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마룡들의 참전 (114/119)

4장. 마룡들의 참전

“후우, 이걸로 이쪽 지역은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그래? 혹시 모르니 협회에 연락해서 꼼꼼하게 체크하지.”

“알겠습니다.”

‘일주일 만에 82개인가?’

검천호는 숨을 돌리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그가 맡은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던전들이 많았다. 심지어 던전의 몬스터들을 신봉하며 모시는 부족까지 있었다.

그들에게는 현재 바깥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킨 뒤 던전을 없애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 각지에서 많은 헌터들이 지원했고, 헌터연합에서도 다양한 물자 지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마스터 소드, 이 지역은 모두 정리되었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다행이군. 그럼 이곳 현지 헌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또 다른 던전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여 가이드라인 전달하지. 이제 어디로 이동하면 되지?”

“카메룬을 거쳐 콩고로 이동해 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몬스터들의 출현 빈도가 심해지니 모두 철저하게 무장하도록!”

“넵!”

이곳에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일수록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몬스터들이 던전을 탈출하는 사건들이 빈번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해 많은 피해가 있었으나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의 꾸준한 경계로 최근 던전 브레이크가 줄고 있었다. 그리고 검천호를 비롯한 헌터들이 투입되자 단숨에 던전을 폐쇄해 나갔다.

‘떠나기 전 오늘 하루는 푹 쉬는 게 좋겠어.’

지금까지 검천호와 헌터들은 하나라도 던전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위해 휴식도 최소한으로 한 채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피곤이 쌓였고, 여기서 더 무리하며 싸우다간 사망자 발생만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나의 밀도가 줄어든 듯한데?”

검천호는 대기 중의 마나를 감지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근 던전들이 없어지면서 테라에서 나오는 마나의 밀도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마력의 밀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록스와 지그문트가 모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같은 현상은 검천호뿐 아니라 다른 S급 헌터들도 감지했고, 헌터연합에서도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던전이 폐쇄…… 소멸되면서 기존 던전 유지에 필요한 힘이 남은 던전에 전달되고 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구나. 본래 던전은 그로시아스가 지구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곳이니까.”

“맞아요. 지금 테라는 그로시아스에 의해 인간과 이종족은 거의 몰살당해 소수에 불과할 거예요.”

던전들이 폐쇄될 때마다 일정한 마나와 마력이 분출되고 있었는데, 테라의 마나는 주변의 게이트를 통래 흡수되었지만 마력은 대기 중에 남아 있었다.

덕분에 남아 있는 던전들의 등급이 상승하고 있었고, 대기 중 마력에 의해 의도치 않게 헌터들의 힘이 약화되고 있었다.

“지그문트와 함께 그로시아스도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네요.”

“어쩌면 손을 잡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찌 되었던 둘은 김강현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건 없어. 눈앞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결할 뿐이야.”

그 말에 테티아와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다만, 나타나지 않은 적을 미리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잠깐!”

“드디어 제대로 된 공격을 시작하는 건가?”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이에요!”

말을 하기가 무섭게 현실이 되었다.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S급 헌터라면 모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급변한 마나의 흐름. 마나 감지에 능한 예민한 A급 헌터도 알아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수정 통신구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 통신구는 각 국가의 대통령과 지정된 몇몇 헌터들만이 통신 경로를 알고 있었고,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만났을 때 연락하도록 정해진 것이었다.

김강현은 다급한 표정으로 연락을 받았다.

-미국 LA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몬스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빨리 도와주십쇼!!

던전의 힘이 폭주하여 그 안의 몬스터들이 지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던전의 등급이 높을수록 몬스터의 등급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김강현 일행이 선명하게 감지한 만큼, 만만치 않은 적이 등장할 터였다.

“마침 미셀이 LA 주변에 머무르고 있어요. 그와 기사단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 멕시코에 테라 부길드장이 있어. 그의 능력이면 많은 도움이 될 테니 바로 연락하지. 주변 헌터들에게도 연락해.”

“알았어요. 그럼 일본은?”

“나와 헬릭스가 간다.”

일본에도 S급 헌터들이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멕시코에 기동진을 투입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미셀과 휘하 기사단이라면 어떤 S급 몬스터라도 혹은 SS급 몬스터라도 물리칠 수 있을 텐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테티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헌터들에게 연락을 부탁할게.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이 싸움이 분기점이 될 거야.”

그 말에 테티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헌터연합이 등장한 이후 첫 던전 브레이크였다. 이번 사건을 잘 해결해야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힘을 가질 수 있을 터.

잠시 후, 헬릭스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장소의 좌표를 확인하고 섀도우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정말 좌표를 제대로 찍은 거 맞아?”

“이 몸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이냐?”

김강현과 헬릭스는 오사카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땅에 좌표를 정하고 이동하게 되면 건물과 부딪치며 공간이 일그러져 다른 위치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할 때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선정하는데, 처음 좌표를 설정하다 보니 지상에서 100m 떨어진 상공으로 이동했다.

“오사카성을 보니 맞긴 한데, 믿겨지지 않네.”

“불과 연락 온 지 10분 정도 지났을 뿐이거늘. 이곳의 헌터들은 멍청이들밖에 없는가?”

“나름대로 대항하고 있는 게 감지되고 있어. 하지만 실전 경험이 현저히 부족해.”

“전멸을 막으려면 서두르는 게 좋겠구나.”

