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절대자는 역대급 헌터 13권(완결)
1장. 지그문트의 부활과 상처뿐인 결말
“지그문트?”
“설마 그 조수를 말하는 건가?”
헬릭스의 말에 두 사람의 반응이 달랐다.
진위혁은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기웃거렸고, 귀마는 록스의 뒤를 따라다니던 조수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록스와 함께 마교에 몸을 맡겼었지.”
“놈을 마교에서 만났었는데 이미 본신의 힘은 거의 되찾았더군. 그래서 이곳을 떠난 것이겠지.”
“그러면 이 전쟁을 틈타 힘을 키우는 게 좋을 텐데. 왜 떠난 거지?”
“놈이 방금 먹은 것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니라. 분명 지그문트의 마력이 똑똑히 감지되었으니 말이다.”
“흐음!”
헬릭스의 확신 어린 말에 김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절대 허튼말을 할 녀석이 아니었다. 게다가 천세후가 뿜어내는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천룡대주, 지그문트라는 자가 누구길래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가?”
“그는 마왕입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진짜 마계의 마왕 말입니다.”
“뭐라고?”
그사이 진위혁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강현에게 물었으나 오히려 더욱 의문은 깊어졌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반박하려고 했으나, 심각하게 굳어진 김강현의 얼굴을 보니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겁니다.”
김강현은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지그문트의 계획이라면 자신들은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쿠우우웅! 콰아아앙!!
그때, 천세후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이 사라졌다. 그는 김강현에게 입었던 상처가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였다.
“헬릭스. 어떻게 할까?”
“일단 지켜본다.”
김강현과 헬릭스는 간단하게 방향을 정한 뒤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겉보기에 천세후는 멀쩡해 보여서, 지그문트가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귀마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천마시여.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다. 오히려 힘이 넘치는구나!”
“아아!!”
귀마는 평상시와 똑같은 천세후의 눈빛과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감격이 벅차올랐다.
“놈들이 놓고 간 것이 영약이었던 모양이야. 네게도 그 힘을 나눠주마.”
“영광이옵니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말에 귀마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천세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때, 모든 이들이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어, 어째서?!”
바로 천세후가 귀마의 심장을 꿰뚫은 것이다.
난데없는 공격에 같은 편은 물론이고, 무림맹의 모든 이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당연히 네가 가진 마력이 필요해서다.”
“너, 넌 천마님이 아니구나!!”
“알아차리는 게 늦구나.”
말과 함께 천세후는 귀마의 심장을 움켜쥔 채 귀마의 마기를 심장으로 집중시켰다. 그러자 서서히 귀마의 몸이 말라가더니 마치 미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동안 마교를 이끌었던 귀마로써는 처참한 죽음이었다.
“신선한 심장은 오랜만이야.”
그리고 천세후는 귀마의 심장을 단숨에 자신의 입안에 삼켜 넣었다.
“방금 천마께서 무슨 짓을 한 거지?”
“귀마 님을 죽였다고?”
“어, 어째서?!”
마교의 마인들은 이 광경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천세후와 귀마가 있었기에 마교가 건제할 수 있었다. 둘 중 한 명이 죽는 것은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드디어 본 왕에게 걸맞는 육체를 얻었단 말이다!”
한편, 다른 이들이 패닉에 빠지든 말든 천세후는 기쁨에 벅차 소리쳤다.
그와 함께 그의 신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머리에선 두 개의 뿔이 솟구치고, 등에서는 검은 날개와 몸에서 볼 수 없던 근육질이 드러났다.
“천마가 괴물이 됐어!!”
“미친!!”
“무슨 실험을 한 거야?!”
무림맹의 무인들은 천세후의 모습이 기괴하게 변하자 공포에 떨었다.
“저게 뭔가? 천룡대주, 응?”
“제, 젠장!”
“이걸 노렸던 건가?”
그런데 김강현과 헬릭스의 반응이 달랐다.
그들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천세후의 모습은 그들이 기억하는 하나의 존재와 똑같이 변하고 있었다.
