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지구의 운명을 건 싸움 (115/119)

5장. 지구의 운명을 건 싸움

평소와 다름없는 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오랜만에 평화라는 걸 누리고 있었다.

현재 세계헌터협회에 의해 지구에 존재하는 던전 95%가 폐쇄되었고, 거리를 지나다 볼 수 있었던 게이트가 사라져 있었다.

덕분에 저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가 있느냐에 없느냐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달라졌는데, 던전을 폐쇄하자 게이트도 사라져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과 달리 헌터들은 항상 긴장하며 적의 대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서 아쉬크람과 마하드라가 지구로 넘어오면서 미국과 일본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

다행히 김강현을 비롯한 헌터들의 빠른 대응으로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지만,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었기에 세계헌터협회의 주도 아래 마계의 싸움을 대비했다.

그리고 전쟁의 신호탄은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터졌다.

“이제 시작이네요.”

“예상은 했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마력이야.”

“그만큼 철저히 준비했다는 증거겠죠.”

“그래. 놈들이 전력을 다하는 만큼 이번 싸움으로 끝을 내자.”

김강현과 테티아는 이야기를 하던 중 무지막지한 마력의 등장으로 마계의 문이 열리는 것을 직감했다.

모든 헌터들이 느낄 정도로 선명하게 감지되는 마력.

감각이 예민한 일반인들은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게이트가 열린 곳은 총 다섯 곳. 그중의 셋은 마계와 연결되었고, 두 곳은 테라네.”

김강현은 기감을 넓혀 게이트 안에서 뿜어지는 기운을 감지했다. 그사이 테티아는 게이트가 나타난 위치를 파악했다.

“이집트, 캐나다, 스웨덴, 우루과이, 그리고 한국이에요!”

“뭐?”

테티아의 말에 김강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심 가족들이 있는 한국을 피해 가길 바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헬릭스. 혹시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분석해서 누가 나올지 알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지만 해 보마. 대신 여기 있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저요?”

“그래. 가이아의 의지를 이용하면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게이트에서 누가 나올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그들의 상성을 고려하여 헌터들을 배치할 수 있을 터.

다행히 헬릭스는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서 다섯 곳의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력의 파장을 읽기 시작했다.

“지도! 지구를 가져와라!”

다급한 헬릭스의 말에 김강현은 급히 한쪽에 있던 세계 전도를 가져와 헬릭스의 앞에 펼쳤다.

그리고 헬릭스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체이난, 여기는 라이트, 그리고 이곳이 크로아셀이다.”

“정확한 거야?”

“이 몸을 못 믿는 거냐?”

체이난, 라이트, 크로아셀은 지그문트를 따르는 마왕들로 김강현과 헬릭스는 테라에서 그들과 셀 수 없을 만큼 목숨을 걸고 싸웠었다.

김강현은 헬릭스보다 상대방의 기운을 읽는 것이 조금 미숙하여 완전히 모습을 드러나기 전까진 파악이 어렵지만, 헬릭스는 게이트에서 나오기 전에 읽어낼 수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김강현이 신중을 기하며 재차 묻자, 헬릭스는 확신하며 대답했다.

“테라와 연결된 게이트에서는 대량의 몬스터와 언데드의 기운이 감지되는구나.”

“아직 그로시아스는 넘어오지 못하는 건가?”

“그 말은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이겠지.”

김강현은 헬릭스와 대화하며 신음성을 흘렸다.

차원 간에는 규칙이 존재하는데, 타 차원의 힘이 넘어왔을 경우 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그 힘을 없애는 것이 정석이었다.

예외라면 테티아와 헬릭스이었다. 테티아는 테라의 사람이나 지구의 신인 가이아에 의해 선택되어 규칙에서 벗어났고, 헬릭스는 본래 지구의 존재인 김강현과 계약을 맺어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강할수록 차원을 넘기 어려운데, 지그문트는 처음부터 약해진 상태로 록스와 계약을 맺어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지만 그로시아스는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 차원의 틈이 더 벌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눈앞의 적이에요. 바로 세계 각국에 연락하죠.”

“그래. 그리고 제발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 되길 바라지.”

김강현의 말에 테티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UN에 연락을 취했다.

