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마지막 싸움을 위한 준비
“이만하면 S급 실력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말이 안 되는 성장 속도야. A급 헌터가 된 지 6개월도 안 되었다고! 대체 비결이 뭐냐?”
“자질이 뛰어났고,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죠.”
“마치 우등생의 합격 수기 같은 말이구나.”
유지운은 김강현과 대화하며 어이가 없었다.
상황실 모니터로 특별 헌터 시험의 현장을 보는데, 상황실의 다른 이들도 유지운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모니터에는 각기 다른 방에 있는 이유하, 김건, 연세연의 모습이 보였다.
이유하는 정해진 시간 안에 비약과 포션을 제조하는 알케미스트 시험을 치르고 있었고, 김건과 연세연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몬스터들을 상대로 겨루고 있었다.
“우리가 상대하는 게 S급 몬스터가 맞아?”
“정말 강해졌어!”
“새로운 방법들이 계속 떠올라!”
가볍게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는 김건과 연세연은 자신감이 넘쳤다.
테티아의 도움으로 잠재된 힘을 끌어냈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자 시야가 넓어지며 힘의 사용도 수월했다. 오히려 너무도 강해진 힘에 무서움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힘이 자신의 의지를 따라 운용되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이렇게 빨리 S급 헌터 시험을 보게 될 줄은.’
김강현은 이들이 잠재된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을 만들자 유지운에게 연락해서 빠른 시간 안에 S급 헌터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시험 요청에 황당했으나 세계헌터협회로부터 특별 시험 요청이 내려오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라웠다. S급 헌터로써의 실력을 갖춘 데다가 세계 각국의 노련한 S급 헌터 못지않게 힘을 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부길드장이란 말이야. 분명 헌터로 재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모니터 구석에는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는데, 테라 길드의 부길드장 기동진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죠. 당시 비천 길드의 헌터들도 마음을 곱게 썼다면 지금쯤 다시 힘을 되찾았을 겁니다.”
“병 주고 약 주는구나.”
“본래 각성한 힘은 그런 곳에 쓰라고 신이 부여한 게 아닐 테니까요.”
대외적으로 힘을 잃고 사무직이었던 기동진은 그동안은 마치 거짓이라는 듯 과거의 힘을 강화시켜 환영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힘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더 강해졌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기동진은 빛을 이용한 스킬을 사용하는데, 이를 활용하여 레이저를 쏘거나 신체 일부를 빛으로 바꾸어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 무력화시켰다. 그는 이를 활용하여 환영 몬스터로 나타난 드레이크를 상대로 신체 곳곳을 가격했다.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처음에는 몬스터를 이길 수 있는 생각을 못했지만, 싸우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다시 힘을 되찾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시험을 치르며 기동진은 다시 힘이 돌아왔던 그날을 떠올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련하는 테라 길드원들의 장비를 세팅하며 서포트하던 기동진은 어느 날 조작 실수로 가슴에 마나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이대론 죽을 수 없어!’
다급히 피한다 해도 왼팔에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순간, 기동진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과거 헌터로 활동할 때의 스킬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기적처럼 왼팔에 광신화(光身化) 스킬이 적용되었고, 마나탄은 그의 팔을 뚫고 지나 벽을 강타했다.
‘……어떻게 된 거야?’
없어졌던 능력이 발휘되자 어리둥절함과 살았다는 기쁨이 뒤섞여 기동진의 표정이 묘해졌다.
사실 지금까지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김강현에 의해 마나가 봉인되었을 뿐이었던 것.
이후 기동진에게서 악의를 다시 찾지 못한 김강현은 그가 능력을 되찾는 것이 위기가 닥쳤을 때 대처하기 쉬울 거라 판단하고 다시 봉인을 풀어두었다.
힘이 돌아온 기동진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잠깐 혼란스러웠으나 곧 매일매일 길드 수련실에 박혀 살았다.
