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지그문트의 승부 (117/119)

7장. 지그문트의 승부

“여긴?”

김강현이 눈을 뜨자 보이는 풍경은 마계의 광활한 평야였다.

검은 하늘과 태양, 그리고 검은 대지는 마계의 고유의 특색이었다.

한 번도 마계에 방문한 적이 없지만, 헬릭스의 기억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놈의 정신세계인가?”

지그문트의 작전을 알아차렸다.

물리적으로 김강현을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이곳에서 싸우려는 속셈이었다.

이곳에선 신체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쌓은 견고한 정신력을 가져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역시 금방 알아차렸군.”

“지그문트.”

“이곳에선 온전히 무한의 마왕이라는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 최고의 장소이지.”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본신으로 현신한 지그문트가 서 있었다.

게다가 키메라 세포를 지니고 있어 완전무결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절대 질 수 없다.’

지그문트는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이곳은 평범한 인간이 절대로 오지 못하는 곳으로, 이곳에서의 싸움 방법은 현실과 달랐다.

그조차 이곳에서 제대로 힘을 운용하기까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만큼, 김강현이 이 환경에 익숙해지기 전에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놈의 힘을 흡수한다!’

게다가 자신의 정신세계인 만큼 김강현을 쓰러트리고 나면 그 힘을 흡수할 수 있었다.

천세후의 힘 또한 이렇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김강현이 죽거나 자신의 허락이 없는 한 탈출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불길한 느낌은 무엇이냐?’

한데 김강현의 태도가 이상했다.

보통 자신의 힘이 사라지는 환경을 만나면 당황하고 방법을 찾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여유롭게 양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확실히 좋은 선택이야. 정신세계에서의 싸움이면 질 수밖에 없지.”

만약 김강현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이곳으로 끌어들였으면 작전은 성공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 운이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라셀의 힘을 쓸 수 있겠어!”

“어, 어떻게?”

“뭘? 정신세계의 싸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니 이를 가져왔을 뿐이지.”

말과 함께 김강현은 라셀을 떠올리며 그가 가졌던 키메라 세포를 자신의 몸에 각인시켰다.

강제로 육체 개조를 시전하자 순간 고통스러웠으나 일시적으로 마나로 감각을 차단하니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라셀의 몸에 박혀 있던 드래곤 하트를 인피니티 하트와 동조하여 키메라 세포의 힘이 유지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죽자마자 헬릭스와 싸웠지.’

정신세계의 장점은 시간의 흐름이 현실과 차이가 크다는 것이었다.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곳의 하루는 현실의 1분에 불과했다.

당시 라셀은 드래곤 로드 벨가르트에게 강제로 키메라 세포를 이식당했는데, 헬릭스와 함께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정신세계를 떠올렸다.

신체가 모두 제압당한 채 움직일 수 없으니, 헬릭스의 마법으로 정신세계에서 수련한 것이다.

덕분에 김강현에게 이곳은 전혀 낯설지 않고 친숙하기 짝이 없었다.

“이곳에서 힘을 다뤄본 적이 있구나.”

“살려고 이용했었지. 미리 나에 대해 알아보지 못한 게 큰 실수다.”

처음 라셀은 정신세계에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곳의 시간으로 120년 동안 헤맨 뒤에야 능숙하게 힘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응이 완료되자 나중엔 이곳에서만큼은 헬릭스를 가볍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게다가 커다란 적도 남겨두었어.”

“뭐?”

말과 함께 김강현은 지그문트의 정신세계에 남아 있는 잔재 사념을 끌어냈다.

그러자 김강현의 옆에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살아날 줄이야. 고맙군.”

“고마우면 은혜를 갚아라.”

“그 은혜는 저놈을 죽이는 것으로 하지.”

“부, 분명 놈을 죽였건만!!”

“네 말대로 죽인 뒤 영혼을 소멸시켰지만, 조각 일부가 이곳에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지.”

천세후는 몸 상태를 살핀 후 지그문트를 노려보았다.

지금 나타난 천세후는 지그문트에 의해 완전한 죽임을 당했지만, 그 전에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사념을 남겨둔 것이었다.

단 한 번밖에 부활할 수 없는 작은 힘이었지만 김강현에 의해 기회를 얻었다.

“믿을 수 없다. 어떻게!!”

지그문트는 천세후의 부활에 고개를 저으며 불신했다.

이 세계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절대 타인의 간섭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설마?!’

혹시나 싶어 지그문트는 이 세계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이곳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었다.

한데 이 세계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아니, 지그문트의 의지가 거부당했다.

지그문트는 의문을 풀기 위해 김강현을 노려보았다.

“별거 아니야. 네가 만든 이 세계에 내 의지를 섞었을 뿐이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곳에서 천 년 정도 지내다 보면 가능하니까 불가능하다고 하지 마라.”