마하드라와 아쉬크람이 등장한 이후 사람들의 대응체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싸움의 여파로 도시 하나가 가볍게 날아가자 국가가 나서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뉴스에는 마하드라와 아쉬크람이 나타난 LA와 오사카만 피해를 입었다고 공표되었지만, 실제론 그 주변 도시까지 영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죽음도 100만이 넘었다.

세계헌터협회는 무의식중이라도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와 두려움이 마족을 강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보를 통제했다. 더불어 이때를 대비하여 전 세계의 나라들이 공조하여 움직이기로 약조했다.

테티아도 마지막 싸움이 되기를 바라며 헌터들의 배치를 정하고 게이트에서 나타날 마왕들과 몬스터들의 정보를 전달했다.

* * *

“역시 이곳에 나타났구나. 인간!!”

“그래. 못다 한 승부를 내야지.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다.”

“누가 할 소리! 인간들이여. 모조리 죽여주마!!!”

마하드라는 눈앞에 나타난 미셀과 신의 기사단을 향해 표효했다.

우루과이에 나타난 마하드하는 뒤쪽의 게이트를 보호하며 인간들을 향해 피어를 시전했다.

“으으윽!!”

“저런 것과 싸워야 한다고?!”

“젠장. 한 번 부딪쳐보자고!!”

B급 헌터들은 마하드라의 마력과 살기를 견디기 어려워 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족들을 지켜야 해!’

‘어떻게든 쓰러트린다!’

여기서 물러나면 가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죽을 수 있다.

쓰러질 수가 없었다.

앞서 아쉬크람과 마하드라의 등장으로 헌터들은 드래곤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때는 적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엔 김강현과 테티아의 도움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인간들이여, 모조리 죽여주마!”

파아앗!

마하드라는 지난번에 미셀과 신의 기사단을 상대하며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파악했다.

먼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솟구쳤는데, 인간들은 공중전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했다.

“드래곤 슬레이어를 준비해!”

“놈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라!”

약 50여 명의 헌터들이 자신의 키보다 큰 대창을 마하드라에게 겨눈 후, 일제히 발사시켰다.

‘어떻게 인간들의 공략법을 알고 있는 거냐?’

그는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 크게 놀라며 경악했다.

발사된 창은 마하드라에게 닿자마자 폭발을 일으키며 안에서 그물이 쏟아졌다.

그물은 특수하게 제작되었는데 무게가 무거워 단숨에 마하드라를 땅으로 추락시켰다.

이 방법은 테라에서 인간들이 드래곤을 상대할 때 만든 전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하드라는 이 수법을 지구에서 다시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모든 것에는 김강현과 헬릭스의 도움이 있었다.

기회가 되어 아쉬크람은 자신이 죽였지만, 마하드라는 다른 헌터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대비해 테라에서 사용했던 공략법과 같이 사용했던 아티팩트를 미리 준비한 것.

드래곤 슬레이어 또한 그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신의 기사단은 마법을 발동시킨다!

“넷!”

신의 기사단이 미셀의 외침에 따라 입고 있는 갑주에 새겨진 마법을 발동시켰다.

기사들에게 드래곤의 마법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갑주에 무력화 마법진을 각인시켜 위저드 동행 없이 기사들로만 드래곤을 사냥할 수 있게 만든 전술이었다.

그러면 미셀과 신의 기사단은 직접 마하드라를 공격할 것이고, 뒤쪽의 헌터들이 서포트하며 마하드라의 동선을 제어할 예정이었다.

‘이놈들!!’

철저한 헌터들의 움직임에 마하드라는 이를 빠득거리며 분노를 곱씹었다.

“그런다고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땅에 고꾸라진 마하드라는 금방 자세를 잡은 뒤, 꼬리를 휘둘러 그물을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강화 마법을 걸며 마법을 준비했다.

‘놈들에게 마법만 통하지 않을 뿐, 물리 공격은 가능하다.’

인간들의 공략 방법에 드래곤들도 당연히 파해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했다.

기본적으로 드래곤의 신체는 단단함을 자랑하는데, 여기서 강화 마법을 걸면 오러조차도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드래곤의 마나는 무한대이기 때문에 체력만 보장되면 절대로 뚫릴 일이 없었다.

“나와라. 나의 가디언들이여!!”