두 사람은 급히 지상으로 내려갔다. 김강현은 마검을 꺼내 들었고 헬릭스는 마력을 운용하여 검은 불꽃을 소환했다.

지상은 몬스터 천국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들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헌터들이 대항하고 있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를 지키며 싸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콰아아아앙! 쿠웅!

지상과의 거리가 5m를 남겨 두었을 때, 둘은 몬스터들을 향해 오러 칼날과 불꽃을 난사했다. 그러자 주변의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대항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누구?”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어!”

“또 다른 적인가?”

몬스터들과 싸우기 바쁜 일본의 헌터들은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 당황하며 소리쳤다.

“헌터연합에서 온 지원군입니다!”

“지, 진짜?”

“우린 살았다!”

“먼저 일반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해주십시오. 몬스터들은 저희가 해치우겠습니다.”

그 말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로 현장의 헌터들만으로는 사태를 수습하기 어려운 찰나 지원군이 도착하자 기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가, 강하다!”

“최소 S급 헌터, 아니, 그 이상이야!!”

방금 전까지 자신들과 격렬하게 싸웠던 것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몬스터들은 김강현과 헬릭스에게 반항 따위 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 번의 공격에 수십의 몬스터들이 쓰러지니 일본의 헌터들은 자신들도 르게 입을 벌린 채 구경했다.

“이 정도면 B급에서 A급 몬스터들이구나.”

“어떤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 힘과 마력을 적당히 운용해.”

“걱정 마라. 이 몸께서 다 알아서 할 테니 말이다.”

“퍽이나!”

김강현과 헬릭스는 대화하며 몬스터들과 정신없이 싸웠지만,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행동은 서로 배려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김강현이 전면에 나서서 몬스터들과 싸우면, 헬릭스는 후방에서 마법으로 지원함과 동시에 몬스터들의 등급에 따라 공격을 하기도 했다.

“이상한데? 마치 놈들에게서 감정이 결여된 것 같아.”

“세뇌 마법인가?”

“아마도. 행동으로 보면 싸울 의지는 있지만 감정이 아예 없어.”

눈앞의 몬스터를 쓰러트리며 김강현이 말했다.

말 그대로였다. 어떤 생명체이든 죽음의 공포가 있게 마련이다. 한데 몬스터들은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혹은 죽는 순간에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멀리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게이트가 찢어져 그 너머로 암흑과 같은 어둠이 도사린 것이 보였다.

쿵! 쿵! 쿵!

그때, 게이트 안쪽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심상치 않은 마력이 감지되었다.

피잉! 핑! 피이잉!

“빛?”

“안에 뭐가 있나?”

그와 동시에 게이트 안에서 하얀 점들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빛무리처럼 반짝거렸는데, 어둠 속에서 빛나 아름다워 보였다.

“모두 도망쳐라! 여기 있다간 모두 죽는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살고 싶으면 몸이라도 바짝 엎드려!!”

김강현과 헬릭스는 빛 무리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소리쳤지만, 다른 헌터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그사이 빛 무리는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쾅!! 콰앙!!! 쾅쾅!!

쏘아진 빛 무리의 정체는 마나 빔이었다. 마치 레이저처럼 날아간 마나 빔은 사물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관통했다.

그 여파로 건물의 경우 가운데가 꿰뚫리며 금방 무너져 버렸고, 산에 닿자 굉음과 함께 산사태가 일어났다.

일본의 헌터들은 몸을 땅에 바짝 숙인 탓에 목숨을 간신히 건질 수 있었다.

“으으으으.”

“대체 어떤 몬스터이길래!”

“제, 젠장!”

일본의 헌터들은 등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움이 들었다.

이건 맛보기일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공격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하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서서히 게이트 안쪽으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보이며, 살기와 마력이 강해졌다.

헬릭스는 본능적으로 늦었음을 파악하고 말했다.

“앞으로 각자 몸은 알아서 지켜라. 더 이상 신경 써줄 수 없느니라.”

일본의 헌터들은 김강현과 헬릭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감에도 느껴질 정도로 적이 다가오자, 무서움과 공포에 다리가 굳어진 채 이마와 등에서는 식은땀만 흘렀다.

하지만 적을 쓰려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가 나오면 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크르르릉!! 크아아아앙!!!!!

움찔!

“피어?”

“사자후다!”

놈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영악하게 피어를 시전해, 사람들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김강현은 안에서 나올 적이 다른 몬스터들과는 격이 다름을 알았다.

* * *

“여기가 타차원이구나. 확실히 이곳의 마나가 나를 거부하는 것이 느껴져.”

“저게 뭐야?”

“저건 모, 몬스터가 아냐!!”

“우, 우린 모두 죽었어.”

기이하게도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언어 체계가 달라 지구의 헌터들은 알아듣지 못할 뿐이었다.

하지만 김강현과 헬릭스에게는 똑똑히 들렸고, 눈앞의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골드 드래곤 아쉬크람.”

“그로시아스를 따라 마룡이 되었구나.”

드래곤 로드인 벨가르트 옆을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었다. 정확히는 온갖 수발을 들었고, 다른 드래곤들에겐 벨가르트의 위세를 빌려 다니던 녀석이었다.

예전과 달리 마력을 내뿜고 있지만, 외형은 기억하던 모습에서 머리에 뿔이 달린 것뿐이기에 금방 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몬스터들이 세뇌를 당한 상태였어.”