그리고 오늘, 특별 승급 시험까지 같이 치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부탁드린 대로 상위 헌터로 승격은 하되 공표는 보류해 주세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네. 지금 주변에서 시기와 질투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을 필요가 없죠.”
“하긴. 입장 바꿔서 내가 상대 길드장이면 참을 수 없지. 게다가 중국에 다녀온 이후 주가가 엄청나게 뛰었으니 말이야.”
유지운은 김강현의 입장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강현이 중국에 다녀온 이후 타이밍 좋게도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좋아지며 무역과 교류에 있어서도 각종 혜택이 주어졌다.
게다가 비공식적이지만 주석이 대사관을 통해 김강현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물론 진위혁의 힘도 컸지만, 마교와의 싸움 과정을 보고받은 주석이 김강현과 적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한 이유도 있었다.
정부에서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런 중국의 반응이 김강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고, 테라 길드와 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김강현은 찾아오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방문을 거부하고 돌려보냈는데, 이들과 엮여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테라에서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오히려 그들이 더욱 안달 나 각종 선물들을 테라 길드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다른 길드들은 테라 길드의 눈치를 보며 지낼 뿐이었다.
김강현과 유지운은 특별 승급 시험이 끝나자 사무실로 올라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는 안 되는 종류였다.
“그런데 정말이냐?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몬스터들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니!”
“몬스터뿐만이 아닙니다. 마계의 마족들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던전 폐쇄를 주장하는 거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반발이 꽤…… 아니, 모든 이들이 반대할 거고, 어쩌면 통과되지 않을 수 있어.”
“그때는 힘으로 해야죠.”
“후우, 참 어려운 길을 가는구나.”
유지운은 김강현의 말에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던전을 폐쇄하면 전쟁 후 생존자가 3분의 1은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해야겠습니다.”
“회의가 오늘인가?”
“한국 시간으로 9시간 뒤면 결정이 날 겁니다.”
한국에 있다 해도 김강현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테티아와 미셀, 두 사람과 수시로 연락하며 지그문트와의 싸움에서 헌터들의 힘을 빠르게 집결시키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중 하나가 던전 폐쇄였다.
현재 인류는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통해 굉장히 많은 혜택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지그문트의 공격이 시작되면 분명 던전을 이용하여 마계의 문을 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할 것이나, 그들은 이를 밀어붙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먼저 내부의 의견을 합쳐야 했는데, 바로 오늘이 미국의 모처에서 세계헌터협회 주요 인사과 각국 헌터 협회장들이 모여 회의를 가지는 날이었다.
여기서 마왕 지그문트의 존재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으며, 또한 지금까지 헌터협회장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테티아가 나서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어쩌면 마계와 싸우기 전에 인류와 싸울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물러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S급 헌터가 되면 상황에서 따라 던전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지. 설마?”
“맞습니다. 그래서 길드원들이 S급 헌터가 되어야 했습니다.”
“옳은 일은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많은 이들이 몰랐던 규칙.
모든 헌터는 실력이 되면 던전에 홀로 들어갈 수 있지만, 어떤 상황이든 던전의 핵을 파괴할 수 없다는 규칙이 존재했다.
함부로 던전을 파괴했다간공간이 일그러지며 던전에 있던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상황에 따라 던전의 핵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은 S급 이상의 헌터들에게만 부여했다.
S급 헌터는 국가급의 무력을 지녔기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이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김강현은 이 규칙을 활용하여 세계헌터협회에서 던전 폐쇄가 결정되면 테라 길드를 움직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다음 날, 세계헌터협회의 회의 결과는 전 세계에 바로 전달되었다.
* * *
갑자기 온라인을 비롯한 지상파 TV에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유명 호텔의 컨셉션이 화면에 비치며, 단출한 테이블과 수백 개의 마이크가 같이 보였다.
그리고 한 여성이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세계헌터협회장 테티아입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테티아가 기자회견을 통해 나타났다.