쿵! 쿵! 쿵!!

그 말과 함께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숲의 제왕이라는 오우거와 트롤 등 대형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하드라는 가디언들을 대형 몬스터들로 구성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에 드래곤 블러드를 심어두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레어 주변의 몬스터들을 알아서 정리하며 관리했다.

“마하드라 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눈앞의 인간들을 모두 죽여라!”

“알겠습니다.”

몬스터들을 이끄는 오우거는, 다른 몬스터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커서 마치 괴물을 연상케 했다.

게다가 손에 든 나무 몽둥이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였다.

“가자!!”

“몬스터들 따위는 단번에 쓰러트리자고!”

게이트에서 등장한 몬스터들의 위세에 헌터들은 움찔거렸지만, 신이 기사단이 내뿜는 신성력의 영향으로 마음이 차단해지며 머리가 차가워졌다.

단번에 금방 현실을 깨달으며 그들이 눈앞의 적에 집중하며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여기가 지구인가? 참으로 고요하구나.”

허리에 검을 찬 마족이 한가로이 걸으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펄럭이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고, 이마에는 날카로운 뿔이 박혀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한국의 김제 평야로 아직 모내기를 하기 전이라 새파란 하늘과 아무것도 없는 주변 풍경을 보자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뒤편으로는 작은 게이트가 보였다.

“광혈의 마왕 크로아셀이 맞나?”

“응?”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천류신검을 들고 있는 검천호가 있었다.

“맞군. 특이하게도 마왕 중에서 검을 사용한다고?”

검천호는 크로아셀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배치되었다.

크로아셀은 마족 중에서 별종이나 다름없었다.

태어나자마자 마법보다는 검에 관심이 많아 인간들처럼 검을 수련했고 검 하나로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

게다가 다른 마왕들처럼 세력을 따로 이룬 것이 아니라 홀로 다니며 오로지 강해지기만을 목표로 했다.

“너 또한 검을 사용하는구나. 아주 재미있겠어.”

크로아셀은 검천호를 보자 강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바로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에게 대화 따위는 필요 없었다.

검천호도 상대방이 바로 싸울 기세를 보이자 검을 쥐며 오러를 만들어냈다.

* * *

천공의 마왕 라이트는 눈앞의 인간들을 보며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게이트에서 나오면 휘하 마족들을 이끌고 인간들을 사냥할 생각에 굉장히 들떠 있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게이트를 나오자 모여 있는 인간들을 보자 굉장히 즐거웠다.

하지만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놈들 때문에 전진을 못한다고?’

라이트는 두 명의 인간에 막혀 지지부진한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휘하 마족들은 인간들의 철저한 전략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 망할 것들이!!”

단순한 성격을 지닌 그는 화가 나자 마력을 발산하여 번개를 만든 후 주변에 흩뿌렸다.

“렌!!”

“말하지 않아도 안다!”

사방으로 퍼지는 번개를 본 연세연의 외침에 렌이 번개를 향해 날아가 단검을 휘둘러 공간을 베었다.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간 번개는 검을 다시 한 번 휘두르자 신기하게도 공간을 뚫고 나와 라이트를 향해 쏘아졌다.

“아이스 브레이커!!”

게다가 연이어 연세연이 거대한 얼음 파편들을 만들어내며 번개가 쏟아지기 전에 라이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망할!!”

‘절대영도라니!’

가볍게 부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연세연의 얼음 공격은 마계의 헬 파이어와 비견될 만큼 단단했다. 절대로 녹지 않는 공격에 라이트는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질이 좋지 않아!’

불꽃을 다루는 마족이라면 쉽게 절대영도쯤은 녹일 수 있겠지만, 자신은 번개에 특화되어 있었다.

멍청한 마족은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오히려 자신이 유리하다고 말하겠지만 절대영도는 차원이 달랐다.

외부에서 공격이 통하지 않을 만큼 튼튼한 데다가 오히려 미러 마법처럼 상대방의 공격을 반사할 수 있어 괜한 공격에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어쩌면 가능하겠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라이트를 상대하고 있던 렌과 연세연은 점점 승리에 대한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들은 김강현으로부터 마왕을 동시에 상대하라는 연락에 기겁했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상성과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후우.”

