐, 하아…….”
“후우, 후…… 흡.”
르브리에의 입 안에 고이는 그 모든 것들이 달았다. 삼키고 깨물고, 짓씹으며, 고이는 낱낱이 게걸스럽게 쭉쭉 빨아들였다. 몇 번을 부딪치고 고개가 비틀린다. 입술이 떨어질 듯 다시 달라붙어 젖은 소리를 쩍쩍 냈다. 짐승이 원할 때도 있었고 인간이 달려들 때도 있었다.
“흐응…… 크읏…….”
“하으, 후…… 더.”
“흐, 좀 천천…… 아프…… 읍.”
“더…. 읏…….”
공기가 뜨겁다. 날카로운 코끝에서 새어 나오는 인간의 감미로운 체향이 달콤하다. 들숨 한 번에 생명을, 날숨 한 번에 애끓음을 진탕 퍼마시며 짐승은 취했다.
다리가 얽히고 발걸음이 뒤로 물러난다. 벽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누가 배치해 놓은 것인지 성인 남성 다섯은 굴러도 남을 것 같은 사치스러운 침대로 둘은 동시에 쓰러졌다. 풀썩. 질척거리는 젖은 소리는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원해.’
심장이 시끄럽게 외쳤다. 여기에 있었구나.
‘원해.’
손끝이 간지러웠다. 너를 원해.
어느새 옷자락이 찌익 찢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흰 시트 위에 누워 그를 올려다보는 인간은 아름다웠다. 서늘한 상대의 손은 그의 옷자락 속에 들어와 등을 쓰다듬고 있었고 그는 깔아 눕힌 인간의 어깨춤을 찢고 있었다.
푸른 눈. 소름이 끼칠 만큼 먹음직스러웠다. 아래가 이제는 터질 수도 없을 만큼 팽창해 찡한 아픔을 호소했다. 바지의 천에 눌린 부피감이 애끓는 탄식을 가져온다.
“하아, 하아…….”
“뭐 해요. 하리드, 브리첼.”
쏘아보는 푸른 눈은 이후를 종용하고 있었다. 뺄 때는 언제고, 겁먹고 물러나는 것이냐는 듯 비웃는 얼굴은 지나치게 얄밉다.
“이게 답니까?”
그럴 리가. 하리드 브리첼은 음험하게 웃었다. 그르릉, 욕망이 목울대를 울리며 웃는다.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미친 것 같았다. 하리드는 잠자리에서 담백한 편이다. 물론, 짐승의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땐 상대가 항복을 외칠 때까지도 마구 뒤흔들긴 했지만, 상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 삼키고 싶다는 욕심은 부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헐떡이는 제 숨이 낯설었다. 당장 껍질을 벗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극도로 흥분한 감각도. 그리고 발작이라도 하듯 지끈거리는 유두와 엉덩이 깊은 곳에 퍼지는 자극적인 쾌락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안이 축축하게 젖으며 반응하는 것 같았다.
마치 발정기에 접어든 암컷처럼.
“너, 남자와 즐긴 적이 많나?”
“그건 왜 묻습니까?”
“궁금해서. 아래에 깔렸나, 아니면 네가 박아 넣었나?”
“…그렇게 참 멋대가리 없게 묻는 상대도 처음이군요.”
이렇듯 상대에 반응하여 완연히 변형하고 싶은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거추장스러운 인간의 육체를 벗어 버리고, 이 세상에 날 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싶었다.
낼 수 있는 힘도, 눈으로 보는 세상도, 맡는 공기도 모조리 다른 본능에 침식한 그 모습으로.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인간을 죽일 것이다. 마음껏 뛰놀며 팽창한 성기를 욱여넣고 종이처럼 찢어 죽게 만들고 말 것이다.
‘이 인간이 죽는다고.’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용솟음치는 욕망은 이 인간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넘치지 않게 하는 것 역시 이 인간의 존재였다. 기묘하다.
“달아. 특히, 이 피부가.”
“아!”
하리드는 불쑥 코를 르브리에의 어깨에 박았다. 이가 가까스로 뭉툭한 모양을 유지했다. 대신 코를 우그러트릴 듯 강하게 처박고 살내음을 흡입한다.
“이봐요, 당신.”
“집중해…….”
스읍, 스읍. 습한 소리가 울리며 입을 벌린다. 쩍 벌어진 입 안으로 인간의 말캉한 살이 빨려 들어왔다. 무척이나 차고, 또 찰진 감촉이었다. 잘근잘근 상처 나지 않을 정도만 씹고 빨았다. 그가 깔고 앉은 상대가 그 집요함에 못 견디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부르르 떨었다.
“으으, 제기랄!”
그 모습도 예뻤다. 흥분하면 할수록 진하게 퍼지는 남자의 체향에 흥분감이 치민다. 안구에서 심장이 뛰는 듯했다.
“으읏. 어지간히 무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아닙니까……? 취향 더럽네요.”
“하아, 하.”
촤악, 못 참겠다는 듯 놈의 배 위에 앉은 채로 놈의 셔츠를 양쪽으로 잡아 뜯었다. 우드득. 단추가 사방으로 퍼지는 소리, 이미 처참하게 찢긴 천이 부욱 뜯기는 소리. 그리고 황망한 얼굴. 입 안으로 웃음을 삼키자 낮은 숨결이 리듬을 타고 목 아래로 울렸다.
“이봐요. …왜 이렇게 거칠어? 진짜 개입니까?”
“네가 후우, …너무 느긋한 거겠지.”
“목줄이라도 채워 주고 싶네요.”
흰 셔츠 사이로 완연하게 드러난 육체는 생각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매끈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지 않다.
“예쁜 피부야.”