불과 1시간 전의 일이었다. 미국 정부의 호출에 이 자리가 마련되었고, 올 수 있는 모든 방송사와 언론들이 모였다.
화면을 보던 이들은 세계헌터협회장이 2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나이였다.
외모만 20대 초반일 뿐, 사실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테티아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지구의 신인 가이아의 종임을 알리며 신성력을 발휘하자, 결국 모든 이들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신의 위엄이 담겨 있는 힘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외부 헌터들 또한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며 공경심이 들 정도로 강력한 힘에, 일반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힌 테티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언론에 나오지 않았던 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가이아 님의 의지를 받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혹시 인류에 무슨 변화가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왜 지구에 헌터가 나타났는지, 왜 던전이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이는 각국의 모든 사람들이 던졌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던전은 다른 세계이며, 게이트는 지구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문입니다. 그리고 가이아께서는 지구를 다른 세계로부터 지키기 위해 인류에게 각성이라는 힘을 부여했죠.”
테티아는 세상을 향해 철저히 감췄던 던전과 헌터에 대해 숨겨진 비밀을 꺼내놓았다.
그녀의 말에 기자회견에 있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영상을 보는 모든 이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건 몬스터들과의 싸움을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타 세계의 존재들이 게이트를 통해 두 세계를 연결시켰으며 먼저 몬스터들을 내세우며 지구를 향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고?!”
“빅 뉴스다! 어서 헤드라인으로 올려!!”
테이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엄청난 파급력을 띠고 있었다.
세계 전역에 던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말은 지구 전체에 전쟁의 불길이 치솟는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인류가 겪었던 전쟁과는 다를 겁니다. 그들에게는 현대 무기들, 핵이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실력 있는 헌터들이 나서야 합니다.”
“저,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요? 잘못하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리고 마족이라는 존재는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닙니까?”
이야기를 듣던 한 기자가 손을 들며 말했다.
기자회견장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의문점이었다.
증거가 필요했다.
“그럼 몬스터들은요? 그들도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었나요?”
“하지만 마족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질문에 답하던 테티아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등 뒤에 있던 벽에 빔 프로젝터로 자료들을 띄었다.
“기자분의 말대로 마족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들을 소환한다면 어떨까요?”
“네?”
“지금부터 보여 드리는 자료는 다크 위저드 록스가 마족을 소환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과 기록입니다.”
“자, 잠깐 록스라면 유럽의 위저드잖아!”
“그가 이런 짓을 했다고?!”
“잠깐만. 분명 다크 위저드라고 했어? 그 말은 그동안 자신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잖아!”
빔 프로젝트에는 록스의 연구실과 실험실, 그리고 다크니스의 은신처 모습이 비춰졌는데, 인간으로써는 하지 말아야 할 실험 행위도 모자이크 처리되어 보여지고 있었다.
그동안은 일부 헌터들 사이에서만 록스의 진짜 모습이 이야기되고 있었지만, 이렇게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이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록스는 성품과 실력이 뛰어난 위저드로 유명해서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그에 의해 마계의 마왕이 넘어왔습니다.”
뒤이어 그녀의 말과 함께 하나의 영상이 띄워졌는데, 바로 마왕 지그문트의 소환 영상이었다. 게다가 음성 지원까지 되어 사람들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이었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지구의 종말이 오는 건가?”
이 영상은 테라 길드원들의 기억을 추출하여 만든 것이었다.
사람을 설득할 때는 단순히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훨씬 편했다.
그동안 테티아가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고, 신성력을 보인 것만으로는 믿음을 주기가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드러나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부터 세계헌터협회는 마왕의 흔적을 발견했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에 공개하지 못한 채 은밀히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록스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증거 영상까지 구하게 되어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기자회견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노트북과 핸드폰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건 테티이아의 등장보다 더욱 중요한 특종이었다. 인터넷의 뉴스 기사에는 속보 형태로 계속 테티아의 말이 올라왔다.