‘아직 괜찮아. 이 상태면 전력으로 1시간은 싸울 수 있어!’

연세연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처음에는 그녀는 김강현의 말을 믿지 못했다. 유럽에서 지그문트의 강함을 직접 보았기에 마왕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때와 달리 그들이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이름뿐인 S급 헌터가 아니라 웬만한 헌터들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다만, 김강현을 비롯해 검천호, 헬릭스 등 평소 괴물 같은 자들과 함께 있었기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니!’

그리고 렌은 희열을 느끼며 라이트의 공격들을 모두 무효화시켰다.

정확히는 공간 이동을 통해 라이트가 만들어낸 번개들을 마족이 있는 곳으로 가도록 유도했다.

자신 또한 공간을 뛰어넘어 공격이 가능하니 상상이 불가능한 곳에서 튀어나와 라이트의 감각을 흩트려 놓았다.

이 능력은 어쌔신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는데, 상대방을 죽일 때 공간을 넘나든다면 어떤 방해물이 있더라도 무시할 수 있었다.

이를 활용하여 렌은 공격과 함께 방어를 펼쳐 나갔다.

‘인간들에게 이 몸이 진다…….’

냉정하게 라이트는 상황을 계산했다.

눈앞의 인간들은 그랜드 마스터 급의 강자들로 결코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상성이 좋지 않았다.

‘모든 걸 부술 수 있는 힘이 필요해.’

“마지막까지 아껴두려고 했건만!”

라이트는 앞선 용마대전에서 드래곤과 인간, 그리고 이종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래서 마계로 강제 귀환한 뒤,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 해답을 찾았다.

자신에게 수모를 안겨준 김강현과 헬릭스를 죽이기 위해 준비한 기술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응?”

곧 주변의 마력이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더니 먹구름이 끼며 번개들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주변 헌터들은 피해라!”

라이트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연세연과 렌이 그 위험을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꽈르르르릉!!!

“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 일기예보는 화창했다. 게다가 이곳은 우기가 아니면 비가 내리지 않는 이집트.

순식간에 검게 물든 하늘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이트를 중심으로 번개 폭풍이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파괴하며 불태워 버렸다. 이를 본 마족들은 환호성과 함께 급히 움직였다.

“다크 클라우드?”

“진심으로 싸우는 라이트 님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겠네.”

“실수로라도 마왕님의 근처에 가지 마라!!”

휘하 마족들은 전력을 다하려는 라이트의 움직임을 읽고 그 주변을 벗어났지만, 수백 명의 헌터들은 번개 폭풍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크윽,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진짜 싸움이라는 거야.”

다행히 위험을 직감했던 렌과 연세연은 공간의 틈으로 번개 폭풍 일부를 흘려보내고 얼음 방패를 만들어 간신히 몸을 보호했지만, 그동안 라이트의 어떤 공격에도 굳건했던 얼음에 금이 간 것을 보며 긴장했다.

“기분이 좋군.”

파지지직!!!

라이트는 번개 폭풍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서 번개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라이트의 몸이 번개가 되었다.

이는 라이트닝 프레임(Lightning frame)이라는 전신 강화 마법으로, 말 그대로 신체를 번개로 바꾸는 것이었다.

본래 번개 마법에 뛰어났던 라이트는 어떻게 하면 위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자신이 번개가 되면 무한대로 힘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 마법을 창조했다.

“인간들이여, 모조리 죽여주마!!”

말과 함께 라이트가 움직였는데 움직임이 빛처럼 시야로는 좇아갈 수 없었다.

지금의 그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잠깐 시간을 끌어줄 수 있어?”

“좋아. 어떻게든 버텨보지.”

연세연이 공략 방법을 찾기 위해 렌에게 소리친 순간, 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트를 향해 나섰다.

* * *

종속의 마왕 체이난은 마수의 머리 위에 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게 아닌데. 인간들의 발악이 이렇게 심할 줄이야!”

그녀는 다른 마왕들보다 빨리 게이트에서 나와 인간들을 죽이고 지상을 마계화시키기 위해 온갖 마수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래서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자신과 마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을 발견하고는 바로 싸움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인간들의 저항이 심했다.

“문제는 저 둘인가?”