“…으음.”
하지만 얇고 가느다란 사슴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는 또 달랐다. 가만히 손을 뻗어 크게 손가락을 쭉 편다. 그리고 바르르 떨리는 것 같은 피부 위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단단하고.”
“하아…….”
거친 손바닥에 마찰 되는 티 하나 없는 흰 피부가 잔물결을 그렸다. 이를 박고 피를 내어 빨고 싶은 육체였다.
“색이 예쁘군. 이곳저곳.”
“읏…… 당신은, 나쁜 취미가 있군요. 손끝에서 욕심이 솟아나는 것 같은데요.”
“그럼 안 되나?”
입술을 한쪽으로 비틀며 웃었다. 탄탄하게 솟아오른 양쪽 가슴팍에는 흰 피부에 잘 어울리는 것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옷을 찢어발긴 손톱으로 꾹꾹 누르면 아주 어여쁘게 핏방울이 맺힐 것 같은 연한 살점이다.
비틀고 괴롭히고 쥐어짜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입 안에 넣고 잔뜩 굴려 빨아 주는 것이 좋을까.
흉흉한 생각을 읽은 것일까. 놈이 배를 매만지다 배꼽의 주변에 원을 덧그리는 그의 손을 잡아챘다.
“잠깐.”
뭐냐는 듯 바라보자 이상한 얼굴을 한다. 웃는 것도 같고, 당황스럽기도 하다는 듯한. 그 기묘함도 마음에 들어 고개를 더 숙이고 가까이에서 바라보자 푸른 눈에 눈을 뜨겁게 뜨고 있는 남자가 비쳤다. 하리드 브리첼, 자신의 모습이었다.
“뭡니까. 거긴요, 아까 입술 빨아 먹은 것처럼 달려들면 좀 그럴 것 같습니다만.”
“너. 친근하게 키스 정도는 할 수 있다 했지.”
“그랬긴, 했죠.”
놈의 숨이 할딱였다. 그건 하리드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깔고 앉은 엉덩이를 느릿하게 내려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놈의 것을 느릿하게 내리눌렀다. 아찔하게 부푼 상대의 갈비뼈를 꾸욱 눌렀다.
“하아…!”
“흐윽!”
열기와 열기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아찔한 한숨이 동시에 서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놈은 발기했다. 성난 푸른 눈을 핥듯 바라보며 짐승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엉덩이에 닿는 단단한 열기가 아주 뜨거웠기 때문이다.
“넌 친근한 키스에 아랫도리가 벌떡 서는 모양이군. 아주 문란해.”
“하! 지금 그게 당신 입에서 나올 소리…… 윽!”
“입맞춤 하나로 여기를 이렇게 세운 건가. 조금만 더 하면 싸겠군.”
“웃, 기지 마시죠. 지금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게 누군데?”
한번 허리를 움직여 뜨겁게 부푼 것으로 상대의 중심을 누르자,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입술을 바르르 떨며 잘근 깨물었다 놓았다. 붉은 입술에 잇자국이 슬며시 맺혔다 사라지는 것을 보니 배 속이 진동했다. 만족스럽다. 심장이 뜨거워질 듯 이 가득한 기쁨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놈이 본래의 가면을 벗어던진 채 욕망 아래 몸을 바르작거리는 것이 더없이 기꺼웠다.
궁금했다. 르브리에 폰 인센 페르달. 페르달 공작.
“그리고 날 놀릴, 땝니까? 당신도 섰는데?”
“하아.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이 고약한……!”
상대에 대해 떠오르려던 생각이 덜컥 멈춘다. 본능이 이성을 내리눌렀다. 알려고 하지 마. 그렇게 종용하는 목소리는 으르렁거리는 거친 하리드 브리첼 본인의 목소리다.
터질 것 같은 욕망에 굴복한 짐승은 고개를 내렸다. 그래, 다른 것이 무엇 필요한가. 지금은 모처럼 섹스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고, 상대 역시 다르지 않다. 밤은 즐기면 되는 것이고 훗날의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냉철하고 냉정한 수장답지 않은 생각이었으나, 이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그런 이상함을 자각하지 못했다.
“하.”
“!”
그는 고개를 내렸다. 아까부터 빨아 달라 종용하듯 희고 탄탄한 가슴팍에 달린 유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달려들어 입 안에 넣는다.
“흐으읍!”
아까의 입술을 탐하던 게걸스러움과 다르지 않은 거센 흡입에 깔린 몸이 펄쩍 뛰었다. 아픔 때문일 것이다. 떨어뜨려 버릴 듯이 쫘악 빨아 버리며 손을 뻗어 놈의 복근 위로 손톱을 세웠다. 손톱을 콱 처박아 버리면. 그러면.
질척이며 살이 빨리는 소리가 음란하게 울렸다. 끈적거리는 공기 속에 풍덩 빠져 허우적댄다. 어느새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한 허리가 넘실거릴 때마다 바지에 갇힌 뜨거운 성기가 괴로움으로 눈물을 토했다.
상대의 것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스칠 듯 말 듯 마찰되는 그 부피에 당장 옷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단단한 근육의 선을 괴롭히던 손을 뻗어 옆구리를 쓸어내린 짐승은 신음했다. 섹스해야겠다. 교미해야겠다. 이 인간과.
“읏…?”
“어딜, 혼자, 난잡하게 날뛰는… 겁니까. 브리첼 공작.”
그때였다. 흠칫, 허리가 바르르 떨렸다.
“너.”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 혼자만 즐기는 거 아닌가요?”