라셀은 정신세계에서 400년간은 헬릭스에게 엄청 맞으며 지냈고, 600년이 지나자 동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800년이 지나자 헬릭스를 이기고, 타인의 정신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지그문트는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눈앞에 그것이 펼쳐지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호, 이렇게 하면 된다 말이지?”

“네놈은 어떻게 힘을……?!”

“이 정도 가지고 뭘 당황하는 것이냐? 네 기억을 읽으니 쉬운 것을!”

그사이 천세후 또한 지그문트의 기억을 통해 정신세계에서 힘을 운용하여 검은 마력을 일으켰다.

천세후의 잔류 사념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것이 아니라, 때를 대비해서 지그문트의 기억을 읽으며 그의 약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정신세계의 기억도 빼놓지 않고 대비해 두었다.

덕분에 지금 누구보다 능숙하게 힘을 운용할 수 있었다.

“네놈과 손을 잡는 것이 어색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곳에서 확실히 소멸시켜 주마.”

김강현도 인피니티 오러를 일으키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 또한 천세후와 같이 싸우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그의 합류로 조금이나마 승률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감히 인간들 따위가!!”

자존심에 크게 상처 입은 지그문트는 이를 갈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절대 패배 따윈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정신세계에서 싸우는 이상 지그문트의 승리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최후의 승부를 걸었단 말이다. 고작 인간 따위가 정신세계에서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 리 없지 않느냐?”

한편, 카루소와 헬릭스의 싸움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카루소는 사전에 지그문트의 작전을 듣고, 정신세계에서의 싸우는 이상 지그문트가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멍청한 지그문트! 스스로 무덤을 팠구나.’

그렇지만 헬릭스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김강현은 이미 자신과 정신세계에서의 수련으로 이미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어쩌면 현실에서 싸우는 것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그의 패배가 확실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이 몸도 마무리 지어야겠구나.”

“뭐?!”

“이 싸움을 끝내겠다는 말이다.”

카루소는 헬릭스의 말이 어이가 없었으나, 이미 헬릭스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몸과 너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느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너는 영원히 이 몸을 넘을 수 없을 거다.”

말과 함께 헬릭스의 주변에 검은 구체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실리스크에게 단번에 죽음을 선사한 다크 홀이었다.

그때는 다크 홀 하나를 만드는 데도 고생했지만, 지금은 열 개를 만들었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만약 라셀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 깨닫지 못했을 테지.’

헬릭스는 발록으로 태어났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법과 힘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노력 따윈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아무도 자신을 이길 수 없으니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오만을 깨트린 이는 라셀이었다.

파벨리온의 실험체였던 라셀은 작고 약했다.

오죽하면 자신의 손짓에 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셀은 포기하지 않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나중에는 같이 파벨리온의 레어를 탈출해 용마대전에서 함께 지그문트를 죽였다.

그리고 지금은 지그문트를 홀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라셀을 만나기 전까지 잊고 살았던 문장이었다.

성장하는 라셀을 보니 헬릭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과 위기감이 들어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불멸의 마법이라 불리는 다크 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헬릭스!!!”

“잘 가라.”

카루소는 헬릭스가 펼치는 다크 홀을 눈치채고 이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저 작은 구체 하나에 스치기만 해도 신체의 일부가 바로 소멸될 것이었다.

다크 홀을 막을 방법은 헬릭스가 쏘기 전에 캐스팅을 방해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헬릭스의 시전이 빨랐다.

“끝까지 네놈을 저주하겠다! 헬릭스!!!”

처음에는 다크 홀을 피했으나 계속 연달아 날아오는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오른팔을 가격당한 직후, 바로 왼팔과 몸통을 향해 날아와 순식간에 그의 몸을 소멸시켰다.

카루소는 다크 홀에 조금도 대항하지 못한 채 마지막에는 저주의 말을 소리쳤지만, 헬릭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얼마든지.”

그것이 패배자의 절규라는 것을 알기에 부질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김강현과 지그문트의 싸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싸움에 합류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들어가면 둘의 정신이 깨질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그곳에서의 싸움은 영혼의 힘과도 연관되어 있어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다만 김강현을 믿고 기다릴 뿐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다른 만큼 길게 걸리지 않을 텐데.”

헬릭스는 길어야 현실 시간으로 5분이면 둘의 싸움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일이 지나도 김강현과 지그문트는 깨어날 줄 몰랐다.

그 말은 즉, 정신세계의 시간으로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의 1분은 정신세계의 하루나 다름없었다.

헬릭스는 굳은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최악의 경우 지그문트가 이길 수도 있겠지.’