“지성을 가지고 있다간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순간부터 멋대로 행동했을 테지.”

김강현이 아쉬크람을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다.”

“인간? 이곳의 인간이 어떻게 테라어를?”

“쯧쯧, 긍지 높은 자존심을 버리고 마룡이 되다니! 네 선조들이 보면 욕을 하겠구나.”

“그곳에서 개고생을 하고 지구로 돌아왔는데 모른다면 이상하지. 그보다 벨가르트, 아니, 그로시아스는 잘 지내나?”

“자, 잠깐!!”

아쉬크람은 흥분하여 크게 콧바람을 쏘아댔다.

눈앞에 있는 건 한 마리의 인간과 이상하게 생긴 소환수였다. 한데 자신은 처음 이 세계를 방문했는데 이런 녀석들을 알 리 없었다.

‘어떻게 로드, 아니, 그로시아스 님을 아는 거지? 그분의 이름은 아는 인간은 극소수일 텐데!!

벨가르트라는 이름은 본래 테라의 인간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로시아스라는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알고 있는 인간들은 거의 대부분은 그로시아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사이 쐐기를 박는 김강현의 말이 그에게 들렸다.

“마룡이 되어서도 배에 내가 남긴 흔적은 여전하구나.”

“그러고 보니 선명하군. 하긴 신체를 완전히 개조하지 않은 이상 영원히 남을 테지.”

“라셀!!! 헬릭스!!! 크아아아아아!!!!”

눈앞의 인간과 소환수의 정체를 알아차린 아쉬크람은 분노하며 피어를 시전했다.

“으으으으-”

“여기서 도망쳐!”

“하, 하지만 움직일 수 없어.”

“젠장, 저건 이길 수 없는 괴물이야!!”

김강현과 헬릭스는 처음부터 피어의 흐름을 흘려보내며 아무런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일본의 헌터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실드를 시전하거나 귀에 마나를 집중해 방어했으나, 피어는 단순히 소리가 아닌 그의 마나와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드래곤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이상 그들이 피어를 막을 수 없었다.

덕분에 일본의 헌터들은 무서움과 공포에 자리에 주저앉은 채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몸의 떨림이 진정되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로시아스 님이 이곳을 공격하던 이유가 있었구나. 네놈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테라를 멸망시켜도, 네놈들을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구나!!”

“지금…… 테라를 멸망시켰다고?”

“하긴 네놈들은 테라의 상황을 모르겠구나. 이제 너희들이 기억하는 테라는 없다! 이제 테라는 몬스터와 언데드의 천국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럴 리가…… 용마대전으로 각 종족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종족의 마스터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김강현은 테티아로부터 테라의 사정을 간략하게 알고 있었지만, 아쉬크람은 그녀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일부러 도발했다.

그리고 김강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라셀은 용마대전에서 이종족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들의 성장에 힘썼고, 헬릭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셀을 규격외의 힘을 가진 괴물이라 여겨 무서워하고 피했지만, 이종족들은 라셀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었다. 덕분에 알려지지 않은 마스터들과 그랜드 마스터가 나타났고 용마대전에서 많은 이종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궁금하냐? 궁금하면 알려줘야지.”

아쉬크람은 재밌는 생각이 들어 슬쩍 미소 지으며 마법을 시전했다.

그것은 기억 전이 마법으로 자신의 기억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마법이었다. 아쉬크람의 마법 시전에 정신 마법 계열의 공격일까 싶어 거부하려던 그는 단순한 기억 전이라는 것을 파악하자 마법을 받아들였다.

그와 함께 눈앞에 기억의 환영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아쉬크람이 본 테라의 모습이었다.

성대하게 지어진 테라의 도시들과 수도들은 폐허가 되었고, 곳곳에서 몬스터들과 언데드들이 출몰했다.

인간들과 이종족들은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쳐 싸웠지만, 아쉬크람이 지원하는 몬스터와 언데드는 강했다.

게다가 몬스터와 언데드는 마치 인간의 군대처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의 중심에는 항상 왕이 존재했다.

‘마스터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군. 어째서?’

‘저런 식으로 몬스터와 언데드를 운용한다 말이지?’

몬스터들과 언데드들의 왕은 항상 전방에 나서서 그들을 지휘하며 종족의 마스터들을 상대했는데, 압도적인 무력으로 마스터들을 죽여 갔다.

죽어가는 마스터들 중에는 김강현과 헬릭스의 기억에 있는 자들도 있어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쉬크람의 의도는 그들과 친분 있는 이종족들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사전에 그들의 기세를 꺾고 혼란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김강현과 헬릭스가 얻는 것도 있었다.

‘놈이 직접 지휘하는 것이 아닌 각 왕들을 통해 몬스터와 언데드를 통제하는군.’

‘굉장히 효율적이로구나. 게다가 서로 협력 체계가 완벽해!’

마치 인간의 군대를 보는 것 같았다.

몬스터와 언데드는 서로 협력했고, 만약 인간이 몬스터에 의해 죽으면 죽은 인간의 시체는 리치에 의해 언데드가 되었다. 금방 부활하는 특성을 가진 스켈레톤들은 몬스터의 방패막이 되어 그들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몬스터와 언데드의 왕에게서 미약하게나 드래곤의 향기가 풍겼다. 그들은 드래곤 블러드, 용의 피로 강화되어 다른 몬스터와 언데드보다 더 뛰어난 육체와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김강현과 헬릭스는 이들이 이끄는 몬스터와 언데드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곳에 네가 나타났다는 건 다른 한 곳에도 다른 마룡이 나타났다는 거겠지?”