차가운 손이 땀으로 젖은 셔츠를 밀고 들어와 등줄기를 훑은 것이다. 제 가슴팍에 달라붙어 있는 하리드의 머리카락 속으로 느릿하게 손을 집어넣는 행동이 유유히 기둥을 타는 뱀 같았다.
“난잡하게.”
가만히 노려보다 보란 듯 입에 물린 유두를 아플 정도로 씹어버리자, 심이 단단해지는 것이 즐거웠다. 혀로 거칠게 쓸고 부러 소리를 내며 빨자 두피에 파고든 손가락에 힘이 꽉 들어간다.
“그래요. 어지간히 그 부위를 좋아하시나 본데… 젖 빨 나이는 지나지 않았, 읏, 습니까.”
허리춤으로 파고 들어온 놈의 손이 옷자락 속에서 유영했다.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지셔야죠.”
“흐음…….”
“움푹 들어간 등줄기는 아주, 아름답죠. 브리첼 공작, 당신은 아주 맛있는 뼈대를 갖고 있군요. 이렇게 아주…….”
“…흐윽!”
“누르는 맛이 있어.”
팽창하듯 넘실거리는 어깨의 근육을 살금살금 긁어내리고, 움푹 들어간 척추의 손을 꾹꾹 누른다. 바르르 떨리며 자연스레 뒤로 물리려는 하리드의 엉덩이를 들어 올린 허벅지로 막는다.
“좋아요?”
“……크윽.”
“여기도 좋아합니까?”
그리고 불쑥, 놈의 손이 순식간에 하리드의 바지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 손이 한쪽 엉덩이를 꽉 틀어쥐었다. 약점을 잡힌 동물처럼 하리드 브리첼의 모든 행동이 멈칫, 정지했다.
“…….”
“자아, 젖 빨게 해 줬잖아요? 이제 제 차례죠. 다리에 힘 빼요.”
하리드는 허를 찔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웃었다. 차가운 촉감이 옴폭하게 힘이 들어간 엉덩이의 살점을 꾸욱 누르며 농밀하게 움직인다. 마주본 화려한 미인의 얼굴 위로는 드디어 승기를 잡았다는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으음. 앓는 소리를 내며 주춤하자 상대에게서 미소가 더욱 진하게 번졌다.
“……손이 재빠른데.”
“아니지. 그보다는 그쪽이 내 가슴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느라 정신이 빠졌던 거겠지요. 위대하신 기사님이 말입니다…….”
“읏.”
“제국의 검은, 달뜬 숨을 내쉬면서 내 젖꼭지를 마구잡이로 빨아댔죠.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주 놀라운, 광경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머리에 파고들었던 손을 내리며 웃는다. 뺨을 타고 귓불을 꾹 누르고, 마른침을 삼키는 하리드의 목울대를 긁듯이 내려와 가슴 사이를 찔렀다.
“신사답지 못하게 옷을 찢어발기다니요. 저게 얼만지 알고나 있습니까.”
“하나 사 주지.”
“호쾌하셔라. 하지만요, 옷은 이렇게 벗기는 겁니다, 고귀한 제국의 검. 제국의 영웅님. 짐승 같이 달려드는 게 아니라.”
상체를 헐벗은 르브리에와는 달리 그는 아직 옷을 입고 있는 채였다.
“부드럽고 정중하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찬 인간은 대범하게 손을 내려 남은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었다. 짐승처럼 무식하게 뜯었던 하리드와는 무척 대조적인 손길이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인간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곳의 근육들이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이렇게 말입니다. 닿는 순간마다 아찔하게.”
톡, 톡.
“벗기고 싶어 죽겠다는 듯이.”
툭.
“맛있는 과육을 맛보기 위한 기대감으로 입맛을 다시면서 말입니다…….”
옷이 완전히 벌어졌을 때, 하리드는 팔을 움직여 그것을 바닥으로 떨구도록 도와주었다. 땀으로 젖어 있던 등줄기가 시원한 공기에 닿자 파르륵 떨렸다.
그 순간, 놈의 차가운 손가락이 단단히 다물려 있는 엉덩이의 굴곡으로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아주 조금. 엉덩이골의 매끈한 살을 강하게 누르자, 하리드는 눈앞이 번쩍 뛰는 것 기분을 느끼며 헉 소리를 내며 허물어졌다.
“아아, 여기군요. 기사님의 약한 곳이?”
바르르 떠는 감각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읏, 그렇게 부르지, 으음…….”
“아주 뜨겁게 젖어 있군요.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지조 없는 곳 아닙니까. 당장 손가락을 꿀꺽 삼키고, 꽉 조일 것 같은 곳입니다. 당신 혼자 마구 흥분하면서 달린 탓일까요. 후후, 그렇게 내 몸이 좋았습니까? 아랫도리를 세우고 헉헉대며 달리는 꼴이 보기 좋더군요.”
“후, 으윽…….”
나긋하게 흩어지는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 들어왔다. 저 음성이 약과 같았다. 혀로 귓바퀴를 할짝이는 소리가 들리자 허리에 힘이 확 풀렸다. 으읏, 팽창한 근육들이 튀어나갈 듯 경직되며 움찔거렸다. 손을 뻗어 인간의 어깨를 꽉 틀어쥐자 엉덩이를 쥔 손 역시 빠듯해졌다.
“아주 단단하군요. 탄력적이에요. 역시 몸을 쓰는 사람다워.”
조금 더 깊이. 파고든 손가락이 살점의 골을 짓궂게 희롱한다. 욱여넣듯 뺐다가 다시금 끌어 올려 매끈한 피부 위를 간지럽히는 것이다. 그때마다 속절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하리드는 이를 악물었다.
“만지는 맛이 있습니다.”
“하아, 하…….”
“손가락을 처박으면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어 줄까요.”