헬릭스는 지그문트가 이길 경우를 상정하고 바로 싸울 준비를 취한 채 기다렸다.

결국 30분이 지나서야 싸움의 끝을 알리는 빛이 그들을 감쌌다.

* * *

‘정말 답이 없는 것인가?’

김강현과 천세후의 합공에 지그문트는 정신이 나가 버렸다.

정신세계에서 싸우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아 정했는데, 오히려 둘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김강현은 그렇다 쳐도 천세후의 공격은 막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대론 내가 소멸당한다!’

지금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실상은 버티기가 급급해져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김강현은 기억 속의 키메라 세포를 몸에 적용시켜 완벽한 방어와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천세후는 자신에게 빈틈이 있을 때마다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마왕으로서 쌓은 경험과 실력이 이들에게는 무력화되었다.

이대로라면 이곳의 시간으로 2일이면 자신의 패배로 승부가 날 것이었다.

‘결국 놈에게 기회를 넘길 수밖에 없나?’

지그문트는 아쉬움과 분노를 누르며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만약 자신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락할 정도로 좋은 제안을 전달했다.

이렇게 지그문트는 김강현과 천세후에제 들키지 않게 자연스러운 패배를 준비해 나갔다.

“손발이 이렇게 잘 맞을 줄이야.”

“아쉽군.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계속 싸워볼 것을.”

반면, 김강현과 천세후는 이곳 시간으로 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싸웠음에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랄 정도였다.

이곳에선 정신력만 버티어 준다면 무한대로 싸울 수 있었다.

정신없이 지그문트와 싸우는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친구처럼 합이 잘 맞았다.

감각적으로 서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알고 나서주었고, 미처 대응하지 못할 때에는 나서서 방어해 주었다.

덕분에 믿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연계 공격에 지그문트에게서 빈틈이 보였고,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인피니티 포스!”

“천마강림!”

그리고 정확히 지그문트의 배에 둘의 힘이 담긴 공격이 작렬했다.

지그문트는 이를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걸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질 테니까.”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뭐라고?”

“후후후…….”

지그문트는 대답 대신 묘한 웃음소리만 남긴 채 그대로 이 세계에서 소멸당했다.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놈을 쓰러트렸다는 기쁨에 김강현은 천세후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끝인가?”

“고맙다. 덕분에 놈을 쓰러트릴 수 있었어.”

“아니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네놈 혼자서도 쓰러트릴 수 있었을 거다.”

“흐음.”

김강현과 천세후는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지그문트가 소멸되었으니 곧 이 세계도 같이 사라질 것이었다.

즉, 천세후의 잔류 사념 또한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곳에서의 소멸은 단순히 싸움이 끝을 알리는 것이 아닌 육체의 소멸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래 지그문트도 정신만 소멸되어 뇌사 상태에 빠져야 했지만,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여 육체와 연결시켜 버린 탓에 강제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괜찮다면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무슨?”

“내가 후사를 준비하지 않은 채 사라졌으니 신교는 내부적으로 크게 흔들릴 것이다. 핵심 수뇌부들도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돌봐달라는 말이냐?”

천세후는 점점 육신이 흐릿해짐에 따라 자신도 소멸되는 것을 느꼈다.

김강현은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본래 그들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지만 이곳에서 같이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렸다.

무리한 부탁임을 알았지만, 천세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천마신공을 전수해 줄 테니 교인들 중 자질이 괜찮은 자에게 전수해다오.”

“뭐?”

“다시 신교가 부흥하기 위해 교주는 반드시 천마신공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죽은 이상 몇백 년간 천마신공의 시련을 돌파할 자가 없을 터.”

시간이 없다고 느낀 천세후는 김강현이 대답하기 전, 강제로 기억 전이를 시도했다.

‘이, 이건?!’

천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천마신공의 구결은 심오하면서 광대했는데,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각인되면서 인피니티 포스의 취약점들을 보완되었다.

김강현은 자연스럽게 명상에 빠지며 천마신공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뒤를 잘 부탁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김강현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아는 천세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하루 뒤.

김강현이 다시 눈을 떴다.

‘단순하게 전수만으론 갚기엔 너무 큰 걸 받아 버렸네.’

천마신공 덕분에 경지가 최소 한 단계는 올라갔다.

의도치 않게 큰 빚을 진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우니, 계산을 해보면 천마신교에 많은 도움을 줘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저들의 무공을 익힌 셈이니 이걸 빌미로 붙잡힐 수도 있겠네.’

지금 천마신교는 무림맹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고난을 겪고 있었다.

마계와의 싸움이 끝난 후 천마신교가 다시 후일을 도모할 힘을 키울 때까지 자연스럽게 떠맡은 셈이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돌려주고 싶었으나 이제 그럴 수도 없으니, 결국 천세후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김강현은 길게 호흡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 * *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강현?”