“세계헌터협회는 각국의 헌터 협회장, 협회 비소속의 단체장들과 함께 지구에 숨어 있는 마왕과 마계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에 대해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던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며 각국의 헌터들이 움직일 것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빔 프로젝터를 통해 던전 폐쇄에 참여할 각국의 협회들과 대형 길드들의 이름이 띄워졌다.
“자, 잠깐만. 중국의 무림맹도 있어!!”
“미국, 러시아, 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없군…….”
“정말 인류의 운명 건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기자들이 빠르게 리스트를 훑자 기입된 나라와 길드의 이름 하나하나 허투루 볼 수 없을 만큼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저들을 한데 모은 거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저들이 모두 힘을 합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특히 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 아랍, 러시아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정말 테티아의 말대로 인류의 생존을 건 전쟁이 눈앞에 있다는 실감되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헌터 연합군이라는 이름하에 뭉칠 것이며, 최고 책임자인 사령관은…….”
기자회견장의 사람들뿐 아니라 TV와 인터넷을 통해 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테티아의 입을 향했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헌터 연합을 이끄는 총책임자는 상상할 수 없는 힘과 권력을 가질 것이었다. 한 번쯤 정점에 오르고 싶은 이들은 탐낼 만한 자리였다.
‘아무래도 세계헌터협회장이 나서지 않을까?’
‘피닉스 길드의 루스?’
‘지구 최강의 방패라 불리는 미셀이 아닐까?’
‘무림맹주 진위혁?’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을 떠올렸다.
이 범위 안에는 테티아 또한 들어갔다. 그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던 테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헌터 연합군을 통해 활동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서면 다른 헌터들도 명분상 나설 수 없었다.
“한국의 테라 길드 마스터, 김강현 님입니다.”
“김강현?”
“마스터 김?”
“분명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아!!”
미국과 중국 등지의 헌터가 지목될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인물이 언급되자 기자회견의 몇몇 기자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이 기자회견의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펠 바이러스 사건으로 처음 대중들에게 각인된 이름을 떠올린 몇몇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기사를 작성해 나갔고, 정보가 빠른 자들은 이번 마교 사건에 김강현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어떻게 사령관으로 정해졌는지 질문하려고 했다.
“기자회견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질문 하나만!”
기자들의 말을 무시하며 테티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황급히 기자들이 그녀를 뒤쫓아갔지만 주변에 배치된 가드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일단 한국의 테라 길드 마스터부터 알아봐!”
“빅 뉴스야!! 빅 뉴스!!”
기자들은 곱바로 각자 회사에 연락하여 김강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순식간에 인터넷에 기사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 *
“너무 판을 크게 벌린 것인가 모르겠어요.”
-어차피 한 번 벌어질 일이었어. 그럼 한꺼번에 터트리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고.
“후우,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의 일이고요.”
-그래. 걱정 마. 다 잘될 테니까.
“테라를 뒤흔들었던 라셀의 화신이라면 가능할 거라 믿어요.”
기자회견이 끝나고 잠깐 숨을 돌린 테티아는 바로 한국에 있는 김강현에게 연락했다.
테티아의 기자회견은 사전에 김강현과 모두 조율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확히는 유럽에서 지그문트의 소환이 이루어진 후부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모든 계획을 염두하고 있었던 것.
-그보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양보한 것은 의외인데? 어떻게 한 거야?
“정말 쉽지 않았고,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그녀의 말대로 김강현이 헌터 연합군의 수장으로 임명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
각 나라에서는 자국민을 통해 다른 나라들보다 조금이라도 힘과 권력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테티아의 입장은 강경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마계를 상대로 싸워 이겨낸 김강현이 가장 적합했으니까. 이는 김강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미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수장의 자리가 욕심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살려면 김강현을 밀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미국에는 김강현이 자신을 이긴 강자이며, 그가 지그문트와 싸운 영상을 공개하며 유일하게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임을 어필했다.