인간들 중에서는 유독 튀는 두 인간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김건과 이유하가 함께 다니며 공수를 완벽하게 이루고 있었다.

“유하야. 버프 부탁해!”

“조심해. 점점 놈들의 공격이 강해지고 있어.”

“후우. 힘을 조절하면서 싸우고 있으니 걱정 마.”

이유하가 버프를 걸며 말하자, 김건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손에 든 라운드 실드를 꽉 쥐었다.

‘내가 신성력을 사용할 줄이야…….’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듯 이유하는 신성력을 발휘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테티아로부터 힘을 각성한 그녀는 기존의 능력이 향상됨과 동시에 신성력을 얻게 되었다.

신기하여 테티아에게 물어보니 스킬의 생성은 그녀가 지금까지 한 행동과 연관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 이유하는 그동안 김고엽을 치료하기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성력 스킬이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이유하는 상처 치료와 보호, 그리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버프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이용하여 지금은 김건과 주변의 헌터들을 집중적으로 서포트하고 있었다.

‘유하 덕분에 싸우기가 편해.’

각성한 김건은 예전과 전투 스타일이 변했다.

전에는 방어 위주로 싸우며 반탄력을 활용하여 공격했지만, 지금은 라운드 실드의 날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공격에 활용했다.

힌트는 미셀의 방패술이었다. 미셀이 방패를 이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자 김건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이를 위해 피어스 방패술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섞었는데, 오른팔에는 라운드 실드를 착용하고 왼팔에는 건틀릿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라운드 실드는 공격으로 쓰고, 건틀릿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것이다.

물론 건틀릿으로 막기 어려운 것은 라운드 실드를 이용해서 막은 뒤 반탄력을 이용해서 역공을 펼쳤다.

“저 마수는 아랫배를 노립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마수는 머리의 뿔입니다!”

“알겠습니다!”

“딜러들은 전면이 나서! 후방에서 위저드들이 서포트한다.”

김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의 헌터들을 인솔해 나갔다.

물론 처음부터 원할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헌터협회에서 김건을 책임자로 임명했을 때, 헌터들은 처음 보는 김건을 신뢰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엔 인근의 대형 길드와 유명한 헌터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수들을 직접 상대하던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아야 했다.

반면 김건은 기이하게도 마수들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곳을 노렸다.

‘마나와 마력의 흐름이 느껴져.’

피어스 방패술을 절정으로 익히자 생명체의 마나와 마력이 흐르는 길을 기감으로 감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기의 흐름을 감출 수 있으면 읽어낼 수 없지만, 웬만한 마수와 사람들의 기운은 읽어낼 수 있게 되자 마수를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지 않았다.

이후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헌터들을 도와주면서 헌터들은 점점 김건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이대론 안 되겠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체이난은 결심하며 마수들을 조종했다.

그녀는 강력한 종속의 능력으로 마수들을 이끌고 있었는데, 김건과 이유하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이 싸움의 흐름이 완전히 인간들에게 넘어갈 것이라 판단했다.

“온다!”

김건은 마수들을 상대하며 후방에 있는 체이난을 신경 쓰다, 그녀가 움직이자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수들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섰다. 김건의 뒤를 이유하가 뒤따랐다.

“인간들아,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하지 않겠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용기가 가상하군. 그럼 한 번 싸워보자꾸나.”

말과 함께 체이난은 타고 있는 마계 최강의 마수, 베히모스의 몸에 액체처럼 스며들어 갔다.

그녀는 마수를 종속시킴과 동시에 마수와 일체화하여 정신을 조종할 수 있었다.

카아아아아앙!!

베히모스의 신체와 능력을 가지게 된 체이난이 피어를 시전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자 마수들이 헌터들과의 싸움을 멈추고 베히모스의 등 뒤로 움직였다.

“지금부터 모든 헌터들은 계열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지휘 통제를 통일합니다!”

그 모습을 본 김건은 바로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려 마치 군대처럼 지휘하기 시작했다.

* * *

“인간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세구나.”

“역시 나름대로 준비를 했군요. 마왕님들의 합류는 어려울까요?”

“그래. 시간이 걸리겠어.”