“흐으…….”
“여기에 내 손가락을 박길 원해요? 넣어 주길 원합니까?”
정중한 목소리는 그러나 끈적끈적했다. 달아오른 쇠에 차가운 물이 뿌려지는 것처럼 놈의 차가운 손가락은 발가락을 오므라뜨리는 쾌락을 선사했다. 다시 한번 놈의 손가락이 힘이 꽉 들어간 엉덩이 사이로 파고들어 왔다. 조금 더, 조금 더 깊숙하게. 하리드의 옴폭 파인 허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니, 엉덩이 살이 바르르 떨었다. 그 사이에서 느긋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무척이나 야속했다.
“여기가 느끼는 부분입니까? 응?”
“흐, 흐으.”
“우리 기사님의 성감대는 아주, 은밀한 곳에 있군요. 야하긴.”
그르릉, 목 깊은 곳에서 울음이 새어 나왔다. 바지가 답답했다. 뒤척이듯 고개를 들며 놈을 노려보려는 순간, 일순간에 손가락이 완벽히 파고들었다.
“!”
“아아. 아주 꽉 닫혀 있군요.”
땀이 습하게 차기 시작한 살집 사이의 가장 은밀한 곳. 꽉 다물린 그곳을 꾹 누르듯 매만진 채 정지한 손가락. 긴장감 가득한 공기가 얼어붙었다. 입구를 두드린 손가락이 아쉽게 정지해 있었다. 가격당한 그 예민한 곳이 지잉 하고 울었다. 당장 빠끔거리며 힘이 풀릴 것 같은 곳에 힘을 주며 하리드는 입술을 피가 날 듯 깨물었다.
“순순히 열어 줄 것 같지 않은 입이지만.”
“너. ……빼라.”
“정말 그러길 원합니까? 아닌 것 같은데요. 이 오밀조밀한 주름을 열고 내 것을 먹고 싶다고 빠끔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빼, 라고 했을 텐데.”
하리드는 입술을 끌어 올리며 웃었다. 흰 이가 분명 어둠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났을 것이다. 놈이 고개를 기울이며 예쁘게도 웃는다. 남의 엉덩이 사이를 매만지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산뜻한 미소였다.
“왜요. 솔직히 말해 봐요. 이대로 찔러 넣어도 됩니까? 솔직해져도 되는 자리잖아요.”
“빼라.”
“웃기는군요. 당신은 내 젖꼭지를 허락도 없이 괴롭혔잖습니까? 동의도 없이.”
“빼라고 했을 텐데.”
“그러니까 허락은 필요 없지요. 고귀하신 기사님. 넣을까요? 넣지 말까요. 싫으면 애원해 보시던가.”
이 개자식이.
혀를 내밀어 핥아 일그러지게 만들고픈 미소를 보며 하리드는 험악하게 입술을 끌어당겼다. 밀지에 닿아 있는 무례한 손가락이 오밀조밀한 입구의 주름을 간질이듯 매만지자,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르렁. 그 끓는 것 같은 험악한 신음 소리에 상대가 쿡쿡 곱게도 웃었다.
스윽, 하고 놈이 혀를 빼내어 하리드의 어깨를 핥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당신도 달군요. 여기 집어넣으면 더 달콤할 것 같은데. 이 단단한 구멍 안에서 내 손가락을 반길 뜨겁고 부드럽고, 쫄깃한 내벽을 매만져 보고 싶어지는데 어쩌지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사님?”
“네놈 능청도 정도가 있…… 윽!”
말을 내뱉는 순간, 윽 소리를 내며 허리가 바르르 떨리며 경직되었다. 대화를 하며 긴장을 잠깐 놓은 때였다.
“아, 이런.”
“하, 하악…!”
“넣어 버렸네요.”
퍽! 소리를 내며, 차갑고 매끄러운 손가락의 끝이 한 마디나 무례하게 파고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젖을 수 있는 여자와는 달리 뻑뻑하기만 한 입구는 강렬한 통증을 호소했다. 짐승에게도 그곳은 급소였다. 눈앞이 희게 번뜩였다.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단박에 놈의 손가락 끝까지 삼킨 것 같았다. 하리드는 거칠게 헐떡이며 손톱을 세웠다.
“너…….”
“아아, 구멍이 너무 조이네요.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요, 밀어를 속닥거리는 연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하리드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쉬이, 괜찮습니다. 몸에 힘을 빼 봐요.”
“너 이 새끼, 지금 그걸…… 으읏!”
바짝 가까이 댄 입술로 새어 나오는 입김이 뜨거웠고 그 숨결이 닿는 귓불의 여린 피부가 소름이 돋았다. 서늘한 긴장과 함께 인간의 입술이 귀밑에 닿았다.
“어서. 하리드 브리첼. 힘을 빼. 받아들여 봐요. 욕구에 몸을 맡겨 봐요. 이렇게 뜨겁게 질척거리는 당신의 구멍처럼 솔직하게 애원해 봐요.”
“하아, 하, 하……!”
단단하게 다물린 하리드의 턱선을 츄릅 빨아들이면서 입술이 서늘하게 타고 내려온다. 낯선 침입으로 꿀렁거리는 목울대를 우물거리면서 오물거리는 그 움직임은 르브리에의 입맞춤처럼 부드럽고, 느릿했으며, 끈적했다.
“이 안에 손가락이 파고 들어가 긁어 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요동치는 당신의 내벽은 또 얼마나 기뻐할지.”
“으, 으읏, 윽! 읏!”
스윽, 슥. 손가락이 들어갔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뜨겁지 않습니까. 간지럽지 않습니까. 갑갑하잖아요.”