김강현과 인연을 맺었던 헌터들 또한 미셀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이렇게 각 나라에서 욕심을 부리기 전에 헌터들 내부에서 김강현이 연합군 수장으로 내정되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강대국에서 수장이 나오지 않는 것이 나라 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도 있었다.
“앞으로 모든 계획은 사령관께 맡길게요. 내용 정리되면 연락 주세요.”
-그래. 고생했다.
김강현은 마계와의 싸움을 앞두고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짰고, 첫 스타트는 테티아가 끊어주었다.
두 사람은 차후 방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통화를 종료했다.
“길드장님. 사전에 작성한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고 외부와의 연락도 모두 차단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그나저나 밖이 많이 시끄럽네요.”
“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테라 길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입구 쪽에 모여들었습니다.”
“경찰에 연락해서 협조 요청을 하도록 하죠.”
뒤이어 바로 기동진이 길드 사무실로 들어와 김강현이 사전에 이야기했던 업무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기자회견 후 일어날 파장을 예측한 김강현은 배포 자료를 준비해 두었고 헌터폰과 길드의 전화기를 꺼두었다.
그리고 US그룹에도 영향이 미칠 것을 고려하여 기자회견을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에 발표하도록 조율했다.
“길드원들은 모두 모였나요?”
“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길드원들에게 연락하여 모이게 했습니다. 기자회견을 봤으니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회의실로 같이 가죠.”
김강현의 말에 기동진은 함께 움직였다.
그곳엔 중국에 있던 검천호도 어느새 귀국하여 길드원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한 얼굴이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김강현은 그들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먼저 이렇게 일을 처리한 것에 많이 놀랐을 테지만, 보안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양해 바랍니다.”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런데 갑자기 던전 폐쇄를 하면 기존 세력들의 반발이 극심할 텐데.”
“게다가 헌터들의 반발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를 방치했다가 피해가 커지면, 그때는 누가 책임질까요?”
그 말에 다들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저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제가 하는 것이 맞고요”
그제야 길드원들은 김강현의 과거를 떠올렸다.
김강현과 지그문트는 자신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차원 이동이 계기가 되어 지구에 던전이 나타났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겠습니다.”
김강현은 길드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 * *
“지그문트의 목적은 마계의 문을 여는 것으니, 이것부터 이야기하죠.”
말과 함께 김강현은 회의실의 빔 프로젝터를 작동시켰고, 자료들이 화면에 띄워졌다.
“말 그대로 마계의 문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게이트인데, 이를 열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지구의 마나가 강대한 장소들을 찾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나와 마력을 부딪쳐 강제로 차원의 틈을 여는 것이네요.”
“사전에 마왕에 의해 마계 좌표가 지정될 것이고요.”
길드원들은 간략한 설명에도 마계의 문이 열리는 구조를 추측하여 답을 도출해 냈다.
그들의 말대로였다. 차원의 틈을 강제로 열기 위해선 두 개의 상반된 힘을 부딪친 후 틈을 만들고, 지그문트의 마법에 의해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건 추측이지만, 마계의 문이 열리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들이 그 영향으로 마계와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무슨?”
“지금 던전들은 테라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요?”
“자세한 설명은 이 몸이 하마.”
김강현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두었는데, 이것에 대한 설명은 헬릭스가 나섰다.
“너희들의 말대로 던전들은 마계가 아닌 테라와 연결되어 있느니라. 그런데 동시에 지그문트는 지구와 마계가 연결되는 문을 열려고 하지.”
말과 함께 빔 프로젝터의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은 테라와 마계의 세계가 지구를 공격하는 형국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렇게 두 세계로부터 동시에 침공받는 걸 더블 크라이시스라고 하는데, 이것이 유지되기 위해선 테라와 마계의 힘이 동등해야 하지. 하지만 테티아에게 듣기로 테라는 마룡에 의해 피폐해지고 점점 마계화가 되어 있다고 하더구나. 그럼 당연히 테라와 연결된 던전들은 마계의 문에 먹힐 수밖에 없느니라.”