“스스로 알아봐라.”

‘흐음, 영향이 없는 건가?’

아쉬크람이 보낸 기억을 다 읽은 김강현이 마검을 들며 말하자 아쉬크람은 담담하게 대답하면서 놈들의 반응을 살폈다.

일부로 놈들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파괴된 테라의 모습과 죽음을 보여주었는데 흔들림이 없었다.

“헬릭스, 사람들을 피신시켜 줄 수 있나?”

“이 몸이 싸우고 싶다만?!”

“이 녀석의 사체를 온전하게 남길 것을 약속하고, 다른 드래곤을 양보한다면 어떨까?”

‘아쉬크람이 나타났다면 마하드라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김강현은 아쉬크람과 싸웠을 때의 영향력을 생각했다. 오사카가 흔적도 없이 폐허가 될 터.

자신의 기감에 느껴지는 사람들의 생명력만 하더라도 수십만 명이었다.

괜히 자신들의 싸움에 휘말려 죽을 것을 생각하자 이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이를 할 수 있는 이는 헬릭스뿐이었다.

그런데 헬릭스가 고집을 부리자 살살 달래며 꼬드겼다.

“마하드라를 말하는 것이로군. 확실히 골드보다는 블랙이 싸우는 재미가 있겠지. 좋다. 네 말대로 하지!”

항상 벨가르트 양옆에는 골드 드래곤인 아쉬크람과 블랙 드래곤 마하드라가 존재했다.

김강현은 아쉬크람이 마룡이 된 것을 보고, 마하드라 또한 그로시아스를 따라 마룡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생각은 헬릭스도 동일했기에, 그는 서둘러 이곳의 인간들을 피신시킨 후 미국으로 바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 * *

“젠장, 이건 몬스터 따위가 아니잖아!”

“아직 드래곤을 사냥한 헌터가 없었지?”

“그럼 공략법도 없잖아. 어떻게 죽이라는 거야?!”

미국의 헌터들은 게이트에서 나타난 블랙 드래곤 마하드라를 보고 경악했다.

이곳에서 어마 무시한 몬스터가 나타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규격외의 존재였다. 그들은 마하드라가 펼치는 드래곤 피어의 공포에 몸이 얼어붙었다.

“지구라는 곳인가? 과연 그로시아스 님의 말대로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겠어.”

마하드라는 혼란에 빠진 인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고작 자신의 피어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라면 이곳의 수준을 충분히 알 만하다고 여겼다.

‘이곳의 인간들은 신경 쓸 필요 없이 지그문트만 견제하면 되겠군.’

마하드라와 아쉬크람은 그로시아스로부터 명령을 부여받았다.

그건 바로 그가 지구로 넘어가기 전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지그문트의 영향력이 커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

아직까지 그로시아스가 지구로 넘어오기에는 두 차원 간의 틈이 더 벌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를 기다리기에는 지그문트가 이곳에서 점점 힘을 키울 것이 걱정되어 먼저 마하드라와 아쉬크람이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겉으로는 지그문트와의 협력이나 속으로는 꿍꿍이가 존재했다.

그때, 마하드라의 기감에 하나의 무리가 감지되었다.

“정신 차려! 우리가 이곳에서 쓰러지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다!”

“다, 당신은?”

“희망을 가져라! 신의 가호가 너희들에게 지켜줄 것이다!”

“미, 미셀!!!”

“홀리 가디언!!”

두려움에 떠는 헌터들 사이로 한 사내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가릴 수 있는 거대한 방패를 든 채 마하드라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뒤로 하얀 갑주와 타워 실드를 든 200명의 사내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신의 기사단의 뒤를 따라라!! 모든 적은 가이아의 의지 아래 쓰러질 것이니!!”

그들의 통일된 외침과 함께 따스한 새하얀 빛이 주변을 감쌌다.

그와 함께 헌터들은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짐과 동시에 마음이 진정됨을 느꼈다. 더불어 그들의 신체 능력과 스킬의 위력이 20% 증폭되었다.

테티아는 훗날 김강현을 도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미셀과 함께 가이아의 의지를 부여받은 기사단을 키워, 총 200명의 성기사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은 미셀의 지휘 아래 마하드라를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우오오오!! 힘이 솟는다!”

“저들을 따르면 저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신의 가호로 드래곤 피어에서 벗어난 헌터들은 자신감을 가졌지만, 긴가민가하며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자신들의 검을 믿어라! 내가 선두에 서겠다!”

콰아아앙!!

순간 헌터들 사이로 한 자루의 거대한 오러 소드가 펼쳐졌다.

검천호.

기동진에 의해 순식간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동한 그는 마하드라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헌터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처음 지구에 나타난 드래곤과 싸운다는 생각에 굉장히 들떠 있었다.

“감히 인간 따위들이!!”

마하드라는 검천호, 미셀 등이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저희들이 길을 열겠습니다. 마스터 소드!”

“좋다!”

미셀의 지휘 아래 기사단이 먼저 마하드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김강현이 마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러가 뿜어지며 주변 건물들을 휩쓸었고, 아쉬크람의 빛 마법이 깊게 땅이 파헤치며 요동쳤다.