“육체 갈아타기인 건가?”
이제야 김강현과 헬릭스는 천세후가 복용했던 약은 약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지그문트의 손아귀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천세후를 구렁텅어로 밀어 넣었던 거였어.”
“그래야 뛰어난 육체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무림맹과 마교가 누군가에 의해 움직였다고?”
옆에 있던 진위혁은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정체불명의 자로부터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조용히 있었던 게 아니었어.”
“이 몸과 김강현, 그리고 모든 이들을 속이고 조종하고 있을 줄은!!”
김강현과 헬릭스는 지그문트의 계략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헬릭스는 김강현이 지그문트로부터 정보를 받아 천룡대가 마교의 성에 잠입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분명 아무런 의도 없이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설마 그가 원하는 것이 마교의 몰락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너희들이 이 녀석들을 끝까지 몰아넣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어.”
전신에서 넘치는 힘에 주체하지 못하며 지그문트는 기쁜 웃음을 토해냈다.
“한때 록스가 이 인간을 죽이려고 했지만 죽이지 않길 잘했지.”
기존의 육체로도 자신의 힘을 한껏 일으킬 수 있지만, 워낙 육체가 약해 한계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천세후의 육체는 그러한 한계 따윈 부숴 버린 육체였다.
“처음부터 천세후의 육신이 목적이었구나.”
“그래. 록스가 준비한 육신은 그저 마나 운용이 뛰어난 육체일 뿐. 아무리 키메라 세포로 능력을 끌어내도 한계가 있지. 그래서 키메라 세포로 육체를 옮기는 계획을 세웠고 성공했다!”
천세후, 아니, 지그문트는 큰 소리로 웃으며 기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록스가 준비한 소년은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 마법을 쓰기에는 적합한 신체였으나, 키메라 세포를 얻게 되자 적과 직접 싸울 수 있는 육체가 필요해졌다. 마법으로 육체 개조를 고려했으나, 이를 위해선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여 쉽지 않았다.
그때 천세후가 눈에 띄었다.
지그문트는 자신을 록스의 조수로 소개했지만, 그럼에도 천세후는 그에 대한 감시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그문트는 자신을 감시하는 자들을 마법으로 세뇌하여, 역으로 천세후을 조사해 그의 계획을 낱낱이 파헤쳤다.
그리고 마교를 떠나기 전 영약을 준비하며 그 안에 자신의 키메라 세포와 마법을 각인시켜 놓았다.
영약을 복용하는 순간 카메라 세포가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마법에 의해 정신이 연결될 것이었다.
“이 인간의 정신력이 강한 탓에 영혼을 한 번에 없애진 못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멸될 터.”
말과 함께 지그문트의 몸에서 검은색 마력이 줄기처럼 수천 개가 솟구쳤고, 순식간에 마교의 마인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눈앞에 탐스러운 먹이들이 있는데 어찌 지나칠까?”
“모두 도망쳐라!!”
뒤늦게 지그문트의 의도를 알아차린 김강현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끄아아앗!!”
“컥!!”
“으아악!!”
“사, 사람 살려!!”
나선형의 마력 줄기는 단숨에 마교 마인들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들이 가진 생명력과 마기를 한 점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대부분의 마인들은 나선형의 마력 줄기를 피해 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게 무슨……!”
“유럽에서 만났던 마왕인가?!”
제무월은 나선형의 마력 줄기를 공격하여 없애면서 분노하여 소리쳤다.
그들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김강현과 천세후의 싸움이 시작하자 잠시 서로를 향해 겨누던 검과 주먹을 거두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에 의해 이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그문트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렸다.
지그문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무월과 달리, 검천호는 지그문트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을 감지하고 바로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마왕?”
“그래. 진짜 마계의 마왕이다. 게다가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강해졌어.”
거리가 상당했지만, 검천호는 지그문트의 기운에 온몸이 저릿해지며 힘의 격차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를 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건만, 놈은 더욱더 강해진 것이었다.
“저놈이 감히 천마 님을 집어 삼켰단 말이지?”
