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장. 천마신교주 천세후 (110/119)

10장. 천마신교주 천세후

‘혈마의 심령이 불안한데? 상대하고 있는 자가 강한가?’

천세후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강마, 귀마, 혈마는 주술을 이용하여 심령이 연결되어 있었다.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상태는 확인이 가능했다.

그런데 혈마의 심령이 약한 채 매우 흔들리고 있어 위기가 닥쳤음을 알아차렸다.

‘기가 낯설지 않은 걸 보면 분명 내가 아는 자가 확실한데.’

그는 이한결과 싸우고 있는 기를 읽었지만, 강현이 신마력을 사용하고 있어 명확하게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 잠깐.’

그때, 이한결의 기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강대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혈천폭?”

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혈천폭을 사용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강자라는 말이었다.

[혈마!!]

그는 심령을 통해 이한결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콰르르릉!!

“으아앗!!”

“지진?!”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때, 갑자기 지진처럼 땅이 세차게 흔들렸다. 몇몇은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사람들이 빠지기도 했다. 덕분에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무림맹 무인들과 마교 마인들의 싸움이 일시 중지되었다.

쿠르르르릉!!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다!!”

“다들 조심해!!”

그리고 지하에서 진동이 울리는데, 점점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자 모든 이들이 경계했다. 지하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은 점점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상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모든 이들이 경계하며 땅을 바라보았다.

누가 튀어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콰아앙!!

진동이 서서히 지상과 가까워지고, 흙먼지와 함께 돌덩어리들이 비산하며 한 사람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무림맹 무인들과 마교 마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적아인지 구분하지 못해 동요하기 시작했다.

“누구?”

“저런 자가 있었나?!”

바닥에서 솟구쳐 나온 자는 흑색의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어 한 번에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곧이어 남자가 투구를 벗었다.

“대주님!!”

“무사하셨습니까?!”

“그래. 다른 이들은? 상황을 보니 작전은 성공한 듯싶은데.”

“예. 대주님이 놈들을 막아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곧이어 남자가 김강현인 것을 알아본 천룡대원들이 반갑게 달려왔다.

“몸 숙여!!”

“네?!”

그때, 갑자기 김강현이 천룡대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아아악!!”

“모두 피해!!”

곧바로 반응한 천룡대원들이 상체를 숙이자, 그 뒤에 있던 마교 마인들을 향해 오러 칼날이 쏘아졌다.

그들은 오러 칼날을 막기 위해 들고 있는 무기를 들었지만 모두 잘려 나가며 단숨에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회포는 전쟁이 끝나고다. 지금은 눈앞의 적에 집중해라.”

“넷. 대주님!!”

‘역시 죽은 이들이 많구나.’

김강현은 힐끔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그들 중에는 그동안 얼굴을 익히고 안부를 나누었던 천룡대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슬픔은 잠시.

빨리 이 싸움을 끝내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 어르신은 놈과 치열하게 싸우고 계시는군.’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검천호와 제무월이 싸우는 기의 충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검천호의 우세이지만, 끝날 때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강현은 최악의 경우를 맞이할 경우를 대비한 준비를 미리 해둔 상태였다.

“맹주님, 괜찮으십니까?”

“자네에게는 미안하군. 다 내가 부족한 탓에 계획을 망쳐 버렸어.”

“천마가 이렇게 강할 줄 예상했겠습니까? 뒤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무슨 방법이 있는가?”

“저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부딪쳐봐야죠.”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무인들을 더 뒤로 물려주십시오.]

김강현은 천세후를 향해 가다가 만난 진위혁과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마 이길 자신이 있는 건가?’

지금도 다른 무인들은 진위혁과 천세후를 피하기 위해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더 떨어지라는 말은 진위혁보다 김강현이 강하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김강현은 천천히 천세후를 향해 걸어갔다.

“검은 연기 속에 감춰진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군.”

“그래. 이제야 한국에서 만난 게 기억하는구나. 김강현.”

신마력이 사라지고, 본래의 인피니티 마나만을 두른 김강현을 본 천세후는 바로 떠올렸다.

당시 싸웠던 상대는 헬릭스였지만, 김강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때부터였지. 비천 길드부터 시작해서 골든 크라운, 다크니스, 경매장, 신교의 부활까지!! 내 모든 계획에 재를 뿌리고 다니더구나.”