엉덩이를 파고들었던 축축하게 젖은 엄지손가락이 단단한 엉덩이의 골을 쓰다듬는다. 아까 느꼈던 부분을 정확히 되짚는 그 느릿함에 무릎이 휘청였다.
“흐, 후으, 윽…….”
“자아. 얌전히 있으니 착하군요.”
“흐, 흐으…….”
놈의 손은 빨랐다. 한시도 쉴 수 없다는 듯, 그러면서도 여유롭고 물 흐르는 듯한 순간순간으로 바지의 단추가 풀렸다. 바지를 파고든 무례한 손 때문에 터질 듯 팽팽해져 고통을 호소하던 성기의 압박감이 풀리는 순간, 하리드 브리첼은 끔찍한 탈력감과 함께 축 늘어지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런. 쌀 뻔했습니까?”
“닥, 으읏, 큿…….”
놈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여유롭게 웃고 있던 기사님이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아주 좋군요. 더 매달려 봐요. 오만함이 사라지고 일그러지는 얼굴이 아주 예쁘거든. 게걸스럽게 내 유두를 씹어 먹을 듯이 물고 있던 당신보다 말이야.”
“으…… 하아!”
놈이 다시금 귓바퀴를 야금거리며 속삭였다. 반사적으로 멀어지려 하는 하리드의 귓불을 쭉 빨았다. 그리고 끈적하게 속삭였다.
“거울에 바짝 붙여 보여 주고 싶은 얼굴입니다. 브리첼 공작, 제대로 느끼고 있군요. 이곳이 좋은 겁니까? 자아, 어떻게 해 줄까요……?”
개새끼였다. 즐거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아주 짜증 났다. 놈은 감질났다. 엉망으로 파고들고 짓누르고 짓씹는 짐승들의 섹스와는 지나치게 다르다.
보드라운 깃털이 문지르는 것 같은 감각에 배 속이 요동을 쳤다. 어느새 시원한 공기와 함께 속옷까지 엉덩이 아래까지 허물을 벗듯 내려졌다. 툭, 하고 기세 좋게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튀어나온 짐승의 검붉은 페니스가 흉흉하게 빛났다. 선단이 축축하게 젖고 당장에라도 파정하고 싶다는 듯 굵은 핏줄이 튀어나온 수컷의 것이다.
그것을 본 입술을 할짝이며 인간이 웃었다.
“압니까. 당신 구멍, 쫀득하게 녹진해진 것을? 이렇게.”
“허억!”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손가락 하나가 부드럽게 다 들어갈 만큼 말이에요.”
푹! 소리를 낼 듯 거세게 파고 들어온 손가락이 내장을 찔렀다.
“하으윽!”
“정말 탐욕스러운 구멍이네요.”
손가락 전체가 쑥 들어와 뜨거운 내벽의 요동을 고스란히 종용한다. 눈앞이 벌겋게 물들고 허물어지는 상체를 인간에게 잡혔다.
사냥감과 사냥꾼이 반대가 된 듯, 제 허리 위에서 요동치는 근육질의 몸체를 마음껏 어루만지며 웃는 목소리가 세이렌의 것처럼 유혹적이었다.
“아아.”
르브리에가 기꺼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등줄기를 스윽 훑어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여 파르르 떨고 있는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웃었다. 손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푹 찔러 넣어 하리드의 허리춤이 떨리면 단단하게 부푼 가슴 끝 적포도주색의 유실을 유유히 빨았다. 추웁. 그것 역시 쪽 소리가 날 듯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 들어갔답니다.”
“흐, 읏.”
“감상을 들려줄까요. 그래요, 이 안은 부드럽습니다.”
“하아……!”
“녹아내릴 것처럼 아주 따스해요. 적응이 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내 손가락을 거세게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욕심껏 말이에요. 이대로 잘라 먹을 것 같군요. 이 안에 다른 것을 넣으면 얼마나, 으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술을 노려보며 하리드가 으르렁거렸다. 입술을 물어버려야겠다. 저렇게 감질날 바에는 차라리 그가 먼저 이를 빼내어야 했다. 저 잘빠진 인간을 눕혀 놓고 아까 마음껏 희롱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손을 뻗었어야 했다.
눈이 돌아갈 듯 흥분한 짐승은 거친 숨을 내쉬며 놈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부드럽고 매끈한 실타래들이 손아귀에 얽히고, 저가 깔고 앉은 남자가 상체를 느긋하게 올린 채 여유롭게 올려다본다. 살래살래 휘어지는 눈은 여전히 야했다. 요망한 놈.
“당장, 빼라고… 흐읏, 말했을…….”
“알았어요. 채근하기는. 하나 가지고는 부족하겠지요? 더 넣어 줄게요.”
퍽! 내장이 밀려 올라가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가 박혀 들었다. 놈의 손가락이다. 두 개, 아니 세 개인가?
“하악! ……읏!”
“쫄깃해요. 손가락이 잘릴 것 같군요.”
눈앞에 번개가 튀었다. 퍽, 퍽퍽,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과 귀를 파고들어 오는 음성에 몸이 휘청였다. 뇌가 곤죽이 되었다. 아. 내장이 흠뻑 젖어 흔들린다. 더, 더. 더. 더! 속이 간지러웠다. 뜨거웠다.
“잘 먹는군요. 다른 것을 먹여 줘도 한 번에 삼킬 만큼 탐욕적인 구멍이에요. 근엄한 기사님이 이런 면모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입이 근질근질하군요. 이런 멋진 모습을 나만 알아야 한다니. 아니면 소문을 내 볼까요? 우리 기사님이 얼마나 뒤로 잘 먹는지? 그것도 아니면 모두에게 보여 줄까요? 당신이 내 손가락을 얼마나 잘 먹는지?”