“자, 잠깐 기다려라!!”
제무월의 눈은 천세후에 대한 복수로 모든 것이 가려져, 오로지 지그문트만이 보였다.
그는 두 손에 강기를 모으고 지그문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죽어라앗!!”
그 기세와 위력은 주변을 완전히 휩쓸 정도여서 진위혁도 막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지그문트는 제무월의 위세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쓰레기 따위가 날뛰는 거지?”
그리고 제무월을 향해 팔을 뻗은 뒤 마력을 집중했다.
“꺼져라!!”
단숨에 검은 마력탄을 만든 그가 제무월을 향해 레이저처럼 쏘아 보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무월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직격으로 맞았다.
마력탄에 맞은 제무월은 바로 땅바닥에 떨어졌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죽여주지.”
“뭐라고?”
지그문트의 말과 함께 갑자기 제무월의 피부가 검게 물들어갔다.
제무월은 당황하며 몸의 이상 반응을 마기로 억제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점점 검게 침식되는 속도만 빨라졌다.
“낙인의 저주.”
“마족에게 치명적인 저주가 설마 인간에게도 통할 줄은…….”
그 모습을 보던 김강현과 헬릭스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들자, 제무월의 몸은 검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방금 전의 제무월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이었다.
더불어 검천호를 비롯한 무림맹 무인들 또한 마교의 대표적인 마인인 제무월이 이렇게 죽을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지그문트가 펼친 낙인의 저주는 원래 이런 것이었다.
상대방의 피부를 통해 마력 독을 주입하고, 마력이 활발하게 운용될수록 독이 빨리 퍼져 삶을 단축시킨다.
이렇게 마교의 권력을 쥐고 있던 마인들이 모조리 죽었다.
자연스레 무림맹이 승리를 얻은 셈이었지만 이름뿐인 승리였다.
게다가 눈앞에 마교보다 더 무서운 적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회포를 풀고 싶지만, 이 육체를 완전히 내 것으로 다루기엔 부족함이 많아.”
지그문트는 신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 강림했을 때 키메라 세포를 믿고 김강현과 싸웠다가 크게 된통 당했었다.
“대신 선물을 주마.”
“선물이라고?”
“아주 만족할 거다.”
지그문트는 미소와 함께 하늘에 마력을 집중했다. 점점 마력탄의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검은 태양?”
“저, 저건 못 피해!”
순식간에 하늘을 완전히 가린 마력탄이 지상을 어둠으로 덮을 만큼 커진 채 이글이글거렸다.
* * *
“우리가 만날 날은 멀지 않을 거다. 그때를 기약하지.”
말과 함께 지그문트가 마력탄을 지상으로 쏘아 보내며, 순식간에 이동 마법을 통해 자취를 감추었다.
“지그문트!!”
이를 본 김강현은 뒤늦게 신마력을 담은 마검을 지그문트를 향해 날렸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우린 모두 죽었어!!”
“모두 도망쳐!!”
“으아아앗!!”
무림맹 무인들과 마교 마인들은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마교의 성에서 떨어져 있던 자들은 도망치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마력탄의 사정권 내에 있는 자들은 바로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도망친다 해도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베어낸다!!”
“동시에 공격해라!”
그 와중에 진위혁을 비롯한 몇몇 이들은 마력탄을 공격하여 조금이라도 위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일단 할 수 있는 방법을 해봐야지.”
만약 온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그문트가 남긴 마력탄을 없애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신마력의 사용으로 김강현의 체력은 거의 고갈되었으며, 헬릭스도 약간의 마력만 보유하고 있었다. 지그문트가 남긴 마력탄을 없애기는 힘이 부족했다.
“굳어 없앨 필요는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명 피해가 없는 거다.”
“혹시 그 방법이라면?”
김강현이 떠올린 방법에 헬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라면 모두가 살 가능성이 있겠구나.”
헬릭스는 자신의 남은 마력을 모두 김강현에게 전달했다.
그 즉시 김강현은 마검의 칼날 끝에 신마력을 집중하여 머리 크기만 한 구체를 형성했다.