“이상하게 자꾸 엮이는데 어쩔 수 없었지. 만약 막지 않았다면 세계는 더 큰 혼란에 빠졌을 거다.”

“덕분에 신교의 계획이 10년이나 후퇴해 버렸지.”

천세후는 공중에서 내려와서 김강현과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오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평온했다.

“혈마, 이한결은 죽었나?”

“맞다. 혈마대와 함께 무저갱이 거대한 무덤이 돼버렸어.”

“분명 혈마는 혈천폭을 사용했을 터.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그가 아는 혈천폭은 자신조차 피하기가 어려우며, 강대했다.

“장소가 무저갱이었으니까. 암반이 혈천폭의 속도를 늦춰주어 탈출할 수 있었다.”

김강현은 무저갱의 어딜 가든 혈천폭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반대로 암벽을 뚫고 지상에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신마력으로 혈천폭을 막을 수도 있으나 아직 마교와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에 무리한 힘을 쓰는 건 자제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혈천폭이 퍼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 무저갱이 무너지는 틈을 타 지상으로 탈출이 가능했다.

“안타깝게 됐어. 혈마는 네놈 하나 죽이는 것이 목표였는데 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나?”

“당연하지. 그래도 내 측근이었고, 뛰어난 수하였으니까.”

하지만 김강현이 느끼기엔 천세후에게 혈마는 그저 쓸모 있는 실험체에 불과해 보였다.

수하의 죽음에 전혀 안타까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네놈은 그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응?”

“혈마대가 사람들의 영혼을 써서 강제로 강해진 것을 보고 짐작했지만, 너는 상상 그 이상이구나. 덕분에 인간의 한계에 가까워졌어.”

“역시 네놈은 범상치 않구나. 아무도 눈치챈 것을 알아낸 걸 보니.”

천세후의 몸을 감싸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울부짖음이 김강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그들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천세후의 마기에 붙들려 도망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정확히는 사람들의 영혼이 단전의 작은 내단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특수한 주술로 의해 힘이 뽑히고 있었다.

“아마 무림맹을 끌어들인 것도 네가 한 짓이겠지. 신교를 위해서, 대계를 위해서 너부터 없애는 게 맞겠구나.”

천세후는 김강현의 행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본래 무림맹은 신교의 발호가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들의 움직임을 몰랐어야 했다.

개방의 몇몇 거지들이 눈치채긴 했지만, 죽이고 얼굴 가죽을 벗겨 인피면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인들이 개방의 거지로 활동하여 무림맹의 정보망에 혼란을 줬다.

그런데 김강현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번번이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도 부족해서 무림맹을 끌여들여 신교의 부활마저 방해하니 더 이상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반드시 너만큼은 죽여주마!!”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김강현과 천세후는 말과 함께 동시에 기운을 일으켰다.

[몸이 버틸 수 있는 건 20분 정도니라. 그 이상 사용했다간 폭주할 것이다.]

[알아. 하지만 힘을 과하게 사용하면 시간은 더 줄겠지.]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조심하거라.]

싸우기 직전, 헬릭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둘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헬릭스는 김강현의 감각을 통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김강현은 헬릭스의 마력을 끌어와 쓰는 만큼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신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정종의 기와 마종의 기가 섞인 새로운 힘이로군. 그래서 내가 감지하기 어려웠던 것이었어.”

천세후는 신마력을 보자 이한결을 쓰러트린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진짜였다.

‘세상에 저런 기가 있다니!’

무림맹 무인들을 이 싸움에서 멀리 떨어뜨린 진위혁은 자리에 남아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귀마도 무림맹의 움직임을 읽고 마교 마인들을 뒤로 더 물렸다.

지금까지와의 싸움과는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 싸움으로 모든 게 끝난다!”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림맹의 진위혁과 장로들이 협공해도 이기지 못한 상대였지만 이상하게 김강현이라면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마교의 마인들은 당연히 천마의 환생이라 여기는 천세후가 절대 질 리 없다고 여겼다.

쿠웅!!

콰아아앙!!