“하지만 너무 추측이 아닐까요?”
“증거라면 얼마든지 있느니라.”
다시 빔 프로젝터 화면이 바뀌었는데, 서울의 던전 파악도였다.
던전에 어떤 성향의 몬스터들이 있는지, 등급과 보스 몬스터에 대해서 정리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처음 던전들과 지금의 던전들을 비교해 보거라.”
“언데드와 어둠 계열의 던전이 늘어났네?”
“게다가 몬스터들의 등급도 오르고 있어.”
“이게 다 마계의 영향이라는 겁니까?”
“록스와 천세후가 벌인 짓의 영향이 크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마계에 도움이 된 것이 문제니라.”
그동안 그들은 벌인 짓을 떠올리니 이해가 됐다.
바이러스를 풀어 대량 살상을 저질렀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모아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힘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납치해 그들을 이용했다.
하나같이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행위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나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야. 이 상황에서 마계의 문이 열리면 마력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고, 던전에도 영향을 미쳐 마계화가 될 거라 생각하는 것이니라. 그곳에선 마계의 몬스터들과 마수들이 뛰쳐나오겠지.”
“혹시 높은 등급의 던전일수록 나오는 개체들은 어떻게 되나요?”
“상위의 던전일수록 문이 더욱 크게 열리거나, 당연히 상위 개체들이 나올 것이니라.”
길드원들은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지금도 종종 몇몇 길드들이 던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던전 폭주가 일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A급 헌터들이 나서지 않으면 도시의 피해가 클 뿐더러 어떻게 날뛸지 모르는 몬스터들에 의해 사람들의 인명 피해도 컸다.
이러한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그리고 던전을 없애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던전 폐쇄를 위한 구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강현이 말과 함께 빔 프로젝터 화면을 바꾸자, 세계 지도에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이집트, 러시아, 터키가 빨간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저를 포함한 길드원은 표시된 도시를 중심으로 각 대륙 전체를 돌아다녀야 하며, 부길드장님과 헬릭스가 이동을 도와줄 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헬릭스가 섀도우 텔레포트라는 스킬로 먼 거리라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검천호가 중국에 갈 때도 이 스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기동진은 어떻게 자신들을 도와줄 것인지 궁금했다.
“간단히 설명하려면 보여주는 게 빠르겠죠.”
김강현의 말에 기동진이 자리에 일어났는데, 순간 빛에 몸이 휩싸임과 동시에 사라졌다가 1초 뒤에 다시 나타났다.
“그냥 모습을 감췄다가 나타난 거 아닌가요?”
렌이 살짝 투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기동진이 등 뒤에 숨겼던 손을 들었다.
“그, 그건?!”
“내 사물함에 있던 옷인데!”
“내 옷도 있어!”
그의 손에는 렌과 김건의 상의가 들려 있었는데, 그들이 수련할 때 입는 수련복이었다.
원래 그 옷들은 수련장 사물함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보안을 뚫어야 하는 데다 지문 인식이 없으면 절대로 사물함을 열 수 없었다. 더불어 회의실에서 수련장까지 거리는 아무리 빨리 갔다온다 하더라도 5분이 걸렸다.
“이번에 S급 헌터가 되면서 광속화 스킬을 얻었는데, 어떤 지형지물이 있더라도 뚫고 이동할 수 있죠. 이를 여러분들에게 적용시키면 어떨까요?”
“아!!”
“섀도우 텔레포트처럼 움직일 수 있게 돼!”
“길드원들에게 광속화 스킬을 부여하기 위해선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겠지만, 유하의 포션과 헬릭스의 도움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봅니다.”
그제서야 길드원들은 기동진이 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어쩌면 헬릭스의 섀도우 텔레포트보다 더욱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나는 대로 바로 다른 길드들도 움직이기로 했으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김강현은 길드 회의를 마치자마자 헬릭스의 도움을 받아 테티아와 합류한 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헌턴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일이 명령을 내릴 수 없어선 가이드라인을 정한 뒤 뛰어난 실력의 헌터들에게 지휘권을 전달했다. 그들은 뛰어난 실력과 지휘를 통해 휘하 헌터들을 통솔하며 일사불란에게 움직였다.