하지만 김강현과 아쉬크람은 주변 지형이 파괴되는 것보단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집중했다.

‘역시 파멸의 군주!! 놈을 쓰러트리는 건 성급했나?’

아쉬크람은 실드 마법에 복사 마법인 미러를 시전하여 방어를 강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강현은 끊임없이 오러를 날리며 실드를 부숴 나갔다.

“죽어랏!!”

하지만 이대로 호락호락 당할 아쉬크람이 아니었다.

실드가 깨지면 바로 조각들이 빛의 마법으로 환원되며 공격하도록 캐스팅을 해두었다.

“크아아앗!!”

기합과 함께 김강현은 전신에 인피니티 오러를 일으키며 바로 상쇄시켰다.

‘기세가 드러나지 않아 오판을 했어!’

아쉬크람은 끈질기게 덤비며 쓰러지지 않는 김강현을 보자 살짝 후회가 들었다.

‘상처가 낫지 않아. 놈의 마나가 치료를 방해하고, 마력 운용을 막고 있어!’

게다가 싸움이 진행될수록 아쉬크람은 점점 자신이 불리해짐을 느꼈다.

그는 본신으로 현신한 만큼 덩치가 클 수밖에 없었는데, 김강현에게 당한 상처를 통해 인피니티 마나가 그의 몸에 잔류하여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방해하고 있었다.

아쉬크람은 마력으로 단번에 인피니티 마나의 잔재를 없애 버리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의 마력을 집어삼키며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갔다.

만약 싸움 중이 아니라면 이것을 없애기 위해 집중했겠지만, 눈앞의 김강현을 상대하느라고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마하드라와 힘을 합쳤어야 했다!!’

그가 기억하는 라셀은 항상 강대한 마나를 전신에 두르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덕분에 어떤 드래곤도 쉽사리 공격할 마음이 들지 않았으나, 지금의 김강현은 기세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싸워보니 기세를 갈무리했을 뿐, 오히려 과거보다 강해진 듯싶었다.

아쉬크람은 괜한 자존심에 이 싸움을 시작한 같아 후회가 들었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곳을 탈출하려고 했지만, 이미 이를 예상한 김강현이 주변의 마나 흐름을 꼬아놓았다.

이 영향으로 아쉬크람은 마법을 사용하는 데 평소보다 힘이 들었다.

게다가 김강현은 자신이 신체가 아쉬크람보다 작은 것을 이용하여 민첩하게 행동하니 움직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벌써 이것을 사용할 줄은!!’

아쉬크람이 기감을 넓혀 살피니 헬릭스는 인간들의 대피에 신경 쓰고 있어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들의 피신이 마무리되면 김강현을 도와 싸울 것만 같아, 서둘러 아공간 마법을 시전했다.

아공간에는 그가 비장의 무기를 담아두었는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용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 마하드라와 합류하는 것이 중요했다.

‘갑자기 아공간을?’

김강현은 갑자기 아쉬크람이 아공간을 열자 의문이 들었지만, 그곳에서 나온 존재들을 보자 이해되었다.

“용아병!”

드래곤의 뼈와 마나로 만들어진 전사들로, 과거 레어의 가디언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신체와 힘의 일부를 떼어 만드는 만큼 제조 방법이 복잡하여 드래곤들 사이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쉬크람은 마룡이 되자마자 세뇌와 힘에 의해 움직이는 몬스터와 언데드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을 향해 충성하는 부하들이 필요했고, 결국 열 마리의 용아병을 만들었다.

재료는 자신이 죽인 드래곤이 넘쳐났기에 충분했다. 용아병들의 무기도 그들의 뼈로 만들었다.

용아병들은 김강현을 막아서며 아쉬크람에게 접근을 불허했다.

“꺼져라!!”

콰아앙!!

김강현은 용아병을 뚫고 아쉬크람에게 가려고 했지만, 놈들이 진형을 짜서 철저하게 가로막았다.

인피니티 포스로 신체를 부숴도 금방 복구되어 다시 반격을 취했다.

게다가 다시 신체가 복구되는 시간은 1초에 불과해 다른 용아병들이 막는 사이 다시 원상 복구 되기에는 충분했다.

‘다시 부활하지 못하게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김강현이 헬릭스의 마력과 동조하여 신마력을 일으켰다.

“어, 어떻게 인간이 신의 힘을?!”

후방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아쉬크람은 김강현에게서 인간으로써는 가질 수 없는 힘이 느껴지자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사이 용아병들이 달려들었다. 신마력이 담긴 마검을 휘두르자 그들의 몸을 두르고 있던 갑주와 무기가 부숴졌다. 한데 전과 달리 다시 복구가 되지 못했다. 신마력이 아쉬크람의 마력을 소멸시키며 힘을 억제시킨 것이었다.

이를 확인한 김강현은 전신에 신마력을 동조시켰다.

‘전보다 시간은 늘어났어! 단번에 승부를 보자!!’

천세후에게서 얻은 승리 이후 김강현은 신마력을 다루는 데 익숙해졌다. 덕분에 자신의 마나 혹은 헬릭스의 마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 동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신마력에 휩싸인 용아병들은 순식간에서 재가 되어 바스러져 버렸고,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보는 아쉬크람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경악했다. 그사이 김강현은 마검을 휘둘러 공격을 펼쳤고, 일부 공격들이 아쉬크람의 신체에 닿았다.