“하, 하으, …아, 흐, 윽…!”
“하리드 브리첼, 고귀한 영웅께서 얼마나 달콤한 뒷구멍을 갖고 계신지. 모두가 아주 좋아할 겁니다. 특히, 은밀한 취미를 갖고 계신 황제 폐하께서 말이에요. 당신을 부르실지도 모르지요.”
헉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놈이 웃는다. 이제 완연히 침대로 다시 드러누운 르브리에를 하리드가 위에서 덮치는 자세였다. 다리가 헤벌어졌다. 놈의 손은 여전히 엉덩이 사이에 꽂혀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꿀쩍거리는 소리가 축축했다.
“상황이 바뀌었군요.”
“흐, …읏, 으…….”
“걱정하지 말아요. 더 세게 박아 줄 테니까요. 정신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이 요망한 내벽을 괴롭혀 주겠습니다.”
“아, 아악……!”
살과 살갗이 뜨겁게 마찰한다. 뾰족하게 선 유두가 놈의 피부 위를 문질렀다. 차갑고 서늘한 그 감촉은 어느 잠자리 상대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연신 소름이 내달렸다.
엉덩이 사이에 꽂혀 흔들리고 있던 것이 구부러졌다. 퍽, 퍽! 쑤셔 박는 움직임이 거칠었다. 내장이 쓸리고 피가 배어 나올 듯 매몰차다.
“하악! 하, 하윽!”
“아, 제기랄. 왜 그렇게 달게 우는 겁니까.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 것 같잖습니까. …당신, 얼굴이 어떤지 알고 우는 건가요? 아니면 설마 일부러 그러는 겁니까?”
“닥, ……!”
반사적으로 올라가려는 허리를 꽉 틀어쥔 차가운 손이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다. 상처는 나지 않았으나 제법 찌릿한 고통이 흘렀다. 그리고 콱! 네 개의 손가락이 파고들어 내부의 어떤 지점을 찔렀을 때, 참고 참았던 짐승의 인내심이 뚝 끊겼다. 놈과 맞닿아 마찰되던 성기의 끝에서 뜨거운 것이 흠뻑 뿜어져 나왔다.
헐떡이며 바라보자 진득한 것이 흘러내리는 손가락을 놈이 흐느적거리고 웃고 있었다. 제기랄. 욕이 치솟았다.
“쌌군요. 진하기도 해라. 역시 정숙한 기사님이셨나 봅니다.”
“……후우. 너, 페르달.”
“화났습니까?”
샛노랗게 빛날 눈을 뜨며 하리드 브리첼은 느릿하게 눈을 휘었다. 똑바로 마주보는 인간을 바라보면서, 돌아오는 이성을 느끼면서. 아직도 겁 없는 손가락이 느릿하게 엉덩이 사이에 처박혀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응?”
짐승은 목을 끓며 만족스러움으로 손을 뻗었다. 구멍에 힘을 바짝 주어 박힌 것을 끊어 먹을 듯이 조인다. 그리고 놈의 바지를 잡고 찢어 버렸다.
부욱! 소리와 함께 어지간해서는 찢어지지 않을 질기고 값진 천이 종이처럼 쓰임새를 다하는 것에 인간의 얼굴에 허망함이 스친다. 옷자락이 당겨지는 충격에 순간 벌겋게 변한 흰 피부 위를 쓰다듬듯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우뚝 선 성기가 아주 달콤하게 보였다. 놈을 닮아 희고 매끄러우며 길게 쭉 뻗어 있는 선홍색의 성기가 아주 탐스러웠다.
“남의 구멍을 쓰셨으면, 그 이상의 각오를 하셔야지.”
이제 그가 복수할 시간이었다.
* * *
치열한 시간이었다. 성년식의 싸움도 이보다 처절하지 않았으리라. 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놈과 제 것의 성기를 마구 마찰했다. 치덕거리는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앓는 소리가 간간히 터져 나왔다.
헉, 허억. 가쁜 숨결과 함께 놈의 어깨를 씹고 입술을 씹었다. 허우적거리듯 놈의 유두를 쥐어뜯듯 쥐었다가 돌연 놈에게 밀려 살을 빨렸다. 엎치락뒤치락 연신 뒤바뀌었다.
“허억, 헉, 흐으, 흣!”
신음 소리는 하리드의 것일 때도, 놈의 것일 때도 있었다.
탁, 탁, 탁. 뜨겁게 선 두 기둥을 움켜쥐고 뒤흔들다가 인간의 그 말랑한 입술 사이로 마구 충혈된 성기를 처박기도 했고, 놈의 것을 마구잡이로 빨기도 했다. 정액을 몇 번이나 터뜨려 텁텁하고 쓴 향기가 공기를 눅진하게 만들 정도로 뒹굴었다.
“더, 흐으, 더… 빨아야지.”
“하, 하으, 흐!”
“흐으… 읏!”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어 정점을 푹푹 찍을 때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러면 성기를 물리고 있던 놈을 놓치고, 이번에는 그가 인간의 흉기를 빨아야 했다. 입에 채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매끄러운 것을 가득 움켜쥐고 복수할 듯이 짓씹으면 눈앞에 있는 놈의 탄탄한 허리가 바르르 떨렸다.
뜨겁고 난잡하고 한껏 젖어 있는 시간이었다. 부드럽기보다는 파괴적으로, 따뜻하기보다는 태울 듯 뜨거움으로 서로를 탐닉했다. 살갗에는 상처와 손자국이 가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찢어진 옷자락들, 헝클어진 이불, 그리고 점점이 튀어 있는 마른 정액의 흔적만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뻐근한 감각이 남아 있는 엉덩이 사이를 불편하게 여기며 하리드는 놈의 머리카락을 콱 잡아당겼다.