“그래. 혹시 내가 아닌 지그문트가 이겼을 거라 생각했거나 내 몸을 차지했을 가능성을 염두 했던 건 아니겠지?”

“크음.”

눈을 뜨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김강현은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헬릭스가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김강현의 생각이 맞았는지, 헬릭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본신에서 인간 형태로 폴리모프 마법을 시전했다.

“다 끝낸 거냐?”

“아마도. 마계로 강제 귀환당했으니 몇천 년간은 조용하겠지.”

이번 싸움은 지그문트에게도 굉장히 리스크가 큰 싸움이었다.

몇백 년 전 테라에서 그들에게 큰 패배를 당한 후, 그 피해가 복구되자마자 지구로 다시 침략한 셈이니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대패를 당했으니 주변 마왕들이 영토를 넓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 것이었다.

“크고 작은 부상이 있지만 다행히 다른 곳도 무사히 잘 끝난 것 같구나.”

헬릭스의 말에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싸움의 여파로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여서, 길드원들을 비롯해 모든 헌터들의 상태를 대략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지그문트에 의해 소환된 마왕들이 강제 귀환하고, 마하드라의 생명력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록스를 찾아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겠지.”

“지금은 이 승리를 만끽하자꾸나.”

김강현과 헬릭스는 큰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현실을 떠올리면 해야 할 일들이 태산같이 쌓여 있었다.

마계와의 싸움에서 피해를 보고 죽은 이들의 가족을 돌봐야 하며,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치료해야 했다.

그리고 물질적인 피해를 환산하여 처리하고, 결정적으론 지그문트를 소환한 록스를 찾아야 했다.

‘분명 무슨 수를 준비해 두었을 테니까.’

소환자인 록스를 죽이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이와 같은 싸움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었다.

이 기회에 록스를 비롯하여 마족을 소환하려는 다크 위저드들을 확실히 없애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지그문트의 육체에 그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런데 저 시체는 어떻게 할 거냐? 언데드로 만들면 데스 킹도 노려볼 만한데!”

“저건 없애는 게 맞아. 괜히 다른 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괜히 아깝구나.”

마왕의 본신이었던 육신인 만큼 상상할 수 없는 마력이 담겨져 있을 터였다.

키메라 세포도 활성화했으니 신체 능력 또한 누구보다 뛰어날 것이고 말이다.

헬릭스는 이를 활용하여 언데드로 제련하면 데스 나이트의 상위 존재인 데스 킹도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지그문트랑 영혼이 연결되어 있으니 소환 의식 없이 강림할 가능성도 있고.”

김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그문트의 육체에 손을 올려놓은 뒤 인피니티 오러를 시전했다.

그때,

파아아앗!!

“이게 무슨?!”

지그문트의 육체에 남아 있는 마력과 오러가 부딪치며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김강현과 헬릭스는 갑자기 급격하게 변하는 마력의 흐름에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당황한 김강현은 지그문트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마력 폭주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폭주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위력과 범위를 넓혀갔다.

결국 김강현과 헬릭스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미친 짓을 했다고?”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지그문트의 육체에는 양을 짐작할 수 없는 마력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무려 마왕급이다.

이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평범한 다크 위저드가 대마법사의 반열에 가볍게 오를 정도다.

그런데 이 마력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폭주하여 터지게 되면, 현재 불안정한 지구의 마나와 부딪쳐 거대한 차원의 틈이 벌어질 터.

“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

그들의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하늘에서 마력이 실린 목소리가 지구를 쩌렁쩌렁 울렸다.

목소리 속에 담긴 힘에, 몇몇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마나 역류가 일어나지 않게 신경을 써야 했다.

“저걸 없앨 수 있을까?”

“오히려 건드리면 차원의 축이 비틀어져 지구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김강현과 헬릭스는 순간 자신들의 힘으로 마력의 흐름을 없애버릴까 생각했지만, 지구의 마나와 동조하며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손을 쓰기에도 늦었다.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대체 어떤 놈이 나오는 거지?’

둘은 긴장하며 게이트에 시선을 집중했다.

“여기가 지구인가?”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게이트 안에서 나온 것은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지닌 20대의 젊은 남성이었다.

지나가다 한 번쯤 고개를 돌려볼 정도로 뛰어난 미형을 지닌 사내가 먼저 지구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정말이구나. 지그문트가 실패하다니!”

사내가 놀랍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불과 3분 전, 지그문트가 게이트를 열어주겠다는 전언을 남긴 채 마계로 사라졌다.

기회가 생긴 그는 단번에 차원을 넘어 지구에 발을 디뎠다.

“확실하구나. 분명 그가 확실해.”

“파벨리온…… 아니, 그로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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