‘이건 내 힘으론 상대할 수 없다!’

아쉬크람은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앞서 인피니티 마나는 시간을 들이면 자신의 마력으로 없앨 수 있지만, 신마력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마력을 비롯하여 신체를 아예 소멸시키고 있었다.

아쉬크람은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는 공포에 필살의 기술을 펼쳤다.

“인간이여, 죽어라!!”

‘파워 워드 킬!!’

물리 공격이나 마법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자 아쉬크람은 정신 계열의 공격을 펼쳤다.

그리고 파워 워드 킬은 정신 계열 공격의 최고봉이었다.

시전자의 정신력이 공격력과 마찬가지이니, 일반적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의 정신력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고작 이게 최후의 수냐?’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김강현은 테라에서 경험한 300년의 시간이 있었다. 라셀로 살아오면서 인간으로써는 겪을 수 없는 극한의 한계를 경험했고, 죽음도 셀 수 없이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되찾기 위해 내면을 다지는 과정도 거쳤으니, 결코 드래곤에게 위협을 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 정도에 당할 거면 시작하지 않았다.’

“아쉬크람!!”

그의 이름을 크게 소리치며 김강현은 파워 워드 킬을 막아냈다.

정확히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정신 마법의 침범을 막고, 아쉬크람을 죽여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부여했다.

“큭!!!”

‘이런! 마법의 후유증이 발동했다!’

순간 아쉬크람은 어지러움으로 눈앞이 핑핑 돌며, 거대한 몸이 크게 비틀거렸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마비가 왔다.

파워 워드 킬은 압도적인 정신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인데, 그 안에 담긴 의지가 클수록 실패하면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때를 놓칠 김강현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를 가로막던 용아병들도 모조리 소멸시켜 바로 눈앞의 아쉬크람만 노리면 됐다.

김강현은 신마력과 동조한 채 마검을 겨누고, 아쉬크람을 향해 날아갔다.

“으으,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이 몸은 골드 드래곤 아쉬크람이다!!”

아쉬크람은 간신히 몸을 겨누며 브레스를 시전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김강현에게 죽을 것이었다.

“크아아앗!!”

하지만 브레스는 김강현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갈라지며 아쉬크람을 향한 길을 만들어주었다.

아쉬크람은 날갯짓하여 김강현을 피해 하늘로 솟구치려고 했으나 그 전에 김강현의 마검이 먼저 몸에 닿았다.

“인피티니 포스!!”

말과 함께 검붉은 실선들이 아쉬크람의 몸에 그어졌다.

점점 굵어진 실선들은 순식간에 상처가 되어 아쉬크람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이걸로 끝이다!!”

김강현은 확실하게 아쉬크람의 목숨을 끊기 위해 그의 목에 있는 드래곤 하트와 가슴의 심장을 노렸고, 단숨에 수십 조각으로 만들었다.

“이,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마, 망할!!”

드래곤의 생명력은 질겨 드래곤 하트와 심장이 박살 났음에도 일시적으로 생명이 유지되었다.

드래곤의 사체는 아티팩트 제작에 있어 뛰어난 재료로 활용되었다. 때문에 이대로 죽으면 놈들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선물을 주마. 아주 재미있을 거다.”

“뭐?!”

이해되지 않는 아쉬크람의 말에 김강현은 순간 의문을 드러냈다.

온전하게 남아 있어야 할 아쉬크람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서서히 땅바닥에 스며들고 있었다.

“고결한 죽음? 안 돼!”

그것은 일종의 자살이었다.

드래곤은 자신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직감적으로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몸을 자연에 환원한다.

정확히는 자신의 신체와 드래곤 하트를 마나화하여 자연에 뿌림으로써 자신의 사체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쉬크람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마력을 대기에 환원했다. 문제는 지구의 마력이 밀도가 높아지면 차원의 틈이 넓어져 그로시아스가 넘어오는 시기가 빨라질 수 있었다.

김강현은 이를 막으려고 급히 아쉬크람에게서 뿜어지는 마력의 흐름을 차단했지만 그사이 아쉬크람의 마력은 지구에 환원된 뒤였다.

이렇게 김강현은 아쉬크람을 막을 수 있었으나, 얻은 것은 이름뿐인 승리였다.

* * *

‘아쉬크람이 죽었어?’

마하드라는 눈앞의 인간들을 상대하며 멀리 있는 아쉬크람의 마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을 감지했다.

‘녀석이 사라질 때 느낀 것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신의 힘이 느껴졌다!’

마하드라와 아쉬크람은 만약을 대비하여 서로의 시야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마법을 시전해 두었고, 덕분에 아쉬크람이 김강현에 의해 죽을 때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커다란 착각을 했구나. 지금 놈들과 싸울 때가 아니라 지그문트와 합류했어야 했다!’

덕분에 마하드라는 현실을 파악했다.

지금도 검천호와 미셀을 비롯한 신의 기사단을 동시에 상대하기가 벅찼다. 게다가 미셀과 신의 기사단은 그와 상극인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어 도무지 그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덕분에 사방에서 가리지 않고 날아오는 검들을 막으며 반격을 취하기 바빴다.

‘곧 놈도 이곳으로 온다!’

마하드라는 그 전에 이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바쁘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 고생이 많구나. 마하드라.]

[누구?]

[이 몸은 마왕 지그문트.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곤경에 처했구나.]