“그래서, 후우, 후, 앞인 것 같나. 뒤인 것 같나……?”
“그게 중요합니까? 씨발, 지금 당신이 싼 게 몇 번인데?”
토정을 몇 번을 해도 누울 줄 모르는 성기의 끝을 놈의 매끈한 뺨에 짓이기듯 문지르며 입술을 끌어 올렸다. 눈으로 욕을 하는 것 같은 표정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하리드 브리첼은 방금까지 엉덩이 사이를 빨릴 뻔했을 때 자신이 딱 저런 사나운 얼굴을 했음을 말끔하게 잊었다.
그는 보란 듯이 다리를 벌리며 르브리에의 머리를 가까이 잡아당겼다.
“중요하지.”
몇 번이나 토정을 해도 다시금 일어났다. 인간의 머리카락을 매만질 때면, 숨결을 피부 위로 느낄 때면, 그 살갗을 문지를 때면. 큰일이었다. 잊힐 것 같지 않은 강렬함이 자꾸만 심장을 두드렸다.
연회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룩센이 가볍게 누군가와 몸을 맞대는 정도는 생각했지만, 다름 아닌 자신이 엉덩이 사이를 인간의 손에 꿰뚫려 토정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흐으, 읏.”
“성기까지 잘생겼군요, 짜증 나게.”
“하아…….”
“자꾸 괴롭혀 주고 싶잖습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으, 으.”
“아주 위험한, 기사님이었군요.”
“크으읏!”
매끄러운 손가락이 반들거리게 젖은 선단을 꾹 눌렀다. 심술궂은 아픔이었다. 벌린 허벅지가 파들 떨리자 심술 맞은 웃음을 흘리며 입술을 미끄러뜨린다.
축, 축. 추웁. 여린 살갗을 빨아들이는 소리에 배 속이 지끈거렸다. 인간이 느낄 만한 곳은 짐승에게도 급소였다. 손가락이 달뜬 살덩어리의 끝을 툭 튕기다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핏발이 선 기둥을 훑는 그 은밀함에 짐승은 외마디 신음이 터지려는 걸 이를 악물어 참았다.
“브리첼 공작, 당신이 심각한 착각을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만.”
“뭐, 지? 하아, 하….”
“나는요. 정말 사내새끼 좆이나 흔드는 취미 따위,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 일은.”
“하아, 하…….”
“아주 예외란 소리지요.”
“!”
꽈악, 성기의 뿌리를 쥐며 할 말은 아니다. 헐떡이며 시선을 내려 흘겨보자, 살짝 미소하며 올려다보는 눈은 정말. 제기랄. 하리드는 욕설을 삼키며 허리를 뒤흔들었다. 닥치고 만지라는 종용에 등골부터 허리를 달래듯 매만지는 손길은 여전히 서늘했다.
그래도 좋았다. 바짝 힘이 들어가는 엉덩이 사이가 뜨거웠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하리드는 마구 쑤셔진 엉덩이 사이를 그에게 들이밀었을 것이다. 아니, 질색하더라도 인간을 엎어 버리고 놈의 뜨겁게 선 성기로 엉덩이를 주저앉혔을 것이다. 뒤흔들고 마구 울부짖으면서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리드는 숨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요, 그렇게 느껴 봐요. 이 손이 누구의 것인지.”
“그놈의, 입……은 쉬지도 않는군.”
“당신이 과묵한 겁니다. 아니지, 초반에는 잘 떠들었죠? 엉덩이에 손가락을 꽂는 순간 신음 소리만 내뱉게 되었지만. 난 후자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신 신음, 죽이거든.”
요망한 놈이었다. 이렇게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가는 육체가 아니었는데도, 놈의 손길이면 정도를 모르는 것 같았다. 크게 부풀어 또다시 바들바들 떨리는 흥분을 지켜보는 푸른 눈이 번들거린다.
“어떻게 해 줄까요. 이번에도 빨아 줄까요, 공작?”
“하으, 흐, ……읏. 윽!”
“그렇게 좋아만 하니까 심술이 나잖습니까……. 괴롭히고 싶어져.”
“아, 으윽!”
눈앞이 펄쩍 뛴다. 가기 직전에 틀어막은 남자의 못된 손가락 때문에, 충혈되어 뾰족하게 솟구친 유두에 습한 바람을 밀어넣는 상대의 입술 때문에. 아니, 인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존재하는 그 모든 것 때문에 그는 발정했다.
“싸지 마. 참아.”
“아아아!”
놈이 누군가. 르브리에 폰 인센 페르달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군가. 룩센의 차가운 얼굴의 경고가 떠오른다. 예언가의 음울했던 목소리 역시 이성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아! 스르르 놓아 버리며 훑어버리는 그 손의 움직임에 또다시 짐승처럼 토정해 버리고 말았다. 허리가 바짝 당겨지고 엉덩이가 꽉 조여진다.
“난감하군요.”
“흐으, 하, ……으, 읏!”
“나쁘지 않아…….”
“아, 아!”
상대의 목소리에도 열감이 가득했다. 나는 말입니다. 당신에게 궁금한 게 있었어요. 느릿느릿 울리는 목소리를 삼키며 하리드는 놈의 목을 쥐었다. 아까부터 마음에 들었던 그 목덜미. 손에 감기는 부드러운 피부의 질감을 느끼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핥고 싶다. 아니 물고 싶다. 날카롭게 뺀 이를 저 살갗에 박아 넣고 싶다. 놈의 피를 보고 싶었다. 아니, 아니다. 아프게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열에 들떠 발광하는 날것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짐승이 뇌를 번뜩이며 굴렸다. 그것이 어떤 욕심인지 자각하려는 순간, 놈이 키스했다.