김강현과 천세후의 빈틈을 노리며 마검을 휘둘렀고, 반대로 천세후는 김강현이 공격한 이후의 틈을 노렸다. 하나 두 사람의 무력이 팽팽하여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마치 철벽이군. 뚫을 수가 없어.’

‘모든 공격을 상쇄시킨다!’

김강현과 천세후는 계속 공격을 주고받았다.

‘이대로는 무의미한 시간이 될 뿐이야!’

김강현은 마검을 휘두르며 빈틈을 노렸지만 천세후의 마기가 철벽처럼 막아냈다.

이러한 기분을 느끼는 건 천세후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마기가 놈의 힘에 먹히는 느낌이다!’

헬릭스의 순수한 마력이 천세후의 마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기에 담긴 사람들의 영혼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빠져나가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론 자멸할 뿐이다. 남은 건!!’

천세후는 고민 끝에 괴물이 되기로 결정했다.

“천마화신(天魔化神)!”

말과 말께 검은 불꽃이 천세후의 몸을 휩싸이고, 마치 전신이 불꽃이 된 것처럼 일렁거렸다.

“이 자리에서 모조리 불태워주마!!”

천세후가 김강현에게 달려들며 오른 주먹을 휘두른 순간,김강현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마갑에 구멍이 났어?!’

한순간이었지만, 김강현은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마갑에 기스가 난 적은 있지만, 구멍이 날 정도로 강한 공격은 처음이었다.

이 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김강현은 천세후를 자세히 살폈다.

“영혼을 태우고 있어?”

“그래. 이대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터! 내 목숨을 걸었느니라!!”

“으음!!”

김강현은 신음성을 흘렸다.

천세후는 단전에 있는 내단을 부수어 강제로 힘을 개방했고, 전신에 퍼트렸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태워가며 버티고 있었다.

말 그대로 김강현을 죽이기 위해 수명을 깎아가며 싸우는 것이었다.

“천마강림(天魔降臨)!!”

그 순간, 천세후에게 일렁이던 불길이 그의 등위로 크게 일어나더니 거대한 악마상을 만들어냈다.

악마상은 마교의 성을 덮칠 기세로 무림맹 무인들을 노렸다.

“하찮은 인간이여!! 감히 신을 막을 수 있겠느냐?!”

천세후는 목소리에 마기를 실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악마상은 단숨에 무림맹 무인들을 덮치려 날아오는 사이, 김강현은 조용히 마검을 들었다.

* * *

“그것은 거짓된 신의 힘일 뿐!”

김강현은 천세후의 말을 부정했다.

그가 생각하는 신은 사람을 위해 베풀고 아낄 줄 알아야 했다. 타인의 힘을 갈취하고, 함부로 죽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신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신이었다.

그런 신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크하아아아앗!!”

기합과 함께 김강현의 몸에서 신마력이 솟구치며, 빠르게 마검에 모여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졌다.

“시, 신의 검이다!!”

“말, 말도 안 돼!! 어떻게 인간이!!”

신마력으로 만든 오러의 크기는 김강현의 키를 훌쩍 넘더니 무려 10m의 거검이 되었고, 들기 벅찰 정도로 엄청난 무게를 자랑했다.

덕분에 멀리 떨어진 무림맹의 무인들과 마교의 마인들에게도 선명하게 보였다.

콰아아앙!!

그리고 악마상과 거검이 부딪치는 순간, 강한 바람이 일어나 주변의 돌덩어리들이 소용돌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날렸다.

더불어 기의 충돌로 일순간 대기 중의 마나가 사방으로 퍼지며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크흑!!”

“여기까지 영향이 미친다고?!”

“더 사람들을 뒤로 물려!!”

기의 파장은 멀리 떨어진 무림맹 무인들과 마교 마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전신 마비 증상과 내부 기가 진탕되어 내상을 입은 자들까지 생겨났다.

이를 확인한 제갈명과 귀마는 사람들을 더 뒤로 물리며 김강현과 천세후의 싸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

무림맹은 김강현이, 마교는 천세후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끝나는 대로 바로 달려들어 참전할 계획을 세운 채 결과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살려주면 모든 사람들을 죽일 악마가 될 거다!’

‘이놈은 내 천적이다! 반드시 죽여야 해!!’