이들은 루크, 미셀, 루시아, 연철무, 진위력 등 그동안 김강현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테라 길드원들은 헌터들의 손이 닿지 않는 오지나 협회의 영향력이 약한 곳을 찾아 던전 폐쇄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던전으로 이득을 얻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세계헌터협회가 주장한 내용은 신빙성이 없고 단순한 추측이라고 이야기하며 던전이야말로 훗날 후손들을 위한 필요한 자원임을 역설한 것이다.
하지만 이 소식이 대중들에게 전달되자 그 반응은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던전이 생겨나기 전의 평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었고, 치안이 안전했다.
헌터가 등장하면서 관련 범죄 또한 증가한 것까지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던전 폐쇄에 찬성했으며 하루라도 빨리 과거와 같은 평화를 찾길 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 헌터들은 하나하나 던전을 없애갔다.
이 소식은 금방 록스와 지그문트에게 전해졌다.
“아무래도 저희들의 계획을 놈들이 눈치챈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차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너무 빠르구나.”
“그동안 숨어 있던 세계헌터협회장이 나섰으며, 각국에서 전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들을 방해했던 테라 길드가 선두에 있고요”
“그렇겠지. 김강현과 헬릭스만큼이나 이 몸을 제일 잘 아는 인간이 없을 테니까!”
지그문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녀가 있다면 분명 신관들과 신성 전사들이 있을 터!’
기자회견의 영상을 보니 지구에서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인간이 있었다.
테라에서 인간들과 싸울 때 가장 상대가 어려웠던 것이 신성력을 가진 인간들이었다.
최상급 마족은 성녀급의 신성력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만, 문제는 휘하의 마수들과 마족들이었다. 광역형 신성 공격 한 방에 전체가 무력화되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다. 이대로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역시!”
록스가 감탄하며 소리쳤다.
앞선 경험을 통해 지그문트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두었다.
지그문트가 품속에서 수정 통신구를 꺼낸 뒤 마력을 흘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그로시아스, 지난번에 맺기로 한 동맹을 잊지 않았겠지?”
-흐음.
“네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위해 그들의 힘이 필요한 때다.”
그로시아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신음성을 흘렸다.
-최근 던전들이 닫히고 있더군. 이유가 뭐지?
“놈들이 내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차원의 틈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던전을 없애고 있고.”
-그래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가?
“아니다. 네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지.”
수정 통신구 너머로 그로시아스의 불편한 심기가 전달되었다. 지그문트는 그로시아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절대로 자신이 약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움직이고 싶으나 아직 힘이 부족해.’
그로시아스는 지구를 공격하기 위해 몬스터, 언데드 등을 비롯한 휘하 병력들을 몇몇 던전에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지그문트의 말대로 던전들이 닫힌다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지구에 던전들이 많이 열려 있어야 지구와 테라를 닫고 있는 경계가 허물어져서 차원간의 틈을 크게 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로 넘어오려는 그로시아스의 계획은 시도하기 전에 무산될 것이었다.
-좋다. 내 아이들을 보내지. 이쪽은 이쪽대로 움직일 것이야.
“물론이다. 하나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게 경로는 알려줬으면 좋겠군.”
-상황을 보고 연락하지.
둘 다 자존심이 강한 존재들이라 티 나게 협조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실리를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시아스는 말과 함께 통신을 종료했다.
“옆에서 잘 들었겠지. 곧 지구에 대규모 혼란이 일어날 것이니,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마계의 문을 열어야 한다.”
“네. 지그문트 님!”
점점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느끼자 록스는 감격스러움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죽이겠다. 김강현, 헬릭스!’
그리고 지그문트는 두 사람에 대한 살의를 품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