스웨덴의 어느 시골 외곽에서 지그문트와 록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는 작은 게이트가 있었는데, 크기가 사람의 머리 정도로 작아 헌터가 아니라면 게이트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그문트는 마력을 퍼트려 세계 곳곳에 연 게이트를 통해 마왕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들에 의해 그들의 발길이 묶인 것을 감지했다.

‘이곳도 곧 눈치채겠지.’

김강현과 헬릭스라면 이 게이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나타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제 네가 할 일은 다 했다.”

“네?”

“놈들이 오기 전에 몸을 숨겨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록스는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그동안 지그문트를 소환한 후 그의 수발을 들며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과를 보기까지 한 걸음만 남았다.

그렇기에 록스로써는 이제 너는 필요없는 말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록스의 반응에 지그문트가 이어 말했다.

“훗날을 기약하고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다.”

“그게 무슨…….”

“한 가지 물어보마. 곧 이곳에 김강현과 헬릭스가 올 터. 그 둘 중 하나를 맡아 상대할 수 있겠느냐?”

“크흠…… 없습니다.”

직설적인 지그문트의 말에 록스는 헛기침과 함께 인정했다.

부끄럽지만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10분을 버틸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여기서 싸움이 일어나면 자신은 지그문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래. 이 몸은 마계를 이끄는 대마왕이니라. 고작 인간과 반푼이 마족 따위에 질 것 같으냐?”

록스에게서 걱정하는 기색이 보이자 지그문트는 오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지그문트는 김강현과 헬릭스에게 당한 수모를 되갚아주기 위해 힘을 길렀고, 용마대전 때보다 더 강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강함은 반드시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네가 죽으면 나는 다시 이 세계에 강림할 수 없다!”

“아!!”

록스는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곳에 지그문트가 소환되어 강림할 수 있던 것은 록스와의 계약 덕분이었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계약으로 맺어진 지그문트는 강제로 마계에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소환하기 전까지 세력을 키웠었지. 놈들의 눈을 피해 다크 위저드의 마탑을 만들어라.”

지그문트는 록스의 오른손을 잡은 후 마력을 흘렸다.

“크아아앗!!”

갑작스러운 고통에 록스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오른 손등에서 하얀 연기가 솟구치더니 복잡한 원형 마법진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낙인을 승계시켜라! 그것은 나의 계약자라는 증거이자 탑주의 자격이 될 것이다!”

“대체 이 힘은……!”

지금까지와 다른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신체는 20년 이상 젊어졌으며, 마력도 1.5배가 증가했다.

“낙인에 내 세포와 마력을 담았다. 조건만 맞는다면 언제든지 나를 소환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그문트가 자신을 다시 소환할 수 있는 조건을 은밀히 말한 순간,

‘천만 명의 영혼!!’

록스는 크게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소환자에게는 아무런 리스크 없이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부디 마왕님께 승리의 영광만이 가득하길 기원하겠습니다!”

록스는 정중히 인사한 뒤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은신처로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아직까지 은신처는 세계헌터협회에 발각되지 않았으니, 이번 싸움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록스는 훗날을 기약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이걸로 씨앗은 뿌려놓았다. 어떻게 성장할지는 미래의 일.”

지구는 테라와 달리 다크 위저드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록스는 이곳에서 적과 싸우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 판단했다.

이후 지그문트는 놈들이 텔레포트 마법의 흔적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마나의 흐름을 지웠다.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지그문트.”

그리고 록스가 사라진 지 5분 후, 김강현과 헬릭스가 나타났다.

“왔느냐?”

그들은 게이트의 크기를 보자마자 왜 그를 찾기 어려웠는지 깨달았다.

게이트의 크기가 작을수록 뿜어지는 마나 혹은 마력의 양이 적어 감지가 어려운데, 지그문트는 능력을 이용해 게이트의 크기를 줄여놓았다.

김강현과 헬릭스가 나타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게이트의 크기를 금세 10m로 늘렸다.

“생각보다 많은 걸 준비했어. 이렇게 마룡과 마왕들을 묶어놓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허투루 준비했다간 인류가 멸망할 테니까.”

“테라에서 겪었던 실수는 지구에선 하지 말아야지.”

용마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전쟁을 준비한 건 지그문트만이 아니었다.

김강현과 헬릭스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마룡과 마왕들을 그 자리에서 막아낼 수 있었다.