“이게 한계인가?”
지그문트의 마력탄과 비교했을 때 크기는 굉장히 작았다.
하지만 힘의 집약은 오히려 마력탄보다 뛰어났다.
휘익!!!
신마력이 마력탄을 향해 날아갔다.
“어? 어?!”
그런데 날아가는 방향이 이상했다.
마력탄을 없애려면 바로 정중앙을 맞혀야 할 텐데 마력탄의 옆면을 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저것이 맞다. 너희들은 김강현이 쏜 방향으로 원거리 공격을 날려라!”
이해하지 못하고 놀란 사람들에게 헬릭스가 외쳤다.
“싸움 직후이기에 남아 있는 힘이 없느니라. 이 상황에서 저걸 완전히 소멸시키긴 어렵지.”
그사이 김강현은 정신을 집중하며 신마력이 마력탄에 흡수되거나 사라지지 않게 신경 쓰고 있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 마력탄의 궤도를 바꾸는 것!!”
이곳에서 지켜야 할 것은 사람들의 목숨!
만약 마력탄의 궤도를 틀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모두 마력탄의 옆면을 공격해!!”
“으아아앗!!”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사람들은 김강현을 도와 원거리 공격을 펼쳤다.
실제로 그 덕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력탄의 속도가 늦춰졌다.
“제발!! 제발!!!”
원래 도망치려고 했던 자들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마음을 고쳐먹고 김강현을 돕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탄은 점점 지상을 향해 떨어지만, 서서히 궤도가 바뀌고 있었다.
점점 희망이 커져가자 사람들은 더욱 힘을 냈고, 지상과의 거리가 약 15m가 되었을 때.
결국 마력탄의 궤도가 확실히 바뀌었다.
“모두 엎드려!!”
“건물 뒤에 숨어!!”
마력탄은 성 옆에 있는 산맥을 향해 날아갔고, 모두 폭발에 대비하여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폭발음과 산맥이 마력탄과 부딪쳤다.
연달아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희뿌연 흙먼지와 함께 돌덩어리들이 성을 덮쳤다.
워낙 큰 폭발이라 눈앞의 시야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돌 파편들이 날아와 몸에 부딪치기도 했다.
“크윽!!”
“다들 무사한가?!”
시간이 지나 시야가 확보되자 하나둘씩 움직이며 생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자잘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있었지만, 목숨이 위급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저걸 직격으로 맞았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겠지…….”
사라진 천산산맥의 봉우리들을 보자 등에 소름이 끼쳤다.
천산산맥은 크기가 광활하여 일반 사람이 쉽게 오르기 어렵고 전문 산악인도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그런 산맥의 10분의 1 정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사, 살았네.”
안도감이 들자 몇몇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불과 1시간 전만 하더라도 무림맹 무인들은 마교 마인들과 싸우고 있었지만, 기억에 남은 것은 마교와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가 아니라 지그문트가 준 공포였다.
아무도 눈앞의 승리를 체감하지 못했고, 승자 없는 싸움이 끝났다.
* * *
무림맹의 승리!!
이 소식이 전달되자 전 세계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지금까지 세계의 국가들과 기업들은 갑자기 나타난 마교보다 무림맹에 지원을 한 것이 많았다. 그 말은 무림맹이 승리해야 돌아올 이득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안전이었다.
그동안 차단되었던 운송과 통행이 풀려 자유롭게 중국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싸움으로 인한 피해는 중국 정부와 무림맹에서 지원해 주기로 결정되었으니 기뻐한 것은 당연했다.
“후우,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네요.”
“그러게 말이야. 피해 지원과 보상부터 시작해서 사후 처리까지 복잡해.”
“그나마 추가 인력들이 붙어서 이만한 겁니다.”
이를 위해 무림맹 인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중 진위혁과 제갈명은 보름가량이나 집에 가지 못하고 무림맹에서 수습하기 바빴다.
“마교의 재산은 간신히 처분한 건가?”
“네. 다행히 온전해서 보상도 가능했습니다.”