서로 실력이 팽팽하여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자, 천세후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천마령(天魔靈)!”

키에에에엑!!

말과 함께 천세후의 단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들이 비명을 지르며 악마상에 빨려 들어갔다.

“미, 미친!!”

“네놈을 죽일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천세후는 생명의 근원인 선천진기와 내단의 모든 힘을 악마상에 집중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론 패배할 것이 분명하구나. 그걸 사용하는 게 어떠하느냐?]

[준비는?]

[이 몸이야 늘 완벽하지. 다만 네 몸이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구나.]

[어차피 상대도 목숨을 걸었어. 그리고 이걸 해내지 못하면 지그문트도 상대하지 못해!]

본래 이것은 지그문트를 위해 준비하던 것으로,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신마력은 천세후와 싸우기 전까지 간신히 시간을 맞췄지만 이것은 10번을 시도하면 7번은 실패할 정도로 극악의 확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박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신마력으로는 천세후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륵!!

곧이어 김강현의 몸이 검붉은 기운에 잠식당하고, 이 과정에서 마갑이 해지되었다.

정확히는 마갑이 이 힘을 버틸 수 없어 사전에 거둔 것이었다.

[육체의 마력 침식은 막을 수 없느니라. 다만 정신만큼은 버텨라!!]

뒤이어 헬릭스의 걱정 어린 말이 이어졌다.

“걱정은 나중에 하자.”

그와 함께 김강현은 마검을 꽉 쥐자, 신마력으로 만든 오러 소드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작정 악마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알아서 죽으러 오는구나.”

이를 본 천세후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저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악마상의 힘은 영혼들의 힘까지 더해져 신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막기란 불가능했다. 게다가 김강현이 내뿜는 힘이 약해진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그런데,

“커헉!!”

김강현이 악마상을 꿰뚫고 바로 천세후를 노렸다.

그의 오른팔이 단숨에 마검을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천세후는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났지만, 김강현의 기세는 줄지 않고 계속 쫓아가 공격을 시도했다.

“이노옴!!”

분노한 천세후는 소리치며 악마상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둘러쌌다.

‘처음은 편법에 불과해!’

그는 일시적으로 김강현이 힘을 증폭하여 악마상을 꿰뚫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크윽!!”

이번에는 마기 공급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악마상이 부서지는 일이 없어야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이는 천세후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뚫리지 말아야 할 악마상이 반으로 쪼개지며 김강현의 마검이 그의 가슴을 베었다.

베어진 천세후의 가슴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천마님!!”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귀마가 소리쳤다.

‘이놈을 벤다!!’

천세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른팔을 뻗어 김강현의 심장을 노렸다.

살을 주고 뼈를 얻는다는 속셈.

인간은 심장이 뽑히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전무했다.

‘뭐, 뭐야?!’

“지금의 나에겐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

그런데 천세후의 팔이 김강현의 몸을 꿰뚫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의 흔적 따윈 없었다.

그냥 허공에 팔을 내지른 것처럼 팔이 몸을 뚫고 나와 버린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불사자(不死者)?!”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진위혁도 크게 놀라 소리쳤다.

사람의 육신은 크게 근육, 뼈, 피로 구성되어 상처를 입으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지만, 지금 김강현은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어 천하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3분만 있으면 육체가 소멸될 거다.’

하지만 이것에는 어마어마한 리스크가 존재했다.

지금 김강현은 신마력과 동조하여 자신의 육체를 신마력으로 바꾸었다.

즉, 일시적으로 육체를 바꾼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막대한 마나와 정신력이 필요했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테라 정령사들의 정령화가 힌트였지.’

처음 시작은 사소했다.

테라의 정령사들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정령의 힘으로 바꾸기도 했는데, 머릿속으로 이미지화하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신체의 일부분까지는 정령화가 가능했지만, 전신의 정령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잘못하면 시전자의 정신이 붕괴될 위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헬릭스의 마력 컨트롤은 그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나다.

그래서 김강현은 그를 믿고 신마력을 자신의 몸에 동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정말 불사라고……?”

“네 판단에 맡기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천세후의 말에 김강현은 마검을 휘두르며 대답했다.

“신마강림!”

그 순간 김강현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신마력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거대한 사람의 형태를 이룬 신마력이 마교의 성을 단번에 부술 만큼 커졌다.