모든 이성의 과정들이 열매가 되어 부서졌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비벼 올려 처박는 입맞춤이 아니었다. 깃털처럼 부드럽고 간지러운 입맞춤도 아니다. 적당한 열기와 적당한 격정으로 파고드는 혀를 짐승은 마음껏 삼켰다. 물고 빨며 같이 얽혔다. 좋다. 이 감각이 좋았다. 아주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열기였다. 아니, 하리드 브리첼은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한다. 이것은 그가 살아온 그 세월 중에서도 처음 느끼는 이질적인 것이다.
“하아, 하. 하아…….”
“키스, 하아, 마저 해.”
“닥치라는 겁니까?”
“…그래.”
그 향기. 부드러운 목선. 치밀어 오르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놈의 입술을 삼킨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었다.
* * *
“…….”
짹짹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밖의 새가 해맑게도 지저귀었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햇볕이 참 따뜻하기도 하다. 하지만 방 안에 앉아 있는 남자는 오히려 그 햇살에 피곤함을 느낀 듯했다. 어쩐지 퀭하고 파란 안색의 남자는 제 검은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직도 목이 뻐근하고 따끔한 것 같았다. 어젯밤 마음껏 괴롭힘당하고 긴 손가락으로 휘저어졌던 엉덩이 사이도 괜스레 이물감이 가득한 기분이다. 짐승의 육체는 순식간에 모든 흔적을 지우고 회복했을 터인데도 참 이상하지.
“제기랄…….”
그는 안타까운 신음을 흘리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정말 미친 게 분명했다. 어젯밤의 하리드 브리첼은 무언가 씌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제 대체 풋내기 애송이처럼 본능에 취해 무슨 일을 벌인 것이란 말인가. 나중에는 더 매만지라며 놈의 아랫도리를 붙잡고 협박까지 했다. 완전 미쳤군. 자책으로 가득 찬 눈이 창문의 시린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쾅! 하고 문이 세차게 열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방문객은 새된 목소리로 비명이라도 지르듯 용건을 고했다.
“하리드 브리첼!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
그러게, 어찌된 일일까. 그게 바로 그가 할 말이었다.
간밤에는 정말 시간이 물 흐르듯이 갔다. 놈과 이곳저곳을 건드리고 물어뜯고 뒹굴다가, 서로의 것을 열심히 매만지며 정액을 몇 번이나 보았을 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어둠이 물러나고 새벽이 다가서자 놈은 마법을 끝내야 할 시간이라도 왔다는 것처럼 아주 말끔하게 일어섰다. 넝마가 되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이었던 수컷은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진 크라바트를 매만지더니 연회장에 들어올 때의 현란하고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채였다.
청결 복귀 마법.
어떤 겉모습에 미쳐 버린 귀족가의 인간이 제 모든 열정과 시간을 탐닉해 만들어 낸 대단히 복합적이고 어렵지만, 허탈하기 그지없는 그 마법. 그걸 쓰는 인간은 처음 보았다.
말끔하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놈이 돌연 생긋 웃었다.
‘하룻밤의 일탈은 그만하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뭐?’
기가 막혔다.
‘다음에는 정갈한 인사를 나누도록 하지요, 브리첼 공작. 오늘은 참… 예상외로 즐거웠습니다. 그럼.’
그게 다였다.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태도였다. 짐승은 멍한 얼굴로 한동안 방 안에 있었다. 꼭 버려진 것처럼. 그래, 버려진 것처럼.
“……하.”
우지끈. 하리드 브리첼은 제 손에서 바스러진 깃펜을 미간을 좁히며 바라보았다. 난 지금 왜 화가 난 거지?
“하리드 브리첼! 왜 대꾸가 없어? 너, 너 아니지? 정말…… 인간과 잤어? 그것도 그 남자랑?”
눈썹이 꿈틀댔다. 경박한 룩센의 목소리도 짜증이 났지만, 하리드는 아직까지 제 입으로 간밤의 일을 말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더 신경에 거슬렸다. 골이 띵하게 아파 왔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지?”
“어디긴! 일을 치르고 나왔는데 해롱해롱한 인간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더군. 노리고 있던 아주 근사한 두 남자가 같이 들어가서 아쉬워 죽겠다고. 대충 인상착의를 이야기해 주는데 딱 봐도 너랑 짐작 가는 인간이 딱 하나 있더란 말씀이야! …말해 봐. 아, 아니지?”
끼익, 소리와 함께 회전의자가 돌아갔다.
“어쩔 것 같은데.”
하리드 브리첼은 인상을 찌푸린 채 제 앞에 먹구름이 낀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바라본다.
룩센 디암. 적당히 간밤을 즐긴 냄새가 비릿했다. 그러나 그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로 느낀 모양이었다. 일그러지는 이목구비를 보며 탄식을 삼켰다. 잔소리 폭탄이 날아오겠군.
“미쳤구나! 네가 미쳤어, 수장님!”
“…….”
“정말이야? 너, 지금. 하.”
룩센의 입이 떡 벌어졌고 찢어지는 고함이 방 안을 울렸다.
“다른 놈도 아니고 우리가 죽여야 될 놈이랑 뒹굴었단 말이야……?”
“…….”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건 하리드 브리첼이 무사히 성년식을 치르고 난 뒤, 최초로 저지른 통렬한 실수였기 때문이다. 룩센이 옳다. 그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상대를 건드렸다. 풋내기 애송이처럼.
르브리에 폰 인센 페르달은 짐승들이 찾은 죽여야 할 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