“정말 그건 신의 한 수였네. 만약 마교의 성이 날아갔다면 끔찍했을 걸세.”
그 상황을 생각하자 제갈명은 소름이 끼쳤다.
중국 정부와 무림맹이 사람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금액은 마교의 재산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림맹과 장기전을 염두에 뒀던 만큼 보유하고 있는 자원도 넘쳤고, 곳곳에 재산이 상당했다.
이제 주인이 없어진 재산을 습득한 무림맹은 중국 정부와 협의하여 이번 싸움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베풀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만큼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지그문트의 마력탄이 마교의 성에 직격했다면 어려웠겠지만, 무사한 덕분에 쉽게 재산을 습득할 수 있었다.
“서둘러 마교와의 싸움 처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전쟁 준비를 해야지.”
“이번엔 무림맹이 아닌 인류의 존속을 두고 싸우는 것이군요. 그런데 정말입니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망할 것만 같았는데, 지그문트를 만난 이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진심으로 그가 나섰다면 그 자리에 살아남은 사람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데 정말 주석과 당에 마왕의 존재를 숨기실 겁니까?”
“그래야겠지. 우리도 직접 보기 전까지 믿기 어려웠으니까.”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걸까요?”
“그러게 말일세. 사람들의 욕심으로 망할 것 같았는데, 이젠 몬스터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게 생겼어.”
김강현과 지그문트의 대화를 들은 이는 바로 주변에 있던 진위혁뿐이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지그문트의 등장을 알지 못했고, 천세후가 괴물로 변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김강현에 의해 묻혔다.
제갈명은 마왕이 나타났고 천세후가 그에게 죽었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헬릭스가 마법으로 김강현과 진위혁을 기억을 전달하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검천호가 지그문트와 만났던 유럽에서의 이야기까지 하자 더는 불신할 수 없었다.
“세계헌터협회에 연락해서 공조 상태를 유지하고, 최대한 정보를 모으도록.”
“네.”
진위혁의 말에 김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헌터협회와의 공조는 중국과 협회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공산당과 무림맹은 지그문트에 대한 정보를 얻고, 협회는 공산당과 무림맹에 막혀 있던 중국 활동이 수월해질 테니까.
“그리고 하오문과도 협조해서 준비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천룡대주가 하오문을 어떻게 끌어들였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더불어 김강현은 두 사람에게 하오문을 소개하면서 이번 마교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그들의 공이 컸다며 챙겨주었다.
실제로도 많은 도움을 받었으며, 세계 곳곳에 그들의 눈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중국 내부의 정보는 빠삭한 무림맹의 해외 정보력을 하오문이 채워줄 수 있을 터.
그리하여 무림맹과 하오문은 정식으로 손을 잡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천룡대주는 무얼 하는가?”
“아무래도 귀국 준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떠날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군.”
“네. 짧은 시간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죠.”
워낙 중국어를 현지 사람처럼 능숙하게 하다 보니 잠깐 두 사람은 김강현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들은 김강현이 떠나기 전에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며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 * *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라. 곧 결과가 나올 거다.”
그 시각, 김강현은 검천호와 함께 무림맹의 감옥에 있었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 괴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괴의는 몇 가지 약재를 조합하는데, 표정이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이 방법이 아니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는 금천신단의 기운을 없앨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마교와의 싸움을 하는 동안 괴의는 금천신단을 분석했는데, 마교가 공을 들인 만큼 쉽지 않았다. 그나마 김강현이 남긴 인피니티 마나가 있었기에 이를 기반으로 단서를 얻었다.
그리고 마교와의 싸움이 끝난 후 김강현은 마교의 연구실에서 각종 자료를 가져왔고, 금천신단 개발에 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실험이다.”
이를 바탕으로 괴의는 하나의 환을 만든 후 물에 개어 아크릴 박스에 있는 쥐에게 먹였다.
쥐는 사전에 금천신단을 복용한 상태로, 실험이 성공하면 쥐의 몸속에 있는 마기가 사라질 것이
었다.
모든 이들이 주의 깊게 쥐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