[크흠!!]

지그문트는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자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관조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쉬크람이 김강현에 의해 당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급히 마하드라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원한다면 도움을 주지. 어떻게 하겠느냐?]

마하드라는 마법을 통해 전달되는 지그문트의 의지에 순간 자존심을 세울까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아쉬크람처럼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5초 후 인간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를 이용하도록!]

‘혼란이라고?’

정체불명의 말이었지만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지그문트뿐이었다.

그사이 계속 검천호와 미셀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그의 말을 믿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마나 폭주라니!!”

마하드라 레이드는 검천호, 미셀, 신의 기사단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의 눈빛이 변하더니 마나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폭주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하드라보다 마나 폭주를 일으킨 헌터들을 막는 것이 시급해졌다.

이들을 막지 못하면 주변 헌터들이 무방비상태에서 뒤를 공격당할 수 있었다.

‘골든 크라운?’

‘어떻게 한 거지? 아니다.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상황부터 정리해야 해!’

검천호와 미셀은 골든 크라운에 의해 일어난 사건임을 직감했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수백 명의 헌터들에게서 동시에 마나 폭주가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분명 누군가의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을 수습하기 바빴다.

‘기회는 지금!!’

그사이 마하드라는 지그문트의 말대로 인간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나자 급히 텔레포트 마법을 준비했다.

가야 할 좌표는 이미 지그문트로부터 전달받아, 캐스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반드시 이 치욕을 갚겠다!!’

쏟아지는 빛 사이로 마하드라는 검천호와 미셀의 얼굴을 똑똑히 뇌리에 담았다.

‘젠장! 이대로 놓칠 순 없어!’

“미셀! 잠깐 뒤를 부탁한다.”

“예?!”

검천호는 사라지는 마하드라를 발견하자 무슨 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아아아앗!!”

‘제발 닿아라!!’

기합과 함께 천류신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자, 마치 오러가 오로라처럼 입체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죽어라!!!”

오러 소드의 상위 단계인 마인드 소드, 심검(心劍).

검천호는 이것을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완성했고, 중국 무인들과 겨루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검천호와 똑같이 무(武)에 미쳐 있는 진위혁의 도움이 컸다. 만약 그가 무림맹주라는 직함에 매여 있지 않았다면 밤낮을 잊고 계속 비무하며 수련에 몰두했을 것이었다.

검천호는 마인드 소드면 마하드라를 베어 버릴 수 있다고 확신하며 놈을 노렸다.

“크으……!”

마하드라는 마인드 소드를 피하고 싶었으나, 이곳을 벗어나면 텔레포트 마법이 무효화되기 때문에 마력으로 마인드 소드의 방향을 뒤틀었다.

하지만 완전히 뒤틀지 못하고, 그의 오른 날개를 가르며 지나갔다.

파아아아앗!

곧바로 마하드라는 검은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검게 물든 빛 사이로 검천호를 향한 마하드라의 독기 어린 시선이 보였다.

다시 싸울 기회가 있다면 사지를 갈가리 찢어버린 뒤 몬스터들의 밥으로 주겠다는 다짐이 보였다.

“……결국 놈을 놓친 게 아쉽네요.”

“미안하다. 조금 더 일찍 나섰더라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신의 기사단의 노력으로 마나 폭주를 일으킨 헌터들을 금방 진정시킬 수 있었다.

보통 마나 폭주는 과도한 마나 사용이 원인인데, 이번 마나 폭주는 그들의 몸속에 잠재돼 있는 마력이 원인이었다.

다행히 신의 기사단이 가진 신성력은 마력과 상극이어서 그들을 통해 쉽게 마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력을 없애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루라도 빨리 방법을 찾아야겠구나.”

“네. 이대론 놈들과 싸우기 전에 저희들끼리 싸우다 끝날 겁니다.”

마하트라인지, 지그문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곧 세계 각지에 아쉬크람과 마하드라가 나타난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 * *

두 드래곤의 등장에 세계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드래곤은 몬스터들 중에서 최상위 종족으로, 지구에는 이번에 최초로 나타난 것이었다.

오랫동안 드래곤이 도시 하나는 가볍게 없애며 마음먹기에 따라 인간이라는 종족을 말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 왔던 인간들은 실제 드래곤을 죽이고 쫓아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곧바로 세계헌터협회가 아니었다면 이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는 의견과 함께 게이트 폐쇄에 대한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건 드래곤과 싸운 후의 남은 풍경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고, 건물들은 부서졌으며 곳곳에 땅이 파헤쳐져 이었다.

이번에 나타난 드래곤이 2마리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들과 비슷한 무력의 적이 나타나면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절대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덕분에 던전 폐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또한 드래곤의 등장으로 사람들 사이에선 이야기가 묻혔으나, 헌터들 사이에선 마나 폭주가 단연 화제였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마나 폭주가 일어난 원인을 골든 크라운이라고 여겼다.

그동안 세계헌터협회는 헌터들에게 골든 크라운의 위험성을 계속해서 경고했지만, 이를 무시한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남을 탓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만…….”

“마계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니 도와줘야죠.”

김강현은 괴의에게서 받은 반천단을 대량 생산 할 준비를 마쳤다.

이처럼 골든 크라운의 마력을 없앤 후 최대한 후유증을 줄이고 조금이나마 마나가 쌓일 수 있도록 반천단을 개량하는 데에는 테티아의 도움이 컸다.