‘테라 길드원들과 그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들 덕분이야.’

김강현은 테라에서 자신이 벨가르트와 드래곤들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용마대전에서 힘겹게 싸워야 했던 이유를 분석했다.

그때 자신과 헬릭스는 너무도 오만했다.

겉으로는 인간을 비롯해 드래곤, 이종족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일 뿐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가진 힘만 믿었다.

그래서 김강현과 헬릭스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지그문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찮게 여긴 인간에 의해 패배를 당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자리에 도달했다.

“더 이상 인간들은 오지 않는 거냐?”

“과연 우리들의 싸움을 주변에서 버틸 수 있을까? 그래서 너 또한 록스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아닌가?”

“맞다. 그래서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지.”

“손님?”

지그문트의 말에 김강현과 헬릭스가 의문을 나타냈다.

곧이어 열린 게이트에서 서서히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헬릭스의 눈이 커졌다.

“카루소?”

“끈질기게 살아 있었구나. 헬릭스.”

“네가 여기 나타났다는 건 이 몸을 죽이기 위해서겠지?”

“그렇다. 이번엔 온전히 왕의 칭호를 받겠다.”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게이트에서 나온 건 사람이었지만, 헬릭스는 저 모습은 폴리모프이며 진짜 모습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카루소의 폴리모프 마법을 풀리고,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크기의 발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쉽지만 이번엔 너 혼자 놈을 상대해야겠다.”

“걱정 마라. 이쪽은 혼자서도 충분해.”

“고맙군.”

헬릭스 또한 폴리모프 마법을 풀고 본신으로 현신했다.

두 발록은 각자 채찍을 꺼낸 뒤 노려보며 공격 타이밍을 잡기 시작했다.

‘이놈을 죽이면 아무도 함부로 나를 대하지 못해!’

한때 헬릭스는 발록들을 이끄는 왕이었지만, 배신을 당해 강제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당시 헬릭스에게 몰래 독을 먹이고 약해진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 자가 바로 카루소였다.

발록의 세계에서 왕위는 힘으로 쟁취하는 것.

때문에 비겁한 수법으로 이를 차지한 카루소는 헬릭스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자 그가 다시 나타날까 늘 두려워해야 했다.

그래서 지그문트가 헬릭스의 정보를 제공하고 게이트를 열어줄 테니 200년간 복속하라는 조건을 수락한 것이다.

마족에게 200년이란 시간은 쏜살과 같으니까.

‘발록은 마계에서 막대한 힘을 가진 집단이지만 그동안 어느 마왕의 세력에도 들어간 적이 없다. 다른 세력의 견제뿐만이 아니다. 200년이면 지구와 테라 대륙까지 전부 삼킬 수 있을 터…….’

더욱 확실한 승리를 위해 지그문트는 카루소의 몸에 자신의 키메라 세포를 심어 헬릭스와 동등한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콰아아앙!!!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카루소와 헬릭스는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격렬한 폭발음과 파동이 울렸다.

“그럼 우리도 시작하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말과 함께 지그문트는 마족으로 현신했다.

머리에 달린 2개의 뿔과 거대한 날개가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선사했고, 짙은 마력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테티아, 지금 내 말을 헌터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물론이에요! 하지만 수가 많아 1분밖에 되지 않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

김강현은 지그문트와 싸우기 직전 테티아에게 아티팩트로 연락했고, 그녀는 가이아와 동조하여 일시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김강현에게 모이게 했다.

더불어 언어의 장벽 없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마법도 시전했다.

-저는 헌터연합 총사령관 김강현입니다.

그 순간, 모든 헌터들이 멈칫거리며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눈앞의 적과 싸워 살아남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 말에 모두가 자연스레 주먹과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뻔한 말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위기가 있을 때 힘을 합쳐 이겨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확신하며 평화를 되찾아 봅시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김강현은 인피니티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마검을 쥐었다.

“아주 재미있는 짓을 하는구나.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으냐?”

“그건 미래만이 알겠지.”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지그문트는 김강현이 무슨 수를 썼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그문트는 재밌어하며 마력을 끌어올려 김강현을 향해 쏘아 보냈고, 김강현은 마검을 휘두르며 흉포한 기세를 드러냈다.

이렇게 두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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