“크아아앗!!”

그리고 전력을 다해 천세후를 향해서 마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악!!!”

이를 막기 위해 천세후는 악마상에 모든 힘을 집중했지만,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끝내 악마상은 부서지고, 신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이 천세후의 몸을 갈랐다.

“천마님!!”

이 모습을 본 귀마는 내성에서 단숨에 뛰쳐나와 천세후를 향해 달려왔다.

천세후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은 채, 천천히 공중에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후우.”

‘분명 느낌은 있었다! 그런데 정말 죽었을까?’

김강현은 신마력을 거두어들이며 손에 남아 있는 촉감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

쿠우웅!!

그때 천세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신히 착지했다.

“괜찮으십니까? 방금 놈의 공격에!!”

“……그래. 괜찮으니 소란 떨지 마라. 크헉!!”

안색이 창백한 천세후는 손짓하며 귀마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지만, 금방 바닥에 피를 토해냈다.

피는 검은색으로 김강현의 공격에 내상을 입은 흔적이 역력했다.

‘정말 죽을 뻔했다. 아니…… 이대로는 승산이 없겠어.’

김강현의 공격에 몸이 베어지는 순간 몸을 살짝 비틀어 급소는 피했으나, 신마력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당연히 신마력을 내쫓기 위해 마기를 운용했지만, 오히려 내상이 악화되고 있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선 하루 이틀의 시간이 필요한데 눈앞의 김강현을 두고 그러한 시간을 벌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룡대주. 어떻게 된 건가?”

“타격을 입힌 건 확실한데 아직 모르겠습니다.”

진위혁도 김강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김강현의 검이 천세후의 몸을 갈랐고,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리까지 그어진 흉터가 보였다.

더불어 끊임없이 피가 흘러 출혈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귀마.”

“예. 말씀하십시오!”

“혹시 내가 잘못되더라도 뒤를 부탁하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절대로 너만은 살아남으란 말이다.”

말과 함께 천세후는 품속에서 환약 하나를 꺼냈다.

“설마?”

“놈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모험을 할 수밖에 없구나. 남은 건 이것 하나뿐이다.”

바로 지그문트가 남긴 정체불명의 약이었다.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고, 이걸 사용할 순간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마가 약의 성분은 분석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고, 가능하면 복용하지 말 것을 권유했지만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강현, 당장 막거라!!]

‘뭐?’

[놈이 손에 들고 있는 것! 그걸 먹게 하면 안 된단 말이다!!]

그때, 김강현의 머릿속으로 헬릭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서움과 공포가 실려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천세후의 손에 들린 약을 뺏을 기세였다.

“잠깐!!”

손톱만 한 크기지만, 그 안에서 고도로 정제한 마력이 감지되었다.

김강현이 곧바로 몸을 날렸지만, 천세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가 약을 삼킨 순간,

쿠우웅!!

천세후의 몸에서 강력한 자기장이 일어나며 주변의 접근을 불허했다.

근처에 있던 귀마도 튕겨져 나왔다.

“이게 무슨……?!”

귀마는 갑자기 이상한 현상에 어리둥절하며 다시 천세후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천마시여!! 천세후 님!!”

천세후는 몽롱한 상태로 서 있을 뿐, 아무리 귀마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 이미 늦은 건가?”

“헬릭스?!”

그때, 헬릭스가 검은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천세후가 들고 있던 약을 보자마자 위험을 느끼고 바로 이동 마법을 시전하여 도착한 것이었다.

천세후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긴장해라. 어쩌면 이 자리에서 모든 이들이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부터 설명해.”

김강현은 처음부터 개입하지 않겠다는 헬릭스가 나타날 만큼 위험한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네놈이 말해봐라. 방금 놈이 먹은 게 뭐냐?”

“그건 나도 모른다. 한때 이곳에서 지냈던 록스라는 다크 위저드가 남기고 간 선물이라는 것밖에 아는 것이 없어.”

귀마는 헬릭스의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록스라고?”

“록스가 누구와 같이 있는지는 알고 있겠지?”

“마왕 지그문트!”

“그래. 방금 놈이 복용한 약에게서 지그문트의 마력이 감지되었느니라.”

0