그녀의 인맥으로 재료와 공장 섭외가 원활했고, 개량에 필요한 연구원들을 모집하여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더불어 미국 정부의 지원도 한몫했다.

약이 완성될 경우 미국 헌터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한다는 조건이 있긴 했지만, 빠르게 완성된 만큼 수용 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세계헌터협회에 의해 골든 크라운 치료제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걸로 더 이상 같은 편에게 공격당한다는 두려움은 사라지겠지.”

“그리고 마왕도 더 이상 인간들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고요.”

김강현과 테티아가 가장 경계했던 건 골든 크라운의 마력으로 지그문트가 인간들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이번 마하드라 레이드 때 일어난 마나 폭주로 확실히 헌터들에게 골든 크라운의 위험성이 각인되자, 추후 인간들이 지그문트에게 조종당할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테티아, 지금 던전 폐쇄 상황은 어떻게 되지?”

“지구의 90%는 닫은 것 같아요. 남은 10%의 던전은 현지 헌터들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건 테라 길드만으로 무리가 있겠는데. 다른 길드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때?”

현재 세계헌터협회에 속한 헌터들은 세계 곳곳에 배치되어 던전에 들어가 있는 상황으로 인력이 부족했다.

김강현은 마음 같아선 자신이 던전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며칠 전처럼 마하드라와 아쉬크람과 같은 어려운 적들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대형 길드 쪽에서 움직여 준다고 해요. “

“대체 지그문트와 그로시아스는 무슨 계획을 세우는 거지?”

마하드라와 아쉬크람의 등장. 그리고 헌터들의 마나 폭주를 통해 두 존재가 확실히 손을 잡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아쉬크림의 죽음이었다.

신체를 마력으로 환원하여 없애는 것이 마계의 문을 열려는 지그문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은신처라도 찾으면 선공을 할 텐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지그문트를 비롯한 마족들과 싸우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나갔다.

* * *

“쓰레기 같은 인간들!! 반드시 죽이고 말 테다!!!”

마하드라는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처가 난 오른 날개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치료 마법을 시전했지만, 검천호의 마나가 깊게 스며들어 상처의 흔적을 없애지 못했다.

‘어째서 아쉬크람이 그토록 인간들을 증오하고 미워했는지 이제서야 알겠구나.’

그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과거 아쉬크람의 말과 행동을 떠올렸다.

아쉬크람은 라셀에게 얻은 배의 상처를 치욕스럽게 여기고 항상 복수를 꿈꾸었다.

그때 마하드라는 고작인 간에게 당한 것이니 그 인간을 찾아 죽이면 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쉽게 죽일 수 없어 자기 자신에게 분노가 쏟아졌다.

그는 화를 진정시키지 못해 씩씩거리면서 브레스를 쏘아대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만해라. 그러다가 놈들이 여기 위치를 알아차릴 거다.”

“지그문트.”

“아쉬크람이 죽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놈들에게 제대로 복수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를 위해서 힘을 비축하는 게 좋을 거다.”

“으음.”

지그문트의 사근한 말에는 살기와 마력이 담겨 있어 쉽게 거역할 수 없었다.

마하드라는 그 살기를 느끼고 놈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화를 죽였다.

‘이렇게 날뛸수록 그로시아스 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놈에게 약점을 잡힐 거다.’

머리의 화가 식자 마하드라는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했다.

아쉬크람과 함께 지구로 넘어간 목적은 지그문트와 손을 잡고, 그로시아스가 하루라도 빨리 지구로 넘어올 수 있게 조치하기 위함이었다.

아쉽게도 아쉬크람은 죽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남은 건 최대한 전력을 유지한 채 놈들의 힘을 깎는 것!’

마하드라는 눈을 번뜩이며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김강현과 헬릭스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지만, 지그문트는 나중에 지구를 두고 싸워야 할 상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전력을 다 보여서는 안 되며, 최대한 지그문트가 가진 힘을 깎을 필요가 있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구나. 그래주어야 재미있지.’

한편 지그문트는 조용한 마하드라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그의 계략이 모두 읽혔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지그문트 또한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로시아스의 세력을 이용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아쉬크람 덕분에 모든 준비는 끝났고, 최종 점검 후 총 다섯 개의 문을 열 것이다.”

“어째서지?”

마하드라는 지그문트의 말에 의문을 드러냈다.

지그문트가 거느리고 있는 마왕은 셋. 다른 2개의 문은 무슨 용도로 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로시아스에게 듣기론 테라에서 데리고 있는 언데드와 몬스터가 꽤 되는 것 같더군. 테라와 연결되는 문을 열 테니 투입하는 게 어떠냐?”

“흐음.”

“나쁘지 않은 제안일 거다. 마계는 이번에 총 공세를 펼칠 거고,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테니까. 그로시아스가 넘어올 수 있는 기회가!!”

“그로시아스 님과 상의 후 알려주도록 하지.”

지그문트는 마하드라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호탕하게 웃으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붙였다.

확실히 그로시아스가 지구로 넘어오기 위해선 지구와 테라 사이에 있는 차원의 틈을 크게 벌리는 것이 중요한데, 지그문트의 두 개의 문을 열어준다면 그로시아스가 바로 넘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이렇게 마하드라와 지그문트는 마음속에 있는 꿍꿍이를 가린 채 조용히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